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르포작가)
구미 최초 비정규직 노동조합
경북 구미시 국가산업4단지에는 휴대전화, TV브라운관 등에 사용하는 액정용 유리 기판을 생산하는 ‘아사히글라스 화인테크노코리아’라는 회사가 있다.
대표적인 전범기업으로 손꼽히는 일본 미쓰비시 가에서 설립한 아사히글라스는 2005년 ‘아사히글라스 화인테크노코리아’(이하 ‘아사히글라스’)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당시 아사히글라스는 11만 평 토지 50년 무상임대와 5년간 국세 전액 감면, 15년간 법인세·지방세 감면이라는 파격적인 특혜를 받으며 구미공단에 입주했다. 아사히글라스는 10여 년 동안 연평균 매출 1조, 연평균 당기순이익 800억 원이라는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이 회사의 사내유보금은 7,200억 원에 달한다.*
아사히글라스가 받은 특혜는 지역 고용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기여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사히글라스는 3백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가장 힘든 공정에 365일 3교대와 주야 맞교대로 고용했다. 이 공장에 근무하고 있는 9백 명의 정규직 노동자 중 일부는 아사히글라스가 인수했던 한국전기초자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다. 사실상 아사히글라스가 들어온 이후 신규 채용한 정규직 노동자는 인수 초기 몇 백 명에 불과했다.
아사히글라스는 과도한 경쟁 시스템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쥐어짰다. 아사히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점심시간이 따로 없어 쉬는 시간 20분 동안 휴게실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단가 2,500원 짜리 도시락은 날마다 맛이 달랐다. 심지어 김치와 단무지만 나올 때도 있었다. 급여 역시 갓 입사한 사람이나 9년 근무한 사람이나 차이가 거의 없었다. 임금이 최저시급으로 똑같았기 때문이다. 회사는 과도한 노동 강도로 발생한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실수한 사람에게 공기도 안 통하는 두꺼운 비닐 재질의 징벌용 조끼(일명 ‘빨간 조끼’)를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 이상 입혔다. 누가 봐도 ‘저 사람 뭐 잘못했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표식이었다.
2015년 5월 29일,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을 결성했다. 아사히글라스 16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권고사직이 계기가 됐다. 순식간에 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 GTS 비정규직 노동자 170명 중 138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구미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비정규직 노동조합이었다. 노조가 만들어지자 비정규직을 감시하고 통제했던 원·하청 관리자들의 태도도 바뀌었다. 하지만 이들이 공장 안에서 맛본 해방감은 한 달 만에 끝이 난다.
9년 만에 처음 쉬는 날 받은 해고 통보
2015년 6월 30일, 노조 설립 한 달 만에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문자메시지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조합원들이 소속된 하청업체 GTS가 통째로 폐업한 것이었다. 아직 계약기간이 6개월이나 남아있던 있던 상황이었다. 아사히글라스가 노동조합을 없애기 위해 의도적으로 하청업체를 폐업시킨 것과 다름없었다. 노동자들이 해고통보를 받은 그 날은, 전기 공사를 이유로 9년 만에 처음 쉬는 날이었다.
회사 출입이 막힌 해고노동자들은 공장 앞에 천막을 쳤다. 그리고 7월, 이들은 불법파견과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아사히글라스 사측과 당시 아사히글라스 대표였던 하라노 타케시, 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인 GTS와 당시 대표를 고소했다.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에는 제조업의 직접 생산공정에 파견 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도록 하는데, 아사히글라스는 10년 가까이 이를 위반해왔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아사히글라스 공장의 연속흐름(컨베이어 시스템) 공정 특성상 원청이 정한 생산계획에 따라 작업량과 노동자 숫자·작업 시간 등이 결정됐고, 원청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구체적인 작업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아사히글라스는 성과에 따라 하청업체에 돈을 지불했다면서 도급이라고 주장하는데, 노동자 숫자에 따라 돈을 지급한 게 맞습니다. 예를 들면, 한 달에 1,100개를 생산하든 900개를 생산하든 매월 178명 노동자 수에 맞춰 계산을 해서 돈을 지급 했다는 거죠. 구체적인 업무지시도 아사히 문서로 이루어졌고요.” (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지회장)
이렇게 ‘진짜 사장’을 찾기 위한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긴 여정이 시작된다. 공장에서 쫓겨나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사히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불법파견 인정과 정규직으로의 복직, 노조활동 보장, 부당노동행위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다. 그 사이 사측의 희망퇴직 회유와 생계 문제로 많은 조합원이 떠났고, 현재는 23명의 조합원이 남아 있다.
