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서울고용노동청 앞. 약속했던 간담회는 지켜지지 않았다. ‘이주노동자 투쟁투어버스(투투버스)’로 모인 이주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 간담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려 했다. 간담회가 예정된 시각 3시. 서울고용노동청 직원이 건물 밖으로 나와 집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간담회를 안내하려는 줄 알았는데, 그의 입에서 간담회를 취소한다는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투투버스로 다양한 국적의 이주노동자가 모여 들떴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박진우 이주노조 사무처장은 격앙된 나머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종시 고용노동부 관계자와 서울시 고용노동청이 이 자리에 또 없다고 합니다. 오늘 일정이 어렵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 이주노동자들은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10명이 넘는 네팔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지난해 8월 케샤브 슈레스타 씨가 사업장 변경을 하지 못해 목숨을 끊었고, 그해 11월 필리핀 이주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졌습니다. 같은 달 태국 여성 이주노동자 추티마 씨는 성폭행을 당하다 숨졌습니다. 이는 서울시 고용노동청과 세종시 고용노동부, 한국 시민이 알아야 할 진실입니다. 우리는 같은 얘기를 10년 넘게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10년 동안 기다리고만 합니다.”
‘일정상 어렵다’는 노동부의 답변. 이들에게 이주노동자는 언제나 뒷전이었다. 이런 노동부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 지난 4월 29일부터 한 달 간 투투버스가 전국을 누볐다. 투투버스는 여주, 논산에 위치한 두 곳의 사업장과 여섯 곳의 지역 고용센터, 지청을 찾았다. 의정부, 충주, 대전 지역까지 이주노동자들은 투투버스로 모였다. 이들을 괴롭히는 당사자, 공무원들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투투버스가 만든 작은 변화
“우리는 돈 벌러 한국에 올 때 시험을 봐요. 시험공부 하는 책에도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는 같은 법을 적용받는다’고 배웠어요. 근데 와보니 반대예요. 사용자가 임금 체불했는데 정부가 사업장 변경도 안 해줬어요. 이주노조와 투투버스 하면서 제 문제는 해결됐지만, 저처럼 억울한 사람 안 생겼으면 좋겠어요.”
투투버스에서 만난 방글라데시인 모니 씨. 의정부의 한 섬유공장에서 일한 모니 씨의 체불 임금은 550만 원에 달했다. 사용자와 하루 8시간(한 달 209시간) 노동에 최저임금을 받기로 계약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사장은 일이 없다며 하루에 7시간씩 일을 시키더니, 이후엔 아예 출근하지 말라는 날이 잦아졌다. 2016년 당시 최저임금에 따르면 월 137만원의 월급을 받아야 했지만, 월 80~90만 원 받는 일이 허다했다. 3개월은 거의 일을 시키지 않아 월 30만 원을 받은 적도 있다. 생계유지 자체가 힘들어졌다. 모니 씨는 일터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가 모니 씨의 발목을 잡았다. 고용허가제는 고용주의 동의가 없으면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도록 규제한다. 이주노동자들이 ‘Free job change(사업장 이동의 자유)’ 구호를 가장 먼저 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니 씨는 고용노동부 의정부지청에 임금 체불을 신고했고, 지난해 11월 체불 임금 13만7천 원을 받았다. 사용자의 체불이 확인되면 고용센터 직권으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그러나 공무원은 ‘체불 액수가 적으니 계속 일하라’고 무시했다.
사실 이 13만7천 원은 체불 임금의 극히 일부였다. 문제는 ‘기숙사 비용 공제’에 있었다. 근로계약상 사용자는 모니 씨의 기숙사를 무료로 제공해야 했다. 하지만 사용자는 기숙사 제공을 빌미로 월 20~30만 원을 임금에서 임의 공제했다. ‘월세 20~30만 원’에 달하는 기숙사는 일터 옆 스티로폼 판넬로 만든 임시 가건물이었다. 가로 세로가 2.5m, 3m밖에 되지 않은 조그만 공간으로, 에어컨은커녕 난방도 없었다. 아열대기후에 익숙한 그는 겨울이면 이불로 꽁꽁 싸매기 바빴다. 이곳에 3명이 살았고, 그는 1년 10개월을 지냈다.
근로감독관이 근로계약서만 보면 될 문제였다. 모니 씨는 근로감독관이 계약서는 보지도 않고 사장 말만 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주노조와 함께 문제를 제기했고, 4월 5일 모니 씨는 체불된 임금 550만 원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5월 10일, 투투버스가 출발한 지 11일 만에 사업장 변경 허가를 받았다. 투투버스가 만든 작은 변화다.
