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전 얘기다. 이제 한 세대가 지났으니, 97년 즈음의 사건들은 그저 힘들었던 인생의 고비쯤으로 넘길 만하다. 하지만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고 했나. 20년 전의 악몽 같던 기억들은 줄곧 미래를 선점해버렸다. 유행가가 변하고, 패션이 바뀌고, 생활과 문화가 바뀌어도 허덕임과 불안감이 언제나 따라붙었다. 20년간 숱한 일자리 정책들이 쏟아졌건만, 자꾸 허공에 노를 젓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그때 그 시절 일자리정책 1. 김대중 정부
IMF 외환위기로 실업대란이 정점을 찍은 98년 2월. 당시 실업자 수는 123만5천 명에 달했다. 불과 4개월 만에 78만 명이 길거리로 나앉았다. 한집 건너 한집 꼴로 곡소리가 나던 때였다. 그 해 취임한 김대중 정부는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실직자를 보호하고, 국민의 삶을 안정시켜야 했다. 김대중 정부는 임기 5년간 실업대책 예산으로 26조6천억 원을 쏟아 부었다. 역대 가장 많은 일자리 예산이었다. 통계상으로는 분명 확실한 효과가 나타났다. 취임 초기 6.8%였던 실업률은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 3.6%까지 떨어졌다. IMF 외환위기가 퇴로를 찾은 듯 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그 후로 고용의 질과 임금 소득은 최악의 최악을 거듭했다. 20년이 지난 2017년, 청년 실업률은 무려 10.5%. 또 다시 최악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김대중 정부는 99년 3월 ‘일자리 창출과 실직자 보호를 위한 실업대책 강화방안’을 내놨다. 일자리 창출 방안은 두 가지였다. 항구적인 일자리와 단기적인 일자리. 그중 정부가 ‘항구적 일자리’ 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중소, 벤처기업 창업 활성화’였다. 당시 정부는 중소제조업체 수를 97년 9만2천 개에서 2005년에는 15만 개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창업자금지원이 대폭 확대됐다. 목표치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중소기업 업체 수는 꾸준히 늘었다. 2015년도 기준, 중소제조업체 수는 약 13만4천 개 정도다. 문제는 양적 증가만큼 질적 상승이 이뤄지지 않았고, 이를 위한 정책도 부재했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국민통합이라 여겼던 그 시절을 거치며,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및 노동조건은 날로 열악해졌다. 실제로 93년 73.5%였던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 비율은 점점 격차가 벌어져, 지난해 54.5%까지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중소제조업체 평균수명도 고작 12.3년으로 줄었다. 지난해 중소 제조업체 중 업력이 20년 이상 된 업체는 11.7%에 불과했다. 반면 10년 미만 사업장들은 53.9%에 달한다.
또 하나의 항구적 일자리 대책이었던 벤처기업 육성 정책도 사정은 비슷했다. 김대중 정부는 벤처기업 대상 업종 확대, 세제지원 확대를 비롯해 코스닥 기업 등록 요건을 자본잠식률 30%까지 허용하는 등의 벤처기업 육성 정책을 폈다. 그 결과 99년 4,934개였던 벤처기업은 이듬해 8,798개까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1차 벤처 붐이었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0년 미국 나스닥의 첨단기술주가 폭락하면서 코스닥 역시 급격히 붕괴됐다. 벤처 붐의 거품이 꺼지면서, 벤처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 후 벤처사업은 ‘버블경제’의 상징이 됐지만, 역대 정권들은 모두 ‘2차 벤처붐’을 구호로 걸고 투자 활성화 정책들을 내놨다. 정부차원의 창업절차 및 진입규제 완화가 거듭되면서 벤처기업 수는 올해 3만4,720개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들 중 생존에 실패해 빚더미에 앉거나, 정부로부터 인공호흡을 받는 부실기업도 다수다. 지난해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완전자본잠식 벤처기업에 대해 보증 혹은 자금을 지원한 횟수는 약 3만9천 건이며, 금액은 총 13조 5800억 원에 달한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벤처기업 중 62%는 3년을 채 못 버티고 문을 닫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기적 일자리 창출은 말 그대로 ‘단기알바’ 수준이었다. 