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기업에 맞선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투쟁
미국 다코타 엑세스 송유관 저지 농성…“우리의 물을 존중하라”
정은희 기자
말을 탄 전사들. 전통 기장을 찬 빛나는 말들이 대오를 갖추고 나아간다. 구호 소리에 말발굽이 대지를 박차고 저지선에 선 경호대와 충돌하려는 바로 그 순간, 그들은 멈춰 선다. 전사들은 다시 한 바퀴 원을 크게 돌아 저지선으로 돌아온다. 미국 원주민 스탠딩 락 지역의 수(Sioux) 부족 전사들이다. 최소 150년 전 이야기가 아니다. 원주민들은 7개월째 에너지 기업 다코타 액세스의 송유관 건설 사업에 맞서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삶을 앗아가는 에너지 기업의 탐욕에 맞선 동시대 최대의 이 비폭력 투쟁은 원주민 땅과 자치권을 되찾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지속한 저항의 일부다. 또 서부 개척자들이 이식한 자본주의의 위기가 사회를 황폐화하는 현재, 대안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원주민들의 투쟁이기도 하다. 이 싸움은 지금 미국 대평원 북쪽에 위치한 노스다코타 주에서 벌어지고 있다. 스탠딩 락의 수 부족이 대대로 살아왔던 이곳은 북쪽으로는 캐나다와 마주하고 남쪽에는 사우스다코타 주가 있다. 노스다코타를 가로지르며 드넓은 대지 위를 흐르는 미주리 강가가 바로 원주민 투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우리의 물을 존중하라”
올봄 다코타 액세스의 모기업인 ‘에너지 트랜스퍼 파트너스(ETP)’가 공사에 착수하면서 송유관 건설 저지 투쟁이 시작됐다. 수 부족은 지난 4월 1일 미주리 강의 합류지점이자 송유관 시작 지점인 캐넌볼 지역 공사현장에 이른바 ‘세이크리드 스톤(성스러운 돌)’이라 부르는 농성장을 세우고 싸우고 있다.
처음에는 수 부족만의 고단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지난 7월 원주민 10대들이 노스다코타에서 워싱턴까지 “우리의 물을 존중하라”고 외치며 3,200km를 행진해 미국 의회에 송유관 건설 승인 철회를 호소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게 됐다.
이후 매일 오클라호마 주의 코만치 족, 사우스다코타 주의 오글라라 라코타 족, 아스테카 족 등 새로운 원주민 부족이 걸어서 또는 강물을 따라 보트를 타고 농성장에 합류했다. 현재는 미국 500개 원주민 부족 중 300개 부족이 이 시위에 연대하고 있다. 농성장 상주 인원만 수백 명이다.
2014년 시작된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사업은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아이오와, 일리노이 4개 주를 잇는 대형 건설 프로젝트다. 텍사스에 본사를 둔 에너지 기업 ETP사가 약 38억 달러를 들여 추진하고 있다. 1,900km 길이의 이 송유관은 이미 절반쯤 완공됐다. 공사가 끝나면 하루 50만 배럴의 원유를 운송한다. 일리노이에서는 배를 통해 미국 중서부와 멕시코 연안 지역 시장으로도 실어 나를 계획이다. 송유관은 대부분 땅속에 묻혀 있지만, 일부는 지상으로 나와 있으며 수많은 물길을 가로지른다. 여기에는 스탠딩 락의 수 보호구역에서 북쪽으로 불과 몇백 미터 되지 않는 미주리 강도 있고, 수 부족의 식수원인 오하헤호로도 연결된다. 송유관에서 기름이 유출되면 식수원뿐 아니라 미주리 강 전역을 오염시킬 수 있다.
ETP는 화재나 충돌 위험 때문에 철도나 차량으로 원유를 수송하는 것보다 송유관을 통한 운송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또 일자리 창출로 지역 발전에도 이로울 것이라 강조한다. 하지만 수 부족은 송유관이 미주리 강을 오염시켜 물을 공급받는 수천 명의 보호구역 주민뿐 아니라 하류에 사는 수백만 명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 경고한다. 또 원주민 유적과 조상의 무덤이 매장돼 있는 지역을 황폐화해 원주민 문화유산을 해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결국, 자연과 문화가 황폐해져 원주민 사회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송유관 유출 사고로 곤욕을 치른 바 있어 원주민들의 호소가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13년 노스다코타의 테소로 로지스틱스 송유관이 파열돼 86만5,000갤런의 기름이 인근 농장으로 흘러들었다. 2010년에는 엔브리지 에너지 송유관이 쏟아지면서 84만3,000갤런의 기름이 미시건의 캘러머주강 호수를 오염시켰다. 정화작업에만 1년, 비용도 10억 달러 이상 소요됐다. 의학을 전공한 수 부족의 새라 점핑 이글 박사는 최근 미국 독립방송 <데모크라시나우>에 “에너지 기업이 우리 원주민에게 환경적인 제노사이드(인종 학살)를 자행하려 한다”고 경고했다.
원주민 단결과 대안 사회의 실험
이 지역은 ‘운디드니’ 학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오글라라 라코타 부족(수 부족의 일족)의 거주지인 파인리지 인디언 보호구역과 가까운 이곳에 미국 원주민 투쟁의 근대적 뿌리와 영혼이 묻혀 있다. 이곳 운디드니 지역에서는 인디언 전쟁 말미인 1890년 12월 29일, 미 육군 제7기병대가 샤이엔 강과 스탠딩 락 보호구역 출신의 수 부족 수백 명을 살육했다. 1968년 아메리카운동연합을 건설한 이들도 이 지역 일대의 수 부족이었다. 또 1973년 아메리카인디언운동(AIM) 소속의 오글라라 라코타 부족 200여 명이 운디드니 마을을 점거하고 보호구역 내 부정부패와 원주민들의 처참한 실태에 대한 해결을 호소하기도 했다.
