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 바람이 불어 대는 영국은 여전히 낯설고 물선 섬이다. 유학 시절 처음에는 퍼런 눈도 신기했고, 영어도 신기했고, 영어로만 말하는 퍼런 눈의 사람들은 더 신기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눈에 확 하고 들어온 카피 한 줄, “There may be God, but you can be happy”가 나의 ‘神 사유’에 박차를 가했다. 카피는 런던 빨간 2층 버스의 몸판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굳이 해석하자면, ‘아마도 신은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당신은 행복해질 수 있어요’ 정도겠다. 성공회를 국교로 하는 나라에 ‘세속화 바람’은 여전히 부는구나 싶었다. 저 카피를 바탕으로 유추해 보자면, 그간 신이 있고 없고에 관한 지난한 논쟁이 한바탕 지나갔고, 신의 역할이란 것이 심판이나 구속에 지나지 않았나 보다. 여하튼, 도대체가 신이 얼마나 그네들을 볶아 댔기에 행복할 겨를조차 갖지 못했단 말인가! 그러니 이제 신이 있든지 없든지(may) 상관 말고, 우리 좀 행복하게 살아 보자는 말이었다. 프로파간다가 따로 없다.
사회 근대화와 종교 세속화는 정비례?
카피가 나온 곳은 ‘행복한 삶’을 주창하는 한 연구소였는데, 종교학과 교수의 얘기를 들어 보니, 그 단체의 방향성은 신종교 운동(New religious movement) ─ 유사 기독교, 유사 불교거나 혹은 전통 종교들의 조합, 수정, 통합 등을 통한 제3의 종교나 그에 준하는 종교적 모임을 지향하는 움직임 ─ 과 닮아 있다 했다. 이처럼 ‘행복’, ‘마음 챙김(mindfulness)’ 같은 유행은 ‘세속화’에 대한 하나의 대표 양태로 볼 수 있다. 특히, 절대성, 도덕성, 규범성 등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이래로 자기-윤리의 발견과 독백적(monoogical) 자아 성찰에 깊이 관여하는 비(혹은 반)기독교적 단체가 급속히 증가하는 현상, 그리고 교인 수의 감소 즉 탈교회 현상이 종교 세속화의 일반적인 내용이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세속화 현상에 관해서는 뒤르켐과 베버와 같은 옛 사회학자들도 예견했다. 종교(기독교)가 사회 통합을 돕고,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개인과 집단의 존재론적 기반을 담당하고 있지만, 근대 들어 사회 분화와 합리성의 인기에 따라 필연적이고 당위적으로 쇠퇴할 것이라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사회적 근대화와 세속화는 (거의) 정비례한다’라고 정리될 수 있는 그들의 의견은 더 이상 지지를 얻지 못한다. 쉽게는, 바로 작년 런던의 한복판에 있는 학교에서 종교학 강의를 듣던 나의 비약한 경험이 증거가 된다. ‘신종교’ 현상에 관심 갖는 교수는 여전히 여럿이었는데, 탈교회 현상을 곧 세속화로 읽어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교회를 떠난 사람은 그들의 ‘믿음’과 ‘신앙’의 구멍을 또 다른 ‘종교’ 혹은 ‘종교적 참여’로 대신 채우고자 했다는 것에 주목했다. 덧붙여, 다른 종교로 흘러 들어가지 않은 사람 역시, 교회를 출석하지 않는 것뿐이지 기독교의 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흥미롭게 지적했다. 유럽의 교회 현상이나 신앙의 유형을 ‘소속감 없는 신앙(believing without belonging)’이라고 규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종합하자면, 유럽인은 그간 세속화되기보다는 탈교회화된 사람, 혹은 다른 결로 종교적인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세속화 이론이 종교의 사회적 중요성 축소에 대한 부분을 다루기는 하지만 인간의 종교성을 논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물론 세속화가 근본적으로는 근대화에 따른 기독교의 탈국교화 현상을 말한다는 것에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나, 사회의 다면성을 중요시하는 나로서는 기독교 관점에서 벗어난 채로 세속화를 해석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다시 말해, 교회의 역할은 줄고, 기독교가 예전만큼 구속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서, 유럽 사회를 세속화 사회라고 규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유럽 사회가 현재 탈기독교적 상태인 것은 분명하지만, 세속화 사회라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종교 사회가 되어 간다고 본다. 이러한 논의는 이후 탈세속화 이해를 위한 사전 마당 정도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탈세속화가 맞느냐
‘사회적 근대화와 세속화는 (거의) 정비례한다’라고 정리될 수 있는 의견에 대한 또 하나의 비판은 ‘탈세속화’를 주장하는 이들에게서 온다. 이는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몇몇의 교회가 성장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다시 교회가 뜬다’라는 의견에 동의하면서 제시된 내용이다.
