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 공황이 태양의 흑점 활동 때문이라고?
경제 무식자 주류 경제학에서도 공황이라는 말을 쓰긴 하나요?
김성구 부르주아 세계에서도 옛날에는 ‘공황’과 ‘위기’라는 용어를 사용했죠. 요즘은 좀처럼 쓰지 않습니다. 주류 경제학의 경기 변동론에서는 기본적으로 경기 순환이 2개 국면으로 이루어져요. 경기 상승, 그다음에 상방 전환점(고점), 경기 하강, 그다음에 하방 전환점(저점), 이렇게 말이죠. 이 사람들은 상승 국면, 하강 국면 두 가지로만 이야기하죠. 그리고 하강 국면을 공황이라는 용어로 정의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그게 위기가 아니라는 관점이니까요. 그래도 시장 현상이니까 현실에 공황과 불황이 닥쳤을 때 이 사람들도 불황이라고 하기는 해요. 다만 부르주아 경제학의 문헌에서는 이런 용어들을 상대화해서 씁니다. 심지어 1930년대 대공황도 이 사람들 문헌에서는 ‘대불황’이라고 해요. 불황이란 말도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거의 안 쓰는 용어가 됐어요. 요즘은 ‘경기 침체’, ‘경기 후퇴’라는 말을 쓰죠. 이것도 뉘앙스가 조금 다른데 ‘경기 후퇴’가 더 약한 개념이에요.
경제 무식자 공황을 설명하지 못해서 그런 건가요?
김성구 부르주아 경제학에 따르면 자본주의하에서 공황과 위기는 없다는 거죠. 외부 충격 때문에 경제가 확장되거나 축소될 수 있다고만 설명합니다. 현실에서는 10년마다 공황이 반복하고 있는데 말이죠. 더 놀라운 건 공황도 없으니 실업도 없다고 한다는 겁니다. 물론 부르주아 경제학에서도 케인스주의 경제학은 불황과 실업이 현대 자본주의 아래에서 설명해야 할 주요한 현상이라고 말합니다만, 오늘날 지배적인 경제학 즉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공황도, 실업도 없다고 설명합니다. 그럼 현실의 실업자들은 뭐냐? 신자유주의 경제학에서는 이들을 비자발적 실업이 아니라 구직을 위해 일시적으로 실업 상태에 있는 ‘마찰적 실업’이라고 규정합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놀랍고 무서운 인물들이죠. 장기 불황 아래에서 구조화되고 있는 현실의 대량 실업을 보면서 이런 이론을 강단에서 가르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공황이라는 게 반복되는 현상으로 주기성이 있거든요. 부르주아 경제학의 설명처럼 외부 충격으로 경기 변동이 있더라도 10년 주기를 설명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건 설명이 안 되는 거예요. 정부는 통화 정책이나 재정 정책을 통해 수시로 외적 충격을 가하는데, 공황은 왜 10년마다 일어나느냐는 거죠. 정부가 외적 충격을 10년마다 반복하는 건 아니거든요. 정부의 외적 개입은 불규칙하게 이루어져요. 이렇게 10년 주기로 반복되는 공황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보니 황당한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죠.
현대 경제학의 기초를 다진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이 영국의 제번스(W. S. Jevons)인데요, 이 사람은 1884년 공황의 원인을 태양의 흑점 활동 때문이라고 주장했어요. 당시 천문학자들에 의해 태양 흑점 활동이 10년마다 한 번씩 커졌다 수축한다고 밝혀졌거든요. 경기 변동 주기와 비슷하잖아요. 그래서 태양의 흑점 활동이 지구의 기후 변화를 가져와 농업 생산량에 영향을 미치고 그게 공업 생산량에 영향을 미친다는 식으로 주기적 공황을 설명합니다. 그냥 한 얘기가 아니라 자신의 저서에서 정식으로 발표한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보통 웃긴 얘기가 아닌데 부르주아 경제학에서는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었던 거죠. 부르주아 경제학 이론 체계 내에서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공황이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으니까요. 앞서 얘기했던 통화량 변동이나 정부 정책의 변화로 공황을 설명하는 것도 다 외생적 변수니까 근본적으로 태양 흑점설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겁니다. 공황이 시스템의 속성이 아니라고 보는 게 이 사람들의 근본적인 맹점이에요.