고학력 미취업자를 상대로는 인턴제와 학교 및 공공기관 단기 일자리를 확대했다. 청년들은 초중고 보조교사나 전산요원, 관광명소 도우미, 관광숙박시설 인턴사원 등의 일자리로 배치됐다. 실업률이 가장 높았던 고졸 미취업자를 대상으로는 고졸인턴제를 실시했다. 실업대책 중 재정이 가장 많이 투입된 단일사업은 ‘공공근로 사업’이었다. 총 5조 8653억 원이 공공근로 지원 예산으로 사용됐다. 하천 청소, 교통정리 및 주차계도, 숲가꾸기, 자율방범요원 같은 단기 일자리가 창출됐다. 이와 관련한 비판도 거셌다. 정부가 3개월 단기 일자리인 공공근로사업 참여자 약 15~39만 명을 취업자로 분류해 실업자를 축소시켰다는 지적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일자리 대책이 ‘창업’ 아니면 질 낮은
단기알바로 집중돼 비정규직 확대를 방치했다는 비판이었다. 심지어 김대중 정부는 일자리 대책으로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각종 규제완화와 인센티브 제공에 열을 올렸다. 애초 외국인직접투자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한국은 김대중 정부를 기점으로, 초국적 자본의 적대적 인수 합병과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의 길을 모두 열었다. 민간직업소개업에 대한 규제도 풀었다. 허가제를 등록제로 전환하고, 종사자 교육훈련도 폐지하고, 사업주가 인력 모집을 위탁할 때 노동부장관의 허가를 받게 했던 규정도 모두 없앴다. 결과적으로 김대중 정부의 일자리 창출 사업은 고용의 질 악화와 소득격차로 나타났다. 경제활동참가율도 98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신 임금근로자 중 임시직 및 일용직 노동자만 44.5%(98년 2월)에서 49.0%(03년 2월)로 증가했다.
그때 그 시절 일자리정책 2. 노무현 정부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일자리 위기는 이어졌다. 실업의 고통은 청년과 저소득층에게 집중됐다. 2000년 전체 실업률은 4.1%인데 반해, 청년실업률은 8.1%로 두 배 가량 차이가 났다. 이후에도 청년실업률은 답보상태에 머물러 04년 8.3%, 06년 7.9%를 기록했다. 정부는 2003년 9월, ‘청년실업대책’을 발표하고 단기 및 중장기 일자리 창출 계획을 밝혔다. 단기 일자리 대책은, 김대중 정부 정책과 대동소이했다. 비진학 청소년 및 신규졸업자를 대상으로 공공부문 임시 일자리를 제공하고, 국내인턴 및 해외인턴, 봉사단 파견 등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단기 일자리 중 가장 비중이 늘어난 사업은 방과 후 교실, 요양 및 간병서비스, 특수교육보조원 등의 ‘사회적 일자리(사회서비스일자리)’였다. 아울러 공무원 및 군부사관 등 신규 공직 채용 확대 계획도 발표했다. 중장기 일자리 대책에 있어서는 이전 정권과 차이를 뒀다.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중장기 일자리 대책은 ‘일자리 나누기’였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방안도 있었지만, 단시간 근로자 확대와 근로시간 유연화 등의 불안정 노동 확산 계획도 포함됐다.
2004년 2월에 발표한 ‘일자리창출 종합대책’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방향성이 보다 뚜렷하게 나타났다. 정부는 당시 일자리 창출의 ‘기본방향’으로 ‘일자리 창출의 주체는 기업이므로,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구축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종래에는 정부가 ‘실업자’에게일자리를 직접 지원하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지원 대상을 ‘기업’으로 달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뽑아 든 정책은 바로 의료 및 교육 부문 ‘민영화’였다. 노무현 정부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미명 하에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인과 외국법인이 영리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했다. 경제자유구역법은 영리목적의 외국교육기관 설립 등 교육개방을 전면화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심지어 경제자유구역에 입주하는 외국인투자기업에게는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유급월차휴가, 생리휴가, 파견법 상 파견대상 업종 제한 및 기간 등을 면제하는 조항도 있었다.
