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누군가의 편지를 기다리는 일이 사라졌다. 손편지보다는 이메일이나 문자가 더 빠르다. 택배나 우편물을 받아보는 기간도 2~3일이면 충분하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 일상은 더 빠르고 가벼워졌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일상의 가벼움 속에서도 노동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져만 가니 말이다.
올해만 다섯 명의 집배원이 일하다 사망했다. 우편 물량은 줄어드는데, 과로사나 사고사로 죽어 나가는 집배원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우편 사업은 ‘공공성’보다 ‘수익성’을 더 큰 가치로 삼았다. 산간벽지의 우체국은 적자를 이유로 사라져가고, 그 자리에 민영 우체국이 자리 잡는다. 그러면서도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길어지고 노동 강도는 높아진다.
‘우체국 직원은 정규직 공무원’이라는 공식도 옛말이 됐다. 일터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 민영 우체국 노동자들이 뒤섞여서 일한다. 어떤 노동자들은 우체국 마크가 찍힌 옷을 입고 일하지만, 절대 우체국 소속이 될 수 없다. 최저시급을 받으면서도 ‘개인 사업자’라는 왜곡된 고용형태를 강요당하며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규직조차 짧게는 5년, 길면 7~8년의 비정규직 세월을 거쳐야 한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눈 밖에 난 누군가는 산간벽지로 발령을 받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너무 쉽게 해고가 됐다. 일손은 줄고 성과 압박은 늘어 동료 사이가 뒤틀려만 간다.
추석을 앞둔 어느 날, 《워커스》가 집배원들을 따라나섰다. 산간벽지와 도심에서 일하는 정규직 집배원, 우체국에서 일을 하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위탁 집배원들을 만났다. 집배원들에게는 가장 지옥 같다는 ‘특별소통기간’이었다. 과연 기술의 발전과 외주화 뒤에 가려진 그들의 노동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 오지의 집배원
집배원 A 씨는 매일 산 밑 마을을 곡예 하듯 넘어다닌다. 산 밑에 듬성듬성 퍼져 있는 마을을 모두 돌면 120km 정도. 어제만 116km를 달렸다. 그의 오토바이는 늘 뿌연 먼지로 뒤덮여 있다.
23년차 정규직 집배원 A 씨가 일하는 곳은 단층집들 사이로 낡은 중국집과 슈퍼마켓이 고명처럼 박혀있는 시골 마을이다. 차 한 대 지나갈 만한 찻길 옆으로 수많은 샛길이 구불거렸다. 우편물을 가득 실은 그의 오토바이는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곤 했다.
마을은 온통 개 짖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한 집에 한두 마리 이상 개를 키우는 마을이었다. A 씨처럼 오지의 집배원에게 폭설, 폭우만큼 무서운 것이 개와 벌이다. 사나운 개를 만나면 A 씨는 오토바이 짐칸에 실어둔 개 사료를 꺼내 든다. “여기서 개에 안 물려본 집배원이 없어요. 얼마나 무서운데요. 그래서 개 사료를 들고 다녀야 해요.”
몇 년 전에는 이곳에서 일하던 집배원 한 명이 벌에 쏘여 사망했다. 그래서 그는 올해 엄청난 폭염에도 반팔 한 번 입지 못했다. 개에 물려도, 벌에 쏘여도 하소연할 곳도 없다. 주민에게 치료비를 요구할 수도 없고, 우체국에서도 산재 처리를 꺼리는 까닭이다.
A 씨가 우편물 한 통을 내밀었다. 주소라고는 ‘00리’라고 밖에 나와 있지 않은 편지다. 늘 있는 일이다. “우체국은 마을 주민 이름을 모두 외우라고 해요. 시골은 주소가 잘못돼도 다 찾아줘요.” 번지수 없는 우편물은 제 주인을 찾아갔다.
시골길은 울퉁불퉁한 자갈길과 비포장도로가 많다. 짐을 잔뜩 실은 오토바이가 덜컹거릴 때마다 A 씨의 몸도 덩달아 삐걱 댄다. 그가 굳은살로 딱딱해진 손바닥을 내밀었다. 팔과 허리에도 무리가 왔다. 위장병도 걱정이다. 물량은 많고 시간은 빠듯해 집배원들은 대충 김밥으로 식사를 때우거나 아예 거르는 일이 잦다. 기자가 쫓아다니는 통에 A 씨가 오늘 처리해야 할 물량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택배 소포와 등기, 일반 우편물을 실은 오토바이는 반나절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뚱뚱했다.
