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주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지난 9월 6일, 서울 강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강서지역 공립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주민토론회가 열렸다. 말 그대로 강서구의 한 학교 부지에 ‘공립특수학교’ 설립안을 논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학교 설립 시도를 중단하고 원점부터 재논의하라는 반대 측 주민들의 항의에 결국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의 선거 공약에 따라, 이들은 학교 부지에 국립한방의료원 유치를 요구하고 있다.) 토론회는 ‘어떤 모욕도 감수할 수 있지만 아이들 교육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장애인 학부모들의 절규를 뒤로 한 채 끝나고 말았다.
이 건을 두고 인터넷 상에서도 많은 의견이 오갔다. 흔히 보이는 것은 일종의 ‘절충안’이었다. 장애인의 교육을 담당할 기관도 물론 필요하지만 지역 발전을 위해 해당 부지에는 병원을 유치하고 다른 곳에 학교를 짓는 것이 어떻겠냐는 식이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공부하면 좋지 않느냐’며 이른바 ‘혐오시설’인 특수학교를 교외로 밀어내려는 노골적인 말들도 눈에 띄었다. 그들은 어쩌면 자신의 의견이 선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공익을 ― 그 公에 장애인은 포함되지 않는 것 같지만 ― 지키면서도 장애인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자신의 의견을 말이다.
그 며칠 전인 9월 2일, 방송인 홍석천 씨는 주간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를 통해 용산구청장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 이태원 지역 경제를 논하는 데서 출발한 대화는 “용산구청장이 돼서 내 아이디어들을 갖고 내가 사랑하는 동네를 위해 일해보고 싶다”는 홍석천 씨의 말로 이어졌다. 자연스레 몇 년 전 나온 적이 있는 용산구청장 출마 문제가 거론된 것이다. 그는 “내 인생의 과업은 ‘한국사회에서 동성애자도 이렇게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몇 해 전에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논란 아닌 논란이 이어졌다.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대표 주요셉 목사는 보수 기독교 언론 <크리스천 투데이>에 공개 편지를 실어 홍석천 씨의 출마를 만류했다. “동성애는 성경이 금하기에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를 지금껏 미워하지 않았”다는 그는 동성애자를 “오히려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며, 심한 욕설이나 비아냥소리를 들어도 밉지 않고 애처로워 그냥 웃어넘겨온 편”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러나 공손한 말투로 쓰인 이 편지는 숫제 협박과 같았다.
“지금껏 방송인으로 활약해온 유명세를 발판으로 님께서 용산구청장에 출마하겠다는 건 지금껏 찬성하진 않았지만 묵인해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저항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라며 “게이로서의 권리를 찾겠다는 의도를 품고 현실정치판으로 뛰쳐나올 경우 당연히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역차별을 운운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입장 또한 분명히 했다. 위에서 언급한, 특수학교 설립에 대한 인터넷 상의 반응들과 다르지 않은 태도다. 거슬리지 않게 조용히 살면 불쌍히 여겨주겠다는, 그러나 감히 ‘시민’의 영역에 들어오고자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태도 말이다.
한 사람을 자신의 자리에 가두어 두려는, 공론장에 들어와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하게 하려는 이런 태도를 우리는 차별 혹은 혐오라고 부른다. 겨우 며칠 간격을 두고 벌어진 이 사건들은 한국 사회의 장애인 혐오를, 그리고 성소수자 혐오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낯선 광경은 아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안타깝게 여긴다면서도 그들이 노조를 조직하고 투쟁에 나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서는 이들을 우리는 많이도 만나 왔으니까. 임금 차별과 직장 내 성희롱에 시달리는 여성 노동자들을 안타깝게 여긴다면서도 그들이 이런 여성 혐오를 문제 삼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서는 이들을 우리는 많이도 만나 왔으니까.
전국 각지의 성평등 조례 제정 때 그러했듯, ‘성평등 개헌’ 논의가 진행 중인 지금도 이들은 우리들을 시민의 영역에서, 정치의 영역에서 몰아내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보수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조직된 동성애·동성혼개헌반대국민연합은 성평등 헌법은 동성혼을 허용하는 헌법이라고, 따라서 (이성애자 남성과 이성애자 여성만을 인정하는) 양성평등 헌법의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성애자가 아닌 사람들, 스스로를 남성이나 여성 중 어느 한 쪽으로 규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존재를, 그들은 지우려 하고 있다. “근로자”가 아니라 “노동자”를 말하는 헌법이 필요하듯, “신체장애자”가 아니라 “장애인”을 말하는 헌법이 필요하듯, 지금 우리에게는 성평등을 말하는 ― 다양한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을 말하는 헌법이 필요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쩌면 스스로가 “우리”에 속하지 않는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어떤 사람을 시민의 영역에서 제거할 수 있는 나라는, 다른 이유로 다른 사람 또한 제거할 수 있는 나라다. 특수학교 설립에 대해, 홍석천 씨의 선거 출마에 대해 질 낮은 훈수를 두는 사람들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여성이자 청소년이자 성소수자이자 장애인이자 이주민이자 노동자인 한 사람을 생각해 보자. 애초에 이것들은 서로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저들은 성평등 개헌이 사회를 무너뜨릴 것이라 말한다. 정말로 성평등 개헌이 동성결혼을 법제화한다면, 이것은 맞는 말이다. 이성애중심주의 사회의 일각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새로운 사회는 언제나 기존 사회의 폐허 위에 세워진다. 헌법 개정이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줄 리는 만무하지만, 헌법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누군가가 정치의 장에 들어올 수 있게 하는 첫 단추라면, 그리고 그것이 소수자혐오적인 사회를 무너뜨리는 한 방법이라면, 지금이 기회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갇혀 사는 대신, 시민사회라는 땅에, 정치의 영역에, 한 명의 사람으로서 들어갈 기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