노동조합이 법적 대응에 나서자, 하라노 씨는 아사히글라스 대표직을 사임했다. 얼마 뒤, 고용노동부는 이 사건을 불법파견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아사히글라스 사측에게는 직접고용 시정 명령과 17억8천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하지만 아사히글라스는 이를 거부하며 행정소송에 들어갔다. 그리고 2년 후, 대구지방경찰청 김천지청(검사 김도형)은 5천 페이지가 넘는 수사기록에도 불구하고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노조는 즉시 항고했고, 재기수사명령으로 불법파견 재수사가 시작됐다. 그럼에도 대구지검은 사건 처리를 지연시켰고, 대구지검장 면담 요청 과정에서 아사히 비정규직노동자 11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마침내 올해 2월 대검 수사심의위원회에서 불법파견 혐의 기소 결정이 내려졌고, 4월 10일 3년 9개월 만에 불법파견 형사재판이 시작됐다.
하라노 타케시의 주소를 아십니까?
6월 12일 오후 2시,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형사1호 법정. 아사히글라스의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위반에 관한 재판(이하 ‘불법파견 재판’)이 시작됐다. 검사 앞에는 1만 3천 페이지의 수사기록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검사 맞은편에는 김앤장 소속 사측 변호인 세 명과 GTS 변호인이 나란히 앉았다.
“화인테크노코리아 하라노 타케시의 주소를 알고 계십니까?”
“오늘 들어서 내용을 못 받았습니다.”
판사의 질문에 아사히글라스 측 변호인이 금시초문이라는 듯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답변했다. 그는 검사가 제출한 자료도 이 날 처음 봤다고 했다.
“지난번에도 같은 얘기를 하셨는데,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공동 변호인을 통해 내용을 확인해보고 준비하겠습니다.”
의뢰인의 소재를 모르고 변호를 하는 변호인. 피고인의 주소를 몰라 재판 소환장조차 보내지 못했다는 판사와 검사. 요즘 흔한 법정 드라마에서도 본적 없는 이야기다.
피고인 하라노 씨는 불법파견 재판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사히글라스를 상대로 낸 (원청이 실제 고용 당사자임을 확인하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다. 다국적기업이자 대기업의 전 대표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는 정말 일본에 있을까? 주소를 몰라 소환장조차 보낼 수 없고 그래서 법정 출석을 할 수 없다는 하라노 씨, 그를 본 사람이 있는가?
번호표 뽑고 4년 기다려 들은 대답, 우린 책임이 없다?
재판을 보고 있으면 〈폭발하는 황혼〉(감독 박용주)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은행 주차 관리원으로 일하던 한 ‘시니어’ 노동자 이판국 씨는 무인 주차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계약 기간이 남아있음에도 갑자기 해고를 당한다. 자신을 은행 직원이라 생각한 그는 은행 측에 복직을 위한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것이 여의치 않게 되자 은행에 방석 폭탄을 보낸다. 이제 “복직을 시켜주지 않으면 (폭탄은) 정확히 18시에 터질 것입니다”라는 내용을 은행 측에 전달할 일만 남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은행 콜센터에 전화를 거니 “현재 통화량이 많아 상담원 연결이 어렵습니다”라는 답변뿐이다.
인터넷뱅킹을 하면 은행에 바로 연결된다는 아들의 말에 인터넷으로 은행과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보안프로그램 설치 장벽 앞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는 자신이 근무하던 은행에 직접 찾아가 “제가 여기다가 폭탄을…” 이라는 말을 하려한다. 하지만 “번호 표 뽑으셨어요?”라는 은행 창구 직원의 말에 다시 성실하게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린다. 결국 그는 경찰서까지 찾아가 은행에 폭탄을 보냈다고 밝히지만, 경찰도 이를 믿지 않는다. 어찌어찌 그를 안타깝게 여긴 경찰과 은행을 찾아가지만, 주차장 담당자를 만나는 길은 미로였다. 오른쪽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가다가 화장실에서 오른쪽으로 돌고 또 돌아야 하는 길.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현실을 반영한 여러 에피소드를 보고 있자니 웃음 뒤에 씁쓸함이 밀려온다. 한 노동자의 ‘진짜 사장’을 찾는 여정이 참으로 길고 험난하다.
