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선, 홍우주를 듣다
단편선 / 사이키델리 포크록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의 보컬이자 프로듀서다. 포크 음악의 전형을 파괴하며 늘 새로운 사운드를 추구한다
음악계 혹은 문화예술계에서, 일차적으로 주목을 받는 것은 아무래도 작품을 직접 생산하는 창작자들이겠으나, 실제로 이를 움직이는 데는 수많은 이들과 상황, 요소들이 개입한다. 또한 반대로 창작자들이 작품을 생산하는 과정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단순하게 예를 들자면, 음반이 300만 장 팔리던 시기의 음악과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한 시기의 음악은 그 규모에서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홍대 앞에서 시작해서 우주로 나아가는 문화 예술 사회적 협동조합(홍우주)’는 홍대 앞 문화 예술 관련 단체 중 가장 최근에 시작한 단체다. 홍대 앞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서교예술실험센터가 폐관 위기에 몰렸을 때, 함께 힘을 모은 지역 문화 예술 단체들의 협의체 형식으로 준비를 시작해 ‘사회적 협동조합’이라는 모델로 진화했다. 홍우주의 정문식 이사장과 나동혁, 유병주 상근자를 만나 홍우주의 시작과 지금, 앞으로에 대해 들었다.
단편선 문식 씨는 홍우주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함께하셨죠?
정문식 서교예술실험센터가 폐관될 위기에 몰리면서, 시장 측에서 먼저 ‘홍대 앞 문화 예술계를 대표할 만한 협의체가 있다면 서울시와 채널을 만들어서 여러 논의를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다’ 제안했어요.
단편선 사회적 협동조합이란 모델은 일반인에겐 생소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정문식 사회적 협동조합이란 형태가 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어요. 운영을 하며 이익(benefit)이 발생하면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는 경우가 잦은데, 그렇게 발생하는 이익을 최대한 공익적으로 돌린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으면 이해관계를 떠나 운영하기 수월해지거든요. 사회적 협동조합은 원칙적으로 이익의 40% 이상을 공익적인 목적으로 활용해야만 인가가 나요. 또 이익이 생겨도 조합원들에게 배당이 안 돼요. 협동조합을 흔히 결사체(association)와 사업체(company)의 결합이라 표현하곤 하죠. 사회적 협동조합의 모델은 유럽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쉽게 얘기하면 2차적 협동조합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아요. 협동조합의 협동조합. 큰 단위에서의 연합체인 거죠.
단편선 어쨌건 중요한 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가’잖아요. 저는 홍우주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궁금해요.
정문식 나는 홍대 앞에서, 이 지역 문화 예술의 자치권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생각해요.
단편선 문화 예술에서의 자치란 어떤 개념일까요?
정문식 제도적인 측면에서의 자치, 그리고 정책적인 측면에서의 자치. 큰 틀에서는 거버넌스를 통한 협치라고 볼 수 있겠고요. 제대로 된 거버넌스는 민간 자치에 가깝거든요.
나동혁 거버넌스라는 건, 카운트 파트너, 협상의 대상이 된다는 거죠.
정문식 동등한 주체로 서는 거죠. 예를 들어, 지역 사업을 하는 경우에, 현재는 지방자치단체가 어쨌건 갑인데, 테이블에서 동등한 자격으로 협의할 수 있게 되어야죠.
단편선 동혁 씨 같은 경우는 지역운동에 더 관심이 많다고 하셨는데.
나동혁 문제의식이 근본적으로 다르진 않다고 생각해요. 지역운동이라 하면 대부분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상상하곤 하는데, 사실 공동체를 만든다는 건 그 자체로 진보적이거나 하진 않잖아요. 정치적인 구조, 그리고 경제적인 구조를 바꾸는 데 있어서 홍대 앞이라는 공간을 주목하는 거죠. 문화 예술로부터 시작하지만, 결과적으로 권력 구조에 손을 대자는 운동이니까요.
단편선 서울은 많은 곳에서 공동체 마을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데요.
나동혁 공동체는 구체적인 사업 목표 같은 걸 두질 않죠. 공동체에서는 멤버십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런데 우리는 사회적 협동조합이니까 목표가 있고, 사업을 통해 가치를 실현하는 거예요. 우리도 공동체의 성격이 전혀 없다 말할 순 없겠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방식이 다른 거죠. 사업을 통해 이익이 지역 사회에 골고루 분배되고, 지역 구성원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죠. 홍우주는 정치나 경제에서의 권력 구조를 바꾸려는 운동이에요. 문화 예술에 포커스를 맞추자면 정치적으로는 문화 예술과 관련된 정책을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 우리가 만들자는 거죠. 경제적으로는 문화 예술인 자신이 만들어 내는 가치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을 누릴 수 있도록 왜곡된 소유 구조를 바로잡자는 거고. 공동체라 하면 공동 육아나 공동 거주 같은 것들이 먼저 생각나지만 실은 정책 공동체일 수도 있고, 어떤 공간을 함께 점유한다는 게 공동체의 필수 조건은 아닌 것 같아요. 문식 씨는 홍대 앞이라는 공간이 문화 예술계에 있어 유효한 거점이고, 이곳을 잃으면 다른 곳으로 거점이 분산되기보다는 오히려 거점이 소멸할 것이라 예견하고 있어요.
단편선 유효한 거점이 홍대 앞이라는 것은 다들 동의하겠지만, 거점은 다른 곳에도 생길 수 있잖아요.
정문식 거점이 더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만들어져야죠. 그런데 거점이 만들어지는 데는 시간도 걸릴뿐더러, 만들고 싶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포인트, 타이밍, 상황 등이 다 맞아야죠. 게다가 최근에는 우리식 젠트리피케이션이라 할 수도 있을 텐데, 뭐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일단 땅값부터 오르죠. 그런 걸 감안해 보면 상황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그래서 다른 데 뭔가 생길 때까지만이라도 홍대 앞이 버티면 좋겠고, 홍대 앞이 예전처럼 한국 문화 예술계의 대표적인 지역이진 않더라도 지금 남아 있는 싹들을 다 없애면 안 되겠죠.
나동혁 방어가 가장 효과적일 때도 있죠. 쫓겨나는 게 대세인 세상이니까.
정문식 권력 구조에 대한 개입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진행해야겠는데, 홍우주는 우선 홍대 앞이라는 공간에서 공론화 작업을 잘해 나가야 한다고 봐요. 최근 지방 선거 때 진행했던 문화 예술 관련 공약에 대한 평가 사업같이, 우리가 알 수 있고 개입할 수 있는 여러 정보가 있는데, 그걸 잘 공유해야 하는 거죠.
단편선 지금 준비하고 있는 사업은?
정문식 굉장히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지만 보안상 공개할 순 없고요, (웃음) 공개할 수 있는 건 ‘하트 로드’라는, 홍대 앞의 여러 공간을 탐방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요. 작년에도 음악과 시각 예술에 관련된 공간을 돌아다녔는데, 올해는 탐방 사업을 확대할 예정이에요. 또 예술 체험 교육을 하는데, 예술인이 아닌 사람들도 피동적으로 관객의 입장에서 참여하는 게 아니라 주체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요. 휴식이 될 수도 있고, 일상에 자극이 될 수도 있겠죠.
단편선 홍우주도 이제 시작을 하는 단계네요.
정문식 스타트업하고 똑같죠. 저는 이 사무실이 스티브 잡스의 개러지 같다는 생각을 해요.
단편선 자신을 스티브 잡스에 비유하다니. (웃음)
정문식 그 정도 자기 위안이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견딜 수가 없잖아요. (웃음)
(워커스10호 2016.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