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력이 낭비된다.’ ‘억울한 가해자로 몰린 사람들은 어떻게 책임질 거냐.’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8.2%인 1만 1,218명이 ‘무고죄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대검찰청은 무고죄가 해마다 증가한다며 통계 수치를 발표했다. 무엇과 관련한 사건이 어떻게 무고죄로 인정받아 늘어났는지 맥락이 삭제된 수치다. 일각에서는 무고죄의 증가가 성폭력 피해자가 피의자로 전가된 수치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여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유명 연예인들도 ‘무고죄로 고소할 것’임을 밝혔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는 피해자들이 겪는 고소 중에는 ‘명예훼손’도 있다. 사실을 그대로 밝혔어도 명예훼손의 처벌이 가능해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명예훼손과 무고죄. 이 둘은 여성폭력의 억울한 가해자를 구제하는 법일까? 피해자의 입에 족쇄를 채워 신고를 주저하게 하는 법일까?
《워커스》가 <한국여성의전화>와 3회에 걸쳐 명예훼손, 무고죄가 여성폭력 사건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 법의 함정을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대면 인터뷰와 강경화 논문 <성폭력 피해 여성 무고죄 적용 요인 분석(2012, 성공회대)>에 드러난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재구성했습니다.)
“검사실 소환 때 처음 알게 됐어요. 사전에 알려주거나 그런 게 없더라고요. 나는 그저 성폭행 피해자로 진술받는 것으로 알고 갔는데… 무고죄가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죠. 검사가 취조 도중에 ‘진술에 대한 의심이 가서 무고죄로 집어넣으려 한다’고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놀란 정도가 아니라 말도 다 못해요. 무고죄 혐의가 씌워지고 나서는 검사 질문이나 취조 과정이 너무나 수치스럽고 모욕적이고… 정말 말로 다 못해요. 아는 사람한테 전화했더니 ‘대답하면 불리해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말이 증거가 될 수 있으니 말하지 말라면서…. 그런데 그 분위기에 있지 않았던 사람은 몰라요. 그 자리에서 받는 압박감이라는 게 정말 낭떠러지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이에요.” (강간죄로 고소했다 무고죄로 수사 받은 A 씨)
“갑갑하죠. 한 참을 울었어요. 설마 했는데 정말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더라고요. 그렇게까지는 가지 않았으면 했는데… 사과를 원했는데 고소장이 날아 왔어요. 몸이 후들후들 떨리고 움직이지를 못했어요. 생전 안 다니던 정신병원도 다녔어요. 당시 급성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초기 증상이 있다고 진단을 받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공황장애까지 더해졌어요. 병명도 늘어나고 먹는 약도 늘어나고…” (성추행 당한 사실을 공론화 했다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C 씨)
먼 사과, 가까운 고소
당시의 상황에 관해 설명하면 될 줄 알았다. 있는 그대로 말하면 처리 될 줄 알았다.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고 피해를 본 사람이 보호받는 것. 그것이 법 아닌가. A 씨는 잘잘못을 따질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가해자가 어떻게 성관계를 강압적으로 했는지 자신은 원치 않았다는 사실만을 말하고 돌아오면 된다고 믿었다. ‘검찰’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압감과 ‘조사’가 주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래야 내게 나쁜 짓을 한 나쁜 사람이 처벌을 받는다며 용기를 냈다.
위로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달래주며 피해자인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바지와 소매를 걷어 올리고 책상을 쾅쾅 치며 ‘모욕죄가 될 수 있는 거 아냐?’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A 씨가 검찰 조사에서 마주한 현실은 강간당한 ‘그날’과 다르지 않은 ‘위협’이었다. A 씨는 조사 받은 일을 ‘사람들 있는 데서 모욕적인 말을 듣고 무섭고 억울하고 고통스러웠던 날’로 기억했다.
B 씨의 검찰 조사 기억도 A 씨와 비슷했다. B 씨가 일하는 곳의 사장은 성추행을 일삼았다. 아이와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B 씨에게 일자리는 귀했다. 몸 여기저기를 툭툭 만지는 사장에게 그러지 마시라고 사정도 하고 설득도 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늘은 꼭 해야겠다”는 사장은 B 씨를 강제로 눕히고 몸을 누르고 옷을 벗겨 강간했다. 검찰은 이 상황을 두고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강간 사건 전 사장이 계속 성추행을 했는데 왜 직장을 다녔나?’라는 말도 했다. 검사는 고령의 사장이 억지로 B 씨를 강간할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품었다. 검사는 가해자의 진술에 기초해 B 씨가 돈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관계를 했다고 판단했다. 검사는 B 씨를 무고죄로 기소했다.
