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변주한다. 음악을 하고 시를 쓰며 커피를 내린다. 뮤지션과 이리카페 대표, 시인으로 살아낸다. 김상우는 ‘3호선 버터플라이’와 ‘허클베리핀’에서 음악을 했다. 13년 전, 처음 이리카페의 문을 열어 읽고 보고 듣고 쓰는 사람들이 마음 편히 머물 곳을 마련했다. 꾸준히 자작시를 쓰다 2014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에 당선해 등단하기도 했다. 현재 밴드 ‘몸과 마음’ 드러머로 음악을 하고 일주일에 한 편 시를 쓰며, 여전히 커피를 내린다.
“최선을 다해 만들어 보겠습니다!” 카페에서 손님이 커피를 주문하면 상우 사장님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커피 한잔에 뭘 그렇게까지… 좀 과하다 싶은 그 말에 듣는 사람들은 피식 웃고 말지만 나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말인지를 안다. 그건 ‘마음’이다. 그가 손님을 대하는 마음, 카페를 꾸려가는 마음, 시를 만나는 마음,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 어쩌면 저 말은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가 그의 마음에게, 마음아, 최선을 다하자… 하고.
나는 김상우의 마음을 오래 지켜보았고, 많이 받았고, 배웠고, 온전히 느꼈으므로 그의 ‘마음’에 대해 궁금한 것이 없다. 마음은 마음끼리 서로 내통하는 법이다. 그러니 내가 궁금한 건 고작 이 사람의 건강 같은 것. 건강해야 이 사람이 계속 최선을 다해 손님에게 커피를 내주고, 시를 쓰고, 드럼을 두드리고, 좋은 아들 노릇, 오빠, 삼촌 노릇을 하고, 일요일이면 운동장에 나가 그렇게 좋아하는 공차기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인터뷰는 자체가 잘못되었다. 지금부터 나누는 우리의 말들이 이 사람 마음의 얼만큼을 보여줄 수 있을까.
양양(양) 일요일인데 공차고 왔나. 요즘 건강은 어때,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김상우(김) 어제 카페 늦게 마쳐서 못 찼다. 요즘 몸무게가 5kg은 빠진 것 같은데.
양 앞으로 어떻게 살 건가. 이리카페 일은 어떻게 됐나.
(현재 이리카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고 있다. 월 200만 원대 초반이었던 이리카페 월세는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이마저도 3월 새로운 건물주가 들어서며 계약유지와 임대료 모두 예측할 수 없다.)
김 이 친구(이리카페)가 동물 1이라고 생각하고, 이 아이가 어떻게 이겨내는지 나도 지켜보고 싶다.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가 그런데, 나도 모르는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있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쓰고 있는 말 있지 않나. 그 안에서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지. 만약에 실패를 하더라도 거기엔 다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양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사장님들은 당황스럽고 괴롭고 화도 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사실 걱정보다는 믿음이 크다. 이리카페가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자리 깔고 마음 나누면 되지 않을까 싶다
김 우리가 처음에 가졌던 청년 정신이 있지 않나. 나나 많은 친구들이 그때처럼, 그때의 태도로 처세한다면 극복할 수 있는 빛이 보일 거라 생각한다. 이 태도를 많은 사람에게 전염하고 전염 받는 게 이리카페의 목적이 아닐까 싶다.
양 맞다. 이리카페는 친구가 정말 많으니까, 뭐든 함께 할 수 있을 거라 본다. 얼마 전에 공연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새로 꾸린 밴드 연습하러 가는데 너무 좋다고. 뭐가 그렇게 좋은가, 음악이?
