엄한진(한림대 사회학과)
중동이 또 하나의 아프리카가 되고 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고전적인 이미지에 현재 중동의 현실이 오버랩 되고 있다. 끝나지 않는 전쟁과 무정부상태가 난민과 기아를 초래하고 현대판 노예를 양산하고 있다. 이미 10여 년이나 된 일이어서 익숙해진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보면 현재 중동의 모습은 이전의 중동과는 매우 이질적이다.
중동의 의미
한국과 같은 외부세계에 중동은 지리적인 차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석유 생산지와 분쟁지역이라는 표상이 있었고 최근에는 이슬람 세계라는 이미지가 덧붙여졌다. 아프리카 역시 나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원시적인 공간이며 극도의 빈곤과 종족갈등의 땅으로 여겨져 왔다. 에디오피아 난민, 르완다의 인종청소는 이 대륙을 상징하는 사건들이었다.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이 중동과 아프리카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면 또 하나의 지리적인 단절을 가져온 사하라 사막이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사막 이남의 ‘흑아프리카’로 나누는 기준이 됐다. 북아프리카는 사하라 이남 지역보다는 지리적 연속성을 가진 중동지역과 더 가까운 지역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다.
필자가 이러한 범위와 분류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중동지역에서의 일련의 변화 때문이다. 발전된 서구와 가까운, 보다 문명화된 지역이자 경제적으로도 사하라 이남 지역과는 구분되는 중동 지역의 상황이 악화되면서 양자 간의 차이가 희석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붕괴
국가의 부재 내지 ‘실패한 국가(failed state)’ 현상이 과거에는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 특정 시기에 나타난 한 두 국가의 예외적인 사례, 주로 이스라엘 제국주의와 연관된 현상이었다면 이제는 시리아, 예멘, 리비아, 이라크 등 다수의 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헝가리의 공공정책 전문가 야히야 사도프스키(Yahya Sadowski)는 중동 소재 국가들이 강제력의 측면에서는 매우 강하지만 사회적 영향력은 극히 미미한 점을 들어 ‘중동의 아프리카화’ 개념을 사용한 바 있다. 그는 중동 국가들이 치안, 인프라, 의료, 교육 등의 부문에서 제공되는 공공서비스가 최근 극도로 약화된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국가의 쇠퇴 내지 붕괴는 국민들이 이슬람 세력과 같은 비국가적 행위자들에 의존하게 만들었으며, 아랍의 봄과 같은 봉기의 주된 배경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아랍의 봄은 역설적으로 이러한 국가의 붕괴를 가져온 주된 배경으로 작용했다.(1)
아프리카화 현상이 비단 국가 영역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전쟁과 테러가 중동 및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확대되고 장기간 지속되면서 과거 아프리카에서 볼 수 있었던 난민과 인종청소, 노예제나 기아와 같은 극단적인 양상들이 목격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아프리카를 덮쳤던 이러한 현상이 2000년대 이후 중동 지역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것이다.
기아와 난민
집과 생존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과 난민의 경우에도 중동이 아프리카를 추월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중동에도 팔레스타인 난민이나 레바논 내전으로 인한 난민들의 사례가 있었지만 아프리카의 난민들과는 다른 인상을 주었다. 강대국이 개입한 국제적으로 비중 있는 현상의 부산물로 여겨졌으며 반제국주의나 민족주의와 같은 존중받을만한 이념이 비참함 그 자체보다 먼저 다가왔다. 그러나 이제 중동의 비극적인 장면들은 더 이상 어떤 가치 있는 것의 표상이 아니다. 과거 극단적인 이미지들이 아프리카를 저급하고 이질적인 세계로 만들었던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기능을 수행할 뿐이다.
난민은 극단적인 상황의 상징이다. 생존이 극도로 위협받고 있는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이 현상이 현재의 중동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시리아는 80% 이상의 국민이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으며 평균수명이 20세로 추락했다. 이런 가운데 인구 수는 2010년 2087만 명에서 2014년 1765만 명으로 줄었다.(2)
1980년대 이후 기아 문제는 주로 아프리카 지역에서 나타났으며 주된 원인은 분쟁과 가뭄이었다. 1980-81년 우간다, 1984-85년 에티오피아, 1991-92년 소말리아, 1998년 수단, 1998-2000년 에티오피아, 1998-2004년 콩고, 2005-06년 니제르, 2011-12년 소말리아, 2012년 서아프리카 지역에 이어 2016년부터는 예멘이 가장 심각한 기아문제를 겪고 있다.
