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의 일부가 되지 말자”
페데리코 푸엔테스 국제사회주의 저널 <링크스> 부편집장 인터뷰
김정윤 객원기자
《워커스》가 한국을 찾은 페데리코 푸엔테스 국제사회주의 저널 <링크스(Links)> 부편집장을 만났다. 푸엔테스 부편집장은 지난 3일 서강대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위기, 어떻게 볼 것인가?” 국제토론회에서 브라질과 핑크타이드(Pink Tide, 사회주의/사민주의를 표방하는 좌파 노선)에 관한 전문적인 견해를 내놨다. 그는 2007~2010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지내면서 <그린레프트위클리>에 글을 기고했고 ‘미란다 국제센터 재단’에서 주재연구원으로 21세기 정치수단과 공공관리의 대중 참여에 관해 연구했다. 이 밖에도 텔레수르, Z넷, 카운터펀치, 먼슬리리뷰, 베네수엘라 어날러시스, 레벨리온 등 다양한 출판물과 웹사이트에 영어와 스페인어로 기고하고 있다. 이날 인터뷰는 토론회 주최 단체인 국제전략센터의 통역과 지원으로 이뤄졌다.
라틴아메리카 사회 운동과 좌파 정부를 연구하고 연대해 왔다. 이들의 성과에 관한 견해를 듣고 싶다.
가장 특별한 성과는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이었다. 이것은 전통적인 좌파의 프로젝트였다. 이른바, 소련이 붕괴하면서 좌파는 신자유주의가 압도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실제로 대안적인 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베네수엘라가 성취한 것은 빈곤율 하락, 고용률 증가 등도 있지만, 가장 큰 업적은 세계에 급진적인 사회주의의 운동이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좀 더 폭넓게 보면 핑크타이드는 남미에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실험실이었다. 좌파적인 아이디어들, 급진적인 민주주의, 노동자 자주 관리, 주민 참여 등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사회에 실행해 보고 현실로 만들어가는 실험을 했다. 국제적으로 봤을 때 좌파들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진행 중인 실험에 대해 성과든 실패든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는지 주목하고 있다.
외신은 베네수엘라 경제 상황을 편향적으로 보도해왔다. 실제로 얼마나 어려운가?
베네수엘라 경제가 매우 어렵고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언론이 왜곡하고 있는 것은 위기 그 자체가 아니라 근본 이유다. 첫째, 그들은 고의로 사실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우유를 살 수 없다고 하는데, 치즈나 요거트, 아이스크림은 살 수 있다는 사실은 보도하지 않는다. 우유가 없다면 이런 유제품이 어떻게 나올 수 있겠는가. 정부가 대중이 누릴 수 있도록 기초 식료품 가격을 제한하기 때문에 기업은 더 이윤을 낼 수 있는 상품만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은 단순히 우유가 없다고만 보도한다. 둘째, 더 심각한 방식은 언론이 기업에만 유리한 방식으로 보도한다는 것이다. 언론은 베네수엘라에서 구매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긴 줄을 서야 한다고 보도한다. 그것은 사실이며 물품을 찾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것은 차베스 이전에는 물건을 살 돈이 없어 이렇게 긴 줄을 설수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수치를 보면,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이전에는 필수 칼로리 섭취 평균량을 훨씬 밑돌았는데 이제는 높아졌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차베스 정책의 성과로 이제는 사람들이 물건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서고 있고 언론은 다시 이를 공격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차베스가 만들어낸 변화가 아니라 아직 만들지 못한 변화에 있다. 베네수엘라 경제 정책을 종합하면, 석유 부문을 국유화해 이 수입을 빈곤층에게 재분배했고 이러한 부의 재분배로 대규모의 소비 증가를 이뤄냈다. 그런데 가장 기본적인 필수품을 생산하는 산업은 소수가 장악하고 있다. 이 소수가 차베스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경제적 부와 정치권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소수는 생산에서 이윤을 창출하는 것보다 경제 위기를 만들어 차베스 정권의 뿌리를 약화하는 것을 더욱 선호한다. 이러한 상황에 차베스 이전부터 계속됐던 부패가 더해져 더욱 심각한 상황이 됐다. 가난한 사람들은 물품을 살 수 없고, 부유한 사람들은 생산하지 않고, 부패 때문에 수입도 할 수 없는 위기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선 차베스 정권에서 했던 경제 정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를 완전하게 시행해야 한다. 차베스는 모두가 볼리바리안 혁명에 참여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얘기했었다. 부유한 사람들이 생산을 통해 부유한 상황을 유지하고 싶다면 볼리바리안 혁명에 참가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그 누구도 국가 위에 설 수 없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그들의 공장이 노동자들에 의해 관리돼야 한다고 했다. 차베스는 또 부패가 볼리바리안 혁명의 목을 죌 수 있다고 얘기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중요한 요소는 부유한 사람들을 압박해 더욱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하고 부패를 척결하는 일이다.