김 음악 속에 들어가 있으면 몰랐던 부분이 밖에 나와서 깨달아지는 부분이 있다. 음악 하는 사람들 보고, 또 좋은 음악을 들으면 예전에 왜 내가 게을리 했었을까 아쉬운 마음도 든다. 그러다 막상 현장 속으로 들어가면 또 아쉽다, 나는 왜 이렇게 못할까, 하고. 음악은 앙상블이지 않나. 음악은 합을 맞추는 일인데 나는 이 ‘꼬라지’가 너무 좋다. 합주실에서 쉰내 나게 땀 흘리는 태도가 재미있고, 그런 것도 어떻게 보면 처음 마음과 닮은 것 같다. 이 동네에 처음 와서 지하실에서 땀 흘리면서 연습하고, 쉬는 시간에 종이 커피 한 잔씩 타 먹고 했던 즐거움이 있었다. 지난 밴드 ‘몸과 마음’ 이후로 3년 만에 다시 하는데, 나이도 들고 예전처럼 잘 되지도 않지만, 음악 속에 들어가 있을 때 드럼을 칠 때 너무 좋다. ‘깨벗고’ 음악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양 요즘 시는 안 쓰나. 시를 쓸 때 마음은 뭔가
김 등단 이후로 일주일에 한 편씩 쓰려고 한다. 숙제처럼. 막 쓰다가 이번에 카페 일 터지면서 지금은 릴렉스 됐다. 시를 쓴다기보다는 시를 찾아다니는 것 같다. 시집을 보며 시를 찾는 게 아니라 한 줄짜리 문장들을 만들어서 메모장에 적어놓으며 시를 완성해 가는 뭐 그런 거다.
양 시를 쓸 때 가장 김상우다워 보인다. 카페에서는 일하는 친구들, 손님들 챙기고, 드럼 칠 때에는 멤버들과 화합해야 하지만 시를 쓸 때는 오롯이 혼자 자기를 들여다보지 않나. 예전에 써서 보여준 ‘너는 내 이름’이 어쩌면 김상우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 같다.
너는 내 이름
내가 내 이름을 처음 보았을 때 이름도 나를 보았다
처음 우리는 서로가 맞는지 서로 눈을 비벼 고쳐보았다
우리가 진짜 맞는지
나를 시작하던 너
동대문 창신동 아파트 창틀 위에 솜틀집 솜먼지가 아른거렸다
아른거리면 미열이 나던 그때 내 이름은 이마를 만져주었다
나는 내 이름이 얼마나 예쁜지 자주 울었다
그래서 엄마는 우리를 빨랫줄에 자주 널었다
빨랫줄에 걸리면 입에다 바람을 불어주던 내 이름
이름이랑 나는 빨랫줄에서 흔들거렸다
까르르 웃으며 점점 선명하게 아득하던 우리
창밖에서 우리가 마르는 동안 엄마는 척척해했다
그리고 그녀는 깨진 창을 닦았어
내 이름을 부르며 창틀에 걸려 실 땀을 흘리는 그녀
나의 성인 김(金)을 만들기 위해 아빠는 유리를 팔았다
그는 단칸방에서 엄마에게 유리에 베인 손으로 조그만 김을 주었다
출생신고서에 이름을 쓴 그날 너는 커서 뭐가 되겠나라고 아빠가 말했다
온갖 金에 베인 아빠는 낮엔 일을 하고 밤엔 잠을 잤다
나는 낮엔 잤고 밤엔 울었다
유리를 자르듯 매일 울어서 나는 아빠를 닳게 했다
아빠가 방안에 굴러다니면 우리는 그걸 밟고 다녔다
창이 깨지던 날 남은 창틀이 그를 온갖 매달았다
내 이름을 부르며 조각난 유리로 금이 간 창밖을 만들던 그
우리의 무늬를 보며 앉아있는 너
상우야 너는 창밖을 보는구나
나는 너의 창밖
나는 너를 알아서 너의 창가에 앉아 손을 흔드네
어느 날, 우리는 서로 어떻게 지워질까
상우야 상우야
서로 상(相)에 벗 우(友)
서로 서로 친구하라고 붙인 이름
부르지 않으면 남 같은 너
고맙고 미안한 액자
쓸쓸한 우리 집
_김상우
김 “상우야 상우야” 하고 내 이름을 남에게만 듣지 않나. 화장실에서 똥 싸다가 정말 나 밖에 없는 공간에서 내가 내 이름을 부르는데 약간 슬프고 애처로워 보이고 무기력해 보이더라. <너는 내 이름>은 그런 시다. 나를 가끔 생각해보면 제삼자 같은 느낌이 든다. ‘아, 너도 조금 있으면, 언젠가는 죽음으로 들어갈 텐데, 그때는 ‘상우’라는 이름과 작별해야 하는데, 그땐 얼마나 슬플까 싶은 거다.
양 시인, 카페 사장, 아들‧오빠‧삼촌, 드러머, 풋살 모임 회원, 누구일 때 가장 속상한가
김 아들이고 사장이고 음악 하는 연주가이고 오빠이기도, 좋은 친구이기도 한 나를 다 포괄하는 것이 시 쓰는 사람이다. 시를 쓰는 어떤 사람이 음악도 하고 장사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시심은 내가 살고 있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때, 그 태도를 결정 지어주는 성경책 같은 거다.
