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체제가 무너지면 중국군과 한미연합군에 전투가 벌어지는데, 중국은 해병대를 황해도와 금강산까지 투입할 것이다. 사드가 있으면 중국군의 북한 진격을 막을 수 있다”
김정봉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한중대 석좌교수)이 지난 8월 24일 보수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최한 ‘국익 외면한 사드 방중, 의원외교 이대로 둘 것인가?’ 세미나에서 한 말이다. 보수 진영은 이제까지 한반도 사드 배치 논리로 ‘중국 겨냥 아닌 대북용’, ‘레이더의 안전성’을 들었다. 하지만 이날 세미나에서는 그간 언론에 나오지 않은 새롭고 위험한 얘기들이 나왔다. 일부는 박진감 넘치는 전쟁 소설 같았다.
이날 발표한 보수 학자들에겐 공통된 하나의 전제가 있었다. ‘중국은 우리의 적국’이라는 것. 따라서 우리는 북한을 넘어 ‘잠재적 적국’인 중국에 협조해선 안 되고 전쟁까지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패널로 참석한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야당 의원의 ‘사드 방중’을 두고 “평화는 결국 총구에서 나온다”며 “우리나라는 잠재적 적국과 상의하는 나라다. 사드 배치 안 하면 무슨 대안이 있나”라고 했다. 이어서 “그나마 김종인은 전략적 모호성으로 (입장을 유지해) 뭐라 할 수 없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정동영 의원은 바보다.”라고 말했다. 즉, 잠재적 적국과 상의하기 위해 중국으로 간 야당 의원,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은 바보라는 것이다.
박인환 건국대 교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중국을 찾은 더민주 의원 6명을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로 취급했다. 박 교수는 “구한말 친일파들이 조선 황실도 몰랐던 인구, 지리 등을 일제에 알려 나라를 팔아먹었다. 이로 인해 일제는 손쉽게 조선을 점령했다”며 “야당과 진보 진영이 한국의 약점을 전부 적국에 알려줬다. 이게 매국 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목소리 높였다. 또한, 박인환 교수는 국회의원의 외교 행위에 관한 법적 근거도 걸고 나섰다. 박 교수는 “헌법에도 국회법에도 ‘의원 외교’에 관한 규정이 없다”며 국회의원의 외교 행위는 행정부의 외교권을 보완하는 역할에 한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이 근거로 삼권분립을 강조하며, “의원들의 외교 권한도 그대로 둘 경우 국정감사, 국정조사 등과 함께 또 하나의 ‘의원의 특권’으로서 그 폐해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행정부를 견제하는 입법부의 기능을 비롯해 의원의 외교 활동까지 모조리 삼권분립에 저촉된다는 기이한 주장이다.
이제, 적국이 된 중국과의 관계에서 남은 것은 무엇일까? ‘중국 적성국’의 결말은 전쟁이다. 김정봉 전 소장은 중국과 전면전까지 내다봤다. 김 전 소장은 “북한 체제가 무너지면 중국은 평양까지 점령하고 친중 정권을 만들 것이다. 동시에 한국은 북한을 흡수 통일하고 주한미군은 두만강까지 전진 배치될 것이다. 그러면 중국군과 한미연합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진다. 중국은 해병대를 황해도와 금강산까지 투입할 것이다. 이를 대비해 중국은 남한에 미사일을 쏴야 하는데 사드가 오면 아무짝에 쓸모없다”고 밝혔다. 사드가 대북용을 넘어 대중국 전쟁용이 되는 순간이다. 이어 그는 성주에 배치될 사드로도 부족하다면서 한반도에 2기 내지 3기의 사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빚을 내서라도 사와야 한다고 말이다.
미국의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해 중국이 완강하게 거부하면서 사드에 대한 보수 진영의 구도가 ‘대북’에서 ‘대중’으로 바뀌고 있다. 연이어 북-미에서 중-미 관계로 사드 논의가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구도 변화와 ‘중국은 적국’에 대해 진보적인 학자와 연구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박홍서 코리아연구원 연구위원은 사드는 애초에 중미 관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박홍서 연구위원은 “사드는 중미 간의 게임이고 북한이 명분을 제공했다. 한국은 여기에 껴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핵 억제력을 가지고 있는데 사드는 이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에 반발하는 것이다. 쿠바가 미국 코앞에 미사일을 배치해 미국이 반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한 박 연구위원은 앞으로 동북아 정세에 관해 “미국도 북핵을 방치하면 핵 능력이 증강될 것을 안다. 이는 미국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이 ‘북핵 동결’과 ‘평화협정’을 거래할 수 있을 것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장이 박근혜 정부에 평화 협정을 타진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는 보수 세력이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에 받기 곤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다시 북중미에서 대외적으로 고립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하남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는 “정부도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하는데 이 주장(중국은 적국)은 정부를 뛰어넘은 얘기”라며 “지금 사드 정쟁은 친중 대 친미라는 이분법에 갇혔다. 대부분 중국이 북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그게 안 되고 있다. 정부와 우파도 논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미국의 극우 발언만 빌려 중국을 자극한다. 정부는 소통 능력도 없어 새로운 정책은커녕 얘기를 꺼내지도 못한다. 언론과 정부 모두 이분법으로 몰아가다 보니 협소한 정쟁 국면이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유영재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연구위원은 김정봉 전 소장의 발언에 대해 “중국을 잠재적 적국이라 발언하는 것이야말로 중대한 도발”이라며 “극우 중에서도 극우적 발상”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과연 보수 단체들은 처음부터 중국과의 전쟁까지 고려해 사드배치에 찬성 한 걸까? 아니면 사드배치를 막아선 중국에 대한 분노를 저런 식으로 표출하는 걸까. 중요한 것은 저들이 사드로 지킬 국민 수가 많을지, 사드가 불러일으킬 전쟁 희생자 수가 많을지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