부패 때문에 수입할 수 없다는 건 무슨 뜻인가?
2003년 차베스 정부는 매우 강력한 화폐 통제 정책을 시행했다. 이 규제 때문에 많은 자본이 해외로 유출됐다. 그 후 외국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달러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강력하게 통제했다. 달러를 쉽게 통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달러 유입의 97%가 석유 수출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수입을 하려면 정부에 이 상품을 수입할 테니 100만 달러를 달라는 식의 요청을 해야 했다. 정부가 이 요청을 듣고 달러를 지급할지를 결정했다. 그러면 수입업자는 달러를 받아 원래 양의 절반만 수입하고 나머지 절반은 달러로 보유한다. 수입하지 않고 남겨진 달러는 암시장에 팔아 더 많은 돈을 받는다. 암시장에서 달러를 파는 것이 사업보다 훨씬 더 많은 이윤을 낼 수 있다. 언론은 베네수엘라에서 약을 구하기 어렵다고 보도하기도 했는데 베네수엘라가 지난 8~10년간 제약회사에 지급한 달러의 양은 200% 증가했다. 하지만 실제 수입량은 줄었다. 이렇게 큰 규모의 부패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정부 내 일부 관료층이 도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화폐 통제를 했던 것은 특정 기간에는 효력을 발휘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개혁할지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하지만 선결해야 할 문제는 이 부패 뒤에 누가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지난 5년간 부패 때문에 공중으로 사라진 돈은 40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베네수엘라 혁명의 성과를 우고 차베스와 등치하는 시각이 있다.
예전의 베네수엘라에는 동원력이 없었지만 지금은 있다. 이런 사실을 잊어버리고 차베스에 관해서만 얘기할 수는 없다. 차베스가 이 변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차베스를 보면서 그가 가진 힘이 우리에게도 있다고 느꼈다. 차베스도 계속 민중에게 힘이 있다고 상기시키려 했다. 차베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민중이 힘을 갖는 것이었다. 차베스와 민중의 관계는 태양전지와 태양과 같다. 차베스의 에너지와 힘은 민중이라는 태양에게서 나왔다. 이런 이유로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에서 중요한 위치였고 다른 세계에서도 중요했다. 베네수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차베스를 보면서 “내가 차베스다”라고 느낄 수 있는 이유다. 중동에서 2008~2009년 아이를 낳으면 ‘우고’나 ‘차베스’라고 짓는 게 흔했다. 왜냐면 차베스가 팔레스타인 이슈와 관련해서 강력한 지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베스의 죽음이 핑크타이드에 결정적 타격을 주었다고 할 수는 없다. 차베스가 죽고 나서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좌파들이 추진력을 잃고 후퇴했고 우파가 더 세게 공격해왔다. 하지만 우파들이 거리로 나온 사람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브라질 노동자당 위기의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자당에 대해선 2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첫째, 노동자당이 집권한 과정은 차베스가 집권한 상황과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차베스가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민중의 불만과 사회적인 봉기를 등에 업었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거의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브라질에서는 카라카스 봉기와 같은 큰 봉기가 90년대 초반 쇠퇴하고 있었다. 노동자당이 대선에 처음 출마한 것은 1986년이었는데 독재가 끝난 후였다. 노동자당은 다른 세력과 동맹을 맺어야 했다. 당시 의회에서는 다수당이 아니었다.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당들과 협상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이런 상황이 노동자당에 큰 제약이 됐다. 둘째, 이런 조건에서 노동자당이 무엇을 했는가를 알아야 한다. 노동자당에게는 사회운동이 성장하는 것을 강조하고 우파가 정부를 사보타지하는 것을 규탄하는 두 가지의 역할이 필요했다. 노동자당의 역사적인 책임인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진행하면서 근본적인 싸움은 국회에서만이 아니라 거리에서 일어났어야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노동자당은 이러한 변화가 국회 내에서 이뤄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지금 쿠데타 뒤에 있는 정당과 동맹을 맺었다.
