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일자리’가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성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핵심 정책으로 삼고 아예 법·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을 개정해 기업의 세제·입지 지원을 돕겠다는 것이다. 전라북도 군산시, 경상북도 구미시 등 지자체들의 발걸음도 분주해졌다. 지자체는 기업을 유치해 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기업은 정부의 지원을 받으니 나름 구미가 당기는 사업이긴 하다. 그렇다면 과연 ‘상생형 지역 일자리’로 노동자가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전국으로 뻗어 나가는 ‘문재인 형 일자리 모델’을 들여다봤다.
기업엔 ‘종합선물세트’, 노동자에겐 ‘족쇄’
문재인 정부는 지난 2월 ‘상생형 지역일자리 모델 확산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어려운 고용 상황을 타개하고,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경제 주체 간 양보와 타협을 통한 상생 협력이 중요하다”는 추진 배경을 밝혔다. 이와 함께 각 경제 주체에 역할을 제시했다. 노동자의 역할은 ∆적정 근로조건 합의(지속 가능한 고용을 위한 합리적 근로조건) 수용 ∆합리적 노사 관계 구축(안정적 근로환경을 위한 협력체계 유지 적극 협조)∆생산성 향상(숙련 향상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 적응 참여 등)이다.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받으려면 다소 낮은 임금이라도 이를 받아들이고, 어떤 노동권 침해가 이뤄져도 사측과 ‘협력체계를 유지’하라는 뜻이다. 지역형 일자리 모델이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는 이미 ‘광주형 일자리’를 통해 현실이 됐다. 지난 1월 현대자동차와 광주시, 한국노총은 광주형 일자리 타결 과정에서 ‘신설법인 노사협의회 결정사항의 유효기간은 누적 생산 목표 대수 35만 대 달성까지로 한다’는 조항에 합의했다. 이는 사실상 임금 및 단체협약을 유예시키는 것이어서 논란이 일었다. 한국노총 측은 부속합의서로 방어 장치를 마련했다고 하지만, 부속합의서의 구체적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상생형 일자리’라는 취지에 따른 노동자 복리후생 방안도 미미한 수준이다. 광주시는 지난 4월 17일 고용노동부 사업 공모 선정에 따라 거점형(산단 내) 공공어린이집을 건립한다고 밝혔다. 정원은 150명 규모다. 이번 광주형 일자리 타결로 예상되는 신규 고용 인력은 1만 명이 넘는다.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이와 함께 광주시 측은 체육관 공모사업도 확정돼 진행 중이라고 전해왔다. 이 밖에 추진되는 사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광주시 관계자는 광주형 일자리 전체 사업 예산 중 복지 사업 비중이 얼마나 차지하느냐는 질문에 “(복지 사업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서 말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정부 차원에서 복리후생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주변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기숙사로 이용할 때 임차비를 월 30만원 상한으로 ‘3년간’ 지원하는 방안이다. 아울러 직장어린이집 등 시설건립비 설치비 지원 규모 한도를 2억 원 더 늘리겠다는 수준의 계획이었다.
반면 기업 지원에 있어서는 ‘특혜’ 수준의 방안들을 쏟아냈다. 지자체는 기업의 투자비 일부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고, 공유지 임대 시 대부요율을 인하하며, 장기임대 및 수의계약을 허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산단 내 취득한 부동산에 대한 지방세(취득세·재산세) 감면 조치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중앙정부에서도 지방투자촉진보조금 보조율을 가산키로 했다. 이렇게 되면 대기업은 3%p, 중소기업은 5%p, 중소기업은 10%p의 보조금을 더 받을 수 있게 된다. 동시에 보조금 한도도 현행 100억 원에서 150억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아울러 ∆펀드 지원 ∆투자 세액 공제 우대 등 법인세 감면 ∆임대 전용 산단 우선 제공 및 낮은 임대료 적용 등을 내놓으며 ‘전폭적 지원’을 예고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상반기까지「국유재산특례제한법」을, 하반기까지「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의 경우 이미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공사 중인 광주 빛그린산업단지 [출처: 김한주 기자]
‘전북형 일자리’ 나선 MS그룹 컨소시엄의 실체
정부의 지원 방안 발표 이후, 각 지자체는 지역일자리 모델 사업 유치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타결을 본 광주시 이외에 가장 선도적으로 움직이는 곳은 전라북도 군산시다. 군산시는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로 ‘산업위기 대응특별지역’으로 지정되는 등, 지역 차원의 일자리 대책이 시급한 지역이다. 전라북도도 지난 3월부터 ‘상생형 일자리 태스크포스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런 배경과 함께 지난 3월 29일, 엠에스오토텍, ㈜명신을 포함한 MS그룹 컨소시엄이 한국지엠 군산공장을 인수키로 했다. 전라북도에 따르면 MS그룹 컨소시엄은 위탁생산으로 2021년까지 연간 5만 대의 전기차 생산을 목표로 잡았다. 또한 2025년 15만 대까지 생산량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고용 규모는 직접고용 900명, 간접고용은 2천 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적정임금은 연 4천만 원 선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라북도는 지난 4월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MS그룹 컨소시엄이 총 매각대금 1130억 원 중 계약금 10%를 이미 납부한데 이어 잔금은 오는 6월 28일에 치룰 것”이라고 밝혔다. 전라북도와 군산시는 이를 바탕으로 6월 중으로 지역일자리 사업을 신청할 예정이다.
