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철(국제정치연구)
한국전쟁 정전 65년, 현재 한반도는 전환점에 서 있다. 북한은 그들의 생존, 즉 체제 안녕을 위한 것이라던 핵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제스처를 국제사회에 내 비추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 변화가 공식화될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현재, 북미수교, 한국전쟁 종전 합의와 평화협정 체결 가능성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조심스레 흘러나오고 있다.
냉전 이후 전쟁의 공포만이 지배해 온 동북아, 한반도에서의 낯선 평화 국면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는 현실주의적 접근만이 유효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현재의 낯선 상황은 단지 동북아를 구성하는 국가들 간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상황, 즉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며, 국가 간 갈등과 일상적 경쟁 상태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현실주의적인 대안들은 북한의 태도변화나 이들의 붕괴에 대비한 계속된 군사력 강화나, 한미일 동맹을 통해 절대적 권력 우위를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 혹은 현재의 평화국면을 공고히 하기 위해 대화나 경제적 교류 그리고 국제제도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들로 집약된다.
이는 지난 65년 동안 변하지 않는 제언이다.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우리의 논의는 저 틀 안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좌파도 마찬가지다. 동일한 현실 인식 하에 보수의 제언보다는 유화적으로, 낙관론자들보다는 현실적인 제언을 할 뿐이다. 과연 한반도에 관한 좌파의 인식이 ‘반미, 반제’, ‘아래로부터의 통일’,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에서 얼마만큼 전진했는가? 오히려 스스로의 관점에 기반한 이론을 만들기보다는 필요에 의한 자기만족적인 구호만을 재생산해 온 것은 아닐까? 전환점에 선 한반도. 지배세력의 주도 하에 다시금 한반도 질서의 재편을 목전에 둔 가운데, 국제정치에 대한 우리의 관점과 이론이 무엇인지 되짚어 봐야 할 때다.
본고는 무엇이 국제정치에 대한 우리의 딜레마를 키워 왔는지 되짚어 보고자 한다. 냉전과 탈냉전을 거쳐 오면서 우리의 관념을 지배해온 이론적 관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제점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혹은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불안정한 국제질서의 근원
한반도와 동북아는 항상 국가 간 분쟁 가능성이 높은 불안정성을 지닌 지역이었다. 이는 어느 특정 이론이 아닌 국제정치이론의 주류 사조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이다.
이들 이론의 근거는 국제체제의 무정부성과 단위 국가의 자조적 행위에 있다. 국제체제에서 세계정부의 부재는 그 구조의 속성을 자연상태, 즉 일상적 투쟁 상태를 생산해 내고, 이러한 속성은 국가들로 하여금 자조적 행위의 추구로 이어 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조적 행위의 종착점은 국제체제 내 단위 간 세력균형이다. 세력균형이 깨질 경우, 국가들은 자조적 행위를 통해 균형화(군비증강, 동맹체결)를 추구하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안보딜레마가 구조적 불확실성을 심화 시켜 불안정한 국제질서와 분쟁 가능성을 강화시킨다는 점이다.
이러한 국제정치이론은 동북아, 한반도에 대한 회의적 전망을 낳는다. 냉전질서에 따른, 양극체제의 경우에는 생존이라는 목표 하에 형성된 각각의 동맹 구성국들이 일정한 패턴으로 예측 가능한 안정적 질서를 형성하지만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패권 약화, 북한의 비대칭 전력 개발 등에 의해 세력균형이 깨진 다극체제는 다를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역내 구성국들의 자조적 행위의 추구로 이어져 안보딜레마를 야기해, 갈등 가능성을 내포한 예측 불가능한 질서를 형성시킬 것이라는 시각이다. 특히 미국 중심의 동북아 질서에서 중국의 부상은 역내 국가들에게 수정주의적 의도로 해석돼 현상유지세력의 안보 결속과 경쟁적 양상이 더욱 강화될 것이기 때문에 결국 역내 비협조적 국제질서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주의적 질서에 기초한 대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상호의존이나 민주적 정치체제의 공유를 통해 상호간 신뢰를 쌓아 역내 상설적 제도를 구축해 역내 규율과 규칙을 생산시켜 안정된 측면에서 국제질서를 관리할 수 있다는 주장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동북아는 상설화된 제도가 부재할 뿐더러, 이러한 제도를 구축할 수 있는 여건인 다자협력의 문화와 관습도 부재하기 때문에 상설적 제도의 구축은 어렵다. 