향후 핑크타이드를 전망해 달라.
핑크타이드를 전망해보면, 차베스가 할 수 있었던 것을 핑크타이드도 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민중의 정서를 잘 알아야 한다. 또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렇게 구체적인 정책을 실행할 주체를 발견하는 것, 사회적인 주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라틴아메리카에서 핑크타이드의 계기가 된, 민중의 불만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핑크타이드를 경험했던 것 또한 이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20년 전에는 민중이 기본적인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외쳤는데, 현재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더 나은 권리를 요구한다. 또 기후 변화 등 새로운 문제가 있다. 이 이슈들은 좌파가 주도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거리의 시위나 집회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정치를 통해, 정권을 장악해 구체적인 대안을 실행할 방안이 필요하다. 시위와 정치가 같이 가지 않으면 좌파들이 개개인으로 분리될 것이고 노동자는 노동권을 위해, 농민은 농민의 권리만으로 나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로 모아낼 사회 적인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치가 거리(대중투쟁)와 같이 가지 못한다면 지금처럼 우파가 정권을 장악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래 다양한 투쟁이 일어났다.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좌파가 스스로를 망치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사실을 냉철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 첫 번째다. 예를 들면, 100명이 참가한 시위인데 500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우리가 실제로 가지고 있는 힘을 과장해서 이야기한다. 모든 것을 승리했다고 보는 경향이다. 이것이 2008년 위기 상황에서도 나타났다. 경제위기가 시작됐을 때 좌파들은 자본주의는 끝났고 우리의 시대가 왔다고 봤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 위기가 시작하기 20년 전부터 위기를 겪어왔다. 유럽이나 아랍에서 중요한 투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극우가 더 많은 힘을 얻게 됐다. 둘째는 사회적 투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좌파는 좌파가 시행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단순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좌파들이 우파 정부의 정책이 왜 나쁜지 규탄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선거 기간이 오면 사람들은 좌파가 대안이라고 보지 않는다. 좌파가 투쟁을 잘하고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려 한다고 얘기하지만, 집권해서 정부를 운영할 수 있을까에는 확신이 없다. 좌파가 해야 할 것은 가능한 구체적인 대안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다. 극우파는 그들의 구체적인 대안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단순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좌파가 이런 것을 하지 못한다면 집권하기 어렵다.
경제 위기 이후 새로운 정치 운동의 교훈은 무엇이라 보는가?
특별히 스페인 포데모스의 예를 들고 싶다. 포데모스는 사회에서 일어난 투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현했다. 사회적 투쟁이 정치로 구현될 출구를 만드는 것이 포데모스의 목적이었다. 포데모스는 단순하지만,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구체적인 제안을 했다. 예를 들면, 왜 주거권이 금융권보다 더 중요한지 발언했다. 급진적인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다양한 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 지금 세계적으로 기성정당이 위기를 겪고 있다. 대부분의 정당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일정 정도 수용해 당이 달라도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전통적인 정치 체제의 기반이 흔들리면서 버니 샌더스나 도널드 트럼프 등 새로운 정치인이 나타날 수 있는 장이 형성됐다. 많은 좌파가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예전의 전통적 방식의 게임을 하고 있다. 많은 대중이 이런 좌파도 기성 정당과 같다고 보기도 한다. 이런 상황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정치인들이 나타나 전통적인 정치 체제에 반대하면서 표를 얻고 있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거리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의 표를 정치로 바꿀 수 있는지가 남아 있는 과제다.[워커스 2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