파인리지 인디언 보호구역은 현재 아이티를 제외하면 서반구에서 가장 짧은 기대수명을 보이는 지역이다. 이 보호구역 실업률은 85~95%에 달한다. 인구의 97%가 연방이 정한 빈곤선 아래에서 살고, 청소년의 75%가 학교를 그만뒀으며, 당뇨병이 유행병처럼 일상화돼 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이곳 ‘성스러운 돌’ 농성장에서 이미 하나의 대안 사회를 만들어 냈다. 사람들은 원주민 문화에서 유래한 기도로 아침을 시작한다. 그리곤 자신을 대표하는 깃발을 흔들며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건설 현장으로 길을 따라 행진한다. 행진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구호에 원주민들은 특유의 인디언 함성으로 화답한다. 비폭력을 고수하지만 송유관에 접근하는 트럭과 불도저를 온몸으로 막기도 한다. 입을 벌리고 다가오는 불도저에 앞에 서 꿈쩍도 하지 않거나,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묶어 진입을 저지하기도 한다. 드넓은 대평원에서 이뤄지는 시위지만 트위터 등 SNS로도 다양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청년들은 순찰대를 조직해 주위를 돈다. 그들은 자신을 ‘영혼의 기수’라고 부른다.
일상에서 토론과 교류의 시간이 이어진다. 농성장 중앙에는 마이크가 하나 있고 여기서 누구든 이야기를 하거나 노래를 할 수 있다. 부족끼리 고유의 전통춤을 선보이며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임시 병원과 학교도 세워졌다. 천막 곳곳에는 다양한 부족의 문양이 그려진 깃발이 걸렸다. 새로 도착한 원주민들은 부족 특유의 춤을 추며 농성장에 들어오고, 이들은 자신의 고향에서 삼림 벌채와 채굴, 석유 프로젝트에 맞서야 했던 사례들을 공유하기도 한다.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반대 투쟁은 원주민들의 유례없는 단결을 끌어냈다. 저항이 시작된 농성장에서 1850년 이후 처음으로 수 부족 내 7개의 모든 소 부족이 모여 ‘세븐 파이어스 카운슬’이라는 전체회의를 진행했다. 농성장에 오지 못하는 미국 전역의 원주민들은 지지 메시지를 보내거나 자신의 지역사회에서 시위를 조직한다. 세계 도처의 원주민 사회 구성원도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환경활동가나 다양한 사회단체도 이들과 연대한다. 지난 12일에는 환경활동가 10명이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타르 샌드 오일 송유관을 정지시키는 직접행동에 나섰다가 체포됐다.
에너지 회사가 쥔 전투견과 금융기관
원주민들의 투쟁으로 미국 정부는 결국 지난 9월 9일 ETP 측에 ‘자발적 공사 중단’을 권고했다. 이날 미국 법무부와 내무부는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군 당국과 함께 송유관 건설 허가 재고가 필요한지 다시 결정하겠다며 그때까지 군부대 부지나 오하헤호(湖) 내 송유관 건설은 허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ETP는 자발적 중단 요청을 거부한 채, 정부가 일시 중지한 지역 외에서 공사를 강행하며 원주민들을 탄압하고 있다. 이미 수 부족장 데이비드 아챔볼트를 포함해 수백 명이 자신의 몸과 말을 동원해 건설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체포됐다. 이 회사는 시위 저지를 위해 전투견과 페퍼 스프레이를 동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소 6명이 전투견에 물렸고, 수십 명이 페퍼 스프레이에 고통을 당했다. 또 시위대 다수를 고발 조치했다.
노스다코타 주지사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강경 대응하고 있다. 농성 지역으로 이어지는 주요 고속도로를 차단하고,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소총을 들고 장갑차, 최루가스와 헬리콥터로 대응했다. 심지어 현장을 찾은 <데모크라시나우>의 진행자 에이미 굿맨을 폭동죄로 기소했다. 질 스타인 녹색당 대선 후보도 시위 중 불도저에 스프레이를 뿌렸다가 노스다코타 당국에 경범죄로 기소됐다.
에너지 기업 ETP의 뒤에는 거대 금융기관이 있다. <데모크라시나우>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 HSBC, UBS, 골드만삭스와 JP모건체이스, 이 은행들이 ETP에 1억7,500만 달러의 자금을 대고 있다.
여기에 주요 노동조합 지도부도 이 사업을 지지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최대 노조단체인 노총산별회의(AFL-CIO)는 리차드 트럼카 의장 성명을 냈다.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은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미국노총 지도부와는 달리 많은 노조가 실제로 다코타 액세스에 반대하고 있다. 미국통신노조(CWA)는 수 부족에 연대를 표했고, 전국간호사연합(NNU)의 공동의장 존 로스도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미국통신노조는 “노동운동은 존엄과 정의 그리고 존중을 위한 모든 투쟁과 연대한다는 단순하고 강력한 이상에 뿌리내려야 할 것”이며 “우리는 1%의 이익과 기업의 탐욕에 맞서 스탠딩 록 부족의 형제자매와의 연대를 위해 굳게 설 것”이라고 밝혔다.
환경단체 ‘지구를 존중하라’의 위노나 라듀크는 <데모크라시나우>에 “문제는 북아메리카에서 에너지 인프라에 관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타르 샌드 오일을 생산하려는 전체 에너지 기업의 욕망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 시스템이 모두 무너져 내리고 있지만 더욱 극단화되고 있다. 우리는 실제적인 대안 에너지에 기초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워커스 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