A 씨는 이륜차를 타고 건넌 마을로 갈 채비를 했다. 주변 석산에서 돌무더기를 싣고 나온 트럭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좁은 도로를 달린다. 경사가 까마득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아슬아슬하게 이어진다. 폭우나 폭설을 뚫고 다닐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오후가 되자 A 씨는 중간수도(배달 중간지역에 물량을 전달받는 곳)에 들러 짐칸에 택배 소포를 꾸역꾸역 채워 넣었다. 추석을 앞둔 시기라 과일 상자같이 무게가 꽤 나가는 택배물이 쌓였다. 설상가상으로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벌써 우비를 입기 시작하면 땀이 차서 영 불편해요.” A 씨는 맨몸으로 비에 젖은 산길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사라져 가는 것들
이달 초,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우체국 폐국 소식이 알려졌다. 강원지방 우정청은 적자에 따른 비용절감 차원에서 폐국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반발했다. 공공성보다 수익개선에만 골몰한다는 비판이었다. 지난 7월에도 여수 남면에 위치한 조그만 섬 안도에서 우체국 폐국이 결정됐다. 주민들이 반발했지만 ‘경영수지 1억 원 적자’에 따른 우체국의 창구 합리화 방안을 꺾지는 못했다. A 씨가 담당하는 지역 우체국도 주민들의 반발로 겨우 폐국을 면했다. 그는 “옛날과 다르게 최근 산간벽지 우체국의 폐국이 이뤄지고 있다”며 “공공성을 강화해야 할 지역에 수익성만을 따지고 있으니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전국의 대학 구내 우체국과 군사 우체국도 일찌감치 자취를 감췄다.
공공 서비스인 우편 사업은 우정사업본부(우본)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지난 2011년부터 우편사업이 수백억 원씩 적자를 기록하면서 우본의 목표는 ‘비용절감’이 돼 버렸다. 김기덕 우정사업본부장은 이달 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편 사업 적자를 개선하는 것은 매출을 늘리고 비용은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용 절감의 우선순위는 역시나 인건비였다. 우본은 지난 2014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이제는 시골 마을 우체국을 솎아내며 폐국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말 그대로 ‘돈 되는 사업’ 만 하겠다는 심산이다. 우본은 금융 사업으로 연간 2000억 원 이상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우체국 쇼핑, 알뜰폰 사업 등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점을 자랑거리로 삼는다. 심지어 지역의 집배원들은 우체국 보험과 우체국 쇼핑 등의 영업사원으로 동원돼 실적 채우기 압박을 받기도 한다. 모 지역에서 일을 하는 집배원 D 씨는 “팀별로 우체국 보험, 쇼핑 영업 경쟁을 시키곤 했다”며 “작년 우본 방침 이후 예전처럼 강제하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신경쓰는 부분은 있다”고 설명했다.
공공성이 빠져나간 곳은 민간의 차지가 된다. 우정청이 폐국 대책으로 내놓는 것도 ‘우편 취급소’ 같은 민간 업체 설치다. 가장 공공성이 필요한 지역을 우편취급소나 별정우체국 같은 소위 ‘민간 우체국’에 내맡기는 꼴이다. 전국집배노조 관계자는 “사설 우체국이기 때문에 공공서비스 개념보다는 이윤창출의 목적이 크다. 노동자 간의 차별이나 고용불안 문제도 심각하다”며 “별정우체국에도 1,000명 이상의 집배원들이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진급 기간에서 차별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 지긋지긋한 명절
명절 직전은 집배원들의 두 다리가 가장 바쁜 시기이다. 추석 연휴를 나흘 앞둔 날, 도심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10년 차 정규직 집배원 B 씨의 뒤를 따라나섰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 그는 가장 꼭대기 층에서부터 아래층까지 두 발로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오늘과 같은 폭주기 뿐 아니라 평소에도 한가하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분실사고가 나면 집배원이 보상하는 일도 다반사다. 얼마 전 B 씨의 동료도 분실사고로 수 십 만원을 배상했다. “가발이 든 택배를 배달했는데, 고객이 특이사항에 부재 시 문 앞에 놓아달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놓고 갔는데 분실된 거예요. 그 가발이 48만 원이었어요. 직접 물어줬죠 뭐.”
아파트에서 빠져나온 B 씨는 빌라촌으로 향했다. 생물이 든 택배가 혹시나 상할까 하는 걱정으로 마음이 급하다. 어제는 택배 물량만 130개를 배송한 뒤 밤 10시까지 근무했다. “출근은 8시까지인데, 아침 6시 30분~7시까지 나와야 일이 돼요. 그런데 자발적으로 일찍 나오는 시간은 임금을 주지 말라는 공문이 내려와서 무료봉사를 하는 집배원이 많아요. 시간 외 근무 수당은 저녁 8시까지밖에 안 줘요. 일이 많아 9~10시까지 근무를 해도 수당을 못 받는 거죠.”