여성폭력의 피해자였다가 피의자 신분이 된 이들이 느낀 감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죄를 물으러 간 자리에서 죄인으로 몰리는 억울함과 분노. 조사 과정에서 느끼는 모욕감과 두려움. 여성폭력의 피해자는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또렷이 기억해 풀이해 내는 과정을 힘들어한다. 이들은 당시 자신이 느낀 감정을 중심으로 설명하지만, 수사관은 사실을 채근한다. 이 상황에서 피해자는 다시 사실을 기억해 진술해야 한다. 때에 따라 처음 진술한 내용과 차이가 있을 때도 있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전화 통화를 누가 먼저 했는지, 순서를 헷갈리거나 처음 얘기했던 것과 다르게 진술할 때가 있다. 정신없이 조사에 임했던 상황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난 이후 당시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조사와 진술 과정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도 있다.
하지만 수사관은 이 모든 상황과 맥락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다. 이들은 ‘왜 말이 바뀌나. 왜 진술이 일관되지 않나’를 따져 묻는다. 진술이 번복될 경우 신빙성을 의심하며 성폭력 유무 자체를 의심한다. 진실성을 의심하다 결국 허위 사실에 의한 신고, 즉 무고죄를 적용하기도 한다. A 씨와 B 씨가 겪은 과정이다. 수개월 전 강간당한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들 진술이 의심받은 이유 중 하나다. 피해 여성들이 성폭력이라는 위험과 긴장, 공포 상황 때문에 충분히 기억하지 못하고 일관성을 갖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은 고려 사항이 아니다.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라 서로의 진술이 증언이 되는 경우가 많은 성폭력 사건에 있어 수사는 피해자에게 ‘정확한 기억력과 일관된 진술’을 요구한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무조건 적인 ‘일관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사건의 ‘사실’ 혹은 ‘진실’로 향하는 길은 아니다. 피해자의 심리적 압박감과 성폭력 사건의 특성, 피해자의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피해 정황과 이들의 관계성, 성폭력 피해의 맥락적 이해도 되새겨봐야 한다. 피해자의 특성에 따른 진술특성을 고려한 증언이야말로 사건의 ‘진실’로 향하는 길이다.
“내 이름을 밝히지 말라.” 가해자의 무기, ‘명예훼손’
여성폭력 가해자를 신고하지 않은 경우에도 피해자가 피의자가 되는 상황은 생긴다. 명예훼손이다. 피해자가 고소하기 전에 가해자가 먼저 역고소하는 경우도 있다. 미리 선수를 쳐 혐의를 부정하고 피해자의 공론화 노력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다. 피해자가 경찰 신고를 하지 않고 공론화한 상황에서 명예훼손이 되는 경우도 있다. 가해자의 실명을 밝힌 것만으로도 문제 삼을 만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당시 사건을 SNS나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공론화 했고 가해자들은 ‘명예훼손’으로 피해자를 고소했다.
C 씨는 지인과 이야기하며 성추행을 당한 것이 자신만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가해자는 C 씨가 ‘만지지 말라’는 몇 번의 경고에 사과하고도 비슷한 행동을 반복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C 씨는 이를 공론화했다. C 씨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반복되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운동사회 내 반성폭력 운동’의 일환으로 공론화했다고 설명했다. 운동사회 내 성폭력 문제를 드러내고 이를 공동체 스스로 해결하자는 의도였다. 한국사회 성폭력 문제가 너무 많이 일어나지만, 가해자 중심의 법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가해자의 반응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추행을 부정했다. 자신의 SNS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성추행 인정과 사과를 기대했던 C 씨의 요구와 기대는 무너졌다. C 씨는 사건을 공론화 한 지 약 한 달 만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경찰은 C 씨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고 했다.
