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을 쓴 남성들이 투표함을 내동댕이친다. 도로에선 폭탄이 터져 검은 연기를 뿜어낸다. 반면 베네수엘라 투표소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투표를 위해 며칠 전 홍수로 불어난 개천을 넘어 온 사람들도 있다. 베네수엘라 제헌의회 국민투표가 실시된 7월 30일의 풍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투표하고 있어요. 폭력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나는 무척이나 기뻐요. 사람들이 평화를 위한 이 요청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제헌의원 소수가 이 사회를 좌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을 마다, 작업장과 도시마다 제헌에 대해 토론하게 될 거에요. 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제안이 헌법에 기록될 것입니다.”
제헌의회 후보자로 출마한 50대 여성, 마리아 베리오가 베네수엘라 전문포털 <베네수엘라 어낼러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같은 동영상에는 “사람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요. 베네수엘라를 위해, 차베스 사령관이 우리에게 남긴 것을 위해 투쟁할 것입니다”라는 20대 청년의 발언도 실렸다.
전국적으로 제헌의회 투표는 평화롭게 진행됐다. 그러나 일부 주에선 우익 테러리스트들이 투표를 막기 위해 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거리를 폐쇄했고 유권자를 살해하겠다고 위협했으며 경찰서를 방화하고 폭력시위를 벌였다. 투표소만 200여 개가 공격을 받았다. 우파가 장악한 카라카스 동부 알타미라에서는 실제로 아무도 투표하지 못했다. 경찰이 투입되자 테러리스트들은 경찰을 향해 폭발물을 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모든 폭력에도 42%의 유권자가 투표에 참가했다.
제헌의회 의원…545명 중 노동자 79명 vs 기업가 5명
국민투표는 지난 5월 1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제안으로 진행됐다.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를 재건하며 노동자민중이 베네수엘라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제헌이 필요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중남미 뉴스전문 위성채널 <텔레수르>에 따르면, 8,089,320명이 이 선거에 참가했다. 이는 2015년 12월 총선에서 여권이 득표한 5,622,844표 보다 약 250만 표가 많은 것이다. 여권의 거대한 승리였다.
선거에는 55,314명이 입후보를 할 정도로 분위기가 뜨거웠다. 그 중 후보등록 요건을 충족시킨 6,000여 명이 출마했다. 그러나 야권은 80% 이상이 선거에 참가하지 않았다며 선거 무효를 주장했다. 선출된 545명의 제헌의원 중 364명은 지역구의원이고, 나머지 173명은 노동자 79명, 농민과 어부 8명, 기업가 5명, 장애인 5명, 대학생 24명, 퇴직연금인 28명, 코뮌위원회1)24명으로 구성됐다. 이중 노동자 대표는 공공부문 17명, 서비스부문 14명, 사회복지 12명, 상업 11명, 자영업 11명, 제조업 6명, 건설 4명, 석유 2명, 교통 부문 2명으로 구성됐다.
이 같은 제헌의회는 8월 4일 출범했다. 외무장관을 지낸 델시 로드리게스를 의장으로 선출했고, 8일 헌법에 따라 최고권력기관으로 선포했다. 또 폭력피해자진실과보상위를 설치하고 선례를 남기려는 듯 우익 테러리스트를 비호한 혐의를 받는 루이사 오르테가 디아스 검찰총장을 해임했다. 18일에는 야권이 주도하는 국회 권한 일부를 제한하고 국가안보 문제에 관한 입법권을 선언하면서 야권 주도 의회를 향한 본격적인 태세를 갖추고 있다. 향후 2년 동안의 제헌 작업을 통해 새 헌법안이 완성되면 국민투표를 통해 볼리바리안 헌법을 대체하게 된다.
여전히 제헌의회를 인정하지 않는 우파에 차베스주의 사회주의자연합(LUCHAS) 활동가이자 볼리바리안사회주의 노동자협의회 성원인 스탈린 페레스 보르게스2)는 “그들은 항상 볼리바리안 과정에 반대했던 자들과 똑같은 자들”로 “2002년 4월 11일 쿠데타 뒤에 있었고, 자본총파업과 2002년 12월에서 2003년 2월 석유 파업을 조직했던 자들”이라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우파들은 지난 18년 간 차비스모가 승리했던 17번의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그들이 승리한 단 한 번의 선거와 단 한 번의 국민투표 결과만을 인정하고 있다.
제헌 목표(출처: 국제전략센터ISC)
1. 민중권력 간의 협력 회복
2. 포스트 석유 경제 개발
3. 사회 미션에 헌법적 지위 부여
4. 부패, 불의, 투기에 맞서 싸우기 위한 사법제도 강화
5. 꼬뮌처럼 민주주의의 새로운 형태에 헌법적 지위 부여
6. 외세의 개입에 맞서 베네수엘라의 주권 수호
7. 인종과 사회 증오를 넘어선 다문화주의 장려
8. 청년권리 인정
9. 생물종다양성 보호화 생태문화 장려
왜 제헌의회인가
2015년 12월 총선에서 의회를 장악한 우파가 처음으로 한 행동은 마두로 대통령의 국적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증거도 없이 마두로가 콜롬비아 출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곧 콜롬비아 정부의 확인을 통해 억측인 것으로 판명 났다.
이어 우파 주도 의회는 대법원을 포함해 다른 권력기관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2015년 총선 기간, 선거위원회(CNE)는 선거부정을 이유로 야권 3명, 여권 1명을 포함한 아마조나스 주
선거결과를 무효화했다. 그러나 야권은 이 결정에 불복했다.
