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선거에서 최대 관심은 경제문제다. 경제문제로 인해 대통령의 당락이 결정된 예가 많이 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북한 또는 한국문제에 대한 관심은 매우 낮았다. 지난 200년 동안 선거에서 외교문제가 선거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낮았다. 중간선거는 대통령을 평가하는 선거이기 때문에 새 대통령을 뽑는 대선과는 성격이 다르다. 무엇보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책적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세계 전략 차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세계 전략 중 하나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한반도 문제는 기본적으로 미국 유권자의 관심을 끌 만한 이슈가 아니다. 이는 한미관계에 대한 과도한 믿음과 의존성 그리고 피해의식에서 발현된 착각이자 허상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서는 트럼프의 대북 기조에 변화가 나타날지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북 기조가 달라지거나 북한 비핵화 문제가 후순위로 밀리면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구상에 적잖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변함없는 트럼프의 대북기조
일각에선 이번 중간선거를 트럼프의 패배로 받아들여 미국의 대북 협상에 대한 열의가 줄어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공화당의 독점체제가 무너지면서 대북 정책의 기류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선거 결과도 그렇고 그 동안의 트럼프 스타일을 고려하면 정책적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무엇보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북정책에는 기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북한이 먼저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 하고, 이를 위해 대북제재를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입장이다. 다만, 민주당은 그 동안 트럼프의 북핵 협상 방식에 비판적이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불신이 매우 강하다. 따라서 민주당은 트럼프 특유의 즉흥성과 돌발성을 우려하는 차원에서의 견제 역할을 할 것이다. 예산이 들어가는 대북 결정에 대해서는 민주당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민주당이 청문회를 개최하여 합참의장 등을 불러 중단된 한·미 연합훈련 재개를 요구하는 방식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오히려 주된 갈등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아니라 여전히 대북 접근법이 다른 트럼프와 행정부 관료 사이에서 일어날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가 2년 뒤에 있을 재임 선거를 고려하면 현재의 북핵 정책 기조를 더욱 강하게 추진할 수밖에 없다. 이번 중간선거는 2020년 대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지난 2년 동안 오바마케어 폐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대중 통상 압박 강화, 이란 핵 합의 탈퇴 등 대선 당시 공약했던 주요 사안들은 거의 처리한 만큼 부담은 많이 줄었다. 여기에 북미관계 개선은 트럼프의 재선에 일익을 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사건에 외교력을 집중해야 할 상황이다. 중동문제는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최우선 과제이다. 트럼프가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 서두르지 않겠다는 이유 중 하나다. 따라서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시간을 두고 외교·경제적 압박을 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재선을 고려하면 길게는 6년의 시간이 남아있다.
조급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지금은 교착상태에서 벗어나 대화의 틀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11월 8일 뉴욕회담이 북한의 요청에 의해 연기되면서 그 배경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고위급회담을 중간선거가 끝난 직후에 가지려고 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연기 요청은 미국 중간선거에 대한 평가, 미·중 전략대화, 쿠바 평의회 의장의 방북 등으로 좀 더 준비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11월 말에는 트럼프와 시진핑 중국 주석 간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할 가능성도 매우 크다. 북한이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에 나서기 전에 한반도 외교전부터 점검해 득실부터 따지는 수순이다.
갑작스런 회담 연기 요청에 미국의 반응은 담백하다. 있을 수 있는 일이란다. 미국 역시 서두를 필요를 못 느끼고 있다. 그렇게 우려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불확실성을 제거해서 북·미 협상의 집중력을 더 높일 수 있다.
다른 분석도 가능하다. 트럼프는 11월 7일 기자회견에서 “제재를 해제하고 싶지만 북한의 대응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쌍방향이어야 한다”면서 “제재는 유지되고 있으며, 미사일과 로켓이 멈췄다. 인질들이 돌아왔다. 위대한 영웅들이 송환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가 쌍방향을 얘기했지만 여전히 일방향이다. 자기는 하나의 양보도 없이 북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자랑에 불과하다. 이러한 미국이 검증을 양보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계속 강조하는 것에 대해 북한의 부담은 가중되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 종전선언을 미국에 요구했다. 그런데 남북한 군사합의서가 이행되기 시작하면서 북한은 종전선언에서 제재 완화로 요구조건을 변경했다. 미국도 핵 리스트 제출을 요구하다가 북한이 핵 활동을 중단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검증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 북한 간에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상호 견해 차이를 조금씩 좁혀가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는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조급할 필요는 없다. 다만 미국의 방식은 여전히 거칠고 드세다.
북미간 신뢰는 미국이 먼저
중간선거가 끝났기 때문에 향후 1년 동안은 선거라는 제약요인 없어 북·미 협상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조만간 북·미 회담이 개최되면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 조율과 함께 풍계리·동창리 시설 폐기에 대한 검증 문제, 종전선언 문제,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제재 완화 등을 폭넓게 논의할 것이다. 특히 북한이 강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제재 완화에 대해 미국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다. 이 문제는 북·미가 2차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기 위한 선결과제이기도 하다.
과거 레이건과 고르바초프 미·소 정상이 두 번째 만나는 데 11개월이 걸렸다. 조바심을 낼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오바마와 같은 전략적 인내는 불필요하다.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속도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조차 이미 여러 차례 북한 핵실험이 없으면 오래 걸려도 상관없다고 했다.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국제사찰 약속 이행은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마침 북한도 국제사찰을 준비하고 있다지 않은가. 이에 대해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만 이행하면 향후 전망은 매우 밝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미 양측의 신뢰가 선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트럼프는 워싱턴의 강경파와 비관론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이들의 발언이 북미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강경파의 한국 관련 기사는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고 갈등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 이들의 상당수는 남북관계 개선에 부정적이며, 불쾌해 한다. 심지어 남북관계에 속도를 늦추라고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지난 11월 12일 미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미공개된 13곳의 북한 미사일 기지가 있다고 제기한 보고서 공개가 대표적이다. 이후 미국 주류 정치권과 언론이 북한과의 협상을 비난하고 나섰다. 여전히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믿을 수 없으며 트럼프의 협상 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트럼프가 ‘가짜뉴스’로 대응해서 일단락됐지만, 앞으로도 강경파들과 비관론자들의 입장이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될 것인지 예고해 주었다.
북한전문가의 흉내를 낸 비전문가가 의도적으로 악의적인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남한의 보수세력은 ‘사실’이 아닌 ‘의견’과 ‘생각’을 마치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현 정세를 비판하는 단골 메뉴가 되곤 한다. 그럴수록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미국과 남한의 보수세력에게 변화의 불가피성을 조금 더 강력하게 보여줘야 한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서로를 믿지 않았으면 지금과 같은 한반도 정세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이 북·미 정상회담, 그리고 비핵화와 관계개선 합의라는 화해 국면을 조성한 것이다. 북한이 제재 때문에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 미국이 무엇을 할 것인지 답은 명확하다. 안타까운 것은 요동치는 한반도 정세에서 노동자 민중의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워커스 4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