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이 사랑한 파시스트
가짜 진보에 질리고 삶이 무너진 백인의 선택, 트럼프
김시웅 (사회활동가)
2016년 미국 대선 공화당의 유력한 후보인 트럼프. 극단적 성차별·인종차별주의자로 영화 속에서 튀어 나온 것 같은 그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을 내쫓고, 무슬림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미국 공장을 구조조정하는 기업가들을 비난하고, 월가 금융 자본과 정경 유착 기득권 세력을 공격한다. 트럼프의 정치적 주장에 대해 ‘일관성이 없다’, ‘모순된다’, ‘근거하는 기반 사상이 부재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아무 효과가 없다. 트럼프로서는 자극하고 선동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트럼프를 보면서 한국의 ‘그 무엇(일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정치 경제학적 접근
트럼프 현상을 이해하는 프레임으로 가장 올바른 것은 다음과 같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기축 세력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미국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세계 및 미국 자본가 계급의 총자본으로서의 의식을 반영한다. 그 게임 안에서 우로는 조지 부시에서 좌로는 오바마까지 질서가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미국 대선에서 변동이 일어났다. 좌에서는 샌더스가, 우에서는 트럼프가 튀어나왔다. 간신히 힐러리가 샌더스를 진압했지만 트럼프는 3월 21일 현재 공화당 경선 1위를 달리고 있다. 공화당을 비롯한 미국 지배 계급이 곤혹스러운 점이 여기에 있다. 미국 정치 구조가 지배 계급에 장악됐다고 분석해 왔던 급진 좌파들이 흥미롭게 바라보는 점도 바로 이것이다. 트럼프 역시 수조 원의 자산을 가진 부동산 재벌로 지배 계급의 일원이고 극우적 주장을 하지만, 고립주의를 주장하면서 미 제국주의의 적극성을 감소시킬 여지가 생겼다. 월가 금융 자본을 귀찮게 할 수도 있고, 대중을 기만하는 민주주의 제도의 중립성이라는 환상을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세계와 미국 자본주의를 짊어지고 가야 하는 총자본 관리자로서 공화당과 미국 지배 계급에게 트럼프는 오히려 체제를 불안정하게 하는 ‘엑스맨’이다. 흥미로운 점은 지배 계급이 사태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공화당 기축 세력의 조직적 반대에도 미디어와 여론, 선거 제도라는 구조의 빈틈 사이사이로 트럼프가 기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역시 사태는 초거시적인 차원에서는 ‘예정조화’의 경로를 따라 움직인다. 트럼프와 힐러리는 일종의 무의식적·초거시적 차원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깡패와 천사 역할을 분업하고 있을 뿐이다. 배우는 여럿이지만, 자본주의 연극은 진행된다. 트럼프의 독특성 역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측면 중 하나이며, 단지 어두운 면에 집중된 것뿐이다. 반면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은 공화당 내 티파티 그룹과 달리 단순한 자본가 계급의 꼭두각시는 아니라는 데 세상의 복잡 미묘함이 존재한다.
문화적 대중 심리적 접근
트럼프의 경력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004년부터 <어프렌티스(Apprentice)>라는 리얼리티 쇼를 10여 년째 기획·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은 미국 사회가 강요하는 자본주의적 경쟁 가치를 철저히 내면화한다. ‘성공한 부동산 백만장자’로서 도널드 J 트럼프는 그 기괴한 종교의식을 집전하는 최고 사제다. 그의 칭찬에 참가자들은 펑펑 울고, 환호하고, 그가 언제 최고 유행어인 ‘넌 잘렸어(You’re fired)’를 외칠지 열망하며 바라본다. 참가자들의 지독한 경쟁 노력과 고난, 온갖 인간적 에피소드들에 가치를 매기거나 매기지 않는 신이 바로 트럼프다. 흔히 트럼프는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무엇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매우 능숙하다고 평가된다. 바꿔 말하자면 트럼프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을 움직이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안다는 것이다.
한편, 미 대선 3인방 중 힐러리는 ‘나’라는 표현을 주로 쓰고, 샌더스가 ‘우리’를 주로 쓴다면, 트럼프는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하는 방식을 취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도널드 J 트럼프는 위험한 멕시칸들로부터 사랑스러운 미국을 지키기 위해 엄청나게 크고 아름다운 벽을 쌓을 것이다!” 트럼프는 이런 말투를 통해 나와 우리 위에 존재하는 ‘그 위대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심으려 한다.
빌헬름 라이히는 《파시즘의 대중 심리》에서 성적 에너지의 억압이 개인과 사회의 신경증적 병리 현상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민당과 공산당뿐 아니라 히틀러도, 심지어 보수적인 당들마저 경제적인 문제, 즉 ‘빵’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히틀러가 성공을 거두는 데에는 그가 대중의 정서적·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접근했고 그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트럼프는 진정한 파시스트다. 그가 내세우는 주장이 정치적 분류상 극우라서가 아니라, 히틀러나 무솔리니처럼 반역적 대중으로부터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육체적으로 결핍되어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된 대중에게 트럼프는 혐오주의와 ‘위대한 미국’ 환상을 통해 살아갈 행복을 제공하고 있고 그렇기에 그들의 관계는 그 무엇보다 끈끈하며 ‘자발적’이다.
트럼프와 ‘심리적 전염병’을 퇴치하는 방법
트럼프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혹시 아프리카 케냐에서 태어난 거 아니냐’고 오바마를 조롱했다. 오바마는 재치있게도 트럼프에게 자기 출생 비디오라면서 영화 <라이온 킹>에서 주인공 사자 심바가 태어나는 장면을 틀어 놓는 식으로 반응했다. 오바마도 직감한 것이다. 트럼프에 대해서는 감정적 차원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오바마는 형식 외에 그 내용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는 알지 못했다. 한편 샌더스의 전략도 트럼프와 유사한 면이 있다. ‘이 세상을 우리가 정말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진실하게 호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구호는 정서적으로 안정적이고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는 ‘잘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쉬운 방식이지 삶의 무게를 양 발목에 질질 끌고 가는 지친 사람들에게 잘 먹힐 방식은 아니다.
소외로 가득 찬 직장에서 퇴근 후 마트에서 맥주와 나초를 사고 캐셔와 딱 한 마디하고 소파에 앉아 TV 채널만 돌리다가 트럼프를 발견하고 그걸 보는 ‘화이트 트래시(White Trash, 교육 수준이 낮은 저소득 백인 계층)’에게 좌파는 어떻게 다가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는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정치 경제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에 달려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저항을 통해 그런 지독히 외롭고 무너져 내려가는 삶을 벗어나 인간적이고 충만한 삶을 회복할 수 있다는 대중 심리적 접근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트럼프 효과처럼 실제로 그 맛을 보여 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김시웅은 빌헬름 라이히와 레닌을 좋아하는 좌파 사회 활동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