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자영업 보고서]
차경희(해방촌 문학 서점 ‘고요서사’ 서점 편집자)
지난주 수요일부터 왼쪽 윗입술이 떨린다. 미세한 경련. 그날 저녁으로 매운 떡볶이를 먹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무 때나 입술이 혼자 실룩댄다. 이게 무슨 일이지 싶어, 어리석은 건강 염려증 환자의 대표적 행동으로 꼽히는 지식인 검색에 들어갔다.
‘입술 경련’, ‘입술이 떨려요’ 등의 검색어를 치고 그 결과를 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증상을 말하며 그 이유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다. ‘의학 전문가’라고 자청하는 사람들, 혹은 ‘주워들은 지식’을 바탕으로 답변을 단 사람들의 말을 읽어 보니 ‘안면 근육 마비’의 초기 증상이거나 마그네슘 부족이라고 한다. 안면 근육 마비라니… 이 무슨 겁나는 말인가. 그 뒤에 따라 붙은 과로, 긴장, 스트레스라는 단어보다는 이 낯설고 두려운 단어만이 머리에 박혔다. 혼자 걱정만 하기는 싫어서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마침 서른셋 동갑내기 친구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서는 자신들의 건강 상태를 걱정하는 말들이 한창 쏟아지던 참이었다. 내 증상을 들은 친구들은 무조건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게 걱정만 더해 가던 중, 다른 친구와의 대화에서 이 증상을 다시 화제에 올렸다. “나 얼마 전부터 자꾸 입술이 떨려. 안면 근육 어쩌고 증상일 수 있다는데…” 하는 말에 친구는 “그거 눈가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거, 너도 이젠 눈치챘겠지만 자영업자 마크야.ㅋㅋㅋㅋ”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보다 1년쯤 먼저 회사를 그만두고 카페를 운영하는 친구의 말을 듣자 바로 수긍이 됐다. 그렇다. 나는 자영업자 생활 4~5개월 만에 마크 하나를 더 달았다. 아마도 첫 마크는 ‘불면’이지 않을까 싶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
2015년 10월,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고요서사’라는 작은 서점을 열었다. 출판 편집자 8년 차, 다니던 출판사에 사표를 내고 시작한 일이다. 편집자라는 직업을 좋아서 선택하고 즐기며 일해 왔지만(나는 무척이나 운이 좋은 직장인으로 살았다) 다음 단계의 무언가를 오래전부터 바라고 있었다. 그러다 여행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서점 운영자’의 꿈을 실현하기로 결심하고는 퇴사 후 두 달 동안 창업을 준비하고 해방촌에 자리를 잡았다.
대우가 가혹하기로 유명한 출판계에서 일하며 1인 가구로 근근이 살던 내가 창업 비용이 넉넉할 리 없었다. 게다가 계산기를 몇 번이나 두드려 봐도 서점 운영으로 수익을 내서 생활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해 보고 싶었고, 외주 교정이라는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한 뒤 퇴직금과 약간의 적금을 끌어모았다. 주위에서는 청년 창업 지원금이나 소상공인 대출 제도를 이용하라고 조언을 해 주기도 했지만, 서점 창업에 맞는 지원 사업을 찾기도 힘들었고 살짝 귀찮기도 했다. 주로 IT나 콘텐츠 사업 혹은 마을 공동체 같은 비영리 단체에 지원이 몰려 있었다. 문화나 서비스 사업 쪽으로 기획안을 마련해 볼 수도 있었지만, 그저 책을 소개하고 파는 평범한 ‘동네 서점’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억지를 부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냥 혼자 힘으로 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의 어리석음은 이렇게 또 존재감을 드러냈다.
