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훈 기자
의료 영리화와 대학 부속 병원
성균관대는 삼성이 소유한 대학이라는 후광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 왔다. 특히 그 중심에는 의과대학이 있었다. 삼성이 성균관대 운영에 참여하고 막대한 투자를 하는 이유가 의과대학 양성이라는 사실은 삼성의 성균관대 운영 참여가 결정된 시점부터 공공연하게 알려졌다. 국내 ‘빅 5’라는 삼성서울병원을 교육 기관으로 하는 성균관대 의과대학은 수험생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삼성은 성균관대 의대 출신의 우수한 인력을 삼성병원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동시에 의료업계의 후발 주자라는 약점을 의과대학 교수직이라는 매력으로 보완했다. 카르텔이 공고한 의학계에서 교수 직책 보장은 병원의 위상을 평가할 때 작지 않은 상승 요인이다.
그러나 성균관 의대가 설립된 1997년부터 지난 2010년까지 성균관대에는 부속 병원이 없었다. ‘빅 5’ 종합 병원이라는 서울 강남의 삼성서울병원은 지금도 성균관대의 ‘협력 병원’일 뿐이고 실소유는 삼성 그룹의 후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삼성생명 공익 재단’이다.
의과대학 설립을 위해서는 “기준을 충족하는 부속 병원을 직접 갖추거나 그 기준을 충족하는 병원에 위탁하여 교육에 지장이 없이 실습하도록”(대학 설립 운영 규정 4조 3항) 규정한다. 성균관대 역시 의대 설립 인가를 받을 때 삼성서울병원을 부속 병원으로 하겠다는 부대 조건을 걸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록 성균관대가 부속 병원을 지정하지 않고 새로 지을 계획조차 보이지 않자 교육부는 2007년 말, 성균관 의대의 정원을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성균관대는 2010년, 뒤늦게 부랴부랴 부속 병원을 지정했다. 삼성병원의 지방 브랜치 병원인 경남 창원의 삼성창원병원이다. 삼성창원병원은 삼성서울병원의 3분의 1규모인 700병상 규모의 2차 의료기관으로 상급 종합 병원이 아니다.
삼성과 성균관대
삼성이 성균관대 운영에 참여한 건 1996년이다. 성균관대를 운영하던 봉명 재단이 모기업 부도로 재단에서 철수한 이후다. 관선 이사가 들어선 성균관대는 삼성 측에 재단에 참여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삼성 측으로서도 성균관대와 관계를 맺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삼성은 1990년대 초반 강남과 강북에 삼성 병원을 개원하고 본격적으로 의료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충남 유성에 의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교육부에 제출했다. 의대 설립으로 병원의 위상을 높이고 의사 수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교육부는 대학이 아닌 사기업의 의대 신설에 부정적이었고 불허 결정을 내렸다. 자체적인 의대 설립이 어려워진 삼성은 의대 설립 인가를 목적으로 성균관대 재단 참여를 선택했다. 1996년 12월, 성균관대 정범진 총장은 교육부로부터 삼성병원을 교육 병원으로 하는 의대 설립 인가를 받아 낸다. 이를 위해 이인제 당시 경기도지사가 정부에 추천서를 냈고 전국의 유림도 탄원서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동원됐다. 각고의 노력 끝에 성균관 의대 설립 인가가 떨어진 날, 삼성은 성균관대 재단 참여 의사를 공식 발표 했다.
그러나 삼성의 성균관대 경영 참여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전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삼성은 별도의 재단을 설립하거나 학교 법인을 인수하는 형태 대신 삼성의 인사 몇몇이 법인 이사회에 참여하는 형태로 학교 운영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학교 법인 성균관대’는 그대로 유지됐다. 그러나 성균관대 법인 이사회에는 삼성 계열사의 현직 사장과 삼성전자의 현직 임원이 들어왔다. 법인 사무국을 책임지는 상임 이사는 삼성전자 전무고 사무국 직원도 삼성전자 상무다. 회사 차원의 삼성이 학교 운영에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는 않으면서 실질적인 주도권은 잡고 있는 셈이다.