더욱이 동북아 내 국가들 간의 역사 인식의 편차와 상이한 정치체제는 잠재적 분쟁요소들이 관리되기보다 상호간 불신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즉, 유럽질서와는 정반대 요소를 내포한 동북아에는 불안정한 탈냉전 질서가 형성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동북아에는 양차 대전 사이 유럽의 상황과 유사한 다극체제가 형성돼 군비경쟁과 주기적인 군사충돌이 계속되는 상황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이들 이론의 유일한 해결책은 자연상태에서 국가들의 자조적 행위의 무의식적 세력균형을 추구하는 것뿐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러한 국제질서 하에 있는 남북한의 딜레마이다. 결국 남북한의 운명은 역내 패권국들인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에 달려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위의 관점에 의하면 한반도 평화는 당사국인 남북한 모두 역내 질서는 물론이요, 국제질서를 스스로 구축할 수 있을 정도의 물리적 힘을 갖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패권국이면서 한반도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미국과 중국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물론 북한의 핵무기와 ICBM 개발은 역내 세력균형을 무너뜨리고 두 패권국을 자신들이 원하는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데 성공하였으나, 거기까지다. 따라서 한반도에 관한 논의는 결국 이른바 전략적 딜레마로 표현되는 미중 간의 세력경쟁에서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 또한 한미동맹 강화, 친중 외교 혹은 연미화중 전략이라는 제한된 선택지 내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현실과 이론의 괴리, 현상 유지가 갖는 의미
그러나 탈냉전 30년, 정전 65년 간의 회의적 전망과는 달리 한반도는 비교적 안정적인 질서를 유지해 왔다. 물론 주류 이론의 믿음처럼 분쟁적 요소는 국가 간 불신을 심화시키고, 불안정한 안보질서는 경쟁적 군비확장을 유발시켜 역내 긴장을 고조시켜 왔다. 게다가 북한의 비대칭 전력 강화는 현실주의적 대안이 동북아는 물론 한반도를 지배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현재의 화해국면이 보여주듯 역내 분쟁 요소들은 긴장을 심화시켰을지언정, 물리적 갈등까지 이르게 하지는 않았다. 유럽과 같은 상설적 제도는 부재하지만 현안과 과제 중심의 쌍무협상과 다자협의를 통해 역내 분쟁적 요소들을 관리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과 이론 간의 괴리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실증주의에 기반한 과학적 접근(자연 상태 아래 단위 국가들 간의 반복된 행위의 관찰과 법칙발견)과 합리적 선택(희소자원을 둘러싸고 경쟁하며 자기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합리적 이성을 지닌 국가와 그들의 자조적 행위)에 기반해 국제정치를 분석해 온 기존 주류 국제정치학자들에게 현상에 대한 과학적 설명(인과적 추론과 논리성에 기반한 예측가능성의 발현)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러한 현실을 인지하고 이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이론에게 이론과 현실의 간극은 이론의 실패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들이 믿는 학문과 비학문을 구분하는 과학적 방법론도 절대적일 수 없다. 불완전한 인간의 인식에 기반한 자연과학의 방법론으로 유기적 복합체로서의 사회를 분석하는 것은 관찰 대상을 단순화시킬 뿐이다. 국제체제를 자연 상태와 동일한 것으로 놓고 그 안의 단위(국가)들을 관찰해 하나의 법칙을 발견, 이를 이론화 하는 실증주의적 이론의 일의적 세계관은 국제정치의 비가시적 실재들을 사장시키며 시공간을 초월한 절대적 구조와 그 안의 단위로서 국가를 위치시킨다. 즉, 국가를 주체가 아닌 하나의 단위로 전락시킨다. 이들에게 주체(국가)란 결국 세계를 이성의 거울에 비친 고정된 상이며 과학 실험의 관찰 대상인 변수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믿는 변수(국가)는 사회적 존재들로 구성돼 다양한 인종과 각자 다른 지리적 조건을 지닌 일정한 영토 안에서 사회적 존재(인간)들 간의 상호관계, 그리고 그러한 국가들 간의 상호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역사, 문화, 관습, 윤리, 생산 나아가 인간의 욕망 등을 형성하며, 다양한 속성을 지닌 사회적으로 구성된 국가이다. 즉, 국가는 인간 간, 인간과 사회의 사회적 관계의 역사를 담지한 국가-사회의 복합체이며, 따라서 단위 간 관계인 국제관계는 국가-사회 복합체들 간의 관계로 재해석된다. 그리고 그러한 국가-사회 복합체들로 구성된 국제체제는 구조가 아닌 인간-사회-국가의 역사적 상호관계 속에 만들어진, 특정시기에 특정한 지역에 특수한 형태의 국제질서를 반영한 (지역)국제사회(들)로 재구성된다.