양 애용하는 시즌별 단어가 있지 않나. 예전에는 희생, 평화, 뭐 그런 거였는데, 요즘의 단어는 어떤 것인가
김 요즘은 ‘스킨십‘이다. 이리카페 사태가 터지고 나서 그 말을 자주 쓰고 있다. 카페가 원래 스킨십 하는 곳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게을리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알파고 때문에 난리인데, 사람들에게는 틈이란 게 있다. 외로움이라는 틈. 그 틈을 이제 기계들이 채워주고 있다. 그래서 그걸 가지고 각자의 방으로 점점 들어가는 것 같다. 그 기계들로 그 순간에는 재미있고 좋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슬퍼지고 외로워질 텐데. 우리가 스킨십 하는 것에 대해 마음을 열어놓지 않으면 앞으로 큰일 나겠다 싶다.
양 올 봄에는 어떤 작업(직업)을 우선으로 하게 될 것 같나
김 자작 시집인 《뒤에 나비》를 이번 여름 즈음 만들까 싶다. 이번이 7집이다. 한동안 못 만들었는데 내가 첫 마음을 계속 까먹어서 그랬다. 그래서 처음 마음 생각하면서 다시 만들어 보려 한다.
양 카페에 ‘마음’이라는 단어가 걸려 있는데, 어떤 마음으로 살고 싶은가
김 너무 낭만적이게 사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 ‘꽃을 밟을 때 부끄러워할 줄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 도와주고, 어른이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 이런 말인데 이 당연한 말들이 지금 이 세상, 이 시대에서는 너무나 낭만적인 말이 되어버렸다. 이런 말을 하는 게 바보 같이 느껴지곤 한다. 삶을 낭만적으로 살 필요도 있지만 그렇다면 조금 더 전략과 전술을 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양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 누구에게든 하고 싶은 말
김 나는 시를 믿는다. 내가 갖고 있는 진실을 내가 모를 수도 있다. 내가 먹고 싶은 건 사실 짜장면인데, 중국집에 가서 짬뽕을 시켜 먹을 수도 있다. 이상의 시를 보면 오른손으로 보면 거울이 왼손으로 악수해준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이 거울에 비친 나처럼 내가 갖고 있는 마음이랑 실제가 완전 반대일 수도 있다. 겸손하게 하고 부끄럽게 하고 자숙하게 하고, 약간 천천히 하게 하고. 슬프게 하지만 그 슬픔은 너무 깊고 숭고해서 영원히 보듬어 주고 싶은 슬픔이다. 시를 갖고 있는 건 내가 모르는 나의 진심을 가르쳐 주는 것을 뜻한다. 진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 시라고 생각한다. 시는 나도 모르는 어떤 진실을 가르치는 것이다.
양 나는 사장님이 그런 예쁜 마음을 이어가려면 무엇보다 건강했으면 좋겠다. 풋살도 계속 열심히 하시고
김 모든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집에 갈 때 비도 맞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많은 힘든 것들이 있겠지. 혼자 가는 길이 쓸쓸하고 외로울 수도 있겠고. 모두 잘 가야할 텐데. 어딘가 큰 집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정말 아름다운 집이 있을 거라고.
우리는 손을 한 번 꼭 잡아 보고 이야기를 마쳤다. 열 마디 말보다 이 ‘스킨십’이 마음에 더 가까웠다. 나는 앞으로도 이 사람에게 궁금한 건 건강 같은 것뿐일 것이다.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조금 외롭기도 하겠지만, 걱정 없다. 건강만 하다면 우리는 다시 만나 손을 잡으면 되기 때문이다. 마음은 마음끼리 그렇게 내통할 것이다.
김상우
시인, 이리카페 사장, 밴드 ‘몸과 마음‘ 드러머, 은총이의 삼촌
양양
음악가. 김상우와는 마음을 전하는 사이다. 10년 전 즈음, 홍대에 이리카페가 생겼을 무렵 양양은 이리카페에서 커피를 만들고 음악을 그렸다. 2장의 정규 앨범과 1장의 EP 앨범, 에세이집 《쓸쓸해서 비슷한 사람》을 출간했다.
인터뷰 양양 / 정리 신나리 기자 / 사진 정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