경제 무식자 태양 흑점을 동원할 정도로 주기성을 되게 설명하고 싶었나 봐요.
김성구 공황론과 경기 변동론이 주기성의 문제를 피할 수는 없죠. 공황이 주기성을 갖고 반복한다는 건 자본주의 시스템에 고유한 내적 메커니즘이 있다는 거고 경기 변동론은 이걸 규명해야 하는데 부르주아 경기 변동론은 못 하는 거예요.
정부가 여러 정책적 개입을 재량적으로 하는데 이런 개입이 항상 공황으로 발전하진 않아요. 정부의 어떤 개입은 주기적 공황으로 발전하고 어떤 건 공황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거죠. 예를 들어 2009년 금융 위기가 폭발한 걸 두고 사람들은 미국 연준이 이자율을 올렸기 때문이라고 해요. 근데 호황기에 정부가 이자율을 올리는 건 일반적인 현상이에요. 호황기가 되면 투자 수요가 많아지고 자금 수요가 많아지니까 이자율이 올라가거든요. 그럼 정부가 그걸 관리하기 위해 이자율을 선도적으로 올리는데, 호황기에는 이자율을 몇 번 올려도 그게 공황으로 발전하지 않아요. 대개 마지막으로 올리는 데서 공황이 오죠. 정부의 외생적 개입 때문에 공황이 오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호황기에 부문 간 불균형 또는 생산과 소비의 모순이 발전하고 과잉 생산의 조건이 성숙할 때만 정부 개입 같은 특정한 외생적 계기로 이게 폭발해서 공황으로 발전합니다. 과잉 생산이 누적, 성숙하기 전에는 외부 변수가 작용해도 공황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외생적 충격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경제는 빠르게 적응해서 조정을 받고 다시 경기 순환을 따라 운동하죠. 호황기에 상방 운동을 할 때는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일부 집행하거나 외부의 특정한 사건이 영향을 미치더라도 자본의 열광적인 확장 투자 속에 묻혀 버려요. 근데 공황이 성숙한 시기, 과잉 생산이 무르익은 시기에는 외부에서 같은 충격이 가해지면 그때는 공황으로 폭발하죠. 공황이 발생하는 원인은 외부의 어떤 충격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 내부에 있어요. 생산과 투자의 확장 속에서 누적되는 과잉 생산의 모순이 공황을 가져오는 겁니다. 호황 막바지 국면은 과잉 생산이 무르익어서 터지기 직전이거든요. 그럴 땐 사소한 외부적 충격도 다 공황의 원인이 돼요. 그때 전쟁이 나면 공황이에요. 이자율을 올려도 공황으로 이어집니다. 주식 시장이 폭락하기 시작하면 영락없이 공황이에요. 반면 상승 국면이 계속되는 시기에는 전쟁이 일어나도 공황이 안 와요. 정부가 이자율을 올려도 안 옵니다. 금융 시장의 어떤 교란 요인으로 주가 지수가 갑자기 급락해도 금융 시장은 빠르게 적응해서 다시 상방 운동을 해요. 부르주아 경제학은 이런 걸 설명하지 못합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공황의 필연성, 경기 순환 국면들의 교대를 내적 메커니즘으로 설명하지만 공황의 10년 주기까지는 설명을 못 해요. 왜 하필이면 10년일까. 마르크스도 이를 설명하려고 시도를 많이 했는데, 기계 설비의 생명 연한과 연관 있지 않을까 추측했어요. 경기 순환의 주요 요인이 투자의 변동에 있으니까 이런 연관을 상정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또 근대 산업 혁명 후에 성립된 자본주의 질서가 생산 수단에 기초한 체제거든요. 마르크스가 살던 시기에는 기계 설비의 생명 연한이 대체로 10년이라고 얘기했어요. 하지만 마르크스도 기계 설비의 생명 연한과 공황의 주기성 간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정확히 해명하진 못했습니다.