부속 병원만은 피하라
성균관대는 삼성의료원 중 한 곳을 성균관 의대의 부속 병원으로 전환하겠다는 조건으로 의대 설립 허가를 받았지만, 성균관대엔 2010년까지 부속 병원이 없었다. 삼성서울병원의 부속 병원 지정은커녕 새로운 부속 병원 건립도 논의되지 않았다. 삼성서울병원은 성균관 의대의 ‘협력 병원’이라는 느슨한 관계로 성균관 의대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했다. 타 대학 출신으로 삼성서울병원에 채용된 의사들에게는 성균관대 ‘임상 교원’이라는 이름으로 교수 직책을 부여했다. 결국 교육부는 2007년, 설립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매년 정원을 10%씩 감축하고 2010년까지 이행하지 않으면 폐과하겠다는 으름장을 놨다. 더구나 2007년에는 감사원 조사에서 삼성서울병원이 협력 병원의 의사는 의대 교원을 겸직할 수 없다는 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불법 지위의 교원들에게 사학 연금, 퇴직 수당, 건강보험료 등의 국고 보조금이 유입되고 있었단 점도 적발됐다. 감사원과 교육부는 삼성에 그동안 부당하게 취득한 국고 보조금을 환수하라고 지시했다. 성균관 의대의 설립 허가가 취소되고 수백억 원의 돈도 지출해야 하는 삼성으로선 협력 병원을 부속 병원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될 순간이었다. 삼성서울병원이나 강북삼성병원을 부속 병원으로 전환하면 의대 설립인가 문제는 물론 교원 겸직 문제, 국고 보조금 부당 취득 문제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삼성과 성균관대의 선택은 달랐다.
삼성은 2010년, 창원의 삼성창원병원을 무상으로 성균관대 법인에 양도한다. 동시에 200병상 규모의 작은 지역 병원이었던 삼성창원병원에 318병상을 추가로 확장했다. 의대 설립 인가 기준이 500병상의 부속 병원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부속병원을 창원에 만들었지만, 여전히 성균관 의대생들은 삼성서울병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현재 성균관 의대에 재학 중인 한 의대생은 “아주 짧은 시간 창원에 다녀올 뿐 4년 내내 실습은 삼성서울병원에서 받는다”고 밝혔다. 삼성은 성균관대에 무상으로 병원을 양도하고 추가로 돈을 들여 병원을 증축하며 부속 병원의 지위를 얻었지만 정작 부속 병원의 역할은 하지 못하는 셈이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창원병원이 부속 병원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2013년부터 대대적인 설비 투자를 하고 있으며 조만간 창원병원도 3차 의료 기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수원에 있는 성균관 의대 학생들의 교육 기관으로 창원의 병원은 부적절하지 않으냐는 질문엔 “울산대를 비롯한 다른 의대의 학생들도 협력 병원 중에 가장 큰 병원에서 실습한다”면서 “중요한 것은 부속 병원이 어디 있느냐가 아니라 어느 병원에서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느냐를 따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원 겸직 문제는 교과부가 알아서 해결해 줬다. 협력 병원의 의사들이 의대 교원을 겸직하는 일은 불법이니 부당 취득한 국고 보조금을 내놓으라던 교과부는 2011년 돌연 입장을 바꿔 사립 의대 교원이 협력 병원에서 겸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시민 단체들은 물론 감사원에서조차 교과부의 태도 변화를 비판하고 나섰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도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는 협력 병원이 교육 병원으로 역할을 수행을 하려면 부속 병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교과부가 내놓은 답변은 “세계적 흐름과 국공립 의대와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결정”이라는 삼성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했다.
이재용의 삼성, 의료 영리화를 대비하라
삼성이 무리하면서 애초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협력 병원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보통은 부속 병원의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데 어떻게든 부속 병원을 피해 가려는 삼성의 태도가 상식적이진 않다”고 평했다. 더구나 삼성 의료원은 1990년대에 들어서야 출발한 후발 주자다. 우석균 정책위원장은 삼성의료원의 위상에 대해 “규모 면에서는 수위를 다투지만, 아직 서울대병원이나 아산병원에 비해 병원으로서의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학벌 카르텔이 공고한 의사 사회에서 안정적인 교수 직위 보장이 가능한 부속 병원을 꺼릴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삼성은 왜 부속 병원을 꺼리는 걸까?
부속 병원은 대학에 소속된 기관을 의미한다. 부속 병원의 회계 역시 학교의 교비 회계에 종속된다. 학교 법인에 소속된 교육 기관이기 때문에 의대, 간호대생의 교육과 교수들의 연구, 전공의 수련을 목적으로 한다. 반면 협력 병원은 근본적으로 대학과 느슨한 관계를 유지한다. 대학이 교육을 위해 외부 병원과 협력 협약을 맺으면 그 외부 병원을 교육 협력 병원, 협력 병원이라고 부른다. 삼성서울병원은 성균관대의 협력 병원이고 인천의 길병원, 서울아산병원 등도 부속 병원이 아닌 협력 병원이다. 협력 병원은 대학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협력 협약이 끝나면 대학과는 완전히 ‘남남’이 된다. 교육 기관이 아닌 병원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는 것이다. 삼성의 ‘상식적이지 않은 태도’는 여기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학강사교원지원회복과대학교육정상화투쟁본부는 삼성과 성균관대를 비롯해 현대와 울산대 등 재벌 소유의 의대 협력병원들이 부속병원으로의 전환을 피하는 이유가 “부속 병원이 되면 의료 영리화가 허용된 이후 영리 병원으로 전환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부속 병원은 대학 법인에 소속된 기관이기 때문에 향후 영리 병원 설립이 허용되더라도 영리 병원으로의 전환할 수 없지만 대학 법인과 직접 관계가 없는 협력 병원은 영리 병원으로의 전환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삼성은 의료 영리화를 대비하는 데 상당한 역량을 쏟고 있어 이 같은 주장에 신빙성을 더한다. 현재는 의료법상 모든 병원이 영리의 목적을 취할 수 없지만, 본격적으로 의료 영리화가 시행되면 거의 모든 의료 행위가 이뤄지는 병원, 특히 영리 목적의 병원은 의료 산업에서 발생하는 수익 모델의 총체가 된다.
