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똑똑히 봐. 좋은 데로 가야 해. 너는 좋은 데로 갈 자격 있어. 얼마나 깨끗한 영혼이었냐. 너는 이 추잡한 세상에서도 도둑질하지 말고,사람때리지말고, 사기치지 말라고 얘기했잖아. 다음 생엔 여기 태어나지 말고 좋은 나라 가서 훌륭한 집에 태어나 날개를 활짝 펴. 복 없는 엄마한테 와서 고생했다.”
한광호 열사의 어머니 전인숙 씨가 충북 영동병원에 마련된 아들의 빈소를 찾은 건 3월 3일이었다. 전 씨는 아들의 영정사진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가여워하다가, 그렇게 모질 게 가는 자식이 어디 있냐며 원망도 했다.
열사 사망 후 유성기업은 “고인의 노모가 중증 치매 증세를 보여 정황상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주장하며 대화 요구를 거부했었다. 전 씨는 당시 상황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 “애가 죽었다는데 글씨가 똑바로 보일 수가 있어? 내가 치매고, 루게릭병 환자라고? 개 같은 놈들.”
이날 빈소에서 전 씨는 열사와 함께했던 유성지회 조합원들을 처음 봤다. “여러분들 덕분에 광호를 보낼 수 있게 됐다”며 전 씨는 연신 고맙다고 했다. 김성민 유성영동지회장은 연거푸 “죄송하다” 했다. 김 지회장은 열사 투쟁을 하는 동안 열사의 어머니를 뵌 적이 없다. “열사가 냉동고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면목이 없었죠. 주변에서 장례는 치르고 투쟁을 이어가자고 했을 때도 냉정하게 안 된다고 했습니다. 열사의 목숨으로 투쟁하고있는건데멈추면유성사태해결은더욱 늦어질 테니까요.” 그는 7년째 이어지고 있는 투쟁을 끝내겠다며 단단히 각오한 상태였다.
다음날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열사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그가 사망한 지 353일 만에 민주노동자장으로 치러진 장례였다. 전국 노동계, 종교계, 시민사회계 인사 3500여 명이 장례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열사는 천안 풍산공원묘역에 잠들었다.
2011년 용역을 동원한 직장폐쇄를 시작으로 노조파괴가 착수됐다. 열사는 괴로워했다. 다섯 차례의 고소고발이 있었고, 두 번의 부당징계를 받았다. 2013년엔 현장 순회 쟁의행위 중 관리자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세 번째 징계를 위한 출석요구서를 받아들었을 때 열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정농단 게이트가 터지기 전인 지난해 3월부터 서울 한복판에서 한광호 열사의 이름을 수없이 들었다. 시민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노조 파괴를 자행한 기업에, 이를 종용한 대기업에, 노동 3권을 외면하고 있는 정부에 항의했다. 열사가 태어나 자라고, 일하던 곳을 찾아갔다.
회사를 가도 재미가 없다
3월 16일 찾은 영동공장은 겉으로 보기엔 평화로웠다. 조합사무실은 공장 밖 컨테이너 2층에 있었다. 1층으로 내려가는 발판을 잘못 밟으면 움푹 발이 꺼졌다. 사무실엔 모여 회의할 만한 큰 책상도 없었다. 회사는 조합사무실을 옮겨 준다는 핑계로 기존 사무실을 없앴다. 구두로 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영동공장에서 만난 한 노동자는 “회사를 가도 재미가 없다”고 털어놨다. 2003년 분신한 배달호 열사도 유서 첫 문장에 ‘출근을 해도 재미가 없다’고 썼다. “일만 하다 오는 거죠. 예전엔 점심시간마다 모여서 배드민턴이나 테니스도 했는데 이젠 그런 것도 없고요. 분위기를 되살리고 싶은데 할 수 있을까요?”
최근엔 관리자들까지 불만을 토로한다고 했다. 유성기업은 관리자에 한해 성과연봉제를 시행하고있는데적지않은수가최하등급을받게 되면서 제도 자체의 합리성을 의심하고 있다고 했다. 등급은현장장악능력에따라차이가났다.많이 쪼면 쫄수록 좋은 성과를 거둔 관리자로 인정받는 가학적인 구조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잔업과 특근으로 시급제로 운영되는 낮은 임금을 보존해 왔다. 20년 차 정규직 노동자가 일당 6만 원 정도를 받는 수준이다. 노조 파괴 시나리오에 따라 지회 조합원들은 잔업과 특근에서 배제됐다. 증명은 쉽지 않다. 회사는 일이 없어서 안 시킨다는 변명만 늘어놨다. 피스톤링을 만드는 아산 공장은 물량 감소로 잔업과 특근이 전무하다.
윤영호 유성아산지회장은 “유성과 대한이연이 7:3으로 생산했다면 최근엔 역전돼서 4:6 정도로 유성 물량이 감소했다”고 말했다. 윤 지회장은 “최근 유성기업 사장이 현대자동차 본부에 물량 요구를 한것같은데잘얘기가안된모양”이라며”그렇게 지원을 했는데 노조도 못 깼으니 물량 이원화, 삼원화 방식으로 길들이기 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설명했다.
