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욱 부편집장
<미디어충청>이 지난 5월 31일 폐간했다. 2007년 12월 19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일에 창간했으니 햇수로 10년 만이다. <미디어충청>은 복수 노조 문제, 창조컨설팅 등 노동자 인권 유린과 노조 탄압이 본격화하는 시기 충청 지역 수많은 노동자와 동고동락했다. 이제는 노조 파괴의 대명사가 된 유성기업, 보쉬전장 같은 사업장이 충청도에 있었다. 최근 신종 노조 탄압 수법을 구사하는 갑을오토텍도 충청에 있다. <미디어충청>은 지역에서 노동 사건이 터지면 몇 개월이고 붙어 집요하게 취재하고 깐깐하게 파헤쳤다.
충청 지역 비정규직 문제인 현대차 아산 공장, 충남 서산 동희오토, 지역 삼성전자서비스 투쟁도 <미디어충청>의 몫이었다. 2011년 1월 아산 삼성전자 LCD 사업부 노동자 투신 자살 사건 당시 사망부터 97일 만에 장례에 이르는 전 과정을 취재한 언론사도 <미디어충청>뿐이었다.
<미디어충청>은 지역 사안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2007년 쌍용차 공장 점거 파업 때는 77일 내내 공장에 들어가 취재했다. 당시 정재은, 박원종 기자는 경찰 해산 작전 때 노동자들과 함께 연행됐다. 건조물 침입, 업무 방해죄로 잡혀가 48시간 만에야 나왔다. 2011년 제주 해군 기지 반대 강정마을 투쟁 취재 땐 4개월 동안 강정마을에 살았다. 그때 정 기자는 취재 도중 두 번이나 연행됐고 그중 한 번은 30여 시간 동안 유치장에 갇혔다. 검찰은 정 기자를 공사 현장 무단 침입으로 기소했지만 법원은 최종 무죄 판결을 내리고 형사 보상을 명했다. 정 기자는 이 사건으로 민주시민언론상 본상을 받았다. 2014년 5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시신 탈취 논란 땐 강남경찰서가 112 신고를 받고 10분 만에 출동한 사실과 서울경찰청이 출동 지시를 내린 사실을 단독으로 확인했다. 당시 새정치연합 모 의원실 관계자는 “<미디어충청>이 서울시경 개입을 밝혀낸 것 때문에 당 차원의 진상 조사를 진행하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미디어충청>은 그저 지역의 마이너 언론사였다. 진보든 좌파든, 노동 단체든 사회 단체든 자기 사안을 알리는 데는 더 큰 언론사를 선호하는 현실 앞에, <미디어충청> 같은 언론은 다른 언론사가 관심 갖지 않는 기자 회견이나 취재하면 된다는 태도 앞에 실망하곤 했다.
올 초 <미디어충청>은 장기간 취재해 온 노조의 재판 과정에서 원청사 개입 정황 자료를 확보했다. 작은 언론사에서 기사를 먼저 쓰면 다른 주류 언론사들이 기사화하지 않는 관행으로 묻힐까 봐 노조 기자 회견 직후에 맞춰 기사를 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노조 관계자는 “<미디어충청>이 조금 일찍 기사를 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사실상 거절했다. 해당 내용은 다른 중앙 일간지가 기자 회견 시작 5분 후에 2개의 기사로 냈다. 노조 상급 단체에서 미리 그 언론사에 자료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후발 주자인 대구 <뉴스민> 등도 현재 같은 설움을 겪고 있다. 지난달 <뉴스민>은 오랫동안 지역 비정규직 투쟁에 천착해 취재하며 확보한 문건을 기사로 썼지만, 민주노총 한 간부로부터 중앙 일간지에 단독으로 나갈 수 있게 기사를 내려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독립 언론에 대한 시민 사회 단체들의 이 같은 도구적인 태도는 시대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진보 진영의 언론 사업 방식은 과연 진보적이고 대안적이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디어충청> 폐간에는 함께 길을 걸었던 <참세상(워커스)>의 잘못도 크다. 지리적 한계와 상시 5인을 규정한 <신문법> 시행령 문제, 영세 언론사라는 부담을 극복하려는 공동의 모색을 끝내 하지 못하고 각자도생의 길을 갔다. 몇몇 사안에선 함께 특별 취재도 하고 주기적으로 생존을 모색해 봤지만 각자의 지역에 갇혔다. 홈페이지상의 제휴를 넘어 비주류적 연대와 용기, 상상력을 더 발휘하지 못했다. 자본과 권력에 비난받을 더 편파적인 보도를 하지 못했다. <미디어충청>의 폐간은 그래서 더욱 아쉽고 안타깝다.
(워커스12호 2016.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