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어요.” 아나스가 마른 침을 삼키며 입을 뗐다. 그가 이집트를 떠나온 사연은 그렇게 시작했다. 아나스의 과거는 이집트 정부마냥 굴곡졌다. ‘아랍의 봄’ 여파로 그새 세 번이나 정부가 바뀌었다. “한국에서 또 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나스의 눈시울이 불거졌다. 이제 그의 단식은 27일로 접어들었다.
청와대 인근 효자치안센터 앞. 아나스와 난민 세 명이 은행나무 한 그루를 기둥 삼아 삶을 붙들고 있다. 천막도 없이 말 그대로 노숙농성이다.
살기 위해 끊은 곡기
아나스는 공정한 난민 심사를 촉구하기 위해 8월 17일 홀로 광화문 한 귀퉁이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만삭인 아내 외엔 아무도 몰랐다. 한 사내가 그의 피켓을 부수려고 덤볐지만 그 외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는 지겟다리를 집고 다녔다. 일하다 다친 무릎이 계속 욱신거렸다. 3일째부터는 청와대 인근 효자치안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동료 자이드가 단식에 합류했다. 경찰 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그러나 그의 단식이 언론을 타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피켓이 몰려왔다. 난민대책국민행동과 제주난민대책도민연대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SNS로 ‘한국은 기독교인이 많으니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다’는 메시지도 쏟아졌다. 9일째에는 이집트에서 ‘당신의 목을 딸 때까지 쫓겠다’는 협박 메시지가 날라 왔다. 10일째 아이가 태어났다. 한국정부로부터는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단식 14일째에는 무나와 그의 남편 왈리드가 동조 단식에 나섰다. 한국 활동가 초라도 단식을 시작했다. 17일째에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 소속 의사들이 농성장을 찾아와 주었다. 의료진의 권유로 4명 모두 녹색병원에 하루 입원했지만 아나스는 수액을 거부했다. 다음날 모두 농성장으로 돌아왔지만 이날 저녁 아나스가 쇼크로 다시 응급실에 실려 갔다. 약 1시간 뒤 무나도 정신을 잃었다. 의료진은 아나스에게 급성신부전증을 이유로 단식 중단을 권했다. 그 사이 체중 10%가 줄어 있었다.
아나스는 동료들과 함께 단식투쟁을 통해 한국정부가 △모든 난민신청자에 대해 인정심사절차를 ‘전문적이고 공정하게’ 신속히 하고, 지난 2년 넘게 결정이 지체되고 있는 자신들의 난민신청에 즉각 답하며 △대다수의 진실된 난민신청을 조직적으로 왜곡한 법무부에 대해 심도 있는 조사를 실시해야 하며 △모든 난민에 대한 모욕과 멸시를 멈추고 인간답게 대우할 것 그리고 그 동안 자신들에게 가한 학대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지난 4일 아나스 씨가 쇼크로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이송되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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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이드 씨가 받은 혐오 메시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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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두개골과 부서진 손가락
아나스는 올해 26세다. 이집트 언론인인 그 또한 이집트 봉기에 뛰어들었다. 최소 135명이 희생된 혁명이었다. 결국 정권은 바뀌었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그는 시위에 계속 나섰다. 그러다 감옥에서 당한 고문 경험 때문에 아나스는 출옥한 뒤 고문 반대 운동에 나섰다. 유튜브에선 그가 “나는 고문을 반대한다”고 발언하는 기자회견 영상(2013년 6월 4일자)도 찾을 수 있다. 이 영상에서 아나스는 굳은 표정으로 말하고 있지만 얼굴은 지금보다 훨씬 앳되다.
당시 이집트는 무하마드 무르시 대통령 취임 1주년을 앞둔 때였다. 봉기 후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부였다. 그러나 곧 군부의 쿠데타와 현 엘시시 정권의 독재가 시작됐다. 국제인권감시기구(HRW) 2018년 세계보고서에 따르면, 압델 파타 엘시시 정부는 저항 세력을 전면적으로 탄압하고 있다. 독립적인 결사를 불허하는 비NGO법을 도입하고 비상사태를 재개했다. 또 보안군이 인권 침해를 저질러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구실로 사실상 절대적인 면책권을 허용하고 있다.
▲ 이집트에서 고문 반대 기자회견 중인 아나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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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문으로 아나스 씨 손등에 남은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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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피해왔지만
지금 아나스의 얼굴은 유튜브 기자회견 영상에서보다 훨씬 어둡다. 그가 한국에 도착한 것은 2년 전 7월이다. 아나스의 첫 경유지는 말레이시아였다. 그러나 곧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더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다. 아내와 그는 물론 비자가 없었다. 이 때문에 3일을 인천공항에 억류돼 있었다. 난민 신청은 여기서 바로 했다. 이후 한국 정부로부터 임시체류 비자(G-1)를 받았다. 6개월 동안 한국정부는 40만 원을 지원해 주었다. 운이 아주 좋았다. 지난해만 해도 난민 신청자의 약 3.2%만이 지원금을 받았다.