유시영 전격 구속!
2월 17일 유시영 회장이 징역 1년 6개월 선고를 받고 구속됐다. 그토록 염원했던 노조 파괴 책임자 처벌의 첫발을 뗀 것이다. 조합원이 온갖 명목으로 전과자가 되면서도 경영진들은 법의 엄호를 받으며 노조파괴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 6년간 유성지회 조합원들은 절반 가까이 형사 법정에 섰다. 4건 이상 재판에 회부된 조합원은 33명에 달한다. 노조파괴 주동자들은 대부분 불기소 처분됐다.
회장이 전격 구속된 지 한 달이 넘었지만,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조합원들은 또 다시 불안해진다. 한 현장 대의원은 현장 분위기를 걱정했다. “유시영 구속 후 며칠 후에 ‘법과 원칙을 준수하면서 만기를 채울지언정 조합과의 타협은 없다’는 식으로 현장 게시물이 붙었어요. 유시영 구속 전엔 우리가 하는 일이 정당하다는 신념도 강했고, 그래서 가열차게 싸워온 건데 구속 후에도 현장은 바뀐 게 거의 없어서 힘이 빠지는 게 눈에 보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사측은 지회에 실무 교섭을 제안하며 유 모 부장을 사측 대표로 세웠다. 유 부장은 지회에서도유명한’말잘듣는관리자’중한명이다. 유성지회 소송을 담당하는 김상은 변호사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이라고 일축했다. 김 변호사는 “실무교섭 대표인 유 모 부장은 어떤 권한도 없고, 책임도 없는 자다. 자기네들이 교섭을 미루고 있지 않다는 면피를 위한 교섭이라고 생각한다. 부장에 불과한 자가 공장장도 제치고 나온다는 건 여전히 교섭 의지가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민 지회장도 유시영 회장과 직접 교섭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별면회를 통해 충분히 회장과 직접 교섭이 가능하다는 것. 지난 17일 유성기업은 유시영 회장 단독 대표에서 유시영 최철규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하겠다고 공시했다. 같은 날 유성기업은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유시영 회장 단독 대표에서 유시영, 최철규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했다. 최철규는 아산공장 상무와 공장장을 역임한 자다. 또한 총회에서 유시영 회장의 이사 연임과 유 회장의 아들인 유현석의 신임 이사 건 등을 의결했다.
최대 주주이자, 대표이사인 유시영은 2선 후퇴도 선택하지 않았다. 지회는 유시영 회장이 특별교섭 자리를 열어 지회와 직접 대화하길 원하고 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지긋지긋한 노조파괴, 올해는 끝내자
근처 식당에서 김 지회장과 공무부 정비과 소속 두 노동자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들은 2011년 이전 이야기를 꺼냈다. 어용노조도, 제3노조도 없던, 모두가 형,동생 하며 사이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차에 낚시 장비를 싣고 다니다 물고기도 잡으러 가고, 잡은 물고기로 어죽도 만들고 생선국수도 먹었다고 했다. 이들의 바람은 2011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김치랑 단무지가 같이 나오면 어쩌자는 거야. 진짜 못 먹겠어요. 저기 봐요. 3노조 애들도 식당에서 밥 못 먹겠으니까 나와서 먹잖아요. 예전에도 썩 괜찮은 건 아니었지만, 그때는 반찬도 바꿔 달라 하면 바꿔주고 했는데 지금은 말도 못해요.” 갑자기 반찬 투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노조파괴 이후 식당 밥도 맛이 없어졌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회사는 정규직이던 조리원들을 내쫓았다. 그 자리엔 기존 조리원들이 받던 연봉의 반도 못 받는 외주업체 소속 직원들이 들어왔다. 단가도 크게 낮춰 냉동식품을 살짝 조리해 나가는 수준이다.
점심시간 후 근처 체육관에서 확대간부 단합대회가 있었다. 9기 집행부가 들어서고 1년 반 만에 처음 갖는 휴식자리라고 했다. 모처럼 찾아온 일상이다. 박범식 영동지회 부지회장은 노조파괴는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도 파괴한다고 했다. 박 부지회장은 “현장 투쟁, 거리 농성, 간부 활동을 하다 보면 어느새 모임에서 내 자리는 없어진다”라며 “기존 관계들이 단절됐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지회의 요구는 간단하다. 가해자가 분명해졌으니 피해자에 대해 원상복구를 해달라는 것이다. 단체협약을 2011년 이전 수준으로 복구하고, 18명에 이르는 해고자를 복직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한광호 열사에 대해선 책임자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관리자 대표와 어용노조 주동자들을 전출시키라는 것이다. 처벌이 따르지 않는 한 노조 파괴는 몇 번이고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인, 경찰은 적당한 위로금과 임금 인상 등으로 타협하라고 하지만 ‘한 치 앞도 못 보는 국회의원 나부랭이’ 소리만 듣게 될 뿐이다.
다수의 유성지회 조합원들은 올해 이 투쟁을 끝낼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2016년 한해 고공농성, 노숙농성, 오체투지, 단식 등 온몸으로 싸워 유시영을 구속시킨 사람들이다. 그리운 일상과 일터를 되찾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워커스 2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