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스 58호 이슈① [정부의 의뢰, 자본의 살인] 순서
1. 권한의 분리, 세 명의 죽음, 책임의 소멸
2. 공공이 자본에 넘긴 노동자 죽음…국가는 유령?
3. 반복되는 ‘공공 공사’ 사망 사고…책임은 누가?
최근 정부 발주 공사에서 노동자 사망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2016년~2018년 주요 22개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47명. 사망만인율(1만 명당 사망자 수)은 2.34다. 이는 지난해 1월~9월 기준 전체 산업 평균 사망만인율 0.85, 건설업 평균 사망만인율 1.43보다 높다. ‘공공’이 주문하고 책임지는 공사에서 노동자가 사망할 확률은 왜 높은 것일까. 《워커스》는 구조적인 원인을 짚고, 근본 대책이 있는지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다. 집담회에는 권미정 김용균재단 준비위원회 활동가,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이 참여했다.
사회. 김한주 기자
토론. 권미정 김용균재단(준) 상임활동가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정리. 정은희 기자
김용균 이후, 많은 제도 생겼지만…
김한주. 이번 목동 빗물펌프장 수몰 사고로 정부나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사업의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번 사고만 해도 서울시가 발주하고 현대건설이 시행, 하청 협력업체가 참여한 사업이다. 그러면서 정부와 대기업, 하청업체의 노동자 안전 책임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여러분은 다양한 곳에서 노동자 안전을 위해 활동해 왔는데, 그간 정부 발주 사업을 어떻게 지켜봐 왔는지 궁금하다.
최명선. 공공기관 발주 사업에서 각 주체가 책임지는 안전의 범위가 워낙 다양하다. 그래서 토론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일단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건설공사와 관련해선 지난 10년간 건설산업기본법 개정 운동이 있었고, 최근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이후 김용균 투쟁이 있었다. 이를 통해 지난 3월에 공공기관 작업장 안전 강화 대책이 발표된 것인데, 대상만 338개다. 이 대책은 공공기관 발주 공사와 위탁 용역 사업까지 포괄한다. 이와는 별도로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공사 문제도 있을 것이다. 현재는 정부가 발표한 공공 안전 대책을 주목해 봐야 하는데, 기관별로 안전 관련 조직 체계, 인력, 예산 확보 등이 논의되고 있다. 향후 2~3년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상윤. ‘공공’이라는 말이 넓은 개념이지만, 중앙정부, 지방정부, 공공기관을 세 책임 주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외주화나 임대형 민간투자사업(BTL)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해 왔는데, 그 과정에서 공사 책임이 분산되고, 노동 안전에 사각지대가 생기는 등 문제가 심각한 것이 사실이다.
권미정. 공공부문은 사회적 기준치를 정하는 무게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2013년에 노량진 배수지 수몰 사고가 났었는데, 서울시가 시정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번에 목동에서 다시 사고가 일어났다. 서울시의 안전 관리 프로세스가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규정이나 지침을 만들어왔는데,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메커니즘이 무엇인지를 짚어봐야 한다.
최명선. 공공 분야가 민간보다 제도상으로는 더 많은 안전 장치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번 수몰 사고를 보면 과연 안전을 위한 제도가 노동자 입장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통제나 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 모르겠다. 이를 점검해봐야 할 때이다.
‘산재 지옥’ 현대건설이 수주한 이유들
이상윤. 많은 사람들이 ‘다수의 산재를 내 온 기업이 왜 또 서울시의 건설 사업을 수주할 수 있었을까’ 의아해 한다. 이번 목동 빗물 펌프장 공사를 수주한 현대건설은 이미 수많은 산재 사망 사고를 냈다. 지난해 기준 현대건설은 사망사고 다발 건설기업 2위를 차지했다.
