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아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그 후, 삶이 뒤틀렸다
박다솔, 윤지연 기자
“손자 때가 되면 회사가 대기업이 돼 있을 겁니다.” 그 말 한마디가 폭행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회사 영업부 직원 A 씨가 사주 일가인 정 모 박사에게 잘 보이고 싶어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회장 아들인 정 박사는 “왜 손자 때냐”며 격분했다. 그리고 주먹을 휘둘렀다. 2015년 10월 13일 새벽 3시. 끔찍한 폭행이 시작됐다.
A 씨가 바닥에 쓰러지자 정 박사는 배 위에 올라타 얼굴을 향해 주먹질을 했다. 170센티미터 초중반대 키에 평범한 체격인 A 씨는 속수무책으로 폭행을 당해야 했다. 그가 다니는 회사는 중견 의료 기기 제조 업체인 H사. 정 박사는 회사의 기술 개발 전체를 담당하는 CTO(최고 기술 경영자)로 임원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었다. 좁은 시장에서 나쁜 소문이라도 퍼지면 영업 직원의 생명은 끝날 게 뻔했다. 회사와 업계에서 실력을 행사하는 정 박사에게 반항하면 괘씸죄로 찍힐 수도 있었다. A 씨는 두 팔로 얼굴을 감싸고, 쏟아지는 주먹질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폭행을 잠시 멈춘 정 박사는 다용도실로 들어가 과도를 가지고 나왔다. 그러더니 제 분을 못 이겨 폭언과 협박을 퍼부으면서 과도로 자해를 했다. 자칫 흥분한 그를 자극했다가는 칼에 찔릴 수도 있었다. A 씨는 정 박사가 한눈을 판 사이 출입구를 향해 뛰었다.
A 씨는 왜 이런 폭행을 당했는지 황당할 뿐이었다. 6년간 몸담았던 회사였다. 게다가 그는 회사 내에서 정 박사 쪽 사람으로 분류되던 사람이었다. 폭행 전날 회식 자리에서 꺼냈던 말이 정 박사를 언짢게 했던 걸까. 하지만 A 씨는 괜한 말실수를 한 것 같아 정 박사에게 거듭 사과를 했고, 회식이 끝난 뒤에도 그를 찾아가 다시 사과했다. 다음날 새벽 2시, 정 박사의 업무 지시로 회사에 나가 새벽 3시까지 일을 했다. 그리고는 변을 당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더욱 악몽 같았던 새벽녘의 폭행 사건이었다.
※ 2015년 10월 13일 새벽, 사건의 재구성(취재 자료, 증언 참고)
회사 사주의 아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피해자는 그 회사에 근무하는 영업 사원. 이 갑을 관계로 인해 사건은 ‘단순 폭행’ 이상이 됐다. 갑의 폭력성은 폭행이 끝나고 난 뒤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하면 할수록 가해자라는 오명이 덧씌워졌다. 그래서 피해자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사건은 끝났다. 가해자 측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했다. 하지만 그 끝의 결과는 달랐다. 가해자는 제자리로 돌아갔고, 피해자는 돌아가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13일 이후 폭행 사건은 어떻게 뒤틀려 간 것일까.
10월 13일 새벽 폭행 사건 그 후
전치 3주의 폭행을 당한 A 씨는 그날 회사에 출근하지 못했다. 당일 저녁. 그는 회사 간부 이 모 상무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CCTV를 확인한 결과 정 박사가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A 씨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다음 날 오전. 이 상무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A 선생은 무고죄가 대부분 구속된다는 걸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또 다른 회사 간부 이 모 이사와도 통화를 했다. 그 역시 정 박사가 폭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 박사가 아버지(회장) 앞에서 울며 ‘당시를 명백하게 기억하지만 폭행은 없었다’고 했다는 것. 그러면서 이 이사는 A 씨에게 회사 노트북과 핸드폰, 법인 카드를 받으러 가겠다고 했다. A 씨도 회사 물품을 반납하겠노라 했다. 하지만 불안했다. 혹시 이 길로 해고를 당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래서 A 씨는 여러 차례 다짐해 뒀다. “저는 사직할 의사는 없거든요.” “제가 잘못한 게 없잖아요.” “저는 퇴사할 의사 없어요.” “출근해요. 치료 좀 받고요.” 이 이사의 대답은 모호했다. “아, 진짜?” “아, 다닐 거라고?”