법무부는 20개월 만에 난민 심사 결과를 보내왔다. 거부 통지였다. 한글로 된 열다섯 줄의 내용을 물론 아나스가 바로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인을 통해 영어로 번역을 받은 후에도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법무부는 그가 임기응변식으로 상식 밖의 진술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주요 정치 단체에 가입해 활동한 사실이 없어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나스는 법무부에 시위 전력, 동영상이며, 재판을 입증하는 서류를 모두 냈지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은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이집트는 한국처럼 전산화가 되지 않아 이 점을 이용해 탈출에 성공한 것이지만 이 또한 무시된 것 같았다. 아나스가 느끼기에 법무부는 자신이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처럼 모욕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나스의 부인은 아직 난민 신청 심사도 받지 못했다. 그의 아이는 태어난 지 이제 보름이 지났만 아직 국적도 없다. 아나스는 “한국은 국제난민조약에 가입한 나라에요. 한류 때문에 이미지도 좋았고 그래서 선진국처럼 시스템도 잘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좀 더 인간적일 거라고 기대했어요”라며 허탈해 했다. 아나스는 한국정부의 결정대로 이집트에 돌아갈 경우, 자신은 최소 7년, 아내는 최소 2년 형을 살아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살해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 기자회견 중 무나 씨가 초라 활동가를 부둥켜 안고 울고 있다. 무나 씨와 초라 씨는 이날 동조단식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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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난민 막는 ‘가짜난민’ 딱지
법무부의 난민 심사 과정을 이해할 수 없기는 다른 난민들도 마찬가지다. 아나스와 함께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자이드도 난민 신청이 불허된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법무부는 그가 이집트에서 위협받지 않았으며 안전하게 출국했다는 등의 이유로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이드는 2011년 이집트 봉기에 참여했고 2012년 사법부에 대한 항의시위를 하다가 체포된 뒤 2014년 끝내 징역 5년형을 받는 등 정치적 박해를 당해왔다. 자이드는 감옥에 갈 경우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 아나스와 마찬가지로 행정 절차가 오래 걸리는 점을 이용해 한국으로 피신했다. 그가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기다린 지는 벌써 2년 5개월이 지났다.
법무부는 아나스와 모나가 정신을 잃고 응급실로 이송되자 입장을 내기는 했다. 당시 상황을 보도한 4일자 <참세상> 기사(“단식농성 이집트 난민 2명, 쇼크, 의식불명으로 응급실 실려가”)에 대해 법무부는 다음날 설명자료를 내고 “난민심사의 신속성과 전문성 강화를 위한 난민심사 인프라 구축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난민들의 투쟁을 지원하는 활동가들은 설명이라기보다는 변명이라고 봤다. 즉각적인 대책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정부의 난민인정률이 낮은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에도 4.1%에 머물렀다. 난민인권센터난센에 따르면, 지원예산도 동결돼 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난민신청자는 2,400명이 늘었다. 난민 지원 예산 약 8억 원은 정부가 한국 거주 이주민에게 외국인등록증 발급 수수료로 지난해 받은 139억5천5백만 원의 5.85%에 불과하다. 또 난민심사 담당 공무원은 전국에 37명뿐이다. 한 사람이 약 270명의 난민심사를 맡아야 한다.
더구나 난민심사과정에서는 허위통역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난민인권센터 난센에 따르면, 허위통역이 특정 면접관과 통역인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다행히도 법원이 잇따라 난민 불인정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자 법무부가 일부 개혁 조치를 내놨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비슷한 시기에 면접이 이뤄진 사건을 전수 조사하고 55건을 재처리했다. 그러나 난민인권센터는 문제가 된 면접관과 통역인이 수행한 심사만 수백 건인데, 법무부는 특정 시기로 조사를 제한하며 사태를 미봉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허위심사로 책임을 지거나 처벌을 받은 이도 없었다.
심지어 정부의 난민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지난 7월 난민반대 청원에 71만 명이 서명하자 정부는 이를 핑계로 난민법 개악안을 내놨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8월 1일 청와대 SNS 방송인 ‘11시50분 청와대입니다’에 나와 “난민 심사 시간을 현재 2~3년에서 1년 내로 단축하고 진정한 난민은 보호하되 허위 난민신청자는 신속하게 가려내겠다”고 밝혔다. 또 SNS 계정 제출 의무화나 신원 검증을 강화하고 박해 사유는 물론, 마약 검사, 전염병, 강력 범죄 여부 등의 심사를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난민들을 범죄화하는 통제만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또 지난 초여름 예멘 난민이 논란이 되자 제도를 악용한다는 이유로 6월 1일부터 예멘을 무사증(비자 없이 한 달간 체류) 대상국에서 제외했고 8월 1일에는 이집트도 제외했다. 국회선 권칠승(더불어민주당), 김진태(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정부의 난민 심사 거부 권한을 강화하는 난민법 개악안 8건을 발의한 상황이다.
