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만 편집장
오랜만에 ‘세로 드립’이 화제다. 세로 드립이란 가로로 써진 글을 세로로 읽는 것이다(여기서 드립은 영어 ‘애드립’의 준말이라고 한다). 지난달 자유경제원은 이승만 시 공모전을 열고 당선작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공모전에서 입상한 〈우남찬가〉라는 시 첫 글자들을 세로로 읽으면 “한반도 분열, 친일 인사 고용, 민족 반역자, 한강 다리 폭파, 국민 버린 도망자, 망명 정부 건국, 보도연맹 학살”이 된다. 내용은 이승만을 찬양하는 내용인데 세로로 이승만을 비난한 내용으로 써 내려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우수상을 탄 작품은 영어로 된 시인데, 이 시도 초성을 세로로 읽으면 ‘NIGAGARA HAWAII(니가 가라 하와이)’가 된다.
이런 세로 드립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온라인에서 최초로 화제가 된 것은 이른바 ‘이외수 사건’이다. 2008년에 이어 2009년에도 광우병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온·오프라인에서 열띤 논쟁이 일었다. 그 상황에서 한 학생이 광우병과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지적한 이외수 작가에게 문제를 더 논리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말싸움이 나게 됐다. 그 학생은 다른 글에 이외수를 비하하는 글을 남겼고 이외수는 학생의 글 내용을 문제 삼아 사과하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급기야 여러 차례 사과문을 수정하며 이 학생은 공개 사과를 했고 이외수가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 학생이 사과한 글을 세로로 거꾸로 읽으면 “이외수 X 까지 마”라는 욕설로 문장을 만든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사건 이후로 한동안 세로 드립 열풍이 불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내용과는 상반된 세로 드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로 드립을 당한 당사자들의 반응도 같다. 시비가 생기면 ‘너 고소’로 일관한 강용석과 같이 이외수도 이 사건을 고소로 끌고 가려 했다. 자유경제원 역시 “해당 사안이 교묘한 사술을 통해 행사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이승만 대통령을 부정하는 집요함이 금도와 상식을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 주는 극명한 예”라며 법적 조치(고소) 할 것임을 밝혔다.
내용이 잘못됐고 의견이 다르면 그것에 관해 토론하면 될 일이다. 사법 기관을 동원해 입막음하겠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다. 또한 고소라는 행위는 우리 사회에서 강자의 것으로 여겨진다. 노조에 대해 손해 배상 고소를 남발하는 회사와 사측의 부당 노동 행위를 고소한 노조 중 대부분 사측 편을 들어 주는 것과 같다. 법이 약자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전히 흔치 않다. 반면, 세로 드립은 약자의 소박한 무기다. 돈 많고 힘 센 사람은 언중에 뭔가를 숨길 필요 없이 그냥 가로로 써서 내지르면 되기 때문이다.
“가로로 읽으면 찬양이고 세로로 읽으면 팩트인데 문제될 게 있나요?” 자유경제원 홈페이지에 남겨진 댓글이다.
(워커스 5호 2016.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