(사진 – 회사간부 이 모 이사, 이 모 상무와 피해자 A 씨가 주고 받은 문자 )
정 박사는 폭행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A 씨가 만취 상태에서 택시를 타러 가다 길에서 혼자 넘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A 씨는 사건 발생 나흘 뒤인 10월 17일, 집 근처의 모 지역 노동조합 상담소를 찾았다. 상담을 마친 후 경찰에 정 박사를 고소했다. 회사에는 병가를 신청했다. 그날 오후, 이 이사에게 문자가 왔다. 그는 A 씨가 사직 의사를 번복하며 일관성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A 씨가 반박했다. 이미 여러 차례 사직 의사가 없다는 걸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느냐고.
이틀 뒤인 19일, 회사로부터 내용 증명 한 통이 날아왔다. 제목은 ‘자진 퇴사 처리 완료 안내문’. A 씨가 14일 이 이사에게 사직 의사를 밝혔고, 당일 대표 이사가 이를 처리했다는 내용이었다. 공문 마지막 항목엔 ‘A 씨가 반납한 회사 물품에서 자료가 모두 삭제된바, 추후 영업 비밀 유출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경고 문구가 포함돼 있었다.
일주일 뒤(26일) 회사는 서울 종로경찰서에 A 씨를 고소했다. 혐의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재물 손괴, 업무 방해. A 씨는 해고자가 됐고, 피해자에서 피의자 신분이 됐다.
“제가 폭행 사건에 연루돼 본 적이 없어서 사건 직후 신고하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됩니다. 사람을 때리고도 사과도 없이 재산과 지위를 이용해 오히려 피해자를 죄인으로 만들려는 행태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이렇게 탄원하게 됐습니다.” (10월 27일. A 씨가 검사에게 보낸 탄원서 중)
(사진- 피해자 A 씨가 검사에게 보낸 탄원서)
폭행을 당한 뒤 해고됐다. 그리고
정 씨가 폭행했느냐. A 씨가 영업 비밀을 유출했느냐. 이 두 고소 사건은 경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A 씨의 해고 사건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서 다뤄졌다. 그는 10월 29일, 지노위에 부당 해고 구제 신청서를 제출했다.
해고 사건의 쟁점은 A 씨가 사직 의사를 밝혔는지, 아니면 해고였는지, 해고라면 정당한 절차를 거쳤는지 여부였다. 회사는 A 씨가 사건 다음 날, 인사 담당인 이 이사에게 전화로 사직 의사를 밝혔다고 주장했다. 사직 의사는 철회할 수 없음에도 A 씨가 고소 사건과 결부시켜 부당 해고라는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지노위의 판단은 달랐다. 지노위는 회사가 A 씨의 사직 의사를 증명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14일 대표 이사가 사직 처리를 결제했다는 것 역시, 처리 과정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했다. 회사가 A 씨의 사직서를 받은 사실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고, 사직서 제출을 요구하지 않았던 점 등도 판단 근거가 됐다. 지노위는 이 사건을 노동자의 의사에 반해 이뤄진 해고라고 봤다. 해고 절차도 A 씨에게 해고 사유와 해고 일시를 서면으로 통보하지 않았기에 부당 해고라고 판정했다.
“이 사건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행한 해고는 부당 해고임을 인정한다. 사용자는 이 판정서를 송달받는 날부터 30일 이내에 이 사건 근로자를 원직에 복직시키고 해고 기간 정상적으로 근무했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라” (2015년 12월 24일, 지노위 판정문)
폭행과 영업 비밀 유출 사건에 대한 경찰의 판단은 어땠을까. 우선 폭행 사건과 관련해 경찰과 검찰은 가해자가 A 씨를 일방적으로 폭행한 사실을 인정했다. 12월 23일 검찰은 가해자 정 씨에게 벌금 300만 원의 약식 처분을 내렸다.
