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의 모든 단계가 문제다
반핵세계사회포럼에서 만난 세계의 반핵운동
김현우(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 사진제공 김현우
지난 3월 23일부터 28일까지, 일본 후쿠시마 현과 도쿄 시내에서는 2016년 반핵아시아포럼과 반핵세계사회포럼이 함께 열렸다. 반핵아시아포럼은 한국의 고(故) 김원식 선생의 제안으로 1993년부터 매년 열리는 유서 깊은 행사가 되었고, 반핵세계사회포럼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5년 3월 튀니지아의 세계사회포럼에 모인 활동가들이 반핵운동을 주제로 세계 대회를 따로 열어 보자고 논의를 시작하여 연말의 파리 기후변화총회에서 올해 3월 일본으로 개최지를 정했다.
일본이 개최지가 된 것은 3.11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5년이 되는 때라는 점에서 자연스러웠고,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30년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 세계 대회 개최도 적절했다. 처음 사흘은 후쿠시마 현 이와키 시에서 세미나, 쓰나미 사고 현장 방문, 교류 행사 등 반핵아시아포럼의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나머지 사흘은 도쿄의 한국YMCA 건물에서 반핵세계사회포럼의 일정이 이어졌다.
두 행사에는 일본과 한국은 물론, 인도, 터키, 대만, 필리핀, 홍콩, 프랑스, 우크라이나, 캐나다, 브라질 등에서 200명이 넘는 반핵 활동가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3월 26일 요요기 공원의 탈핵의 날(No Nukes Day) 집회에서 일본 시민들을 만났고, 각국의 상황과 반핵운동 전략에 관한 진지한 고민을 나누었다. 한국에서도 나를 포함해 여섯 명의 에너지 및 탈핵 활동가들이 전 프로그램을 함께했다. 이번 행사에서 파악된 세계 반핵운동의 주요 이슈와 동향을 간단히 전한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타격을 입었던 주요 핵발전 국가의 핵 산업계는 새롭고 안전한 신형 원자로를 내걸고 잠재적 핵발전 수입국들을 각개 공략하고 있다. 파리 기후변화총회 결과로 화석 연료 산업의 전망이 밝지 않다는 논리를 활용하려 하지만, 핵발전의 위험성과 높아진 건설 및 폐기 비용은 걸림돌이다. 핵발전 수입에 관심을 갖는 나라는 기존에 소수 핵발전소를 운영하던 아시아 개도국과 중동 일부 나라들에 제한되어 있는 게 사실인데, 이들 나라에 각종 떡고물을 던지며 로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한국 정부와 한국전력도 주요하게 포함된다. 때문에 핵발전 수출국과 수입국 사이의 양해 각서 체결이 줄을 잇고, 다른 한편에서는 핵발전소 건설 반대 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도 남부 바닷가 쿠단쿨람에 지어지고 있는 핵발전소 가동에 반대하며 단식과 연행을 불사하고 있는 어민과 여성들의 투쟁이다. 쿠단쿨람은 2004년 수마트라 지진 때 쓰나미가 덮쳤던 곳으로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소 반대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지만, 2011년 7월에 1호기의 시운전이 강행됐다. 필리핀에서도 마르코스 정부 시절 건설하다가 정치 부패와 단층 위험 등을 이유로 가동되지 않은 바탄 핵발전소 활용이나 신규 핵발전소 건설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터키에서는 흑해 연안 시놉의 신규 핵발전소 저지 운동이 시민의 참여 속에 강도 높게 펼쳐지고 있다. 대만은 핵발전소 건설 중단을 공약으로 내건 민진당의 선거 승리로 탈핵운동의 기세가 한껏 높아진 분위기다. 한국의 투쟁 사례로 영덕에서 이루어진 주민 투표, 밀양의 송전탑 반대 투쟁이 소개되었다. 일본은 아베 정부의 핵발전소 재가동 정책과 후쿠시마 현 일부에 대한 일방적인 피난 구역 해제 방침이 쟁점이 되고 있다.
핵발전은 우라늄 채굴부터 발전소 건설, 발전과 운영, 핵폐기물 처분 또는 재처리, 폐로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사이클을 이루고 있는데, 이 고리의 모든 지점마다 문제가 발생하고 투쟁을 불러온다. 핵발전소가 가동 중인 모든 나라에 공통적인 것이지만, 프랑스와 캐나다 같은 오래된 핵발전 국가들은 핵폐기물 처분 문제가 더욱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노후 핵발전소의 폐로와 재생 에너지 확충을 통한 에너지 전환도 많은 논점을 안고 있고 더 많은 운동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얼마 전 프랑스의 올랑드 정부는 독일 국경에 인접한 가장 오래된 핵발전소 페센하임 핵발전소의 가동 중단과 폐쇄 방침을 분명히 했지만, 핵발전소 노동자 다수를 조합원으로 두고 있는 프랑스 노동총연맹(CGT)은 지역 일자리와 산업 보호를 이유로 폐쇄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
반핵세계사회포럼의 워크숍 중 하나는 핵발전 산업의 피폭 노동을 주제로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러 나라의 핵발전소 노동자들이 외주화와 하청 구조로 인해 안전을 위협받고 낮은 처우와 노동조합 활동의 곤란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이 워크숍이 끝날 무렵 청중석에서 한 질문이 나왔다. 핵발전소 노동자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안전을 염려하지만 핵발전소에서 이뤄지는 노동은 결국 기존 핵발전의 존재를 용인하는 것이 아닌가, 탈핵과 탈핵발전 노동까지 이야기할 수 없는가라는 다소 민감한 이야기였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개인 노동자와 개별 노동조합이 아니라 더 넓은 노동운동, 더 넓은 탈핵운동이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각국 참가자들의 열기, 다루어진 주제들, 탈핵 집회에 모인 3만 5천 명의 시민들, 현장에 밀착해 펼쳐지는 탈핵운동과 후쿠시마 연대 활동 경험 모두 값진 것이었고, 더 많이 보고 더 깊이 이야기 나눌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었다. 내년 반핵아시아포럼과 세계사회포럼에는 더 많은 한국 활동가들이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워커스 5호(2016.4.13)>
- 김현우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 연구원으로 에너지 전환, 도시 정치, 대중 교통, 거버넌스의 민주화 등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