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체제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
경제 무식자 몇 년 전부터 사회적 경제가 정말 유행인 것 같아요. 야당이나 시민 운동 진영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심지어 새누리당도 사회적 경제 관련 모임을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어요.
김성구 새누리당이 좋아하는 대안은 절대로 노동자들을 위한 대안이 안 돼요. 그러니까 새누리당이 받는다고 하면 일단 그 안을 의심해야 해요. 보수당이 좋아하는 이유가 있는 거죠.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큰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는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전면화된 신자유주의의 지배입니다. 부실과 위기를 극복한다면서 IMF 구제 금융을 받고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수용했죠. 한국 사회는 짧은 기간에 신자유주의 체제로 전환됩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구제 금융 협상은 구제 금융 역사상 보기 드문 굴욕적인 협상이었죠. 통상 구제 금융은 부채 탕감을 받는 게 상례거든요. 채권자가 투자를 잘못해서 발생한 손실이니까 채권자에게도 손실 분담을 강제해야죠. 또 채권자가 이 손실 분담을 거부하고 그래서 구제 금융이 무산되면 채권자는 채권 전체를 회수할 수 없게 됩니다. 채권자로서는 채권 전체를 손실 처리하는 것보다는 구제 금융을 통해 채권의 일부라도 회수하는 게 낫습니다. 이렇게 부채 탕감은 구제 금융의 불가결한 구성 요소인데, 우리나라는 자랑스럽게도 땡전 한 푼 탕감받지 못했죠. 더군다나 재벌과 금융 기관의 사적 채무를 국가가, 당시 대통령인 김영삼과 여야 대통령 후보인 이회창, 김대중이 IMF에 성실하게 전액 상환하겠다는 각서까지 써서 상환을 보장합니다. 정부나 여야 정치인이나 기획원, 재정부의 관료들까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안목이 없었던 겁니다. 정말 수치스런 역사죠. 진보 좌파는 당시 IMF의 구제 금융과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해 투쟁했는데요, ‘구제 금융 안 받고 경제가 무너지면 어떻게 할 거냐’, 이게 좌파에 돌아온 질문이었죠. 절대 그럴 리가 없었을 겁니다. IMF는 어떻게든 구제 금융을 제공해서 채권 은행들의 손실 부담을 적게 해야만 했거든요. 당시 한국 정부가 구제 금융에 반대했더라면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하고 부채 탕감 등 구제 금융의 조건도 훨씬 좋아졌을 겁니다. 결국 막대한 공적 자금 투입과 국민 부담으로 재벌 부실, 은행 부실들을 다 털어 내고 재벌과 금융 자본의 지배를 더욱 강화시켜 주었지요. 신자유주의 지배의 결과는 참혹합니다. 대중에게는 신자유주의가 성장의 둔화, 일자리 위협, 양극화, 차별화로 나타나요. 이 체제하에서 살기 힘들어진다는 게 시간이 갈수록 명확해지고 거기에 2009년 위기까지 오고요. 오늘날 ‘헬조선’이라면서 사람들, 특히 청년 학생들이 살기 힘들다고 들끓는 현실은 이런 역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분명해진 게 있죠. 이 체제를 전복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그러려면 재벌 지배, 금융 자본의 지배, 신자유주의 지배를 바꿔야 하는데, 이 시대적 과제를 외면하고 신자유주의를 바꾸는 대신 사회적 경제를 들고 나온 겁니다.
사회적 경제를 들고 나온다는 건 이 신자유주의 체제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거예요. 새누리당이 좋아할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이걸 주장하는 야당이나 시민 사회 단체들은 말로는 새로운 대안을 찾는다고 하지만, 실은 이 지배 질서와 야합하고자 한 겁니다. 마치 사회적 경제로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것처럼 말하는데 결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죠. 사회적 경제는 신자유주의의 틈새에서 기생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유지하는 데 기여할 겁니다.
경제 무식자 사회적 경제라는 게 뭘 말하는 거예요?
김성구 사회적 경제는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을 육성해서 재벌들의 지배 질서로부터 벗어나는 경제 영역을 만들어 대안 사회를 모색해 보자는 건데요, 이런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은 기본적으로 재벌 기업들을 대체해 나갈 수 없는 범주예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대규모 경제 단위를 내버려 두고 변두리 경제 부문을 형성해서 지배적인 경제 부문을 대체해 나갈 수는 없는 거죠.
