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공모자들1. 수사, 정보기관
빈 박스를 들고 한바탕 쇼를 하더니, 결국 ‘황제 소환’으로 쪽팔림까지 당했다. 대한민국 검찰 얘기다. 독일로 내 뺀 최순실을 두고 멀뚱거렸고, 자기 발로 걸어 들어온 피의자를 청담동 호텔로 고이 모셨다. 아무리 우병우 사단이 검찰 조직을 틀어쥐고 있다고 해도 너무 과하다. 횡령 및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출두한 우병우는 팔짱을 꼈고, 검사는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하기야 이 드라마틱한 게이트의 출발점은 진경준 전 검사장이었으니. 범죄조직이 범죄자를 수사하는 꼴이다. 이미 국민의 신뢰는 바닥을 쳤다. 이래선 조직이 폭망할 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는지, 이제야 “대통령이 의혹의 중심”이라는 과감한 멘트를 날리며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관음증에 걸린 듯 허구한 날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뒤적거리던 국정원도 이번만큼은 잠잠하다. 댓글부대를 풀어 정치에 개입하고, 마구잡이로 통신기록을 열람하던 열정을 숨긴 채 최순실의 신병은 알면서도 모른척했다. 그래도 이런 큰 게이트에 국정원이 빠질 수야 있나. 여기도 우병우에 ‘직접 보고’하는 우병우 사단이 포진해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국정원 마크와 미르재단의 마크가 ‘길라임’의 용 문신과 유사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나름 관심을 받는 중이다. 그래도 가장 얄미운 건 경찰 조직이다. 1년 전 물대포로 농민 한 명을 죽여 놓고, 이제 와서 ‘비폭력’을 외쳐대는 꼴이라니.
박근혜와 공모자들2. 정부기관
정부기관들도 게이트의 당사자다. 비선실세의 입김 한 번이면 돈도 내놓고 정책도 쭉쭉 뽑아냈다. 부패와 비리의 핵은 문화체육관광부였다.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을 중심으로 최순실과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 문화계 비선실세 차은택과 선을 대며 부패의 사슬을 만들었다. 장시호의 한국동계영재센터에 특혜 지원을 했고, 최순실의 회사 더블루K에 에이전트 계약 특혜를 갖다 바치며 최 씨 일가의 이권 개입을 도왔다. 차은택의 은사와 선배를 문체부 장관과 산하기관 원장으로 들였고, 박근혜-차은택의 ‘문화융성’ ‘창조경제’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어디 문체부뿐인가. 국가보훈처와 국민안전처, 외교부, 미래창조과학부까지 온통 비선실세와의 관계와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순실 일가의 단골 성형외과에 15억 원을 특혜 지원한 산업통상자원부도 혼이 정상적이진 않다. 뭐니 뭐니 해도 ‘갑’ 중의 ‘갑’은 국방부다. 게이트가 터지자마자 ‘안보위기’를 운운하더니, 이 혼란을 틈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했다.
박근혜와 공모자들3. 재벌
재벌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상당한 재미를 봤다. 게이트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삼성은 삼성물산과 구 제일모직의 합병, 지배구조 개편과 같은 해묵은 숙제를 해결했다. 삼성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도 공을 들였다. 최순실 측 독일 회사에 컨설팅 계약을 맺고 280만 유로를 지원했다. 계약 당시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이 직접 독일로 건너가 최순실과 구체적인 지원 방식과 금액 등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더해 2020년 도쿄올림픽 승마 지원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해 정유라에게 4년간 186억 원을 단독 후원하려 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SK와 CJ는 그룹 회장의 사면이라는 덕을 봤다. 면세점 인허가 문제가 걸려있던 롯데와 두산, 한화도 정부의 입김이 간절했을 것이다. 부영 역시 K스포츠재단 투자 논의 과정에서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 수사는 시작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구본무 LG 그룹 회장, 최태원 SK 그룹 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한화 김승연 회장과 SK수펙스 김창근 의장, 손경식 CJ 그룹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이들은 100만 명이 넘는 민심이 광장에 모인 주말, 비공개로 검찰을 다녀갔다. 검찰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770억 원의 대가성 뇌물을 바친 이들을 각별히 대접했다. 이 수사는 과연 한 톨의 진실이라도 밝혀낼 수 있을까. (워커스 26호)
신나리, 윤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