경제 무식자 과잉 생산이 무르익었다는 건 어떤 징후를 통해 알 수 있어요?
김성구 과잉 생산이 표출되는 부문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소비재 부문이 아니라 생산재 부문이에요. 생산재 부문에 대한 수요가 왕성하고 이 부문의 생산과 투자가 확대되는 것이 호황의 본질이거든요. 투자 수요가 확대되면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생산 부문의 자본가들이 생산 설비를 확장해요. 근데 생산 설비는 확장 투자로부터 생산해서 공급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기계 설비를 공급하는 데 시간적인 지체가 뒤따라서 생산 수단의 공급이 그만큼 비탄력적인 거죠. 호황기에 생산재 수요가 증대되니까 공급을 늘리려고 투자를 하는데 기계 설비를 확장, 건설하는 기간에는 당장 기계 설비를 공급하지 못하죠. 그러면 생산재 초과 수요가 발생하고 이게 생산재 가격을 더욱 인상하고 그러면 생산재 투자는 더욱 확대돼요. 이렇게 호황 국면에 생산재 과잉 생산이 초과 수요에 은폐되어 누적되어 갑니다. 이렇게 확장하는 호황 시기가 위험한 시기인 거예요. 생산 수단의 생산자들이 열광적으로 생산을 확장하는 국면인데, 그러면 공급 과잉이 되는 거죠. 생산재가 시장에 공급돼서 나오기 시작하면 생산재 가격 상승이 꺾이게 돼요. 공황 국면에 들어설 때는 가격이 추락합니다. 그래서 생산재 부문의 수익률이 현저하게 악화합니다.
과잉 생산 공황의 또 하나의 징표는 금융 시장에 있어요. 자본가들이 확장 투자를 할 때는 이윤 전망이 좋을 때거든요. 투자를 확대하면서 은행으로부터 막대한 자금 차입을 해요. 이자율이 높아지고 이윤 전망이 높아지니까 그사이에 영업 수익을 올리려고 은행들도 마구 대출을 해 준다고요. 주식 시장에서는 자본가들의 직접적인 자본 조달이 가능하잖아요. 그래서 직접 주식이나 채권을 통해서 자본을 조달하죠. 호황기에 이윤 전망이 좋으니까 금융 투자자들이 너도나도 주식에 투자하고 채권에 투자를 합니다. 그러면 주식 가격이 급등하죠. 이게 호황의 전형적인 현상이자 위험한 증상이에요. 금융 시장이 과도하게 팽창하고 주가가 크게 오르기 시작하면 조만간 위험한 공황의 시기가 닥칠 거란 얘기입니다. 공황이 오면 주식 시장에 투자한 사람들은 쫄딱 망하는 거예요. 자본가들에게 대출해 줬던 은행들도 다 물리는 거죠. 기업에 대출해서 설비 투자를 했는데 과잉 생산이 돼서 대출 회수가 안 되니까요. 은행이 물리면 은행 위기로 발전하죠. 그래서 공황이 오면 항상 신용 경색이나 은행 도산, 주가 폭락 등 금융 공황을 동반하게 됩니다.
요약하면 대체로 생산재 부문의 가격 등귀와 높은 수익률, 주가 지수 급등, 높은 이자율 그리고 낮은 실업률을 통해서 호황의 끝자락이라는 판단을 하죠. 다우존스 지수 같은 경우는 대개 불황기 때의 바닥으로부터 호황기의 고점에 두 배 정도로 뛰는 거 같더라고요.
자본주의의 존망이 걸린 구조 위기
경제 무식자 10년마다 주기적 공황이 온다고 했는데, 공황이 반복되면서 변화하는 게 있나요?