사회적 경제라는 건 주요한 경제 부문이 아니에요. 주요 경제 부문은 재벌 체제와 금융 부문 그리고 국가 부문이에요. 그리고 이 부문들을 대상으로 실행하는 지배적 경제 정책, 즉 신자유주의가 문제인 거죠. 이걸 바꿔야 하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주변적 경제 부문을 끌고 들어와서 대안 논쟁을 이쪽으로 몰아가는 거예요. 사회적 경제의 길을 따라가면 대중의 삶은 신자유주의의 지배, 헬조선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대중의 삶을 지배하는 건 재벌과 금융, 국가 부문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이기 때문이죠. 현 단계에서 정말 중요한 정책 논쟁이나 개혁 요구를 왜곡하고 신자유주의 지배 질서를 보완해 나가는 기능을 사회적 경제가 하는 겁니다.
경제 무식자 그런데 경제학에서도 ‘사회적 기업’이라는 말을 쓰나요? 원래 모든 기업은 사회적이지 않나요? 마치 사회적 기업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서 기업을 사회적 역할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요. 기업이 사회적 책무를 안 해도 되는 것처럼요. 정말 기업이랑은 다른 사회적 기업이라는 게 있는 건지, 있다면 기업이랑 뭐가 다른 건지 궁금해요.
김성구 오늘날 기업은 대개 주식회사 형태로 되어 있는데, 주식회사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성격의 기업이죠. 개인 기업과는 달리 그 소유가 수많은 주주들로 이루어진 사회적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분 소유 자체는 개인적 소유입니다. 말하자면 개인적 소유에 입각한 사회적 소유 형태라 할 수 있죠. 그런 점에서 주식회사는 사회적 기업이라 할 수 있는데, 사회적 경제에서 말하는 ‘사회적 기업’은 그것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하죠. 주식회사는 이윤 배당에 기반한 기업이고 당연히 이윤 추구가 목적인 반면, 사회적 기업은 특별히 사회 취약 계층에 고용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이윤 추구가 일정하게 제한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윤을 추구하긴 하지만 여기에 사회적 책임이나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여 또는 의사 결정의 민주적 구조 등을 결합한다는 거예요. 기업 형태는 협동조합이나 유한 회사 등 다양합니다. 이런 목적이나 조직 형태를 갖춰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으면 정부로부터 각종 정부 지원과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받지요.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회적 기업은 정부 지원을 통해 겨우 운영을 유지해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이들 기업이 스스로 자립하기 어렵다는 걸 말해 주는 겁니다.
경제 무식자 예전에 협동조합이 한창 붐일 때 탐사 보도 프로그램에서 봤는데요, 한국은 동네에 있는 마트까지 다 대기업이 장악했잖아요. 그런데 협동조합이 잘돼 있는 나라들은 대형 마트도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된대요. 협동조합 마트에서는 주로 그 지역의 생산물을 판매해서 소비자들은 지역의 친환경 제품을 쉽게 구매하고 생산자들도 제값을 받고 판매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대기업을 대체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데요.
김성구 그런 부문은 협동조합으로 대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지 모르죠. 지역별 유통 업체라든지 지역별 기업 같은 것 말이죠. 문제는 그 영역이 부차적인 영역이라는 얘기예요. 지배적인 영역은 대은행과 대형 산업의 재벌들이에요. 동네에 있는 슈퍼마켓을 협동조합으로 바꾸면 재벌 기업체에 일부 타격은 있겠지만 지금의 재벌과 금융 자본이 지배하는 체제를 바꾸는 데 큰 기여를 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이 운동에 집중하면 기본적 지배 질서는 더 공고해지는 겁니다. 지배 질서와 싸우지 않는 거니까요. 사실 지금 사회적 기업이나 제3섹터 부문에 대한 육성 문제는, 반신자유주의 대안이 아니라 지난 금융 위기 이후 파국을 맞이한 신자유주의를 위한 대안이에요. 위기에 빠진 이 신자유주의 질서를 어떻게든 재편하고 유지시킬 필요가 있는데, 이런 차원에서 보충물로 등장한 거예요. 세계은행 같은 데서도 전략적으로 모색하는 부분입니다. 신자유주의 지배가 온건해지는 형태로 대안을 모색한다고 봐야 하는 거죠. 지배적 경제 부문을 바꿀 수 없으면, 세계적 장기 불황에서 위협받는 노동자들의 생계, 일반 시민들의 고달픈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없어요.
사회적 경제를 위해서라도 국가-재벌과 싸워야
경제 무식자 사회적 경제에 유독 운동권 출신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시민 운동 출신인 박원순 서울시장도 마을 운동을 비롯해서 사회적 경제 영역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고요.
김성구 정치인들이야 시류라고 생각하는 것을 통해서 자기 권력을 추구하는 거죠. 사실 박원순 같은 사람은 신자유주의 지향성을 가졌던 인물인데 협동조합 운동, 사회적 기업 운동이 현 정세에서 자신과 딱 맞아떨어지는 겁니다. 또 이게 정치적 기반이 돼요. 지역마다 이를 풀뿌리 정치와 결합시켜서 온건한 신자유주의 운동의 부대들로 형성하는 거죠. 신자유주의 정치 기반을 확장하는 데 기여를 하겠지만, 이른바 사회적 경제가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경제 무식자 어떤 긍정성도 없나요?