2005년에는 ‘사람입국 일자리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이듬해, 정부의 고용 철학과 기본 정책 방향을 집대성한 ‘일자리 창출과 사회통합을 위한 국가고용전략’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노동계를 비롯한 국민들에게 ‘노동 유연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대기업, 유노조, 정규직’과 ‘중소기업, 무노조, 비정규직’을 이분화해 대기업 정규직의 양보를 압박하는 전략을 꾀했다. 정부는 고용위기의 원인을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밝히며 “대기업, 유노조, 정규직의 경우 상대적으로 많은 보호를 받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 무노조, 비정규직의 경우 고용불안이 높고 각종 제도의 사각지대에 존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탄력적 근로 및 재량근로 제도 확대, 성과급 임금체계 확산 등의 노동 유연화 정책이었다.
이후에도 노무현 정부는 일자리 문제를 ‘정규직 과보호’에서 찾았다. 정부는 04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통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중 규모가 큰 직종들을 무기계약 또는 계약자동갱신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06년 ‘공공기관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정규직의 경직성을 완화하겠다며 임금피크제, 단시간근로, 평가 및 성과급제 확대 적용 등을 꾀했다. ‘비정규직 고용개선 종합대책’에서도 비정규직 남용의 구조적 요인이 ‘정규직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라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는 저성장, 저고용 시대의 일자리 창출을 ‘노동 유연성’에서 찾으려 했지만, 비경제활동인구와 청년실업이 증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정부 예산을 투입한 단기, 저임금 일자리의 확대가 정책의 주를 이뤘다는 점은 김대중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 그 시절 일자리정책 3. 이명박근혜 정부
또 다시 정권이 바뀌었지만 일자리 대책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초반까지는 그랬다. 이명박 정부가 08년 발표한 ‘노동분야 국정과제 추진방향’은 이전 정부가 추진해온 일자리 대책과 유사했다. 임금 및 근로시간, 고용 유연화를 비롯해 해외 취업 및 인턴 확대 같은 정책들이 포함됐다. 하지만 그해 말, 세계 금융위기로 고용위기가 심화되자 이명박 정부는 기존 공약을 폐기하고, 토건 중심의 비정규 저임금 일자리를 확대하는 ‘폭주’를 시작했다. 이른바 ‘녹색뉴딜-일자리 96만개’ 정책이었다. 36개 녹색 뉴딜 사업 중 4대강 살리기를 포함한 토목 건설 사업이 78%였고, 전체 일자리 중 97%가 비정규, 단순 노무직이었다. 폭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2년으로 제한된 기간제 고용 기간 때문에 대량 실직이 예상된다며 이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파견사용 기간 연장 및 파견 업무를 확대하는 파견법 개악에도 나섰다. 공공부문 일자리 나누기를 명분삼아, 대촐 초임 삭감 등 ‘임금삭감’에 올인했다. 일가정 양립을 실현하겠다며 시간제 일자리도 확대했다. 공공기관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1만9천 명을 감축하고, 1만 명의 인턴을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일자리의 암흑기가 이어졌다. 고용노동부와 경총, 한국노총은 13년 5월,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노사정 일자리 협약’에 합의했다. 협약서의 골자는 노무현 정부의 ‘국가고용전략’의 기조와 유사했다. 노사정은 협약서를 통해 “기업의 성장과 투자 활성화가 양질의 일자리 확대, 근로자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적시해 놨다. ‘정규직 양보’를 압박하는 전략도 비슷했다. 박근혜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올인한 것은 시간제 일자리의 확대였다. 5년간 93만 개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삼성과 LG, 롯데 등 10대 대기업을 앞세워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14년에는 공공부문에서 처음으로 ‘시간제 일반직 공무원’ 채용을 추진하기도 했다. 또한 노사정 협약에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고임금 임직원의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임금 인상분을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활용한다는 ‘정규직 임금 삭감’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임금피크제, 임금구조 단순화 등 임금체계 개편과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 변경에 적극 협력한다는 노동 개악적 요소도 있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고용률 대책’은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의 전면화였다. 박근혜 정부와 여당은 15년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를 근거로 5대 노동 입법안을 추진했다. 여기에는 35세 이상 기간제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고, 파견 대상 업무를 뿌리산업까지 대거 허용하고, 8시간의 추가연장근로를 허용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공공부문을 대상으로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전면 확대와 퇴출제 도입을 추진했고, 공무원연금도 삭감하는 등 대대적인 노동조건 후퇴 정책을 밀어붙였다.