▲ 구미아사히글라스 공장 [출처: 연정]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진짜 사장을 찾는 여정 또한 비슷했다. ‘법대로’ 하라고 해서 고소를 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검찰은 기소는 물론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 이들은 ‘진짜 사장’을 만나기 위해 아사히글라스 본사가 있는 일본에도 네 차례 다녀왔다.
“진짜 사장 일본 아사히글라스 본사에 모든 책임과 권한이 있기 때문에 간 거죠. 일본 본사에서 인사권을 직접 행사하거든요. 그런데 그들은 ‘법인이 다르다. 우린 책임 없다. 당신들은 우리 정규직 직원이 아니다.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최근에 구미 아사히글라스에서 벌어들인 1,100억 주주배당금을 일본 아사히글라스 본사에 송금 했어요. 이것만 봐도 이들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게 딱 나오는 건데, 뻔뻔함에 화가 나죠.” (남기웅,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조합원)
기울어진 법, 죄짓고 안 나타나면 그만?
“국내인의 경우 안 나오면 영장발부를 할 수 있지만…(하라노 타케시는 일본인이라 영장 발부가 어려우니) 변호사가 확인해보고 검찰이 공조요청으로 파악해보고 안되면 불구속 재판으로 가야되지 않나….”
법원이 법무부장관과 외교부장관을 통해 피고인의 주소를 파악한 뒤 소환장을 보내는 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판사는 검찰이 직접 피고인의 소재를 찾아보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죄 짓고 도망가서 안 나타나면 되는 건가?”
“바닥이 보인다. 보여.”
방청석에서 탄식과 항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후 GTS 사측 변호인이 판사를 향해 처음이자 마지막 발언을 했다.
“방청석에서 웅성웅성 거리면서 욕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날은 공판 준비기일로, 검사가 제출한 70가지 증거 목록 채택 여부와 관련한 이야기가 오가는 자리다. 사측 변호인은 내내 속기가 어려울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다소 어리숙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사측에게 불리한 불법파견 증거들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판사는 대부분 알겠다고 했다. 이 재판을 지켜본 고소인 중 한 명인 임종섭 씨는 재판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했다.
“우리는 뭐 하나만 있어도 죄 지었다고 바로 조사하고 검찰이 강제 소환하는데, 이 사건도 하라노 다케시를 강제 소환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판사는 검사한테 떠넘기고, 검사는 판사한테 떠넘기고… 시간 끌기 하는 게 뻔히 보입니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실망감이 들어요.”
“정문에서 용역 경비랑 싸운 거며 현수막 건 거까지 회사가 불법이네 명예훼손이네 하면서 다 고소했어요. 우리 조합원들이 걸려 있는 게 11건인데, 검찰이 다 기소했습니다. 벌금, 집행유예…. 속전속결이죠. 한 건도 시간을 끌거나 불기소 무죄 선고를 하지 않아요. 법이 기울어져 있는 겁니다. 그 한 축에 악마 같은 김앤장이 있는 거고요.” (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지회장)
이제 책임자가 아니면 못 믿겠어
한 시간 가까이 판사와 검사, 변호인 세 명의 지루한 대화가 이어진다. 판사는 시간이 많이 지났다며 다음 기일을 잡고 마무리하자고 한다. 재판이 끝난 뒤,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올해 안에 재판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불행한 예감을 나누며 공장 앞 농성장으로 향한다.
영화 〈폭발하는 황혼〉 후반부에서 판국 씨는 자신이 은행 직원이 아니라 직원 3명이 전부인 은행 주차관리 용역업체 소속이었다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는다. 용역업체 팀장은 이미 판국 씨가 보낸 폭탄 방석을 깔고 앉은 상태였다. 판국 씨는 용역회사 팀장에게 묻는다.
“그럼 도대체 나는 누구랑 같이 누구를 위해서 일한 거요?”
폭탄이 터질 것을 두려워하던 팀장은 결국 마지못해 복직을 시켜주겠노라 했다. 판국 씨가 이야기한다.
“미안하지만 책임자가 아니면 이제 못 믿겠어.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겠지. 고작 주차장 직원이 뭐라고 이 난리를 피우는 거냐고. 나 같은 사람들은 그냥 늘 가만히 있어야 되는 건가?”[워커스 56호]
[각주]
* 〈들꽃, 공단에 피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지음, 2017년, 한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