과연 MS그룹 컨소시엄의 인수로 들어설 군산공장의 노동자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얻게 될 수 있을까. 사실 지역에서는 벌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위탁 생산’이다.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에 따르면, MS그룹은 ㈜엠에스오토텍을 지배기업으로 국내 8개, 해외 5개 법인을 종속회사로 두고 있다. 이들 법인은 현대자동차 1차 협력사다. 지난해 MS그룹 매출의 70.3%가 현대차에서 발생했다. 엠에스오토텍의 매출 66.3%도 현대차에서 나왔다. 현대차의 종속도가 높다는 뜻이다. 엠에스오토텍 설립자인 이양섭 회장은 현대자동차 사장 출신이다. 때문에 MS그룹의 군산공장 인수는, 사실상 현대차의 전기·수소차 외주화(위탁 생산) 방안이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2025년까지 현대차에서 정년퇴직을 앞둔 노동자는 1만7500명에 달한다. 노조에서는 현대차가 신규채용 없이 전기·수소차 생산을 위탁할 공장을 마련한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는 “광주형 일자리를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정부 정책과 맞물려 볼 때,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광주 빛그린산단처럼 현대차그룹의 위탁생산 공장으로 활용될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이는 차세대 전기, 수소 자동차 생산라인을 아웃소싱하는 구조조정 시도로 볼 수 있다”며 “위탁 생산을 장려하는 일자리 정책은 다단계 하도급, 간접고용을 지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업 추진에 있어 실현 가능성 문제도 있다. 군산공장 인수와 가동 등에 필요한 4천억 원 가량의 예산을 MS그룹이 감당할 수 있느냐다. 엠에스오토텍 연결 재무제표에 따르면, MS그룹의 현금성 자산은 319억 원이다. 엠에스오토텍의 현금성 자산은 9억 원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업 자금을 외부에서 확보해야 하는 처지다. 기업의 지급 능력이 낮기 때문에 중앙정부와 지자체로서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사업 실적도 좋은 편이 아니다. MS그룹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3.1%(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 7.6%), 엠에스오토텍은 -0.2%에 그쳤다. 노조는 엠에스오토텍이 한국지엠 군산공장 인수에 따른 시설 관련 자금을 모두 차입금에 의존할 경우, 차입금의존도가 2018년 54.6%에서 향후 68.2%로 대폭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엠에스오토텍은 2차 협력업체 가진테크를 상대로 납품 단가 후려치기, 어음 지급 거절, 일방적 거래 중단 등 갑질 문제를 일으킨 곳이다. 이 사건으로 지난해 5월 가진테크 남창식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남 사장은 공정거래조정원에 분쟁 조정을 접수했지만, 결국 가진테크는 폐업 수순을 밟았다. 이와 함께 엠에스오토텍이 다단계 하청구조를 확대했다는 사실이 〈한겨레〉보도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한겨레〉는 엠에스오토텍이 가진테크 몰래 부품 제작에 필요한 금형제작을 업체 포엠에 맡겼고, 포엠은 다도로, 다도는 에스에이치메탈엔지니어링으로 하청을 줬다고 보도했다. 에스에이치메탈엔지니어링 차승휘 사장은〈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엠에스오토텍은 포엠에 납품대금의 85%를 주고, 포엠은 다도에게 60%를 지급했는데, 다도는 에스에이치에 4억 원의 대금을 한 푼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단계 하청구조와 하청사 갑질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에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이 내맡겨진 셈이다.
‘아래로부터 전북노동연대’는 “컨소시엄 주체인 엠에스오토텍과 세종공업은 현대차의 부품사다. 경험과 규모 에서 완성차 업체를 인수하거나 운영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된다”며 “위탁 생산은 다단계 하도급이라는 구조적 한계와 부진 시 구조조정 반복이 우려되므로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담보하지 못한다. 또 군산공장 인수가 전기차를 하도급으로 생산하는 현대차 계획이 반영된 것이라면, 현대차는 이윤을 최대화하는 대신, 노동자들은 기본권 약화와 근로조건 하락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군산형 일자리’가 노동자에 제공할 복리후생은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다.
