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지 곧 300일(9월 8일)이 된다. 그는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 참가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쌀값 폭락을 지켜보다 보성에서부터 올라온 백 농민은 그날 이후 의식 불명 상태다. 그의 두 딸은 지난 300일간 아버지를 쓰러뜨린 국가 폭력의 실상을 제 목소리로 알렸다. 농민들 역시 백남기 농민 사태를 해결하는 데 힘을 다했다.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보성-서울로 이어지는 16박 17일 도보순례, 농민 단식,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1인 시위 등을 감행했다. 백 씨가 있는 서울대병원 앞에선 그의 쾌유를 비는 미사가 매일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곧, 그토록 기다렸던 청문회가 열린다. 하루짜리 청문회에서 300일의 노력은 다 담길 수 있을까?
백남기 농민 청문회는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여야 협상 중 돌연 통과됐다. 지난 8월 25일 11조 원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두고 여야는 핑퐁게임 같은 협상을 이어나갔다. 야당은 최경환 전 부총리,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을 서별관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해야 추경을 처리할 수 있다고 했다. 여당은 홍 전 은행장 외엔 출석시킬 수 없다고 맞섰다. 한 달 가까이 지연된 추경 예산안 처리를 두고 언론에선 추경을 볼모로 뭐하는 짓들이냐고 언성을 높였다. 결국, 야당이 한발 물러섰다. 증인 채택을 포기한 대신, 백남기 청문회 개최를 요구했고 여당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여당 원내 대표가 “두 다리 뻗고 꿀잠 청하겠다”고 할 만큼 여당으로선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같은 시각, 백남기 농민대책위원회는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점거 농성을 시작한 지 하루가 채 되지 않아 청문회가 통과돼 기뻤지만, 한편으론 어리둥절했다. 불과 몇 주 전까지 청문회를 내어주던 야당이 아니던가. 게다가 야당 지도부 한 사람은 대책위에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며 보상 문제를 운운했다고 한다. 대책위 관계자는 불편한 마음을 전했다. “청문회를 한다고 하지만 분위기도 썩 반가운 게 아니다. 형식적으로 하지 않겠냐는 우려가 크다. 진상 규명을 해야 한다는 의지보다 야당이 내줄 거 다 내주고 받은 합의 아닌가. 괜히 애매하게 돼버리면 농성을 접기도 애매하고….”
농성 7일 차,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점거농성장을 찾았다. 추 대표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과 백남기 농민 사건 특검까지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점거농성은 추 대표의 약속을 믿고 마무리됐다. 우여곡절 끝에 잠정 합의한 백남기 청문회는 증인 채택까지 거의 합의된 상태지만 날짜를 특정하진 못했다. 국회의장 개회사로 촉발된 국회 파행으로 백남기 청문회와 연동된 추경 본회의가 미뤄졌기 때문이다.
경찰의 직사 물대포, 캡사이신 물대포 도마 위에
야당은 청문회에서 경찰의 물대포 사용에 대한 위법성을 적극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신윤균 현 영등포경찰서장(전 4기동단장) 등 지휘라인과 직접 물대포를 살수한 경찰들을 증인으로 소환할 계획이다. 이들에게 살수차 운용과 관련해 어떤 교육을 하는지, 물포에 포함된 캡사이신 농도와 관련해선 사전허가가 있었는지 등을 추궁할 예정이다.
경찰의 조준사격 의혹도 줄곧 제기 돼 왔다. 당시 사건 영상을 보면, 물포는 백남기 농민을 향해 가파른 각도로 떨어진다. 백 농민의 움직임에 맞춰 물대포도 일정하게 따라 움직였다. 결국 백 씨는 그 자리에 쓰러졌지만 물대포는 멈추지 않고 3초 이상 발포됐다.
당시 경찰이 살수한 물대포의 세기와 물대포에 섞어 사용한 고농도 파바(합성 캡사이신)가 인체에 위협적이라는 연구도 여럿 나왔다. 지난 6월 열린 ‘집회에서 물포 사용 문제와 경찰의 집회대응 개선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최규진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국장은 “한국은 물포와 최루 물질을 기준조차 어기며 과잉 사용할 뿐 아니라 이 둘을 혼합 사용하여 집회 참가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파바가 국제적으로 ‘매우 유해’하며 ‘심각한 과량노출 시 사망을 초래’할 수 있는 물질로 인정된다”며 “이 정부는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대상으로 유해물질의 실험을 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재판에서도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판결문에는 “살수차 운용지침에 따르면 경찰은 직사살수를 하는 경우 시위참가자의 가슴 이하 부분을 겨냥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경찰은 같은 날 18:50경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서 시위참가자인 백남기의 머리 부분에 직사살수 하여 그가 바닥에 쓰러짐으로써 뇌진탕을 입게 했다”고 나와 있다. 또 법원은 “쓰러진 이후에도 그에게 계속하여 직사살수를 한 사실, 같은 날 밤 시간불상경 부상을 입고 응급차량으로 옮겨지는 시위참가자와 그 응급차량에까지 직사살수한 사실이 인정된다. 경찰의 이 부분 시위진압행위는 의도적인 것이든 조작실수에 의한 것이든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11.14 민중총궐기로 500여 명이 사법처리 됐고 그중 20명 가까이 구속됐다. 민주노총 위원장은 집시법 위반 등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백남기 농민 가족은 지난해 11월 17일 경찰 관계자를 고발했지만, 수사진척 상황은 알려진 게 없다. 간단한 참고인 조사만 받았을 뿐이다. 그사이 물포 발사 명령을 내린 신윤균 기동단장은 영등포 경찰서장으로 승진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제 임기를 무사히 마치며 정치권으로 발돋움하고 싶다는 의지를 비치기도 했다. 가족들과 대책위는 이제 경찰과 정부가 책임질 차례라고 말한다.
새누리당 ‘시위대 폭력’에 집중
반면 여당은 당시 부상당한 의경과 경찰을 대거 증인으로 부른다. 11.14 민중총궐기가 ‘불법 폭력 시위’였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캡사이신 물포를 사용했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는데 여야 모두 합의했지만 실제 출석할지는 미지수다.
백남기 농민의 큰딸 백도라지 씨는 “당시 장면이 담긴 사진과 영상이 수없이 많다. 경찰에 책임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 지휘 체계상 책임 있는 담당자를 정확하게 지목할 수 있길 바란다”며 “검찰 수사가 진행된다지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으니 청문회로라도 밝혀지길 기대하고 있다”고 심정을 밝혔다.
손영준 전국농민회 사무총장은 청문회까지 개최될 수 있었던 건 백남기 농민의 공이 반 이상이라고 말했다. “7월 중순께에 위독하다는 소식에 청문회를 요구하는 청원이 5~6만 명이 확 늘었습니다. 목숨이 위중하실 때도 무사히 고비를 넘겨주셨고요. 이번 청문회는 의장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14만의 염원이 담긴 청문회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