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만이 대기업 주인이라는 오만한 생각
홍석만 편집장
흔히 공적 자금이 투입돼 국가가 대주주인 기업을 ‘주인 없는 기업’이라 부르며 비효율성과 방만함을 지적한다. 16년째 국유 기업인 대우조선해양이 대표적인 사례다. 2조 원대의 공적 자금이 들어간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해양플랜트 부문의 부실로 다시 5조 원대의 공적 자금이 들어갈 예정이다. 이게 다 주인이 없어서 생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우조선은 한때 시가 총액이 12조 원대에 이를 만큼 잘나가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해 왔다. 여전히 수주량 세계 1위의 조선업계 최고 기업이다. 지난 16년 동안 국가에 배당금으로만 수천억 원을 지급했다. 대우조선이 이렇게 되기까지 노동자들의 엄청난 희생이 뒤따랐다. 16년 전 대우 그룹이 해체되고 대우조선이 국유화되면서 수많은 노동자가 잘려 나가고 임금이 삭감됐다. 각고의 노력으로 워크아웃을 졸업한 대우조선은 그 이후 승승장구하면서 세계 수위 기업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이게 다 ‘주인 없는 기업’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가?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주인이 없어서 구조조정을 하고 있고, 현대상선과 한진해운도 주인이 없어서 채권단 자율 협약까지 갔는가 말이다.
오히려 지금의 국유 기업 부실 사태는 국유 기업의 주인인 국가가 제대로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다. 재무적으로 문제가 있는 대부분의 공기업도 소유와 책임은 국가에 있지만 경영은 공기업 선진화라는 논리 속에서 일반 사기업과 다를 바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결과 국가 기관의 관리 감독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 책임지지 않는 경영 행태가 만연해 있다.
심지어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있는 대우조선 같은 국유 기업들은 공공 기관으로 지정조차 되지 않아, 공기업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관리 감독을 받아 왔다. 국가가 지분을 보유한 국유 기업의 정책적 목표는 오로지 지분을 되팔아 자금을 회수하는 데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현재 국유 기업이나 국가가 최대 주주로 있는 기업들은 대부분 해당 업종에서 대기업이며, 주력 기업들이다. 이들은 시장형 공기업과 달리 정부의 통제 울타리 바깥에 존재한다.
그 결과 전·현직 경영진은 부실을 감춰 자리를 보전하는 데 급급했고,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은 자기는 잘 몰랐다며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외부 감사를 맡은 회계 법인은 부실이 쌓여 가는데도 ‘적정’이라는 감사 보고서를 올렸다. 게다가 사외 이사들은 모든 사안에 100% 찬성 의견만 냈다. 사외 이사와 외부 감사는 ‘주인 있는 기업’들의 대표적인 감사 기구다. 그런데도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거수기 노릇만 했다. 사실상 사기업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됐다.
공기업이나 국유 기업의 반대말은 사기업이다. 사기업과 같은 말은 ‘주인 있는 기업’이 아니라 사인 즉 ‘개인이 주인인 기업’이다. 마찬가지로 국유 기업과 같은 말은 ‘주인 없는 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주인인 기업’이다. ‘주인 없는 기업’이라는 말은 주인을 찾아 줘야 한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민영화하라는 것이다. 재벌이 소유한 언론에 ‘주인 없는 기업’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