집배원 생활 10년. 하루가 다르게 시력이 떨어지고 다리와 허리, 손목, 목의 통증이 밀려온다. 매년 되풀이되는 동료 집배원의 죽음이 남 일 같지 않다. 배달 중에 눈이나 빗길에 미끄러지는 일도 다반사다. “짐칸에 짐을 채워 넣으면 오토바이가 잘 넘어가요. 어느 날 외진 골목에서 넘어졌는데 다리가 오토바이에 끼인 거예요. 근데 그 상태로 오토바이를 혼자 들 수가 없잖아요.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어요. 그때 참 자괴감이 들더라고요.” 눈길에 미끄러져 깁스를 한 상태로 배달을 나간 적도 있다. 인력이 줄면 다른 팀원들의 일거리가 늘어나기 때문에 늘 뒤통수가 따갑다. “얼마 전 팀원 한 명이 아이가 아파 출근을 하지 못했어요. 우리는 모여서 욕을 하죠. 엄마가 있는데 굳이 왜 아빠가 결근을 하느냐고. 그런 분위기예요.” 어느새 중간수도 현장에는 배달해야 할 택배 물량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아무리 우편물이 줄고, 우편사업이 적자여도 B 씨의 노동현장은 여전히 살벌했다.
# 지옥의 우편집배원
올해만 벌써 5명이다. 지난 2월 16일을 시작으로 8월 30일까지. 총 5명의 집배원이 뇌출혈과 교통사고, 돌연사 등으로 사망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에도 최악의 살인기업 4위에 올랐다. 노동자들은 현업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지난 7월, 노동자운동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집배원의 주 평균 노동시간은 55.9시간. 심지어 우본은 지난해 9월부터 다시 토요 근무제를 도입해 ‘주 5일제’라는 사회적 제도까지 침범해 버렸다. 우정사업본부 말대로라면 몇백 억 적자가 날 정도로 우편 물량이 줄었다는데, 왜 현장에서는 고강도 장시간 노동이 지속되고 있는 걸까.
노조 관계자는 “우편물량이 줄었지만 까다로운 우편물이 많아졌고, 배달점도 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집배원들도 이런 변화를 크게 느낀다. 집배원 A 씨는 “일반우편이 줄어든 대신 등기나 소포처럼 본인이 직접 수령해야 하는 우편물이 늘어 노동 강도에는 크게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B 씨 역시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싱글족이 늘어나면서 배달해야 하는 집은 늘었다”고 말했다.
우본이 우편사업의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가장 먼저 쥐어짜는 것은 바로 인건비다. 인력을 외주화하고, 비정규직 비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90년대 초반까지는 ‘정규직 공채’를 통해 집배원을 선발했지만, 이제는 무조건 비정규직으로 시작해 정규직 전환을 마냥 기다려야 한다. B 씨는 5년간 비정규직 생활을 거친 뒤에야 정규직으로 전환 됐다. “10년 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2~3년 후에는 정규직이 됐는데, 이명박 정권 들어와서 5년으로 길어졌고, 지금도 점점 길어지고 있어요.”
현재 집배원의 고용형태는 정규직과 상시비정규직, 특수직, 위탁, 재택, 별정 등 다양하다. 그런데도 비정규직 확대와 외주화를 통해 비용절감을 꾀하겠다는 우본의 입장은 견고하다. 김기덕 우정사업본부장은 최근 언론을 통해 “소포 배달은 외부 위탁을 많이 해 비용을 줄이려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둔 노동조합을 결성했지만 ‘소수노조’의 벽은 만만치 않다. 집배원 A 씨는 노조 활동을 하다 찍혀 오지로 발령이 났다. 집배원 C 씨는 집회 장소에서 조합원들의 사진을 찍는 사측 인사와 복수노조 간부의 얼굴을 내부 밴드 게시판에 올렸다가 소송을 당했다. 지난해에도 사측 관리자의 부당한 음주 측정 과정을 밴드에 공유했다가 소송에 휘말렸다. 결국 C 씨는 올해 ‘품위손상’을 이유로 해임됐다. 그는 “지난 6월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경징계를 올렸는데 죄질이 너무 나쁘다며 해임을 시켰다. 명백한 노조 탄압”이라고 설명했다. 장시간 고강도 노동, 상시적 위험, 게다가 불안정 노동까지 깊숙이 들어앉은 현장의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지옥’의 우편집배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