▲ 방글라데시에서 온 모니 씨와 모니 씨(동명이인) [출처: 김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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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좋아했던 한국의 ‘배신’
우즈베키스탄 김행복(막 디아르) 씨는 5월 15일 화성고용센터로 향한 투투버스에 참여했다. 한국 사람과 문화가 좋아 ‘행복’이란 한국 이름도 지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일하는 것만큼은 최악이라고 말한다. 그는 고용센터 직원한테 힘껏 소리치기 위해 투투버스에 왔다고 전했다.
그는 E9 비자(비전문 취업)로 2015년 7월 처음 한국에 왔다. 그는 비자를 발급받을 때 취업 항목으로 서비스 업종을 택했다. ‘서비스’이니 한국의 호텔이나 레스토랑 등에서 일할 것을 예상했다. 그러나 그가 간 곳은 헌옷 압축·포장, 플라스틱 선별장, 고철 선별장이었다. 공무원은 페트병을 분류하는 일이 ‘서비스’라고 했다. 가는 곳마다 감당하기 힘들었고 지병도 악화됐다. 그래서 지금껏 네 번이나 일터를 옮겼다. 그는 불만을 갖고 서비스업에서 제조업으로 변경할 것을 요구했지만, ‘고용허가제’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그는 플라스틱 선별장에서 2016년 11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일했다. 사장은 2017년 1월부터 5개월까지의 임금을 체불했다. 71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그는 NGO단체 이주민지원센터를 방문해 도움을 받았다. 그가 최종 체납 임금 600만 원을 받기까지 5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고용센터 직원은 우즈베키스탄 출신인 김 씨에게 센터에 배치된 러시아 통역사에게 물어보라며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가 고용센터에서 우즈베키스탄 통역사를 본 적은 없다. 통역, 제도 절차 등 이주민 혼자서 해결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일뿐만 아니라 공무원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정신과까지 다녔다고 전했다.
지금 그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다. 3개월 안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비자는 소멸한다. 일자리를 ‘알선’하는 곳은 고용센터. 처음 한국에 왔던 2015년엔 수십 곳에 달하는 ‘일자리 리스트’를 A4 용지로 받았다. 반면 지금은 4일에 한 번 사업장 한 곳을 문자로만 전해주는 정도다. 이주노동자를 가장 많이 수용하는 화성, 수원, 안산 지역 고용센터는 김 씨에게 “요즘 일자리 없다” “냉장, 냉동품 상하차하는 일만 있다” “일 구하지 못하면 집에 돌아가라”고만 했다. 그는 한국이 이주노동자를 힘든 일에만 쓰려 하고,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외국인이면 착취당해도 되나요”
‘때리지 마세요. 욕하지 마세요. 내 돈을 돌려주세요.’ 투투버스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부른 노래 ‘코리안드림’ 가사다. 이들은 또 ‘불법 주거시설 임대업으로 투잡 뛰는 고용주 처벌하라’, ‘스티로폼 창고는 집이 아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로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 채 이중삼중으로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2017년 2월 ‘외국인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고용주들은 숙소 형태와 식사 제공에 따라 이주노동자 통상임금의 8~20%를 공제할 수 있다. ≪워커스≫가 투투버스에서 만난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스티로폼 판넬로 지어진 임시 주거시설에 살고 있었다. 지침에 따르면 아파트, 단독주택 등이 아닌 임시 주거시설을 식사와 함께 제공하면 월 통상임금 13%까지 임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
윤지영 변호사 등 이주노동자 지원 변호인단은 “집세를 결정하는 기준은 집의 상태, 위치, 주변시설 등인데, 이 지침은 이주노동자가 받는 임금의 크기를 기준으로 한다”며 “지침대로라면 열악한 시설이라도 임금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으면 숙식비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또한 사용자가 노동자 동의 없이 숙식비를 임금에서 공제한 경우, 최저임금은 숙식비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으로 판단해야 하는바, 사실상 모든 이주노동 사업장에서 최저임금법 위반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법률 의견서를 고용노동부 측에 제출했다.
‘지구인의정류장’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논산에서 일하는 여성 이주노동자 3명이 농수로 위에 지어진 비닐하우스에 사는데, 사용자는 1인당 20만 원을 공제했고, 판넬로 지어진 집에 거주하는 인천의 여성노동자 2명은 각 30만 원을 징수당하고 있었다. 특히 여성노동자들은 잠금장치 없는 문고리, 남녀 혼숙, 야외 화장실 등 불편을 호소했다.
이들은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노동허가제’를 도입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체류 기간을 10년까지 보장하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을 골자로 한다. 5월 31일 투투버스의 마지막 일정은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면담이다. 십수 년의 외침, 정부가 답할 차례다.[워커스 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