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적인 미모의 탈북 여성’ 이미지만 만드는 종편
신나리 기자/ 사진 임태훈
“착하고 귀엽고, 남한 여성에게는 볼 수 없죠”
방 청소로 하루를 시작하는 새댁의 모습이 그려진다. 부지런히 아침밥을 준비하는 아내와 식탁에 앉아 가만히 기다리는 남편. 아내에게 이것저것 주문하는 남편은 이제 막 새신랑이 된 다른 출연자에게 “아니 이런 것도 못 시키면 장가를 뭐하러 가? 머슴 하려고 가?”라고 묻는다. 또 다른 출연자는 아내의 첫인상에 대해 “착했어요. 착하고 귀엽고 남한 여성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소녀 같은, 어린아이 같은 미소”라고 했다.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 남편의 수발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아내. 어리고 예쁜 데다 순종적인 아내.
TV 조선의 〈애정통일 남남북녀〉를 통해 반복되는 탈북 여성의 이미지다. 이 프로그램은 남측 노총각과 북측 꽃미녀의 가상 결혼 생활을 통해 통일이라는 남과 북의 만남의 의미를 담는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지만, 북한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일방적으로 주입할 뿐이다. 가상 결혼의 남편 역할을 맡은 40대 연예인‧방송인과 20대 탈북 여성의 결혼 생활로 탈북 여성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2011년 시작한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 역시 예쁜 탈북 여성에 집착한다. 이 프로그램은 출연하는 탈북 여성들을 ‘탈북 미녀’라고 강조하며 이들을 소개한다. 방송에 처음 출연한 ‘탈북 미녀’가 사회자의 질문에 수줍어하며 당황하자 사회자는 “이런 것 좀 배워요. 되게 여성스럽지 않아요?”라며 탈북 여성의 순수성을 추켜세운다. 동시에 자막을 통해 ‘남자의 가슴을 울리는 여성미’라고 강조했다. 이날 방송에 대해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실제 그녀들이 어떤 사람인지보다는 남한 사람들의 고정 관념 속 ‘북한 여성’을 보여 주는 데만 관심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미디어가 북한 여성에 대한 환상과 이미지를 조장한 것은 오래된 일이다. 1987년 벌어진 KAL기 폭파사건의 범인인 김현희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마유미라는 이국적인 일본 이름으로 불리는 동시에 타고난 미모와 순수하고 지적인 성품을 지닌 아름다운 여성으로 포장됐다. 북한 정권의 사주를 받아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지른 피해자처럼 비치기도 했다. 굵직한 범죄 사건이 아니어도 한국의 미디어는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경기에 등장하는 북한 응원단을 통해 북한 여성이 자연스러움과 단아함, 부드러운 여성미를 지녔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간간이 드러나던 북한 여성에 대한 이미지 주입은 2011년 종합 편성 방송 채널(종편)의 출범과 함께 늘어났다. 종편에서 탈북자 출연 프로그램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특징도 뚜렷하다. 종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들은 20~30대 젊은 탈북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종편의 가상 결혼이나 토크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어리고 예쁜 탈북 여성을 두고 이들이 얼마나 순진하고 생활력이 강하며 남성에게 순종적인지를 보여 준다. 문제는 방송이 만들어 낸 이미지가 탈북 여성에게 그대로 적용된다는 데 있다.
“뭘 알기나 해? 내 말이나 들어”
2013년 딸의 도움으로 탈북한 이미연(가명) 씨. 그녀는 북한에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대학을 다니며 사업에 대한 꿈을 키워 가는 딸과 달리 그녀는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믿을 만한 사람, 마음을 함께할 사람을 찾게 됐다. 미연 씨는 탈북 여성을 중매하는 결혼 정보 회사에 가입했다. 이곳에서 김태성(가명) 씨를 만났다. 그는 탈북 여성과 결혼해야겠다는 다짐으로 미연 씨가 가입한 결혼 정보 회사를 찾았다. 그가 탈북 여성과의 결혼을 꿈꾸게 된 건 바로 종편의 프로그램에 나온 탈북 여성들을 보고 나서다. 무엇보다 생활력이 강한 이들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남편에게 순종하고 따르는 모습도 그를 만족하게 했다. 그렇게 둘은 5개월째 함께 살고 있다.
일방적 이미지에 끌려 시작된 만남이 순탄하기는 쉽지 않다. 미연 씨는 사사건건 가르치려는 남편에게 속상해했다. 남편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이 “네가 이걸 알아?”, “가만히 있어 봐. 뭘 안다고 나서”, “이런 문화 잘 모르지?”다. 그녀의 유일한 위로는 따로 떨어져 사는 딸과의 전화 통화다. 당연하다는 듯 일상에서 벌어지는 남편의 무시가 서러워 딸에게 울며 전화를 하지만, 다르게 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참고 견딜 뿐이다.