탈냉전기 이후 미국의 보수적 형태의 개신교가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근대성을 수용하며 나간 주류 종파, 장로교나 연합교회의 교세는 약화되고, 오순절 교회와 같은 보수적인 교단은 성장했다. 세속화가 강해질수록 탈세속화 현상도 강하게 나타난다는 주장이 척 하고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세속화 지지자였던 피터 버거가 1990년대 말 미국을 비롯해 중국, 구소련 지역 등의 종교 부흥 현상을 보고 탈세속화로 스탠스를 갈아탄 후엔 친 기독교적 인물의 탈세속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이 유럽의 종교 지형 내에서의 세속화 주장에는 큰 타격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서유럽에서도 근대화와 산업화 시기에 종교 단체의 신자가 일시적으로 증가했다는 기록도 있지만, 지난 200여 년의 시간을 보았을 때, 권위체로서의 교회, 도덕적 근거로서의 교회의 역할은 분명 작아졌기에 유럽을 아예 ‘탈세속화된 사회’로 부르기에는 좀 버거운 것이다. 즉, 영국의 윌슨과 같은 종교학자들이 주장하듯 종교적 의식, 행위 및 제도가 사회적 영향력을 잃게 되는 과정을 유럽이 겪고 있다는 의견은 썩 들어맞고 있다. 또한, 베버의 예견대로 현재 종교는 개인의 사사로운 영역으로 밀려나 버린 것(사사화, privatisation of religion)은 꽤 맞는 말이다. 신종교의 출현과 부흥을 감안해도 말이다. 이미 썼던, ‘신이 있건 없건, 나는 행복할 텝니다’라는 구호야 말로 사사로워 아름다운 것 아니겠나. (이를 자본주의가 종교를 삼킨 형태라고 말하는 의견이 많은데, 동의하는 바이며 관련 논의를 기약 없이 미루어 본다.)
유럽 밖의 탈세속화와 유럽의 영향
위 내용을 바탕으로 이제 현실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자. 영국 좌파와의 토론은 몇 차례 있었지만, 비루한 영어 실력이 그들의 이야기를 다 담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정확하게 느낀 점 하나는 그들 역시 목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한국 좌파건 영국 좌파건 목사를 싫어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십분 연대 가능하겠다. 그들이 목사를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기독교의 우경화 현상 때문임은 거의 분명해 보였다. 재차 밝히는 바, 탈냉전 시대 이후의 종교 부흥 현상이 서유럽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버거의 의견에 편승하며 구렁이 담 넘듯 유럽을 탈세속화된 상태라 밝힐 수는 없다. 정치적 상황을 밝힐 때, 세속화냐 탈세속화냐에 대한 논쟁이 중요하면서도 중요하지 않은 이유이다. 굳이 (탈)세속화를 끌고 와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종교가 도덕적 권위체로서의 사회적 기능은 줄었다 할지라도, 사회적 영향력 또는 사회와의 연계성을 모두 상실한 것은 아니라는 점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런 이유로 (탈)세속화에 대한 논쟁이 어찌저찌 진행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네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유럽적 가치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종교(기독교)가 도구로 이용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탈)세속화 논쟁이 논점의 폐부에 있지 않다.
오히려 문제는 서유럽의 탈세속화가 아니라, 탈냉전 이후 기독교 외 종교의 재부상으로 인한 유럽 밖 세상의 극단적 탈세속화 현상이 유럽을 어떻게 자극하고 있는가이다. 작년 샤를리 엡도 테러 이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공포의 확산과 위협에 대한 유럽인의 위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런던 공항 내 총이며 칼이며 개며, 많은 것들로 무장한 경찰은 상황의 심각함을 말해 주고, 이슬람 국가 사람의 입국 심사가 사람당 1시간을 족히 넘는 것을 보며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한다. 결국 문제는 기독교적 가치를 바탕에 둔 유럽이 “하나의 유럽”을 위해 유럽 내 미디어, 정당과 같은 공공 영역(public sphere)에서 종교 혹은 종교성(또는 기독교, 기독교성)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한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그러니까, 세속화든 탈세속화든, 기독교적 가치를 온전히 떠나 있는 사람들이 (서)유럽에는 많지 않다는 점을 그들 스스로가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짚고 넘어갈 것은, 탈세속화 현상은 ‘믿음’의 르네상스를 꿈꾸는 이들에게서 온다기보다 국내외 정세로 인해 생성된다는 점이다. 예수와 마호메트가 땅을 칠 일이다.
