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방탄소년단이 사로잡은 메르켈 세대
②노조파괴왕 메르켈, 그는 실패했지만 승리했다
“꺄아악. 괴성이 박수에요. 이제 10대들은 손뼉이 아니라 소리를 지릅니다. 당연하기도 하죠. 손에 아미밤1)을 들고 있지 않습니까? 50유로(약 6만4천 원)나 되지만 아무도 주저하지 않아요. 티켓이 200유로나 됐는데 9분 만에 매진 됐습니다. 인터넷에선 1000유로까지 갔어요. 티켓뿐입니까? 교통비에 식비, 숙박비까지 치면 상당할 겁니다. 고통은 가격을 정당화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법이죠.”
‘방탄소년단은 디지털 시대의 비틀즈인가?’라는 제목으로 최근 <베스트도이칠란트차이퉁> 울리 튀크만텔 기자가 전한 말이다. 지난 5월 말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나왔던 물음이 다시 베를린에서도 되풀이됐다. 10월 16~17일 양일 공연에 약 3만4천 명이 방탄소년단의 무대를 가득 채웠다. 공연장 밖에서도 1만여 명이 그들에게 열광했다. 유럽 콘서트 티켓은 발매 9분 만에 매진됐고, 공연 3일 전부터는 공연장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 앞에서 팬들이 장사진을 쳤다.
“방탄소년단이 뭐야?” 독일 기성사회는 듣도 보도 못한 아시아의 이 보이그룹에 소녀들이 왜 열광하는지 도대체 영문을 몰라 했다. 라디오나 방송에서도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빌트〉, 〈쥐트도이취차이퉁〉 같은 대중 일간지나 지역 언론, 문화 매거진들이 현장에 몰려 방탄소년단이 과연 어떤 그룹인지, 그리고 어떻게 10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저마다의 대답을 내놨다.
[출처: 베스트도이칠란트차이퉁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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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언론들은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기도 하고 방탄이 이제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그들 외모와 음악 형식 등 다양한 이야기와 해석을 만들어냈다. ‘K-POP’이나 ‘방탄소년단’ 또는 정국을 따라다니는 ‘막내’라는 호칭의 의미, 방탄이 팬들을 부르는 ARMY(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 10대의 사랑스러운 대표 MC)라는 약자까지 하나하나 설명했다.
방탄소년단의 인기 비결을 추적한 독일언론의 다양한 초점을 따라가다 보면 몇 가지가 겹쳐 있다. 우선, 언어적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미 ‘페이크 러브(Fake Love)’나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 등 방탄의 노래 제목이나 가사의 상당 부분이 쉬운 영어여서 언어적 차이는 큰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춤이나 무대형식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거나 랩, 알앤비 등 여러 종류의 음악 형식이 팬들의 서로 다른 기호를 사로잡았다는 분석도 있었다. 소셜미디어로 방탄이 팬들과 적극 소통해왔다는 점도 주목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독일 언론이 방탄이 독일과 유럽 10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라고 입을 모은 것은 그들이 바로 “10대들의 문제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페이크 러브, 페이크 현실, 러브 유어셀프”
“이렇게도 좋은 예술가는 처음이에요. 모두 내 또래이고 같은 문제를 말해요. 전에 힘들 때 처음으로 방탄을 듣게 됐거든요. 지금은 방탄 때문에 매일 웃고 행복할 이유를 찾아요. 유튜브 비디오를 보면 뭔가 이 밴드랑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알게 된 지 10개월이 됐는데 안 본 날이 없어요.” – 다이시
그러니까 방탄의 매력은 노래 가사에 있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를 지적한 언론 중에서도 <베를린-브란덴부르크라디오방송>은 팬들의 의견을 토대로 이를 설명했는데 “팬들은 계속해서 방탄을 그렇게 독창적으로 만드는 것은 노래의 메시지라고 강조한다”고 짚었다. 그래서 청중은 영어 문구뿐 아니라 한글로 된 랩 구절도 거침없이 따라한다는 것이다. 즉, “방탄의 노래는 자기애나 우울과 불안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계속 팬들과의 친밀감을 강조하며 자신들도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사실 방탄소년단은 ‘페이크 러브’에서는 “내 모든 약점들은 다 숨겨지길. 이뤄지지 않는 꿈속에서 피울 수 없는 꽃을 키웠어”라며 현실과 꿈의 괴리를 말한다. ‘러브 유어셀프’에서는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하자. 니가 내린 잣대들은 너에게 더 엄격하단 걸”이라며 자책하는 10대들을 위로한다. 즉, 그들은 ‘꿈 고문’에 시달리는 10대들의 감성을 파고들고 있다. 그리고 10대들의 현실을 긍정하고 화려한 자신도 너희와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손을 내민다. 방탄의 노래는 60-70년대 비틀즈의 ‘다른 세상을 향한 상상’이나 90년대 U2의 ‘반전주의’ 또는 2000년대 머라이어 캐리의 ‘사랑 노래’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10대들에게 ‘자기애’란 공통감각을 만들어 부르고 있다.