김성구 진보적 측면이 물론 있죠. 저는 협동조합 운동, 마을 운동에 대해 반대하지 않아요. 자본주의 경제의 대안 부분이고 그 자체가 재벌이 지배하는 영역이나 자본주의 영역보다 진보적인 형태들이니까요. 그런데 그 양면성을 봐야 해요. 기본적인 규정성을 봐야 한다는 얘기죠.
협동조합 형태는 자본주의 기업과 다르게 조합원들이 출자를 해서 기업을 운영하니까 자본-임노동 관계가 지양돼요.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고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서 상부상조하는 조직이거든요.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이윤을 높이는 게 아니라 조합원들의 상부상조 활동에서 나온 결과들을 분배하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는 자본 관계가 지양된 형태예요.
하지만 자본주의하에서 협동조합도 시장 경제의 원리를 쫓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점도 분명합니다. 조합원 전체의 이익이라 하더라도 시장 경제에서 수익 원리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자본주의적 이윤 원리에 자꾸 오염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협동조합 기업들이 발전하다 보면 이윤 원리를 따르는 다른 기업과 특별하게 다르지 않게 돼 논란이 생기는 겁니다. 농협이 대표적이잖아요. 자본을 지양하는 형태지만 이윤 원리가 지배하죠. 마르크스가 말한 바처럼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틀 내에서의 자본의 지양인 거죠. 그래서 자본주의 경제의 규정성을 탈각할 수 없어요.
또 거꾸로 사회주의 사회로 가면 협동조합이 사회화된 형태의 주요 기업으로 자리를 잡거든요. 자본주의에서와 비교할 수 없게 거대한 협동조합으로 만들어지죠. 국가가 사회화 기관으로 육성하니까요. 근데 그 협동조합도 사회주의 사회에서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요. 자본 관계를 지양하고 사회주의 경제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지만 국영 기업과는 달라요. 국영 기업은 전체 인민의 기업이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잖아요. 반면 사회주의 사회에서라도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이익, 공동의 이익을 반영하는 거니까, 여기는 자본주의적 협동조합의 유제들이 아직 남아 있는 거죠. 전체 인민이 아니라 조합원들의 이익에 한정돼 있는 과도적인 형태인 겁니다. 사회주의하에서 생산력이 발전하면 협동조합은 사회주의 국영 기업으로 발전합니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 원리를 일부 제한하는 것인데, 거기에 절대적인 의의를 부여하면 안 돼요. 오히려 이런 운동을 통해서 자본주의 경제의 주요 부문을 바꿔 나가는 과제를 밀어내면 결국 신자유주의 지배 질서를 바꿀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죠.
경제 무식자 요즘 도시에서 전망을 못 찾는 청년들이 생태주의적 흐름이랑 결합해서 공동체 운동을 하거나 농사를 지으러 지역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농사 지어서 먹고살기가 힘드니까 외부 지원금 같은 데 의존하게 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기도 해요. 그런 걸 보면 사람들이 자립하기 위해 사회적 경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FTA를 막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성구 앞서 말한 바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경제는 생존 자체가 어려워요. 자본주의의 중심은 전부 재벌이 지배하는 경제이기 때문에 재벌의 수탈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거든요. 존립이 어려우니까 국가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실제로 사회적 기업 태반이 국가 지원에 연명해 나가는 수준밖에 안 됩니다. 국가 지원이 끊어지면 다 쓰러지는 거죠. 이런 사실이 국가와 재벌, 금융 부문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 주기도 하고요. 이 부문을 획기적으로 장악하지 않으면 사회적 경제도 생존을 보장하기 어려운 거죠. 그 말은 이 부문을 국가가 장악하면 협동조합도 획기적으로 강화될 수 있다는 얘기예요. 국가가 사회주의적 대형 국영 기업으로 조직할 수 없는 부문을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과도기적 형태로서 협동조합으로 묶는 거거든요. 묶으면 커지게 되고 국가의 지원 속에서 존재 형태도 아주 안정화되지요. 그러니까 이게 필요하다면 국가와 싸워야 한다는 얘기예요. 국가, 재벌과의 싸움 속에서 사회적 경제 영역도 확장할 수 있는 건데, 이 싸움을 팽개치고 사회적 경제가 대안이라고 이 운동에 집중하는 걸 비판하는 겁니다.
대담
김성구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경제 무식자 1, 2, 3
사진 김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