이민자 혐오와 정치 그리고 종교
무슬림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민자에 대한 거부는 이제 혐오로까지 이어지고, 게다가 런던 시장과 옥스포드의 시장이 무슬림이라는 사실은 (특히) 백인 기독교인들을(기독교적 가치를 지닌 사람 역시) 배 아프고 억울하게 만든다.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가져가네 마네’에 대한 논쟁과 ‘그들로 인해 범죄가 느네 마네’ 하는 논쟁은 학계에서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지만 ‘우리’가 주야장천 ‘좌빨’에 시달리듯 그들도 그저 시달린다. 게다가 영국은 여왕도 있고, 여왕보다 인기 많은 케이트 미들턴이 있는 사회이지 않나. 계급이 있는 이 사회에서 비공식적인 미들 클래스의 기준은 ‘부모가 대학을 나왔냐’에 달려 있다. 즉, 이민자의 부모가 대학을 나오고, 그들의 자녀 역시 대학에 진학한다면 그들이 미들 클래스로 진입하는 것은 표면적이게나마 가능해진다. 현재 영국은 등록금 폭등으로 대학 진학자 수가 줄어들고 있는데, 이는 미들 클래스의 존속 불가능성을 시사한다. 곧, 이민자가 대학에 진학할 경우 정통 미들 클래스들은 상대적 박탈감마저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분석했듯, 이러한 감상과 기분을 만들어 내는 데 기독교적 경향성이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유럽 근저에 깔린 종교적 정체성에 기원을 두는 정치적 정체성이 확대 재생산된 것이다. 카메론을 포함해 우경화의 상황을 정치 공학적 맥락에서 자신 있게 써 내려가고 싶으나, 전공 분야가 아님을 감안하며 잘 써진 논문을 직접 인용한다.
종교적 다양성의 분포에서 회교도가 전체 인구의 4 또는 5퍼센트 이상을 초과하는 경우에 문화적 경고등이 켜지며 이를 정치 쟁점화하려는 정치 세력이 유럽 정체성과의 문화적 충돌로 재포장해 … 유럽 정체성이라는 유럽 문제를 정치화할 수 있다. … 영국 내 회교도의 인구 비율은 덴마크나 스웨덴보다 낮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주요 양대 정당인 보수당조차 우파 중에서도 더 보수 성향이 강한 우파로 정치 입지를 굳히고 강력한 반(反)이민 정책을 추진한다. … 이러한 극단적 경도 현상은 단지 경제적 이해관계가 상충하기 때문만은 아니며, 오히려 정치 시장에 나온 유럽의 사회적 정체성 또는 유럽의 문화적 정체성이 국제화의 물결에 대항하기 위한 산물인 동시에 이슬람권에 대한 두려움의 반영으로 드러나는 “수세적” 정체성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홍태영 2010, 243).①
이러한 극우주의와 관련된 김진호(목사)의 진단이 흥미롭다. 그는 유럽연합 이래 처음으로 극우주의 정당이 원내 교섭 단체가 된 것에 우려를 표했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극우주의란 사회를 ‘우리’와 ‘적’으로 갈라, 그 간격을 극대화하여 ‘적’에 대한 공격성을 드러내는 대중적인 이념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즉, 1930년대 유태인들이 극우주의자들의 표적이 되었듯, 이슬람 포비아로 증오심이 옮겨 가는 것에 대한 우려인 것이다. 극우주의가 정치적으로 권위주의와 친화적이어서 그 연장선상에서 파시즘으로 귀결된다는 의견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들의 ‘적대자상’의 개발과 생성, 현재 한국의 상황과 비슷하여 더욱 씁쓸해진다. ‘극우적 대중 정치의 장소들’로 교회가 이용되는 경우는 유럽이 많을까, 한국이 많을까?
(서)유럽의 경우, 세월과 사조가 변한다 할지라도, 그들 정체성의 양태는 바뀔 수 있으나, 그들의 정체성의 기반인 종교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짧은 결론을 내자면, 그들의 정체성(종교성)과 정치성의 그 톡톡한 짜임을 들여다보기 위한 자료로서 과거의 (탈)세속화의 논쟁과 그것의 전개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김정원
한신대에서 기독교교육학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을 전공했다. 현재 한국 기독교장로회 소속 목사로 일하고 있다.
① 이옥연, <종교적 정체성, 정치적 정체성, 유럽의 정체성>, 《한국정치연구》 제20집 제1호,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