구미에서도 지역형 일자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구미시는 지난 2월 24일 ‘구미시 지역상생 일자리협의회’를 구성했다. 협의회에는 구미시와 고용노동부, 한국노총 등이 참여하고 있다. 민주노총 경북본부 구미지부는 조직 방침에 따라 불참을 결정했다. 구미시는 3월 8일 ‘구미형일자리’ 국회 토론회를 여는 등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비례, 구미시을지역위원장)이 구미형 일자리 사업 추진에 발 벗고 나섰다. 이들이 구미형 일자리에 총력을 기울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193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구미5국가산업단지 기반 조성 공사가 끝났는데도, 들어올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4월 기준 5산단 산업용지 분양률은 22%에 그쳤다. 저조한 기업 유치 실적을 해결하기 위해 구미시가 내세운 것은 바로 ‘투자 특별 인센티브’다.
《워커스》가 입수한 ‘구미시 지역상생 일자리 창출 추진계획’에 따르면, ‘구미형 일자리 모델’은 합작투자형, 기업유치형, 인력서비스형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이중 기업유치형에 적용받는 기업은 ‘특별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특별지원금(최대 1천억 원) ∆협력기업 유치보조금 확대 지원(최대 200억 원) ∆입지보조금·이전보조금·관내 기존 기업 투자 등 확대 지원(최대 100억 원) 등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이를 부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막대한 지원 규모다. 반면 기업유치형에서 노동자가 받는 지원은 ∆산업단지 내 복지관, 체육시설, 어린이집, 테마공원 등 복지시설 제공 ∆임대주택 공급 및 오피스텔형 기숙사 지원 ∆이주 정착비·급식·생활경제·금융공제 등을 포함한 후생 복지다. 기업 지원은 금액까지 제시했지만, 복지 사업의 구체적 내용과 예산 규모는 확정된 것이 없다.
[출처 : 구미시]
이승희 금오공과대학교 교수는 지난 3월 구미형 일자리 토론회에서 ‘대기업 구미 유치와 구미형 일자리 창출방안’을 내놨다. 구미형 일자리 1~2개 대상 기업이 5산단에서 위탁 생산을 해, 1만~1만 5천 명의 직·간접고용 일자리를 창출 하는 방안이다. 이에 따르면 지자체와 대상 기업, 시민펀드 등이 총 1~2조 원을 투자해 독립법인을 운영하게 된다. 이 같은 모델을 제안할 기업은 모두 재벌 대기업이다. 배터리 업종에선 삼성SDI, LG화학, SK이노베이션이, 자동차 전장 부품 업종에선 LG이노텍, 현대모비스가, 5G 기반 모바일 산업에선 삼성전자가 대상 기업으로 꼽혔다. 이와 함께 이 교수는 노동자 적정 임금 규모로 3800만 원대를 설정했다.
문제는 구미형 일자리의 성공 조건으로 ‘임금협상 유예기간 합의 도출’을 내걸었다는 점이다. 광주형 일자리 사례처럼 구미에서도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제한하고, 임금을 동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배태선 민주노총 경북지역본부 교육국장은 “올해 초 이뤄진 노사민정 협의회 자료에서 임금 동결과 관련된 내용을 봤다. 구미형 일자리에서 위탁 생산 계획도 나왔는데, 구미시가 (기업 유치를 위해) 모든 경우의 수를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 진영은 광주형 일자리를 비롯한 지역일자리 모델이 노동3권을 제한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김경근 금속노조연구원 연구위원은 “광주형 일자리가 제시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은 (노동조건에 대한) 결정을 노사관계 외부에서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는 이제까지 노동3권을 부분적으로나마 보장하던 법·제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이며,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노사관계를 만들려는 시도다. 이를 위해 제시된 것이 (지역형 일자리의) 독립 법인이다. 기존의 노조가 사라진 현장을 통해 저임금, 노동시간의 유연화, 노동강도 강화, 노동3권 부재가 지자체의 보증 아래 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임금을 감소시키면 기업이 투자할 것이고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광주형 일자리의 대전제 자체에 오류가 있다. 이는 IMF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펼쳤던 한국의 역사적 경험에서 충분히 증명된 바 있다”며 “광주형 일자리는 어차피 만들어질 일자리를 더 안 좋은 일자리로 대체했다고 봐야 한다. 광주형 일자리는 지자체들의 ‘바닥을 향한 경주’를 촉발할 위험성을 지닌다”고 강조했다. (워커스 5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