삼성이 여러 방면에서 추진하고 있는 HT(Health Technology) 산업은 질병 치료라는 협의의 의료를 건강 관리라는 광의의 개념으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따라 의료는 원격 의료와 보험, 돌봄, 요양, 예방 의학, 식생활, 사회적 질병까지 그 범위를 넓히게 된다. 이런 광의의 의료 행위가 이뤄지는 병원은 지금의 입원과 치료, 수술 등의 수입 외에 막대한 수익 창출이 가능한 ‘노다지’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10년에 내놓은 <보건 의료 산업 선진화 방안 연구 보고서>는 “국내 의료 서비스 시장은 병원 중심의 대형화 방향으로 구조가 변화 중”이며 “대형 병원을 육성하거나 특정 치료와 진단 영역에 특화된 병원을 지원해 병원 경영 성과를 제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의료 영리화가 실현되면 대형화된 병원을 중심으로 원격 의료와 신약의 제조와 판매, 임상 시험, 첨단 의료 기기의 사용과 판매가 모두 이뤄지게 된다. 이 보고서의 ‘HT 산업 영역 구분표’에서도 HT 산업이 병원을 중심으로 하는 의료 서비스에 방점을 찍고 있음이 드러난다. 의료 정보 시스템 사업과 의료 보험은 물론 농식품과 의료 기기, 의료 용품도 의료 서비스 산업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2012년 의료 기기 사업 부서를 신설하면서 HT 분야에 본격 진출한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5대 신수종 사업 중 하나로 HT 분야인 바이오제약과 의료 기기에 약 3조 3000억 원을 투자하고 있다. 이재용 체제로 재편된 삼성이 신수종 주력 사업인 HT 산업에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영리 병원, 특히 국내에서 가장 많은 환자가 몰리는 대형 영리 병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익명의 삼성 관계자는 “의료 영리화를 대비하기 위해 삼성서울병원을 협력 병원으로 유지한다는 것은 억측”이라면서도 “삼성이 HT 분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더 광범위하고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그룹 내에서 ‘해결사’로 통하는 전동수 전 삼성 SDS 사장을 삼성전자 의료사업부장으로 임명하는 등 기업 내부의 역량을 의료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의 실탄 주머니
삼성 입장에선 자산 규모가 1조에 달하는 삼성서울병원을 내주는 게 마뜩치 않은 일이다. 삼성은 부속 병원 설립을 위해 성균관 의대에 삼성창원병원을 무상으로 양도했다. 삼성서울병원을 부속 병원으로 삼으면 연 매출이 1조가 넘고 순자산도 1조에 달하는 병원을 포기하게 되는 셈이다. 더구나 삼성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는 있지만 비교적 느슨한 지배 구조인 성균관대 법인에 비해 이재용 부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삼성생명 공익 재단의 소유로 삼성병원이 있는 것이 시시각각 변하는 정세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쉽다.
삼성서울병원을 소유하고 있는 삼성생명 공익 재단이 삼성 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도 삼성이 삼성서울병원을 쉽게 놓지 못하는 이유로 볼 수 있다. 삼성생명 공익 재단은 후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실탄 주머니’다. 공익 재단은 계열사 주식 5%까지 상속 증여세를 면제받고, 성실 공익 재단으로 지정되면 10%까지도 면제받는다. 삼성은 이런 점을 이용해 과거 이병철 회장에게서 이건희 회장으로 경영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삼성문화재단 등 공익 재단을 상속세 회피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재용 부회장도 아버지가 사용한 방법을 그대로 사용했다. 삼성생명 공익 재단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매부인 이종기 전 삼성화재 회장이 가졌던 삼성생명 주식 전량인 936만 주, 지분 4.7%를 기부받았다. ‘이 회장의 차명 주식’ 의혹까지 있던 이 주식 중 500만 주가 2014년 6월 매각돼 5000억 원이 생겼고, 이 돈은 삼성 그룹 지배 구조의 정점인 삼성물산 지분을 매입하는 데 쓰였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2년이 넘도록 승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으로서 언제든 실탄 주머니가 돼 줄 수 있는 삼성생명 공익 재단의 자산 규모 축소가 반가울 리 없다.(워커스 8호 2016년 5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