최명선. 공공기관이 건설 사업을 발주할 때, 노동자 안전을 위한 장치가 있긴 하다. 업체를 선정할 때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PQ)에 재해율을 반영하도록 해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기업은 불이익을 받도록 한다. 이 비율(불이익 반영 비중)이 계속 줄어들고 있기는 하다. 노조도 1년 반을 싸워 2006년부터 산재은폐율을 반영하도록 하기도 했는데, 이런 제도가 각 현장에 미치는 영향이 분명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공공 입찰에 어느 정도의 불이익을 주는지는 모르겠다.
현대건설의 경우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산재 은폐 건수가 118건에 달했다. 입찰 심사에서 산재 은폐는 건당 –0.2점이다. 최대 –2점까지 받는다. 현대건설은 확인된 산재 은폐가 많기에 무조건 -2점을 받았을 것이다. 보통 –0.001점 차이로 심사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2점은 엄청난 것이다. 그런데도 현대건설은 큰 영향을 받은 것 같지 않다. 많은 건설사가 산재에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심사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계약에 불이익을 주는 제도가 현실에서 어떻게 반영되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재는 정리된 자료가 없다. 계약 관계는 국토부나 기재부가 소관 하는데, 이들이 관리하지도 않고, 공사는 공공기관마다 다 나뉘어 진행된다. 그래서 자료가 나오기가 어렵다.
PQ에 정규직 안전관리자 선임 등 다른 지표들도 포함되는데, 정착되기는 아직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이상윤. 일반 시민의 눈높이에서 봤을 때 산재 예방 관리에 소홀한 기업이 입찰 심사에서 경쟁력을 가진다는 걸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 안전 제도는 있으나 입찰 심사에선 우선순위에서 밀린다고 밖에 볼 수 없지 않나.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이 과업을 공고에 수렴하고, 선정하는 각 단계에서 노동 안전 기준을 적용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경제성 항목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최명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통해 설계부터 발주, 시공, 감독까지 원·하청 협력구조나 안전 인프라 등 종합적으로 노동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체계가 내년에 만들어진다.
남은 문제는 이 과정에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건설업에선 원청과 하청 노동자가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공동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는 특히 발주처가 원·하청 노동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원하청 안전보건협의회, 또는 원하청 산보위를 직접 챙겨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여전히 횡행하는 불법 하도급
최명선. 이외에도 노동자 산재에는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다. 한국에선 건설 공사로 1년에 5~6백 명이 사망한다. 매우 심각한 수치다. 발주 문제 외에도 근본적으로는 다단계 하도급 문제가 있다. 원청, 하청 그 밑으로는 내려가지 말아야 한다. 구의역 때도 하청으로 내려가니까 위험 전달 체계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전철이 뻔히 오는데, 일하고 있던 하청노동자는 알 수가 없어 목숨을 잃었다.
이상윤. 현재 하청, 다단계 하도급 문제를 발주서에 반영하도록 하는가? 이것이 중요한 문제라면, 인센티브 등으로라도 정책적으로 반영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
최명선. 이 점에선 두 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직접 시공을 확대하는 것이다. 직접 시공제가 도입된 지 10년 가까이 됐지만 아직 규모가 아주 작다. 다른 하나는 불법 하도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단계 하도급이 불법이 된 지 10년이 넘었는데, 현장에선 아직 횡행한다. 불법 하도급을 없애는 제일 좋은 방법은 노조이다. 10년 동안 제도가 있었어도 모두 허사였고,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하청업체와 직접 계약을 체결하면서 불법 하도급을 줄여 나갔다.
권미정. 고용 형태 차이가 노동 안전에 주는 영향도 중요하다. 지금 현장은 하청, 위탁, 다단계 하도급 등 다양한 비정규직 고용 형태를 둔다. 고용 형태를 분리한 탓에 이들은 관리 범위에서 벗어나게 된다. 위험의 사각지대에 처하는 것이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발주할 때 통합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중요한데, 고용 형태 측면에서도 접근해 봐야 한다. 발전소에서 김용균의 죽음도 그렇게 일어난 것이다.