2014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예멘 내전은 그간 3백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발생시켰다. 2800만 국민의 65%가 영양실조 상태에 있으며 1/4인 7백만 명이 전적으로 구호식량에 의존하고 있다. 내전 발발 이래 5세 이하 어린이 8만5000명이 영양실조로 사망했다는 보도도 있었다.(3)
예멘 내전은 2014년 후티 반군이 수도 사나를 장악하면서 시작됐다. 지난 12월 18일 스톡홀름 협정으로 휴전이 선포됐지만 양측 간의 신뢰는 매우 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4)
난민에서 노예로
현재 전 세계에 대략 4천만이 넘는 남성, 여성, 아이들이 노예 상태에 있다는 점에서 노예제도가 결코 사라진 과거의 일만은 아닌 것이다. 단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노예 상태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지역과 공간에서 발견된다. 현대적 노예는 노동이나 혼인 등을 강요당했고 이를 거절하거나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최근 통계자료에 따르면, 현대적 노예의 70% 이상이 여성이며 1/4가 아동이다.
특히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노예라고 볼 수 있는 사례들이 최근 급격히 늘어났다. 2016년 현재 아프리카에는 920만 명의 사람들이 노예와 같은 조건에서 살고 있다. 이는 인구 1,000명 당 7.6명에 해당하는 것으로 아프리카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 중 알제리, 이집트, 리비아, 모로코,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의 아랍국가에도 80만 명가량이 노예로 살고 있다. 중동의 아랍세계에도 52만 명이 노예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는 인구 1,000명 당 3.3명에 해당하는 것이다. 국가별로는 시리아, 이라크, 예멘 순으로 노예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며 절대적인 수로도 중동의 아랍세계 전체의 76%가 이 지역에서 발생한다.(5)
노예 현상은 근본적으로 글로벌 자본주의와 전쟁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노예가 생겨나는 주된 경로 중 하나는 난민을 납치하는 것이다. 특히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난민들이 납치되는 사례가 많다. 2017년에서 2018년 사이에 다국적이주센터(Mixed Migration Centre, MMC)에서 11,150명의 난민을 대상으로 수행한 인터뷰조사 결과를 보면,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루트에서 가장 많은 납치가 행해지며 특히 동아프리카 지역이 가장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 따르면, 동아프리카 지역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난민 15% 이상이 납치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언론이나 정부에 의해 난민이 비참하게 그리고 동시에 인간 이하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도 이들을 돈벌이 대상으로 여기고 이들에게 가혹한 행위를 하게 하는 배경이 된다. 극도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이들을 자신들과는 다른 종류의 저급한 인간으로 여기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상실한 난민의 이미지가 실제 이들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열등한 문명’에서 ‘야만’으로
중동은 분쟁의 대명사이자 국제관계의 요충지였다. 이스라엘과 석유의 존재, 그리고 지정학적인 가치는 이 지역에 인구 수나 경제력과 무관한 예외적인 지위를 부여했다. 그런데 이러한 특별한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실제 미국조차 최근 행보를 보면 대외정책에서 이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으며 점점 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석유의 전략적인 가치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이 지역의 위상 하락에 한 몫을 하고 있다.
객관적인 상황의 악화와 함께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악화를 배경으로 중동 지역의 생래적인 한계를 강조하는 오리엔탈리즘 류의 담론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문명 옥시덴트의 열등한 쌍으로서의 문명 오리엔트에서 문명의 밖에 존재하는 야만으로의 추락을 경험하고 있다. 그것도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가득 찬 야만으로 중동이 표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동의 추락은 비인간화된 난민과 노예, 이슬람국가(IS)가 연기하는 야만적인 행태의 논리적 귀결이라고 볼 수 있다. 지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유럽인들과 가장 가까운 타자가 이제 가장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존재가 됐다. 이 ‘새로운 흑인’은 이제 새로운 인종주의의 장에서 흑인을 상당부분 대체하는 새로운 인종이 되고 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꺼려지는 아랍인, 시리아 난민은 난민이라는 현상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아랍인에 대한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6)
인류 내부에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집단이 존재한다는 인종주의적 사고는 해당 집단을 동등한 연대의 대상이 아니라 계몽과 구호의 대상으로 변형시킨다. 국제정치나 경제적인 가치에서 비롯됐던 중동에 대한 관심이 인도주의적인 성격으로 변할 때 중동은 과거 아프리카가 그랬듯 질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사는 지역으로 인식될 위험이 있다.[워커스 51호]
[각주]
1
https://spp.ceu.edu/article/2014-11-27/sadowski-describes-africanization-middle-east, 2019년
1월 24일 검색
2
http://www.iranreview.org/content/Documents/Iran-and-Africanization-of-the-Middle-East.htm,
2019년 1월 24일 검색.
3
https://www.bbc.com/news/world-middle-east-46261983, 2019년 1월 27일 검색
4
『Guardian』 2019년 1월 16일: “Yemen ceasefire: new UN resolution seeks to save agreement”
5
https://www.globalslaveryindex.org/2018/, 2019년 1월 24일 검색.
6
엄한진, 2018, 「한국과 아랍의 정체성 논의 비교」, 『지역사회학』 19권 3호: 186-1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