이런 정부와 국회에 대해 난민 당사자와 인권활동가들은 혐오세력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고 지적한다. 고은지 난민인권센터 활동가는 “정부나 국회가 예멘 난민 상황을 거치면서 남용 프레임으로 난민들의 정당한 권리 요구를 문제시한다”라며 “정부는 일관되게 가짜 난민과 난민의 범죄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러나 범죄에 대한 우려는 일베나 혐오세력이 만든 것이다. 난민이나 이주민 증가는 범죄와의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 오히려 난민의 경우 범죄를 저지를 경우 즉각 추방돼야 할 만큼 이들에 대한 제도적 통제는 강력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정부는 난민에 대한 가짜 뉴스나 근거 없는 두려움을 국민들이 해소할 수 있도록 제도와 사실을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하는데도 순찰을 강화하겠다거나 난민을 범죄자로 전제하는 조치를 내놓으면서 오히려 불안을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8일간 동조 단식에 나섰던 초라 사회변혁노동자당 사회운동국장도 “국민 대 난민, 진짜 난민 대 가짜 난민 구도가 가장 큰 문제다. 마치 범죄자들이 난민 지위를 이용해 한국인을 해치러 온다는 발상”이라며 “정치적 박해를 피해온 이들은 난민으로서의 존엄과 생존권이 있다. 노동권 문제도 당연하지 않은가? 돈을 벌러 온 것이라 비난하지만 생존을 위해선 돈도 벌어야 한다. 하지만 난민들을 우리 사회 최말단의 비정규직으로 쓰다 버리며 오히려 이들을 가해자로 보는 게 한국사회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한국 정부에 난민 당사자들은 더욱 기가 막힐 뿐이다. 자이드는 “우리는 무고한 사람이다. 난민임을 입증하는 책임을 우리에게 떠맡기는 것부터 무례하다”라며 “2년 이상 한국에 있었다. 난민 인정이 되길 바라며 평화롭게 살아왔다. 이런 우리를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것은 악의적인 선동일 뿐이다. 진짜 테러리스트는 우리를 공격하는 혐오세력이다. 우리를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라고 말했다.
“안전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나스는 다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 지겟다리를 집는다. 며칠 전에는 한 건물에 지겟다리를 놔뒀다가 큰일을 당할 뻔했다. 한 노인이 부러뜨리고는 욕을 하고 가버렸다. 그는 안산에 위치한 한 섬유공장에서 일하다가 산재를 당했다. 3m 높이의 난간에 올라 섬유 꾸러미를 머리 위로 받고 넘기는 일이었다. 그는 “미등록이주노동자도 기피하는 일이에요”라고 설명했다. 아나스는 사고 후 곧바로 병원에 갔지만 진단서는 엉뚱하게 나왔다. 그는 머리와 다리를 다쳤는데 병원은 그 이유가 ‘상세불명의 실신’이라고 기록했다. 임시체류 비자를 받으면 정부가 허가하는 사업장에서 최대 3개월까지 일할 수 있다. 하지만 인력 교체가 잦기 때문에 신청하는 사업주가 별로 없다. 그 때문에 난민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하기가 쉽다. 무나의 남편 왈리드도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그런데도 아나스는 “중요한 건 난민 신청 절차의 문제에요”라며 얘기가 번지는 걸 원치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자이드는 “혐오세력이 주장하듯, ‘진짜난민’이 아닌 돈을 벌러 온 ‘가짜난민’이라는 프레임에 말려드는 걸 원치 않아서 조심스러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내와 아이가 배 골지 않고 여기서 잘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무슨 일이든 관계없어요. 한국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나스는 보름 전 태어난 아이의 이름이 아랍어로 ‘모타셈’이라고 했다. 그는 아직 공식 기록이 없는 아기를 달래듯 아기 이름을 한글로 한 자 한 자 눌러 적어주었다. 한글로는 ‘저항’이란 뜻이다.
난민들을 지원하고 한국 정부의 즉각적인 대책을 촉구해온 인권단체들은 오는 16일 오후 2시 서울 보신각에서 ‘문제는 난민이 아니라 난민혐오다’라는 슬로건으로 난민과 함께 하는 행동의 날을 준비하고 있다. 초라 국장은 “혐오세력은 무고한 이들을 특정 종교나 민족성을 이유로 테러리스트로 낙인찍고, 정부와 공권력은 이들을 방조, 두둔하고 있다”며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리고 이 사회의 주체가 민중이고 피억압민들이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이라면 함께 연대해 맞서자”라고 호소했다.[워커스 47호]
이집트 난민 인터뷰 통역을 지원해주신 초라 사회변혁노동자당 사회운동국장과 클레어 함 영화프로듀서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