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기술]
박다솔 기자/ 사진 – 정운
집회 시위를 끝내고 가는 길. 뒷맛이 개운치 않다. 경찰이 들이댄 캠코더가 자꾸 걸린다. ‘국가에 찍힌 게 아닐까’ 불안감이 엄습한다. 복면 착용은 경찰의 무분별한 채증 탓이지만 정부는 얼굴 가린 시민을 잠재적 테러 분자로 몰았다. 경찰은 불법이 우려되는 집회 시위를 채증할 수 있지만, 단순히 길을 지나는 시민에게도 광범위하게 카메라를 들이민다.
경찰이 먼저 시위대에 시비를 거는 경우도 다반사. 투쟁하는 노동자 L 씨는 경찰의 이죽거림과 집회 참가자의 흥분을 유도하는 ‘토끼몰이’에 대응하려고 캠코더를 잡았다. L 씨는 경찰의 폭력적인 연행 장면을 찍어 경찰청 청문 감사실에 민원을 넣었다. ‘재교육을 실시하겠다’는 무책임한 말이 돌아왔지만 몇 번의 민원 청구 뒤 사뭇 달라진 태도를 느꼈다.
경찰을 감시하는 시민이 많아지면 좀 더 자유롭게 집회 시위에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한 준비물은 간단하다. 스마트폰과 셀카봉이다. 행진을 방해하고 시민을 도발하는 경찰을 보면 셀카봉에 스마트폰을 꽂고 동영상을 찍자. 이정렬 전 부장 판사도 페이스북에서 “현장의 소리와 증거 능력 있는 정황 증거를 확보하려면 사진보다는 동영상 촬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촬영할 땐 조금 높은 곳에서 찍어 경찰의 행동 전체를 잡아야 한다. 경찰의 얼굴을 확대해 담는 것도 필요하다. 카메라를 잡았다면 흥분은 금물. 팔을 옆구리에 붙이고 상체만 천천히 돌리며 차분하게 찍어 보자. 영상의 흔들림을 막기 위해서다.
경찰과 자주 부딪히는 노조엔 캠코더와 모노포드(외발 카메라 받침대) 구비를 추천한다. 차곡차곡 쌓인 자료는 억울하게 소환되거나 벌금을 무는 조합원을 구제할 수 있다. SNS에 공유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경찰은 올해 채증 장비를 고도화한다며 작년보다 2배 이상 많은 예산을 배정했다. 집회 참가자의 모공까지 죄를 물리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시민도 셀카봉을 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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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고글 최루액과 물대포 공격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고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직사 물대포를 눈에 맞으면 홍채 근육 다 나가고 피 난다. 3미터 거리를 좋아하는 회사 제품이 시장을 장악했다.
❷ 마스크 최루액의 매캐함에 콜록거리다 보면 눈물 콧물 줄줄. 이때 마스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양지차. 보통 마스크도 쓸 만하지만 공업용 방진 마스크가 최고. 채증 카메라로부터 얼굴도 확실히 가려줌. 역시 3미터 회사 제품이 시장 장악.
❸ 셀카봉 가두리 양식장에 광어가 아닌 사람을 몰아넣는 경찰을 채증할 가장 강력한 장비. 텐 셀카봉 원 드론 부럽지 않다. 다만 핸드폰이 떨어지지 않게 단디 고정해야 한다. 노란 고무줄이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돈 좀 더 주면 블루투스도 가능하다.
❹ 헬멧 경찰 진압봉에 머리 맞으면 아프다. 물대포에 맞아도 아프다. 물병도 아프고 돌멩이도 아프고 소화기는 죽는다. 아프니까 셀카봉이 처진다. 드론이 부러우면 지는 거다. 투쟁 코디를 완성해 줄 익스트림 스포츠용 헬멧이 많이 나오고 있다. 가오 상하게 바가지는 쓰지 말자.
❺ 우비 물대포엔 일회용 우비만 한 게 없다. 제아무리 고어텍스 점퍼도 물대포 앞에선 우비와 평등하다. 우비는 기장도 길다. 패션을 신경 쓴다면 장화와 깔맞춤하면 한층 투쟁덕력이 상승한다. 다만 우비를 입었다고 옷이 젖지 않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❻ 백팩 촬영하다 불가피하게 물대포에 맞고 나면 여분의 옷이 필요하다. 또한 보조 배터리도 필수. 배터리는 좁쌀만 한 게 가성비 최고라지만 정품일 때 이야기다. 물대포를 맞고 나면 가방 안의 옷도 다 젖어 있다는 게 함정.
❼ 핸드폰 접이식 효도폰은 피하는 것이 좋다. 요새는 동영상이 대세니 사진뿐 아니라 동영상 촬영도 시도해 볼 만하다. 방수 대책은 필수다. 마트에서 파는 지퍼팩이 대파 보관할 때만 유용한 것은 아니다. 할부 많이 남은 핸드폰은 분노 앞에 눈감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