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강사 채효정 씨 “시간 강사는 마트 매대 앞 판매자”
김한주 기자 / 사진 김용욱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는 2011년 인간의 가치와 대학의 본질을 물으며 출범했다. ‘후마니타스(인간다움)’ 마케팅은 성공적이었다. 학생들은 후마니타스칼리지를 보고 경희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24일 후마니타스칼리지는 시간 강사 45명을 해고(계약 해지)했다.
후마니타스칼리지도 대학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었다. 고교 졸업자보다 많은 대학 입학 정원은 대학 구조조정을 불러왔다. 박근혜 정부는 최근 ‘산업 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 대학(프라임, PRIME)’ 사업을 추진했다. 선정되는 대학에 2016년부터 3년간 총 600억 원을 지원한다. 사업의 요지는 ‘취업 안 되는 인문 사회 계열을 줄이고, 취업 잘 되는 공학 계열을 늘리라’는 것. 경희대는 프라임 사업에 적극 동참하며 ‘후마니타스 제2의 비상’이란 이름으로 교과 개편(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동시에 45명의 시간 강사를 잘랐다. 하지만 경희대는 프라임 사업에 탈락했다.
경희대 시간 강사는 학기마다 4개월짜리 근로 계약을 맺는다. 학기가 끝나면 자동으로 해고된다. 다시 학기가 시작돼 학교가 부르면 계약을 갱신한다. 수업 외 학생 관리, 방학 중 성적 입력, 강의 외 세미나는 무급이었다. 심지어 외부 강의 시 강사료 10%를 발전 기금으로 학교에 내야 했다.
2010년 2학기부터 2015년 말까지 11학기 연속으로 강의한 채효정 강사도 지난해 동료 강사들과 함께 해고됐다. 후마니타스칼리지는 ‘연속 4학기 위촉 불가, 박사학위 소지자는 최대 연속 8학기까지 위촉 가능’이란 학교 시간 강사 관리 규정과 유사 과목 폐지, 직전 학기 과목 평가를 이유로 재계약을 거부했다.
학교 스스로 위반한 학교 규정
채 씨는 11학기 동안 강의하면서 한 번도 시간 강사 관리 규정을 듣지 못했다. 전체 교수와 강사가 모인 오리엔테이션에서 근로 계약서를 일괄 작성하거나, 개강이 한참 지나 임금도 기재되지 않은 계약서를 작성한 경우도 있었다. 학교는 채 씨가 2010년 2학기부터는 연구 조교였고, 2012년 1학기부터 시간 강사였기에 2015년 2학기가 마지막 학기(8학기)라고 했다. 하지만 채 씨의 강의 이력서는 2010년 2학기부터 나온다. 똑같은 강의라도 ‘신분’에 따라 강의가 아닐 수 있다는 게 학교의 논리다.
채 씨는 무엇이 유사 과목이고, 그 과목 중 왜 자신의 과목이 폐지됐는지 학교 측에 공개 질의했다. 이에 대해 학교는 지난 2월 “중복 과목은 시간이 없어 강의 제목만 보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학교 규정에는 2개 이상 유사 과목이 인정될 시 어느 과목을 폐지한다는 기준이 없다. 2016년 2학기 폐지 통보를 받은 채 씨의 ‘예술과 정치’ 과목은 학생들이 ‘가장 후마니타스다운 과목’이라고 평가했고, 2012년에는 ‘학부 교육 선도 대학 육성 사업(ACE)’에서 우수 융·복합 과목으로도 지정됐다.
“사실상 기간의 정함 없는 근로자”
시간 강사의 4개월짜리 근로 계약 갱신은 관행이었기에 강사들은 ‘갱신 기대권’을 주장한다.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 법률(기간제법, 일명 ‘비정규직법’)> 4조 1항은 “근로 계약의 반복 갱신 등의 경우에는 그 계속 근로한 총기간이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시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전문적 지식·기술의 활용이 필요한 경우 … 2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학교는 박사 학위 수료자인 채 씨를 2년을 초과해 위촉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간제법> 4조 2항은 “2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제 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 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고 돼 있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 계약’은 정규직이란 뜻이다. 채 씨는 4개월짜리 근로 계약이지만, 2년 넘게 재계약이 반복돼 사실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다. 그가 ‘갱신 기대권’을 주장하는 이유다. <기간제법>은 반복 계약을 정규직으로 규정하지만, 학교는 학칙의 시간 강사 관리 규정을 내밀고 있다.