제어하지 못하는 ‘종합 관리’
김한주. 종합관리 차원에서 얘기를 해봤으면 좋겠다. 이번 목동 사고에서 보면, 제어 상황실이 2개가 있고, 도어락도 달랐다. 양천구청 직원이 수문 시운전 업체 관계자에게, 업체 관계자가 현대건설 직원에게 호우주의보가 발동됐다면서 점검을 요청했는데, 현대건설 관계자는 현장까지 오는데 8분이 걸렸고, 도어락 비밀번호 물어보는 데 시간이 또 지체됐다. 그렇게 제어관리가 통합적으로 되지 않은 것인데, 이는 발주 구조가 가지고 있는 필연적인 문제인가?
권미정. 행정기관이 통합적인 관제 시스템을 가져야 한다. 서울시가 그 권한을 가지지만 운영의 체계에는 또 양천구청이 껴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작년 8월에 물이 역류해 서울시의회가 논의해 수문 개방 방식을 수동에서 자동으로 바꾼 것으로 안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시에 그 권한이 있다고 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이에 대한 자료 요청을 해놓은 상태다.
이상윤. 최근 사회적으로 주목되는 사고의 특징이 개입 주체들이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주체들 간에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등의 문제가 이야기된다. 특히 공공 공사 관련 발주는 엮인 기관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컨트롤타워가 더욱 중요한데 존재하지는 않는다. 가스나 수도 등 사회간접자본 설비 운영과 관련해서도 노동자 안전 관리 책임 주체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또 안전의 책임은 고용노동부만이 챙긴다는 인식이 강하다. 국토부나 국방부, 방위사업청 등 발주 사업이 많은 부처엔 위험을 관리하는 체계가 없다는 게 문제다. 고용노동부의 안전 대책이 다른 부처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핵심 사업 주체가 부서 등 안전이나 건강에 대한 체계를 독자적으로 갖춰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명선. 최근 발표된 공공기관 안전 대책은 두 가지 쟁점을 지닌다. 하나는 공공기관에 노동자 안전을 위한 부서와 체계, 인력을 갖추는 것이다. 실제 인력 배치와 예산은 내년에 집행될 예정이다. 그러면 적어도 300여 개 공공기관은 안전에 대한 전담 체계가 생긴다. 이를 모니터링 하는 게 중요하다. 다른 하나는 지방행정 문제다. 민주노총은 지자체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부터 먼저 지키라고 말하고 있다. 이외에도 서울시를 필두로 약 10개 지자체가 감정노동 보호 조례를 만들었는데, 서울시와 서울시가 출연하는 기관에서 감정노동 보호와 같은 노동자 안전을 위한 자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도는 산재예방 조례를 만들었다. 충남과 경남은 추진 중에 있다. 그 동안 지자체나 학교의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서 이끌어낸 성과이다.
공공부문 노조의 중요성 늘어
권미정. 노동 안전을 현실화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이 이 과정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가 중요하다. 실제로 현장에서 그들이 목소리를 내며 권한을 실행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다.
최명선. 그래서 노조 조직이 중요하다. 노동자들이 산업안전보건위 등을 현장에서 이루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매개로 투쟁을 만들어 현장 안전을 바꿔나가는 게 중요하다. 여태까지 많이 싸웠지만 현장에서 노동자가 참여하지 않으면 허사라고 본다. 남은 과제는 노동자들이 실제로 산재예방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투쟁을 전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조가 있는 사업장 중심으로 노동 안전을 핵심 사업으로 끌어올리고, 싸움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상윤. 특히 공공부문의 노동조합이 중요하다고 본다. 공공부문이 넓어지고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지금껏 노동자 안전이나 건강 문제는 주로 건설이나 금속이 논의해 왔다. 이곳도 물론 중요하지만 새롭게 부각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고려하면 공공부문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본다. 지금 공공 발주 공사에서 안전 사각지대가 넓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시각조차 정돈돼 있지 않다. 공공 영역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절실한 시기다.[워커스 5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