김성구 변화가 없을 수 없죠. 사람들은 끊임없이 망각하지만 공황은 반복해요. 근데 이 반복이 단순한 반복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생산이 점차 확장되고 고도화될수록 공황이 심화합니다. 그래서 특정한 시기에 가면 공황의 양상이 이전과 달라져요. 19세기 자본주의하에서는 경기 순환이 반복하면서도 경제가 확장하는 게 일반적인 추세였어요. 공황은 주기적으로 오지만, 공황이 끝난 다음에는 경제가 회복되고, 호황이 되면 그 이전 시기의 호황 때 기록했던 경제 규모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성장했다가 추락하고, 이런 게 반복됩니다. 그러면 10년마다 반복되는 공황을 거치면서도 자본주의 경제는 평균적으로 성장을 해요. 그런데 반복되는 경기 순환 속에서 공황이 심화하면 이 추세가 꺾이기 시작해요. 호황이 약하거나 짧아지고 공황은 강해지거나 길어지는 거죠. 이런 양상으로 변하면 평균적으로 경제 성장률이 둔화합니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이런 시기가 존재하는데, 그럼 이 기간에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공황이 단순하게 반복되는 게 아니라 심화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이런 장기 불황의 이면에는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가 있는 거죠. 이건 주기적 공황의 원인이 아니라 자본주의 장기적 발전을 규제하는 법칙이에요. 자본주의가 장기 불황이나 장기 침체를 맞게 되는데, 이 시기가 자본주의의 격변기죠. 자본주의가 성장의 기로에 서는 거예요. 장기 침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자본 간에도, 또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 간에도 경제 위기를 배경으로 하는 격렬한 투쟁의 시기로 접어듭니다. 이 속에서 자본주의가 새로운 구조 재편을 하거든요. 이를 통해 새로운 발전의 토대를 만들어 냅니다. 물론 거기서 추락할 수도 있죠.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 생산 체제가 기로에 선다는 거예요. 역사적으로 보면 19세기 1873~1895년 기간 동안 자본주의가 최초의 장기 불황에 빠졌습니다. 이 불황을 계기로 자본주의가 자본의 내적 구조를 재편해요. 자유 경쟁 자본주의 질서 아래에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으니 독점화 운동이 일어납니다. 고도로 발전된 생산력 수준에 대응해서 거대 기업 중심으로 생산과 자본을 집중해 독점적으로 시장을 지배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주식회사 제도가 발전하고 주식회사 제도를 이용해서 독점 자본의 지배 체계가 갖춰집니다. 또 트러스트와 카르텔 같은 시장을 지배하는 조직들이 만들어지고요. 그렇게 20세기에 들어서면 독점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가는 거죠. 자본주의가 구조 위기를 배경으로 구조 재편을 하고 자본주의의 새로운 발전 단계를 여는 겁니다. 19세기 자본주의와 모습이 확 달라지는 거죠. 경쟁력이 균등한 기업들끼리 자유롭게 경쟁하는 시장 질서로부터, 독과점이 시장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로 넘어갑니다. 독점 자본과 금융 자본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변화, 그리고 이 자본주의하에서의 운동 법칙을 분석하려면 독점자본주의론 분석이 필요하다 해서 정통파의 흐름 내에 독점자본주의론, 제국주의론이 발전하는 겁니다. 그런데 1930년대 대공황을 맞이하면서 독점 자본주의하의 자본주의가 새로운 구조 위기에 빠지게 되죠. 이 위기 극복을 위해서 독점 자본은 국가의 힘을 빌리게 돼요. 이 시기에 자본주의는 국가가 공황으로부터 독점 자본을 구제하고 독점 자본주의의 조절을 위해 경제 개입을 하는 국가 독점 자본주의 단계로 이행합니다. 이 시기를 좁게 잡으면 1929년 세계 공황에서 제2차 세계 대전까지의 기간이고요, 더 넓게 잡으면 1914~1945년까지 한 30년 기간입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자유주의 질서가 끝장나면서 세계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는 시대였죠. 그 사이에 성장기라면 상대적 안정기로 불리는 1920년대 후반기 4년간의 짧은 호황밖에 없었어요. 그 30년이 전체적으로 침체기죠.