후마니타스칼리지 시간 강사들은 학교에 부당함을 수차례 주장했다. 2016년 3월 10일 강사와 교수협의회 대표, 후마니타스칼리지 학장, 부총장, 교무처장이 참석해 연석회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교과 개편을 재검토하고 문제 있는 과목은 최대한 시정 복구하도록 노력한다’, ‘강사 차별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TF를 구성해 개선안을 학교에 제출한다’라는 합의안을 냈다. 그러나 후마니타스칼리지 유정완 학장은 합의안 이행을 위한 선결 조건을 내밀었다.
선결 조건은 △학생들 만나지 말고 △언론과 접촉하지 말고 △SNS로 외부에 알리지 말고 △지금까지 한 것을 사과하고 앞으로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였다. 선결 조건 때문에 합의는 파기됐고 사태는 지금까지 흘러왔다.
결국 채 씨는 3월 30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을 냈다. 경희대 소모임 ‘경희현재리포트’ 학생들은 스승의 날을 앞둔 지난 12일 ‘후마니타스 장례식’을 열었다. 행사 사회를 본 한 대학원생은 “스승의 날, 사람의 가치를 잃은 후마니타스를 떠나보내고자 한다”며 추모사를 읊었다. 학생들은 경희대 청운관에서 본관까지 “선생님을 돌려 달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본관에 도착한 학생들은 ‘근조 후마니타스’라는 현수막을 배경으로 헌화했다. 한편, 《워커스》는 경희대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대외협력처 홍보실 관계자는 “사안과 관련해 할 말이 없다”며 거절했다.
5월 16일. 채 씨를 경희대 앞 카페에서 만났다.
해고 5개월이 됐다. 부당 해고 투쟁을 어떻게 준비하나
강사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근로기준법〉, 〈기간제법〉, 〈고등교육법〉, 대법원 판례를 강사 모임에서 서로 공부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공부하면 할수록 부당했다. 강사 대부분은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아직 모른다. 시간 강사는 고용 보험을 내기에 당연히 실업 급여 신청 대상이 된다. 며칠 전 강사 모임에서 실업 급여 얘기를 했더니 모두 깜짝 놀라더라.
3월 30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을 하고 학교와 답변서와 이유서를 주고받고 있다. 지난 13일에 온 학교의 답변서에 내 강의가 2016년도 1학기 개설 예정 과목으로 배정돼 있었다. 이것은 명백한 부당 해고다.
경희대의 후마니타스 마케팅이 대단하다. 후마니타스칼리지를 보고 경희대에 입학하는 학생도 많다
경희대는 상징 자본을 만들어 적절하게 써먹었다. 나도 모르고 부역질을 했다. 강사들이 후마니타스 가치에 동참했고, 학생은 이 가치를 분명히 배웠다. 후마니타스가 처음부터 가짜였다는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 이를 이용하고 상품화한 학교 당국이 문제다.
경희대는 이번 학기부터 미국의 ‘독립 연구’ 모델을 새 커리큘럼으로 시행했다. 독립 연구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연구와 적합한 교수를 선정해 진행한다. 연구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좋은 취지의 커리큘럼이다. 하지만 경희대는 이를 0.5학점 강의로 만들었다. 학생에게는 2학점 수업으로 개설되지만 교수에겐 0.5시수만 인정된다(통상 1학점은 1시수 인정). 비용을 줄이고 강좌 수를 늘렸다. 학점 장사다. 사사오입 같은 것이다. 한 과목에 강사 10명도 고용할 수 있다. 임금은 한 달에 10만 원이다. 이런 악랄한 착취가 어디에 있나. 학교는 이를 대학 혁신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공개 석상에서 이를 열정 페이라고 말했다. 불만을 제기한 후에 내가 교과 개편 회의에 들어가니 학장은 “회의 참석해도 돈 되는 거 없는데 들어올 거예요?”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들은 강사들을 돈만 밝히는 존재로 취급했다.
스승에도 계급이 있다. 그 계급의 말단은 시간 강사다. 대한민국에서 시간 강사의 삶은?