방송뿐만이 아니다. 결혼 정보 업체 역시 미디어가 만들어 낸 탈북 여성 이미지를 극대화해 광고한다. 한 웹 사이트에는 “30대부터 70세까지 노총각, 재혼, 사별하신 분들 탈북 여성분과 맞선 주선합니다”라고 홍보물 사진이 올라왔다. 이곳은 “국제 결혼 소개 비용이 최소 1500만 원인데 비해 탈북 여성과의 소개 비용은 300만 원에 불과하다”며 탈북 여성과의 만남을 권유했다. 또 “탈북 여성은 ‘주민등록번호가 있는 국내인 신분’, ‘자연스럽게 말이 통함’, ‘다문화 가정 아닌 순수 혈통 가정’, ‘처가에 지참금을 보내거나 생활비를 송금할 의무 없음’, ‘입국 날 신부 행방불명 위험 없음’ 등의 장점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이미지 때문인지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탈북 여성을 검색하면 ‘탈북 여성과의 결혼’이 연관 검색어로 뜬다. 인터넷 게시판엔 탈북 여성과의 결혼에 조언을 달라는 글도 여럿이다. 30대 중반이라는 한 남성은 탈북 여성과 결혼하고 싶다는 고민 글을 남겼다. 한국 여자와 달리 시부모를 모시고 집안일을 잘하고, 남편 말을 잘 듣는 북한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베트남 신부와 탈북 여성을 고민하다 말이 통하는 탈북 여성 쪽이 더 낫지 않겠냐는 질문도 있다. 수요가 있으니 해당 업체도 늘어 간다. 2006년 한두 곳에 불과했던 탈북 여성 전문 결혼 중개 업체는 최근 10여 곳 이상 성업하며 탈북 여성을 광고한다.
자신도 탈북을 하고 탈북자를 위한 상담을 하는 A 씨는 자신에게 직접 북한 여성과의 중매를 부탁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탈북 여성들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며 나보고 아는 사람은 없냐고 묻더라. 모른다고 해도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있을 테니 연락처를 알아봐 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들은 대부분 방송이 만든 이미지에만 관심을 가졌다. 탈북 여성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나 이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어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소개해 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여성스럽거나 순종적이지 않다”
서로에 대한 이해보다 방송, 광고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만 쫓는 결혼은 오래가지 못한다. 서울시가 2009년 발표한 ‘북한 이탈 주민 여성 실태 조사 및 지원 정책안 연구’에 따르면 탈북 여성의 결혼 지속 기간은 5년 미만이 31.1%로 가장 많았다. 5년 이상 10년 미만은 17.4%, 30년 미만이 11.1%였다. 이혼하거나 별거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성격 차이’가 30.8%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그다음으로 ‘경제적 부양 의무 부족’ 20.5%, ‘학대와 폭력’ 14.1%가 뒤를 이었다.
탈북 여성들 역시 미디어가 일방적으로 만들어 내는 탈북 여성 이미지를 불편해한다. 실제 한 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의를 받았다는 B 씨는 “평양에서 함께 활동했던 사람이 그 프로그램에 나온다. 그 사람이 나를 추천한 거 같더라”라며 “예쁜 여자만 골라 방송에 출연시키고 탈북 여성들을 너무 일방적으로 그려서 출연을 거절했다. 토크쇼에서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다 거짓말처럼 보인다. 그런 프로그램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대 중반의 탈북 여성 C 씨 역시 탈북 여성이 그려진 TV 프로그램을 보고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C 씨는 “나는 여성스럽거나 순종적인 스타일이 아니다. 이곳까지 넘어온 사람이라면 얼마나 독해야 살아남는지 아느냐. 온갖 일을 다 겪고 악만 남은 사람들”이라며 “하지만 TV는 남자에게 져 주고 말 잘 듣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이런 이미지 때문에 ‘북한 여자는 그렇다며?’ 하고 접근하는 남자들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미디어가 앞장서 탈북 여성 각 개인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북한 여성’이라는 타이틀 안에 이미지를 주입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년간 탈북 여성을 상담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지금 TV 프로그램들은 너무 여성에게만 한정돼 있다. 어리고 예쁜 여성들에게 모든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하지만 탈북자를 다각도로 이해하려면 다양한 사람의 일대기를 추적하고 이들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 그려 나가야 한다”며 “이들이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나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미디어부터 올바르게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수경 무지개청소년센터 남북통합지원팀장 역시 “모르는 사람은 재밌게 볼 수도 있지만 탈북 여성을 상품화하는 경우가 많다. 선정적이고 외모가 뛰어난 탈북 미녀들에게 충실한 프로그램이다. 이는 탈북 여성과 탈북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또 하나의 편견만 조장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워커스 6호. 2016.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