이 위기는 19세기에 첫 번째 찾아온 구조 위기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위협적인 위기였어요. 자본주의 체제의 존망이 걸린 시기였거든요. 1차 세계 대전 겪었죠, 세계 대공황 일어났죠, 파시즘이 등장하고, 또 한 번 피비린내 나는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죠, 자본주의 체제가 정말 쓰러지느냐 마느냐의 시기였어요. 실제로 이 시기에 쓰러진 국가들도 있죠. 1917년에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서 자본주의 체제가 뒤집혔죠. 동유럽에서도 사회주의 체제가 성립했어요. 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뉴딜형 국가 개입주의가 파시즘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자본주의를 유지한 거죠. 말하자면 이 시대가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개시되는 시기였습니다. 실제로 이행이 일어나기도 했고요. 한편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무너지는 시기였고, 다른 한편에 국가 개입주의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연명해 가는 시기였어요. 그래서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국가 독점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자본주의 단계가 열리는 거죠. 국가 독점 자본주의는 독점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이행기의 자본주의입니다.
경제 무식자 전 자본주의가 진짜 망했으면 좋겠는데, 자본주의가 기로에 선다는 구조 위기가 와도 이렇게 오뚝이처럼 살아나고 또 살아나고 하면 어쩌죠.
김성구 자본주의가 이 위기를 통해 끝장이 나느냐 안 나느냐는 구조 위기 자체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계급 의식과 정치적 힘에 연관된 문제예요. 1920~1940년대는 자본주의가 구조적 위기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사회주의 운동이 강력했던 시기예요. 국제 사민당, 공산당 그리고 민족 해방 운동의 힘이 정말 자본주의 체제를 뒤집어엎을 정도로 고양된 시기거든요.
1930년대 같은 위기가 1970~1980년대 세계 불황을 계기로 다시 시작했습니다. 지난 2009년 금융 위기로까지 이어지는 이 위기가, 1930년대의 위기를 능가하는 정말 심각한 위기예요. 자본주의는 여기서도 존망이 걸린 상태예요. 그런데 정치적 상황은 많이 달라졌죠. 1970~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가 40년간 장기 위기를 거치면서도, 또 지난 2009년같이 심각한 위기를 거치면서도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할 수 있는 노동자 계급의 힘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1990년대에 현실 사회주의도 붕괴했고요. 공산당은 퇴조하고 사민당은 제3의 길이라는 미명하에 신자유주의로 전환했고, 노동자들의 저항의 힘은 소진되었죠. 그러다 보니 위기 속에서도 자본주의 체제는 무너지지 않아요. 신자유주의 체제가 지속하는 상황이죠. 앞으로도 상당 기간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정치적 힘이 없는 상태죠.
경제 무식자 자본주의 구조가 재편되는 장기 불황 시기에도 노동 계급의 정치적인 힘이 만들어져 있어야만 변혁의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요?
김성구 실제로 자본주의가 붕괴하는 과정은 정치적 과정이에요. 정치적 과정은 계급 투쟁의 과정이라서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가 아무리 심화해도 노동자 계급에 의해 정치적으로 전복되지 않는다면, 노동자 계급이 전복할 힘이 없는 상태라면 자본주의 체제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자본주의가 경제적 위기 때문에 자동으로 붕괴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냥 위기의 여러 양상을 안고 사는 겁니다.
경제 무식자 마지막으로 저희처럼, 현실에서 겪는 문제들에 대해 주류 경제학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경제 무식자들이 더 읽어 보면 좋은 책들 몇 권 추천해 주세요.
김성구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리오 휴버먼, 책벌레, 2000), 《휴버먼의 자본론》(리오 휴버먼, 어바웃어북, 2011), 《현대 부르주아 경제학 비판》(예브게니 바르가 외, 노사과연, 2012), 《신자유주의와 공모자들》(김성구, 나름북스, 2014), 《경제는 왜 위기에 빠지는가》(하야시 나오미치, 그린비, 2011), 《맑스주의 역사 강의》(한형식, 그린비, 2010)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현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위기 분석과 관련해서는 특별히 《型世界経済危機と金融政策》 (建部正義, 新日本出版社, 2013)을 추천합니다.
[대담]
경제 무식자 1, 2, 3, 김성구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 ‘경제 무식자들’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