20년에 걸쳐 후퇴된 노동기본권
지난 20년간의 고용(일자리) 정책은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임금 조건을 하향평준화하고,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과정이었다. 노동자들은 반발했고, 정부는 이를 잠재워야 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노동기본권을 후퇴시켜 노조운동을 무력화하는 것이었다. 애초 김대중 정부는 대선 전, 노동기본권을 국제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집권 후의 행보는 달랐다. 악몽은 98년 파견법과 정리 해고제 도입에서부터 시작됐다. ‘노사정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파견법과 정리해고법’을 ‘교원노조 합법화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 등의 노동기본권 문제와 맞바꾸려 했다. 전자는 빠르게 통과됐지만, 후자는 뒤늦게 입법화되거나 표류했다. 김대중 정부 당시 구속노동자 수도 828명에 달했다. 김영삼 정권 당시의 구속노동자 수 632명 보다 30%가 늘었다. 2001년에는 그해 시행되기로 했던 단위사업장 복수노조 허용을 5년간 유보했다. 대선 공약이었던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보장 약속은 지켜지지 않은 채, 경찰병력을 투입해 공무원노조 출범식을 강제해산시켰다.
2003년 노무현 정권이 발표한 ‘노사관계로드맵’도 노동기본권 제약 지침서와 다르지 않았다. 필수공익사업장 파업 시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파업의 적법성 여부와 상관없이 직장폐쇄가 가능토록 했다. 사업장 무단출입과 점거농성을 침입죄 및 업무방해죄 등으로 제재할 수 있는 방안, 부당해고 구제 시 금전보상제로 복직을 대체하는 방안,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방안 등도 포함됐다. 같은 해, 정부는 국가적 위기상황을 일으킨다고 판단되는 파업이 발생했을 때, 민간의 인력과 장비를 징발하고 업무복귀를 명령할 수 있는 ‘국가위기대응특별법’ 제정을 검토해 논란을 일으켰다. 2004년에는 파견 업종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고, 파견 기간을 연장하는 등의 파견법, 기간제법 개악도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구속된 노동자 수만 1,042명에 달했다.