강사는 〈기간제법〉 보호도 못 받는다. 사용자는 시간 강사를 2년 넘게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다. 강사는 〈고등교육법〉상 교원이 아니다. 〈고등교육법〉 14조(교직원의 구분) 2항은 “학교에 두는 교원은… 총장이나 학장 외에 교수·부교수 및 조교수로 구분한다”고 되어 있다. 원래 ‘교직원의 구분’ 조항엔 강사도 포함됐다. 강사들은 교직원 범위에 강사를 넣어 달라고 오래전부터 주장했지만 세 번이나 유보됐다. 강사는 2년 단위로 갈아 쓸 수 없다. 특수 전문직이다. 강사는 법외 존재다. 교원도, 노동자도 아니다. 어느 법률도 시간 강사를 포괄하지 않고 있다.
이곳은 드라마 〈송곳〉과 같다. 학교 본부와 학장은 드라마 속 ‘푸르미’ 경영진이다. 전임 교수와 객원 교수는 관리자다. 시간 강사는 매대 앞 판매자다. 철저히 신분제적 질서 안에 갇혀 있다. 시간 강사는 객원 교수를 목표로, 객원 교수는 전임 교수가 되기 위해 동료들을 짓밟고 올라선다. 이런 경쟁 구조는 후마니타스, 진보적인 시민 사회의 퇴폐를 불러왔다. 이 같은 비판을 하면 동료 교‧강사들에게 ‘그렇게 행동하니 적이 많지’, ‘왜 예민하게 반응하냐’ 등의 소리를 듣는다.
그렇다면 경희대에서 시간 강사의 삶은?
수업을 위해 준비할 인쇄·복사 비용도 시간 강사들이 부담한다. 교강사 휴게실은 200여 명이 함께 쓰는데, 사물함은 40개 정도다. 언제부턴가 커피 믹스도 사라졌다. 모두 재정상의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작년 가을 경희대 청운관 앞에는 7억 원짜리 잔디가 깔렸다. 방학 중에는 계약이 자동 해지돼 중앙도서관과 학교 인트라넷을 이용하지 못한다.
경희대는 교육부의 대학 평가 기준으로 전임 교수 강의 시수를 9시수에서 15시수로 늘렸다. OECD 평균에 비해 아주 많은 시수다. 시수를 채우기 위해 전임 교수를 채용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동시에 시간 강사를 줄이면 전임 교수 강의 시수 비율이 높아진다. 이로 인해 시간 강사 45명이 해고됐다. 비용은 아끼고 전임 교수 강의 비율은 높아졌다. 그래서 70~80명 규모의 대형 강의가 많아졌다. 수업의 질은 떨어졌고 학생들은 ‘350만 원짜리 사우나’, ‘콩나물 교실’이란 은어도 만들었다. 강사의 수업권과 학생의 학습권 모두 박탈됐다.
학부생 때부터 20년 넘게 경희대에 몸담았다. 선생님에게 경희대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경희대에 1989년에 학부생으로 입학해 석·박사까지 이곳에서 마쳤다. 그리고 2011년 후마니타스칼리지 시작을 같이했다. 학교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학교에 충성하고 정책에 따라가는 것인가? 학교는 나에게 학교에 ‘똥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의 동료, 학생, 숲, 기억과 시간 모든 것이 나에게 소중하다. 나는 소중한 것을 지키려고 싸운다. 이도 사랑의 방식이다. 단기간 강의한 시간 강사는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최악의 학교”라고 비난하고 다른 학교로 옮겼다. 나도 떠날 수 있었지만 비굴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꿈꿨다. 그리고 지식인의 책무로서 대학을, 후마니타스를 살리려고 한다.
채효정 씨는 지난 1월에 쓴 ‘후마니타스가 준 선물, 크리스마스이브 해고’(〈참세상〉, 2016. 1. 21) 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간 강사는 오늘의 대학에서 그 자기기만과 위선을 폭로하는 존재다. 괴물이 되어 버린 대학을 드러내는 존재다. …이 대학이 ‘후마니타스’, 인간의 얼굴을 되찾을 때까지 나는 부끄러움을 증언하는 존재이고자 한다. 지금까지 싸우지 않았던 것을 부끄러워하며 내가 있는 곳, ‘지금-여기’서 싸우는 존재가 됨으로써.”
(워커스 11호 2015.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