메르켈 세대의 유럽연합
그런데 왜 유럽의 10대들은 자기를 사랑하라는 메시지에 감동하는 것일까? 그러면 유럽 10대들의 현실이 다른 세대와 다른 것은 무엇일까? 사실 이들의 현실은 기성세대 보다 치열하고, 미래 또한 더욱 불안하다. 어느 때보다도 경쟁을 강요받지만 아무도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 세상. 그 현실에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예수 대신 ‘자신을 사랑하라’, ‘자신을 방탄하라’는 방탄소년단의 울림은 유럽 10대들의 마음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그리고 지금 이 10대는 바로 메르켈의 세대들이다.
독일 10대들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05년 11월 집권한 뒤 만 13년 동안 성장한 세대다. 그리고 그 십여 년 동안 독일은 예전과 비교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물론 유럽연합 정책을 지휘해왔던 메르켈 덕분에 유럽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2010년 그리스를 시작으로 유럽 경제위기를 관통하며 유럽은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이 10대의 유럽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유럽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에서 2016년 사이 유럽연합 청년 빈곤율은 19.2%에서 23.2%로 약 4% 포인트 상승했다.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청년의 비율도 2008년 약 15%에서 2016년 18%로 증가했다. 지난 5월 기준 15-24세 사이 유럽연합 청년실업률은 14.9%로 평균 실업률의 약 2배가 넘는다.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이 2017년 발행한 소득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연합 소득불평등 추이는 2009년 12.2에서 2015년 13.2로 늘어났다. 특히 독일의 불평등 격차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데 예를 들면, 독일 실업자의 빈곤율은 2016년 70.8%로 유럽연합에서 가장 높았다. 일자리도 없는데 사회보장이나 다른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얘기다.2) 유럽연합에서도 이는 2006년 41.5%에서 2016년 48.7%로 크게 악화했다.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 문제는 유럽 청년들이 현재 테러 보다 더 걱정할 만큼 심각하다.3) 그러다보니 유럽이나 유럽연합의 가치에 대한 긍정도 낮은 상황이다. 독일 민간 사회연구기관 SINUS연구소가 2017년 유럽 35개국의 18-34세 사이 100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유럽연합이 필요한 구조라는 대답이 37%를 기록했지만 그냥 대륙 이름일 뿐이라는 대답이 21%, 지배체제라는 대답이 11%를 차지했다.
그러나 유럽 청년들은 유럽연합이라는 가치보다 유럽연합 기관들에 더욱 회의적이다. 영국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지난 5월 유럽 청년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설문조사에서, 34%만이 유럽연합 기관들에 대해 신뢰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 유럽연합의 기관들은 바로 메르켈이 주도한 것이다. 사실 메르켈은 지금 10대들이 자라난 경제위기 시기, 유럽 기관들을 구조조정해 유럽 금융 자본을 방탄하며 위기의 비용을 일반 노동자나 서민에게 전가했다. 그리고 그 핵심 중의 하나는, 노조를 공격하는 것이었다.[워커스 49호]
[각주]
1) 방탄소년단 응원봉 이름
2) 이 수치는 실업자의 빈곤율이 가장 낮은 핀란드의 37.3%에 비하면 2배에 가까울 만큼 심각하다.
3) 2018년 3월 청년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독일 TUI재단이 유럽 청년 6만 명을 대상으로 자신이 걱정하는 문제에 관해 수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경제 성장 문제가 1위, 사회적 불평등이 2위, 그리고 테러가 3위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