결국 이러한 관점에선 주류 이론들이 전제로 삼은 무정부성과 국가라는 단위가 재생산해내는 체제적 속성은 결코 일반화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렇게 국제정치가 안보와 생존 영역에만 한정돼야 할 근거는 사라진다. 즉, 주류이론들의 국제체제의 무정부성이나 국가의 합리성은 부자연스러운 것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이들 이론과 현실의 괴리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럼에도 그동안 주류 이론에 집착해 온 이유는 객관성에 있다. 이들의 현실주의적 인식과 그 대안들 모두를 수용 및 동의는 하지 않을지언정, 그들의 과학적 관찰과 검증과정을 통해 생산된 경험적/분석적 지식이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것, 그리고 그것이 중립적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런 가치 중립성 테제는 관찰자를 국제정치의 현실과 분리된 존재로 보고, 그들이 인식하는 관찰 대상을 하나의 고립된 존재로서 관찰된 사실로만 파악하고, 이를 파악하는 관찰자들과 관찰자들로부터 도출된 개념이나 판단들 역시 하나의 독립적인 구성요소로만 파악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관찰자(이론가)도 관찰 대상도 그 자체로 사회적 관계와 분리될 수 없다. 관찰자들도 국제정치의 현실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구성하는 중요한 단위이라는 점에서 그들도 가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관찰 대상도 사회적 맥락과 분리될 수 없다.
특히 관찰자의 관찰과 검증을 통해 생산된 경험/분석적 지식 역시 사회현상(자연)의 통제(법칙화)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지식 가치 지향성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자신의 지식에 근거해서 패권국 중심의 단극체제나 양극체제가 안정적 국제질서를 유지할 것이라며 현 체제와 질서의 현상유지를 대변하고 있다. 우리에게 현 질서 수용이라는 선택지만을 제시하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는 평화를 제도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제시하는 경제적 상호의존론, 민주평화론, 그리고 이것들의 종착점인 레짐 구축이 가진 패권 종속적 속성과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즉, 국제정치에 대한 성찰적 태도와 지식 구성의 목적, 그 이론의 내재적 가치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일정한 가치는 모든 지식의 구성과 지식생산과정에서 투영될 수밖에 없다. 과학적 이론도 특정한 시기의 역사적인 문화의 반영, 다시 말해 특정 사회집단과 계급에 따라 상이한 방식의 관계를 피할 수 없으며, 이는 순수 과학이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점에서 현재의 국제정치 질서의 모순을 지적하고 이를 변형하기보다 그 내부에서 그것과 함께 작동하도록 하는 주류 이론은 현 질서에 복종을 강요하는 긍정의 철학이다.
동북아 질서의 성찰적 재구성을 위하여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현재의 질서를 수용해 왔고, 그러한 질서가 절대적이라는 믿음 때문에 그 안에서만 대안을 찾아온 것은 아닐까? 앞서 언급한 한반도가 처한 현실에서 우리가 가진 몇 가지 선택지들은 철저하게 지배세력의 담론 안에서 도출한 그들의 담론일 뿐은 아닐까?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담론을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배제시켜 비정상에 위치시켜 왔기 때문에 그 대안들이 공허하기만 했던 것은 아닐까?
국제정치를 비롯한 사회과학 이론은 권력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 권력을 수용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권력을 변형시키기 위한 목적성을 지닌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마주한 한반도와 동북아의 이 자연스러운 질서를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믿어온 지식에 대한 비판을 토대로 한반도가 처한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금 던져 봐야 한다. 한반도와 동북아가 처한 현재의 대결적 질서는 절대적인 것인가? 그것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지금까지 이론가/연구자는 이러한 질서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해 왔는가? 이러한 성찰적 질문들은 현재 우리가 마주한 질서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나 고정돼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 질서를 정의로운 것으로 변형시키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물론 물리적 권력은 질서의 토대이다. 역량의 한계는 질서 변형의 주도적 역할을 제한시킨다. 그렇다고 관념적 차원의 영역마저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질서는 반드시 그 질서의 정당성(정의)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 질서의 정당성은 인류 보편적 가치로 구성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가치 담론들, 즉 평등, 자유, 평화에 기반한 대항 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은 중요하다. 이를 통해 국제정치를 재해석함으로써 현재 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파열구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이는 현재 우리가 해야 하는, 그리고 할 수 있는, 지배세력에 의해 재구성되는 현실에 대항하기 위한 우리의 대안을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워커스 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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