“더 이상 도망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못은 내가 아니라 그가 한 것 아닌가. 어렸을 적 트라우마가 있어 성추행에 대해 침묵하고 싶기도 했다. 실은 모른 척 지내고 싶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뿐만 아니라 나에 앞선 이들 역시 이런 공론화 과정을 거쳐 우리 사회 내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긴 것 아닌가. 더 이상 도망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가해자의 성추행에 대해 문제 제기 후 C 씨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고소와 고통이다. 이어 C 씨의 습관, 일상이 변했다. 그는 삶에 지뢰가 많아졌다고 표현했다. 혼자 시간을 보내며 사람 기다리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C 씨는 ‘기다림’이 두려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한다. 명예훼손과 결과가 나오는 데 걸렸던 지난한 기다림은 그에게 기다리며 갈아타야 하는 ‘대중교통’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었다. 의사는 공황장애 증상이라고 말했다. 지인들과 자리도 대부분 피했다. 일 년 넘게 고소된 상태로 지내며 모임을 나가지 않았다. 그곳에서 예기치 않게 한 말이 가해자의 귀에 들어갈까 자신을 검열하게 됐다. 친구들과 나눈 사소한 이야기도 크게 확대돼 번지게 될까 두려웠다. 평소 참석하던 단체 행사나 친구들과의 모임이 자연스레 정리됐다.
2년 이상 만난 상대의 데이트 폭력을 공론화 한 D 씨 역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경찰은 그에게 명예훼손과 관련해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만 얘기하면 된다고 마음을 다독였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몸이 말을 안 들었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움직일 수 없었다. 눈물만 나왔다. 주저앉아 운 것이 몇 시간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우연히 들른 친구가 D 씨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다. 가해자는 D 씨의 주변인을 인질로 삼기도 했다. 이들이 D 씨에게 우호적이지 않도록 협박한다는 말도 들려왔다. 심적 부담이 더해졌다.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인정이나 반성이 아닌 협박으로 대응하는 가해자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D 씨의 집을 아는 가해자가 찾아올까 싶어 집에 들어갈 때마다 주위를 살폈다.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동네에서 보고 그 자리에 멈춰서 움직일 수 없을 때도 있다. 영화를 보다 비슷하게 생긴 배우를 보고 놀라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불편하다.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이 되니 압박감이 상당하다. 하지만 늘 피해자가 나서야만 바뀌었다. 가해자들이 알아서 이제부터 안 하겠다 조심하겠다고 한 적이 있나. 가해자는 피해자가 말하는 게 두려우니까 이들의 입을 틀어막으려 한다. 나와 나를 둘러싼 이들을 협박하기도 하고, 치졸한 방법을 쓴다. 이번 일에 대한 주변의 시선도 느껴지고 다소 부담도 되지만 그만큼 많은 도움을 받기에 버티고 있다.” D 씨는 현재 주위의 도움을 받아 재판을 준비하고 있다.
무고는 무거운 죄다. 무고가 확정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156조는 무고에 대해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자’라고 명시했다. 최근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무거워지면서 성범죄의 무고에 대한 책임 역시 무거워지고 있다.
명예훼손도 가볍지 않다. 명예훼손에 대한 형법조항(형법 제307조)은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명예를 훼손한 것뿐만 아니라 사실을 유포하여 명예를 훼손한 것도 처벌하고 있다. 비방의 목적으로 출판물 등을 통해서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는 가중처벌 한다(형법 제309조). 단 명예훼손죄에는 예외조항이 있다.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일 때는 위법하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형법 제310조). 무고와 명예훼손이 여성폭력 앞에 놓이면 어떻게 사용될까? 가해자의 무기가 되는 건 아닌가. 몇 번의 진술과 조사 후 여성폭력 피해자를 너무 쉽게 피의자의 자리에 두는 것은 아닌가. 여성폭력 피해 사건 입증도, 가해자에게 입은 내적 외적 피해도, 모두 피해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은 아닌가. 명예훼손과 무고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짚어볼 때다.
연재순서
#1 사과를 원했는데 고소장이 날아왔다
– 피해자는 어떻게 피의자가 되는가
#2 여성폭력 피해자는 눈물만 흘려야 한다?
– 무고죄, 명예훼손이 만들어가는 피해자 상
– 꽃뱀은 존재 했나
#3 무고죄, 명예훼손에 발목 잡힐 수 없다
– 법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