그 후 대법원은 특별 감독을 통해 CNE의 결정을 인준하였으나 야권은 이 또한 거부하고 말았다.
우파는 또 폭력시위 선동으로 구속된 우파 일부 인사들에 대한 사면법을 통과시켰다. 베네수엘라 대법원이 반대해 최종 통과되지는 않았으나 야권은 이를 민주주의 파괴라고 역공하고 있다. 더구나 2016년 11월 여권은 정치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대화에 나섰으나 야권은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발의를 시도했다. 그러나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는 데 필요한 서명에 다량의 위조 문서가 발견되는 등의 문제로 이 역시 좌초됐다. 우파의 계속된 의회 전술과 타 권력기관 무시로 인해 대법원은 의회 권한을 대행한다는 판결도 내렸으나 우익의 폭력시위로
이틀 만에 철회하는 등 정치적 위기는 확대돼 왔다.
결국 야권은 2017년 폭력 시위를 시작했다. 이는 1989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서다 3천 명이 희생된 카라카소 봉기 이래 베네수엘라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유혈 폭동이었다. 선거를 1개월 앞둔 6월 말 폭력시위는 최고조에 이르러 전직 군인이 경찰 헬기를 탈취해 정부청사와 대법원에 총을 난사하기도 했다. 우익의 폭력은 125명의 사망자와 방화와 약탈, 봉쇄 등으로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우익은 사상자에 대한 책임을 정부에 전가하고 있지만 실상은 우파의 폭력에 따른 희생자가 다수였다. 이들 폭력에는 콜롬비아 우익 민병대가 동원됐다는 혐의도 제기됐다3). <텔레수르>는 베네수엘라 우익이 주도한 거리 폭력은 실제 준군사 조치로서 미국의 개입전쟁 전 리비아나 시리아에서 나타난 장면과 유사했다고 지적한다.
정치적으로 막다른 길에 봉착한 마두로 대통령은 제헌의회를 제안한다. 그는 “총 대신 투표를”이라는 구호를 내걸며 참여를 요청했으나 야권은 그 반대를 택했다. 2014년, 엔리께 카프릴레스 등 반차베스 정치인들이 제헌의회 소집을 제안한 당시 사정을 되돌아보면 모순적이지 않을 수 없다.
볼리바리안 혁명의 분기점 될 것인가
제헌의회 선거에 앞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정치인에 대한 경제제재에 이어 “군사 옵션도 열려 있다”고 발언하는 등 노골적인 개입을 확대해 왔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 등도 베네수엘라 제헌의회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서구의 압력은 고조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집권한 각국 우파 정부의 주도 아래, 지역공동시장 메르코수르 회원자격도 정지됐다. 이 같은 국제 우파 세력의 지지를 배경 으로 베네수엘라 우익은 8월 6일 다시 카라보보 주 파라마카이 요새를 공격해 무기를 탈취하는 행동까지 감행했다.
그러나 제헌의회 선거 이후 베네수엘라 상황은 뒤바뀌고 있다. 베네수엘라 군대는 조기에 파라마카 요새 공격 용의자 18명을 체포하고 사태를 수습했다. 무엇보다 대규모 투표율에 야권의 기세가 꺾였다. 현재 우파는 폭력을 고수하는 측과 앞당겨진 지방선거를 준비하자는 측 간의 내부 분열을 겪고 있다.
마리아 헬레나 하미레스 헤르난데스 혁명적성과젠더다양성 동맹(ASGDRe) 활동가는 <그린레프트위클리>에 “제헌의회 선거는 선거 그 자체 뿐 아니라 의식적인 터닝포인트였다”며 “다시 한번, 베네수엘라인 다수는 세계에 우리가 볼리바리안 혁명을 지지하고, 우리 대통령과 제헌의회 제안이 올바른 길 이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설명한다.
이 같이 베네수엘라 사회운동은 제헌의회를 통해 이 나라의 혁명이 더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특히 베네수엘라 제헌의회가 2번째 목표로 제기한 포스트 석유경제 이슈에 대한 기대가 높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자본주의 시장 내 에너지 공급국으로서 수출액의 98%를 석유 자원에 의존하는 등 원유 수출 기반 경제 구조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때문에 자립적 사회주의 경제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와 볼리 부르주아지 등의 문제가 제기돼온 상황이었다.
베네수엘라가 현재 극도의 불안정 속에 있지만 다수는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7월 19일 베네수엘라 여론조사업체 ‘힌터레이스’에 따르면, 응답자의 75%는 21세기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이 같은 비율은 차베스 집권 초기 자본주의를 지지하던 비율이 82.8%였던 것을 비교하면 크게 달라진 셈이다.
극심한 경제위기와 우익의 경제전쟁, 폭력시위 속에서 제헌의회는 어떤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까. 볼리바리안 혁명의 분기점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워커스 34호]
[각주]
1) 공동체위원회 또는 마을평의회로도 불린다.
2) 8월 9일 국제사회주의저널 <링크스> 부편집자 페데리코 푸엔테스와의 인터뷰. <워커스>(22호)는 지난해 여름 한국을 찾은 푸엔테스 부편집자를 만나 인터뷰한 바 있다.
3) 7월 29일 <소셜리스트프로젝트>에 기고한 클라우디오 카츠에 따르면, 콜롬비아에서는 올해
46명의 지도자가 암살됐고 지난 14개월 동안 120명이 죽었다. 2002년과 2016년 사이, 준군사 세력은 558명의 지도자를 살해했고 지난 20년 동안에는 2,500명의 노조원들이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