이명박 정권은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가동하며 노골적인 노조 무력화 전략을 펼쳤다. 우선 2010년 1월 1일, 정부여당은 복수노조 허용 유예, 산별노조 교섭단위 불인정,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유예 등을 담은 노조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했다. 그리고 2011년 7월, 복수노조와 창구단일화 제도가 시행되면서 이를 악용한 노조 탄압이 벌어졌다. 2012년은 노동계에게 악몽의 해였다. 정부와 기업, 창조컨설팅, 용역 업체는 파업유도→용역투입→공격적 직장폐쇄→어용노조 설립으로 이어지는 노조파괴 합동작전을 벌였다. SJM, 만도, 발레오만도, KEC, 유성기업, 콘티넨탈 등의 노조가 잇따라 소수노조로 전락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첫 표적은 공무원, 교사였다. 2013년 7월, 노동부는 공무원노조에 노조설립신고필증을 교부한다는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2시간 전에 돌연 일정을 취소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노동부는 공무원노조의 노조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두 달 뒤에는 ‘해직교사 9명을 노조에서 배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했다. 그해 12월 발생한 철도노조 파업에서 사상 처음으로 민주노총 사무실을 침탈하기도 했다. 당시 철도 민영화 파업은 조합원 8,797명 직위해제, 191명 고소고발, 290명 징계회부, 152억 손해배상 청구, 116억 가압류, 10억 위자료 청구소송이라는 최대 탄압을 기록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기본권 탄압은 ‘노동개악 양대지침’에서 정점을 찍었다. 정부는 2016년 1월, 일명 ‘쉬운 해고’로 불리는 저성과자 일반해고와 과반수 노조나 과반수 근로자의 동의 없이도 임금체계를 변경할 수 있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지침을 발표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5년
2017년. 분위기는 확실히 다르다. 개혁정권, 보수정권 할 것 없이 집권 초부터 날을 세워왔던 노동계의 태도변화도 눈에 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앞둔 지난 8월 16일, 민주노총은 논평을 통해 “100일을 맞은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일면적 평가를 하기엔 아직 이르다”며 “일자리위원회 발족과 함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지난 정권과 다른 길, 노동정책의 전환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지난 정권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평가하기에도 분명 이른 감이 있다.
앞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지난 6월 1일, ‘일자리 100일 계획’을 발표했다. 그중 공무원 추가 채용 및 사회적서비스 일자리 확충 등의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방안은 이전 정권들의 사업과 유사하다. 중소기업과 창업기업에 대한 금융, 세제지원 확대, 신산업에 대한 규제완화, 일자리 창출 기업에 세제혜택, 사회적기업 등 사회적 경제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도 과거와 다를 바 없는 정책들이다. 심지어 ‘노사상생형 일자리 모델’은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억제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이다. 이는 과거 정권들이 내세워 온 ‘정규직 양보론’과 일맥상통한다.
다만 문재인 정부는 지난 정권과는 달리 ‘일자리 질 높이기’에 꽤나 공력을 쏟고 있다. 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현재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전환 대상자가 확대되고 규모가 늘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기본 원칙’부터 ‘전환 방식’까지 과거의 정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자회사 설립으로 우회적인 정규직 전환을 꾀하는 것은 ‘정규직화’라기 보다는 ‘무기계약직’ 전환에 가깝다. 무기계약직 전환은 노무현, 박근혜 정부 때도 추진한 정책이다. 고용만 보장될 뿐, 임금과 승진 등에서는 차별을 받는 새로운 비정규직 형태다.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정규직의 연대로 추진한다’는 기본 원칙 또한 정규직 양보론의 완곡한 표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학생들과 만나 “참여정부가 비정규직 양극화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이 뼈아프다”고 반성했다. 비정규직과 양극화의 출발지점은 20년 전 김대중 정부 시절 추진된 ‘파견법’과 ‘정리해고제’의 도입이었다. 노무현 정권의 파견법, 기간제법 개악은 문제를 더욱 확대, 심화시켰고, 이후 보수정권이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현 정부가 과거와는 다른 노동정책의 전환을 꾀하려 했다면, 20년 전의 뼈아픈 법안들을 먼저 손봐야 하지만 아직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현 정부가 노동기본권 문제에 있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즉시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약속했지만, 100일이 지난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 ‘노조 아님’ 통보를 받은 전교조 역시 여전히 법외노조 신분이다. 그리고 지난 8월 23일. 정부는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를 노사정위원장에 위촉했다. 파견법과 정리해고법을 시작으로 박근혜의 5대 노동 법안까지, 노동 개악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만들어 왔던 노사정위를 굳이 고쳐 쓰겠다는 의지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통해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도 친 노동계 인사가 노사정위원장이 됐지만 비정규 악법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만 노정한 채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역사를 반추해 보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20년 전의 악몽 같은 기억이 또 다시 미래로 향한다. 노동개악의 파란만장한 역사는 끊임없이 현실의 발목을 잡는다. 과연 우리는 불안하기만 했던 지난 삶과 쿨한 작별을 할 수 있을까.[워커스 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