어쨌든 영혼까지 끌어모으는 심정으로 마련한 1500만 원을 갖고 ‘문학 중심 서점’이라는 콘셉트의 공간을 마련했다. 가진 돈이 워낙 적었기 때문에 지인이 운영하던 카페에 숍 인 숍 형태, 즉 전전세로 들어갔다. 정식으로 계약서도 쓰고 사업자 등록까지 냈지만 더부살이하는 군식구가 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애정을 갖고 공들였고, 가진 것만큼 활용하여 서점을 단장했다. SNS 관리도 시간 들여 했더니 여러 매체에 소개되는 행운도 누렸다. ‘작은 서점’, ‘동네 서점’, ‘독립 서점’ 등으로 불리는 공간들에 쏟아지는 관심에 어쩌다 잘 묻어간 덕이었다. 주간지, 일간지, 패션지(심지어 남성지), 라디오와 TV 프로그램까지 이어지는 취재 요청에 얼떨떨하기만 했다. 가족들에게 비밀로 하고 저지른 무모한 창업이었는데, 매체에 등장한 내 사진과 이야기를 보여 주며 커밍아웃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매달 매출을 정산할 때마다 인건비 0원의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예상했던 상황이라 충격적이진 않았고, 오히려 어떤 달은 몇만 원쯤 남아서 신기하고 기쁘기도 했다. (돌이켜 보니 눈물이 난다.) 10월과 11월에는 흔히 말하는 ‘오픈 효과’ 덕분에 매출이 오르는 흐름이었으나, 11월 말에 갑자기 불어닥친 추위와 비, 눈, 그리고 또 1월의 혹한기는 마치 이 세상이 나에게 “싸우자” 말하는 것 같았다. 매출은 하락과 제자리걸음 사이를 오갔다. 2월에는 조금 나아지나 싶었는데 민족 대명절인 설날이 있어 다시 마음을 비우게 됐다.
퇴사 후 집에서 창업을 준비 중이던 백수 시절, 적당한 소음이 필요할 때 드라마 <미생>을 틀어 놓곤 했다. 회사를 떠난 입장에서 여유 있는 마음으로 다시 보고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충격을 마주하게 된 에피소드가 있다. 오래전 회사를 떠나 작은 피자집을 운영하던, 정확히 말하면 운영하다 망한 자영업자(오 차장의 선배)가 한 대사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나는 과연 내 발로 지옥에 들어선 것인가.
‘잘나가던 직장인이 던진 사표’라는 클리셰
청년들의 새로운 인생은 한 장의 사표에서 시작한다. “잘나가던 직장인인 아무개가 어느 날 문득 사표를 내고” 이후에 등장하는 말은 대개가 ‘세계 여행을 떠났다’거나 ‘창업을 했다’거나 ‘제주로 떠났다’이다. 가끔은 이 세 가지 외에 새로운 삶은 없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 역시 이 클리셰에 반쯤 속한다. 나는 대기업에 다닌 적도 없고 잘나간 적도 없기 때문에 반만 속한다. 그렇지만 나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대부분 둘 중 하나, 혹은 둘이 섞여 있다. 부러움 혹은 염려다.
이는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어쩔 때는 서점을 하지 않았다면 겪지 못할 좋은 일들을 경험하고 좋은 인연들을 만나며 나조차 내가 부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스스로 자립할 수밖에 없는 이 낯선 곳에서 한 발만 까딱 잘못 움직여도 정말 끔찍한 ‘지옥’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있다. 그래서 더 말하고 싶고, 제대로 알리고 싶다. 서른셋 나이에 발을 디딘 회사 ‘밖’은 정말 지옥인지 아닌지 말이다.
나에게 “자영업자 레벨 업”을 선고한 친구는 가게 사장들에게 종합비타민은 필수라며 반드시 챙겨 먹어야 한다고 강력히 권했다. 자신은 센◦◦을 섭취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아마도 선배 ‘사장’님들은 나처럼 차디찬 창고에서 끼니를 때우려고 하면 없던 손님도 문을 여는 상황을 겪다 보니 영양제라도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공통의 결론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매체에 보도되고 SNS 팔로워가 늘수록 무슨 큰일이나 벌어진 듯한 분위기에 휩싸일 때도 있지만, 이 서점은 이름만큼이나 늘 고요하다. ‘청년 창업자’를 바라보는 낭만의 시선에 취해 봤자 입술 떨림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일단은 비타민 한 알을 입 속에 넣고 생각한다. 회사 밖에서도 ‘미생’은 계속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