반면 A 씨의 영업 비밀 유출 건은 무혐의 처분이 났다. 종로경찰서는 11월 13일 회사 측 고소 사건을 혐의 없음(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리고 검찰은 12월 8일 이 사건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제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해졌다. 경찰과 검찰, 지노위까지 피해자 A 씨의 손을 들어 줬다. 하지만 사건의 끝은 명쾌해지지 않았다. 판결은 다만 활자로만 남았을 뿐, 피해자의 일상까지 구제하지는 못했다.
사라진 피해자, 남은 가해자
어느 순간, 이 사건에서 피해자가 사라졌다. A 씨는 입을 다물었다. 오히려 당당하게 입을 연 것은 회사였다. 회사 측은 “당사자 간에 원만한 합의가 이뤄져 없었던 일로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A 씨가 복직한 뒤 며칠 되지 않아 스스로 사직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노위 부당 해고 판정에 따르면 A 씨는 회사로 복직해야 했다. 하지만 지노위 판정 일주일 후 회사는 A 씨에게 또다시 공문을 보냈다. 제목은 ‘징계위원회 출석 통지서’. 징계위 개최 이유는 회사 물품에 저장된 자료를 삭제해 영업상 피해를 주었다는 것. 이미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건이었다. 또한 회사는 A 씨가 회사와 회사 임원에 대한 근거 없는 험담으로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했다.
사건 직후 A 씨에게 ‘무고죄는 구속감’이라고 말했던 이 모 상무가 징계 위원으로 포함됐다. A 씨가 사직 의사를 번복했다고 주장한 이 모 이사도 징계 위원이었다. A 씨는 결국 징계위원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회사와 합의가 이뤄졌다. ‘부당 해고’는 ‘퇴사’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옷을 갈아입었다.
반면 폭행 가해자인 정 씨에 대한 징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건을 담당한 금천경찰서 형사과 최 모 팀장에 따르면 이 사건은 정 씨의 일방 폭행으로 결론 났다. 하지만 정 씨는 끝까지 폭행 사실을 부인했다. 회사 측 이 모 이사는 굳이 감출 것이 없다고 했다. 이미 원만하게 합의를 했기 때문에. 이 이사는 “하지만 지금도 (폭행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건 당시) 언쟁이 있었지만 화해를 했다. 회사에서 나가는 모습이 찍힌 CCTV를 경찰에 제출했을 것 아니냐. 그걸 보면 둘이 어깨동무도 하고 빠이빠이 하는 모습도 찍혔다”고 설명했다.
담당 형사는 CCTV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 이사에게 해당 장면이 찍힌 CCTV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그럴 의무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현재 가해자 정 씨는 판결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해 놓은 상태다. 회사 법무팀 최 모 씨는 “정 박사가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 중”이라며 “현재 공판이 진행 중이니 결과를 보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회사 측은 시종일관 당당했다.
취재팀은 취재 과정에서 지난 2010년 발생한 ‘맷값 폭행’ 피해자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당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 동생인 최철원 SK M&M 대표는 탱크로리 기사 유 모 씨를 야구 방망이로 구타해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히고, 2천만 원의 맷값을 건넨 바 있다.
유 씨는 화물연대 소속으로 노조 위원장을 지낸 인물이었다. 하지만 화물연대 측은 현재 유 씨와 전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유 씨가 활동했던 울산 지역을 수소문해 봤지만 대답은 같았다. 회사 측과 합의 이후, 유 씨가 노조를 탈퇴했으며 현재 누구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건 후 법원은 최철원 대표에게 집행 유예를 선고했고, 검찰은 피해자 유 씨를 업무 방해 및 일반 교통 방해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취재팀은 이번 H사 폭행 사건 피해자 A 씨에게도 여러 경로로 접촉을 시도했지만, 끝내 연락을 거부했다. 시간이 흘러도 결과는 똑같았다. 피해자는 사라지고 가해자는 남았다. 어느 것 하나 잃어버린 것 없이. 불평등한 관계에서 시작된 폭력은 마지막까지 불평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