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법은 대학 강사에 관한 법이다. 정확히 말하면 강사법이라는 별도의 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을 가리키는데 고등교육법 제14조의2에 ‘강사’ 조항을 신설해 대학 교원으로서 강사에 대한 규정을 하도록 개정한 것이다. 왜 강사에 관한 법을 만드는가? 지금까지 강사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겠지만 강사는 대학 교육의 30%, 많을 때는 50%까지 담당하는데도, 교육법상의 교원이 아니다. 법적 지위가 없으므로 1년을 하든 10년을 하든 1학기 4개월 단위로 계약과 해지를 반복하며, 건강보험도 퇴직금도 없고, 사용자가 아무런 제약 없이 시급만 주면 어떤 형태로든 고용할 수 있는 존재였다. 채용 역시 어떤 기준도 없이 학맥과 인맥에 따라 이루어지고, 많은 경우 강의 배정이 동료나 선배 혹은 지도교수의 손에 달려있으며, 자기의 학문적 진로는 물론이고 생계까지도 같이 가르치고 연구하는 동료 교수에게 의탁해야만 하는 입장에서 동등한 학자적 관계가 될 수 없다. 이 모든 모욕적인 현실은 오직 그들이 ‘법외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시간강사를 비정상적 법외 존재로 두는 이러한 관행적 제도는 당사자인 강사의 고용불안정과 경제적 빈곤함뿐 아니라 교육과 학문의 주체로서 인격과 존엄을 훼손하고 대학 사회 내부의 주종 관계를 고착화해 내 민주주의와 비판적 학문 풍토를 말살하는 주요인이다. 실제로 강사의 교원 지위는 원래 없었던 것이 아니라 1977년 유신정권에서 박탈된 것이다. 강사의 교원 지위를 박탈한 것은 젊은 소장 학자들 중심의 비판세력을 억압하고 대학 내부의 위계적 통치 구조를 위한 목적이었다.
교원 지위 회복을 위한 강사의 투쟁들
2000년대 이후 대학에 신자유주의적 기업경영이라는 혁신이 도입된 이후로는 이에 더해 강사 외 수많은 비정규직 교수 직군들이 양산됐고, 교수 사회의 경쟁이 심화됐다. 다른 노동현장과 마찬가지로 2000년대 이후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대학 사회 안에서도 극심하게 양극화돼 전임교수과 강사임금은 10배 이상이 됐고, 각종 정부 지원 사업 및 연구 프로젝트가 대학과 교수들의 주요 수입원이 되면서 같은 교원끼리의 종속성과 위계적 통치 구조는 더욱 첨예화됐다. ‘수익 최대, 비용 최소’라는 기업경영의 원칙이 교육의 원칙을 대체해버린 대학에서는 구조조정이 일상화됐으며, 이 과정에서 시간강사는 대학 사회의 가장 하층계급으로서 언제나 제일 먼저 희생되는 존재였다. 오랜 시간강사제도의 모순과 차별구조는 계속 악화돼 왔다.
이런 상황에서 강사노조가 결성되면서 교원 지위 회복을 위한 강사 투쟁이 시작됐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정치권 내에서도 강사들의 열악한 노동실태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해 강사법 입법이 추진됐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대학 강사에 대한 반인권적 차별을 시정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강사들이 집단적 조직화를 통해 정치세력화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러한 법제화 시도들은 현실의 추동력을 갖지 못하고 계속 좌절됐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강사가 대학 안에서의 부당한 차별을 죽음으로 고발했고, 교원 지위 회복을 요구하는 강사 투쟁의 역사가 있었다. 2010년 조선대 강사였던 고 서정민 박사의 죽음은 강사법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가 남긴 유서는 대학 시간강사가 처한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며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고 마침내 2011년 강사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사실 법률상의 개정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고등교육법은 대학과 대학교육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법이고 그중에 14조는 ‘교직원’에 대한 조항이다. 그런데 기존의 고등교육법 제14조는 ‘학교에 두는 교원은 …총장이나 학장 외에 교수·부교수 및 조교수로 구분한다’고 돼 있어 ‘강사’가 빠져있다. 이 부분을 ‘… 교수·부교수·조교수 및 강사로 한다’로 변경하는 것이 이 개정안의 핵심이다. ‘강사’가 포함됐으므로 ‘제14조의2 강사’를 신설해 강사에 대한 규정을 별도로 한다. 제14조의2에서 핵심 내용은 ‘계약으로 임용할 것’과 ‘1년 이상 임용’이다. 사실 아주 간단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14조 안에 ‘강사’라는 이 한 단어를 넣는데 10년이 훌쩍 넘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국회 앞의 ‘대학 강사 교원 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를 위한 투쟁 본부’ 천막농성장은 2018년 11월 27일이면 농성 5000일째를 맞이한다.
그런데도 법안은 2011년 통과 이후에도 대학의 반발과 강사단체의 반발로 7년 동안 4차례나 시행이 유예돼 지금도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강사들의 처지는 여전히 그대로다. 아니 실은 점점 더 나빠졌다. 강사법 시행 시기가 다가올 때마다 대학들이 강사법을 핑계로 구조조정을 실시하여 강사를 해고해왔기 때문이다. 강사가 사라진 자리에 온라인 강의와 대형 강의가 생겨났고, 전임교수와 기타 비전임교원들에게 과도한 강의가 떠넘겨졌다.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도 돌아갔다. 그동안 대학들은 법안 시행 시기가 올 때마다 국회와 정부에 강사법 준비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시행 유예를 압박하면서도 정작 유예기간에는 시행되지도 않는 강사법을 대학구조조정의 지렛대로 삼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2017년 국회는 4번째로 법안을 유예하게 되자 더 이상 유예는 없다는 조건으로 1년 유예기간을 주면서 교육부에 개선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그에 따라 교육부는 2018년 3월에 강사 측 대표 4인, 대학 측 대표 4인, 국회 추천 전문위원 각각 4인으로 구성된 강사제도개선협의회를 발족하고 5개월에 걸쳐 총 20차례의 회의를 통해 원안 일부를 수정한 개정 강사법 합의안을 극적으로 도출했다. 최초의 합의안이었다. 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했고, 이를 토대로 대학 측과 강사 측이 재조정 작업을 했으며 최종합의안 보고서를 국회와 정부에 제출했고 대학 강사 정부가 함께 공식적 기자회견을 열어 합의안을 발표했다.
