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워커스

facebook
 
월간 워커스월간 워커스
월간 워커스
  • 정기구독 신청
Menu back  

소고기주의

2016년 6월 3일12호, 디자인 액트By workers

물질과 비물질


 

태어나서 처음 입에 넣었던 불판에 구운 소고기의 맛을 잊지 못한다. 홍대와 신촌 사이의 허름한 고깃집이었고 ‘갈비살’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부위였다. 삼겹살, 목살, 껍데기 외에 다른 메뉴는 사정권에 들어오지 못하던 때였다. (지금도 여전하다.) 붉은 피가 채 빠지지 않은 고깃점을 입 안에 넣는 순간 신세계가 펼쳐졌다. 고소한 향이 입안에 퍼지고, 뒤이어 야들야들 씹히는 육질은 감탄사와 함께 소리 내 웃게 만들었다. ‘아, 이것이 ‘고기’라 불리는 음식이구나.’ 아직도 소고기를 먹을 때면 늘 이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바의 사장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때 맛을 보지 못했다면 여전히 닭은 새고, 돼지는 돼지일 뿐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니까. 고기는 역시 소고기다.

그때가 이십 대 중반이었다. 이십 대 중반이 되도록 불판에 구운 소고기를 맛보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머니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으신다.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구운 고기를 드시는 걸 본 적이 없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를 읽으신 뒤에는 굽지 않은 고기도 드시지 않는다. 그러면서 늘 달걀과 우유는 끊지 못하겠다 말씀하신다.

극악무도하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축산 시스템을 안 뒤부터 고기를 먹을 때면 늘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소고기를 입에 넣는 순간 불편한 마음은 혓바닥 위에서 녹아 버린다. 어쩌면 어떻게든 소고기는 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먹지 못해 억지로 끊는 중이다. 자발적 소고기 섭취는 끊었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 그런데 왜 ‘소고기’라는 단어를 쓰는 것만으로 입안에 침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걸까?

새부터 끊어 보자는 마음을 먹은 적이 있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가장 끔찍했던 것이 새 축산이기도 했고, ‘치킨만 안 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안일한 생각에서였다. 그렇지만 치킨이 눈앞에 당도하는 상황이 오자 여지없이 손가락을 쪽쪽 빨며 뼈를 발라먹고 있었다.

최근 채식주의자 어머니와 함께 평소 가 보고 싶었던 채식주의 식당 순례에 나섰다. 이제 두 곳에 다녀왔는데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음식의 가격대가 조금 높긴 했지만 그만큼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그 돈이면 소고기를 구울 수 있지 않은가! 어쩌자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 담배를 끊은 인간과는 말도 섞지 말라던데 고기를 끊은 인간 역시 말을 섞으면 안 될 것 같다.

 

(워커스12호 2016.06.01)

추천기사

  • 2016년 6월 28일 협동하여 저녁을 만들자
  • 2016년 5월 25일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
  • 2016년 6월 21일 애도와 추모의 포스트잇
  • 2016년 6월 21일 산을 넘는 등속 운동
  • 2016년 7월 28일 파랑파랑
  • 2016년 7월 25일 못된 디자인
  • 2016년 9월 9일 nis.xxx
  • 2016년 7월 13일 글을 읽는다는 것 글자를 본다는 것
물질과비물질소고기주의
About the author

workers
workers@newscham.net

워커스 편집팀
workers의 다른 기사 →

update: 2016년 6월 3일 15:11
연관된 다른 기사
nis.xxx
2016년 9월 9일
파랑파랑
2016년 7월 28일
못된 디자인
2016년 7월 25일
글을 읽는다는 것 글자를 본다는 것
2016년 7월 13일
동지들 덕분입니다
2016년 7월 4일
협동하여 저녁을 만들자
2016년 6월 28일
많이 본 기사
  • 삼성서울병원은 왜 성균관대 부속 병원이 아닌가
  • 뒤르켐의 ‘자살론’
  • 서울 랜드마크 빌딩의 소유주를 찾아서
  • 플라톤의 교육 사상
  •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로네시스’
  • ‘헬스키퍼’로 일하는 시각장애인 노동자입니다
  •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

60호 / 조국을 떠난다

RSS 참세상 기사
  • 부실한 의료 체계 속 코로나19 중환자 고통 가중 2022년 5월 18일
  • 군인의 성적 권리를 지키는 군대 2022년 5월 17일
  • 성소수자들이 대형 무지개 현수막을 국회 앞에 펼친 이유 2022년 5월 17일
  • 전쟁으로 돈 버는 부동산 임대인 2022년 5월 16일
  • 간호인력인권법 폐기 시도에 반발하는 간호사들 2022년 5월 16일
  •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가 한국 사회운동에 던지는 질문들 2022년 5월 15일
  • 레인보우 패밀리, 딸 인보와 두 아빠의 이야기 2022년 5월 13일
  •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2022년 5월 12일
  • 임종린 지회장 단식 46일차…5년간 더욱 심해진 SPC의 노조혐오 2022년 5월 12일
  • ‘단 몇 초’만에 노동자가 사업소득자 되는 수법 2022년 5월 12일
  •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취재하던 기자, 이스라엘군 총 맞아 사망 2022년 5월 12일
워커스

워커스 등록번호: 서대문-라-00126
등록일자: 2017년 3월 13일
발행인 : 강내희, 편집인: 윤지연
서울시 서대문구 독립문로 8길 23, 2층
FAX : (02)701-7112
E-mail : workers@jinbo.net

«워커스»에 실린 글, 사진 등 저작권자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모든 자료의 저작권은 «워커스»에 있으며, «워커스»의 동의하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login

60호 / 조국을 떠난다

월간 워커스
  • 정기구독자 가입
  • 제보
  • 워커스 소개
  • 광고안내
  • RSS
  • 이번호/지난호 보기
  • 기사 검색
  • facebook
footer-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