개정 강사법 합의안은 유예강사법 원안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를 받았다. 원래 유예강사법에는 없던 방학 중 임금 지급을 법조문에 명시했고, 단순 1년 이상 계약에서 더 나아가 학칙과 정관에 따른 계약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임용기준과 절차에 따라 서면계약으로 임용하도록 하고 2회의 재임용 기회를 부여해 3년까지 임용이 보장될 수 있도록 재임용 절차 보장도 명시하였다. 강사들이 크게 반발하였던 1년 계약 후 당연 퇴직 조항은 삭제했고, 공개채용 원칙을 명시했으며 제14조의2 제2항의 단서조항에서 빠져있던 재임용거부 처분에 대한 소청심사권을 준용규정에 포함해 14조 안에서 강사의 교원소청권을 분명히 확인했다. 동시에 위 독소조항으로 인해 혹시라도 법적 해석의 논란이 생길 가능성을 원천차단하기 위해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을 제14조의2 제5항에서 별도 신설해 확실하게 명시했다. 또한 한 학교에서 6학점 이하로만 강의할 수 있도록 해 소수의 강사만이 구제되고 다수의 강사가 해고당하는 것을 방지하도록 했다. 이것은 강사법이란 법 자체가 없던 과거와 비교하면 엄청난 권리의 진전이고, 2011년 강사법 원안과 비교해도, 그동안 제출됐던 개정안과 비교해도, 비교할 수 없는 권리 보장을 담은 법적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의 반발과 그 이유
그런데 합의안이 국회에서 발의되고 교육위를 통과해 개정 강사법 국회 통과와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대학 현장에서는 법 시행 이전에 강사를 선제적으로 해고하는 등 강사법을 회피하기 위한 편법과 무력화 시도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 지금의 개정안은 이전과 달리 대학들도 합의한 합의안인데도 이전과 똑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대학들이 지금 대학이 ‘재정난’이 ‘극심’해서 강사법에 따른 ‘엄청난’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대학도 구체적인 추가비용 추계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대체 강사법에는 얼마나 돈이 드는 것일까? 가장 큰 추가 부담은 ‘방학중임금’에서 발생한다. 학기중과 동일임금으로 산정하여 준다고 할 때 기존의 8개월(1,2학기 각 4개월) 치에서 방학 기간 4개월분이 더 증가한다. 50% 임금인상인 셈이다. 임금을 한꺼번에 50%나 올린다고 하면 엄청난 인상률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대학 예산에서 강사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도 안 된다는 점을 간과한다. 대학은 등록금 동결과 입학정원 축소, 입학금 폐지로 인해 대학재정이 어렵다고 주장하나 사립대 재정 현황 분석(박경미 의원 국감 정책자료집) 결과를 보면 지난 5년간 4년제 사립대의 경우 등록금 수입이 3천억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국고보조금은 1조 4천억 원이나 증가했다. 4년제 사립대 총예산이 18조 원이 넘는데 가장 큰 지출 항목은 교직원 보수로 전체 지출의 41%인 7조원에 달하며 5년 동안 5,861억 원이 꾸준히 증가했다. 그중에 대학 강사 강의료는 2,200여억 원에 불과하며 이는 전체 인건비의 2.9%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에서 강사가 담당하는 강의 비중이 대략 30%인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그동안의 열악한 정도가 상상 이상임을 알려주는 수치다. 향후 추가 부담이라는 것 역시 대학 재정에 큰 영향을 끼칠만한 액수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대학들은 이렇게까지 반발하는 것일까? 사실보다 중요한 이유는 재정 문제보다는 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이 대학의 질서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에 있을 것이다. 수십 년간의 지배구조에 균열이 생기는 이 상황은 강사들에게도 불안하지만, 대학의 입장에서도 불안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강사에 대한 모든 문제를 발생시킨 근거이자 시작은 ‘강사는 교원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차별의 근거였고, 불평등의 시작이었다. 강사법 투쟁은 바로 이 차별의 근거를 없앰으로써 대학 사회 내의 오랜 적폐인 사적 정치와 비민주적 권력 구조, 지배구조를 변화시켜내려는 운동이다. 강사를 대학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학문과 교육의 주체로 인정하라는 권리 투쟁이다. 강사법을 단순히 대학 강사의 경제적 처우 개선과 고용 안정의 관점에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원’의 권리는 대학사회의 시민권에 다름 아니며 지금 회복하는 교원의 권리가 비록 완전하지 않은 것이라 해도, 그 정치적 의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 연구, 교육, 학내참정권에서의 주체적 권리를 요구하고 확장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강사는 교원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대학에 대해 이제 강사들이 “강사도 ‘똑같은’ 교원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여기서부터 완전히 근본적인 전환점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강사법은 대학의 최하 존재들이 만들어간 빵의 투쟁인 동시에 장미의 쟁취다.(워커스 4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