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파티 끝? ‘긴축발작’의 시작인가?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유동성’은 곧 돈을 의미한다. 그래서 보통 ‘유동성 파티’라 함은 저금리 정책 등의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돈이 넘쳐난다는 걸 의미할 때 쓰곤 한다. 그런데 최근 ‘유동성 파티가 끝났다’라는 표현들이 일간지 경제면에 불쑥 등장하기 시작했다. 독일, 미국, 일본의 국채 금리가 급상승하고, 채권가격이 급락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 이유는 세계금융시장의 뒷배가 돼주었던 미국 중앙은행(Fed)에 이어 유럽중앙은행(ECB), 국 중앙은행(BOE) 등이 줄줄이 통화긴축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유지돼 온 각국의 양적완화(QE) 정책이 다시 회귀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5년 전, 당시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 의장의 긴축 시사 발언 뒤, 세계 금융시장이 순간 요동치면서 일대혼란에 빠졌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를 계기로 이후 ‘긴축발작’이라는 용어가 생겨났을 정도인데, 과연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긴축발작’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현재 계획대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거둬들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중앙은행들이 사들던 장기국채 등의 채권자산을 되팔기 시작하면, 채권가격 하락과 시중금리 상승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채권자산에 많이 투자했던 기관들의 손실은 눈에 보이듯 뻔하다. 부채를 많이 안고 있는 기업과 개인들 역시 금리인상에 따른 비용 부담은 더욱 커질 것임이 자명해 보인다. 그래서 파티는 이제 끝났다고 언론들이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한 가지 든다. 과연 우리에게 ‘파티’라는 게 있었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년 동안 우리 주변에 돈이 넘쳐나 흥겨운 파티를 즐겼던 기억은 없다. 이 말대로라면 우리들의 호주머니는 돈들로 그득 그득 해야 할 것이다. 과연 무슨 파티가 우리에게 있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알다시피 그런 일은 없었다. 장부상에 숫자로 매겨지는 채권가격과 주식가격만 늘어났을 뿐이다. 우리들의 월급통장 숫자는 전혀 늘지 않았다. 저축은커녕 매달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가계도 부쩍 늘었다. 더구나 아이러니 한건, 이런 통화긴축으로 시중금리가 상승하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계층이 생계형 부채가 많은 일반서민들이라는 점이다. 전체 가계부채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커다란 사회문제처럼 보이진 않을지 모르나, 하루 벌어 먹고사는 당사자 개개인에겐 아주 치명적이다.
이처럼 양적완화에 의한 완화적 통화정책의 수혜는 특정집단에 집중됐지만, 반대로 긴축적 통화정책의 향은 사회에 광범위하게 미친다. 과연 ‘긴축발작’없이 안정적인 정책변경이 가능할지 우려가 되는 대목이다.
그런데 왜 이런 통화긴축 시나리오가 제기되는 것일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는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장의 전반적인 상황이 안정됐고, 심지어 주식시장의 경우 과열양상을 보이며 중앙은행의 완화적 퉁화정책에 대한 조정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중앙은행 입장에서 경제가 호전되고 있는 상황이라 판단하고, 다음에 나타날 경기침체에 대비해 미리 통화정책을 원상복귀 시키려는 선제적 대응 때문이다. 쉽게 말해 금리도 미리 좀 올려놓고, 양적완화도 미리 거둬들여 놔야 다음에 벌어질 경기침체에서 완화적 통화정책을 사용할 여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중앙은행가들의 이런 선제적 정책 대응에 대해 딱히 욕을 하긴 힘들다고 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주어진 매뉴얼에 따라 충실히(?) 실행하고 있을 뿐, 민의에 의해 선출된 권력도 아니고, 그저 임명된 금융관료일 뿐이라고 말이다.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정책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향은 매우 심대하다. 돈 줄을 쥐고 있다는 것은 매우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가 겪는 삶의 고통 대부분이 돈 때문이지 않은가? 그래서 이들을 그냥 보통 금융관료처럼 볼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앙은행의 정책 변화가 야기할 후과에 대해 어떤 대응이 필요할지 생각해야 한다. 그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로만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다. 경제를 움직이는 두 개의 수레바퀴 중 하나가 통화정책이라면 다른 하나는 재정정책인데, 우린 지금까지 재정정책에 대해 제대로 된 얘기를 해보지 못했다. 통화정책이라는 수레바퀴가 열심히 돌다가 속도를 줄이는 현 시점에서, 그동안 별 움직임이 없었던 재정정책이라는 수레바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재정긴축의 기나긴 고통과 재정정책의 전환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재정정책이 큰 화두로 떠오른 시기는 2009년이다. 당시 새롭게 발족한 G20 체제에서 전 세계적인 경기부양을 목표로 공동 대응의 결의가 이뤄졌다. 그 이후 급전직하하던 실물경제는 차츰 회복됐고, 금융시장도 안정됐다. 그러다가 2010년을 지나면서 그리스 재정위기를 계기로 재정정책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번엔 정반대로 국가부채 위기가 거론됐고, 대부분의 나라들을 재정긴축으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심지어 우리나라처럼 국가부채 비율이 양호한 나라들까지 부채위기를 지적하면서 균형재정을 강조했다.
그런데 지금 전 세계적으로 재정긴축에 지친 대중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격변은 이런 대중의 불만과 연동돼 있다. 심지어 7년간 긴축의 고삐를 당겼던 국의 보수당 정부 각료들 사이에서도 긴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얼마 전 있었던 대형 화재 참사, 꼬리를 무는 테러 사태 등으로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지킬 사안에 돈을 덜 쓰고 있다는 의문이 대중적으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보수당 정부의 총선 패배도 재정긴축에 대한 대중의 분노, 더 많은 정부 지출과 임금 인상을 향한 염원 등이 뒤섞인 결과다. 이런 정치적 갈등은 이탈리아에서도 부상했는데, 이탈리아 렌치 총리는 유럽연합이 묶어 놓은 재정규율을 완화하거나 유예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미 이런 정치적 갈등을 감지한 IMF는 작년부터 재정정책 확대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도 재임시절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만으론 한계가 명확하다며 재정정책의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볼 때, 여전히 재정긴축 혹은 균형재정 이데올로기는 깨지지 않고 있다. 정치적 관성이 아직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 했던 국의 메이 총리도 재정긴축의 중심 기조를 변경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아마도 재정긴축의 고통은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짚어볼 대목이 있다. 과연 재정긴축론자들의 주장처럼 각국의 재정상황이 나아졌는가? 재정적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다만 차입규모가 좀 낮아졌을 뿐이다. 여전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많고 대중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선출된 권력은 재정정책을 포기할 수 없다. 우리나라도 박근혜 정부 시절 그토록 균형재정을 강조했었지만 국가부채는 계속 늘어났다. 사회가 차츰 고령화되면서 발생하는 복지지출의 자연증가분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재정긴축 혹은 균형재정론은 현실에 근거한 정책이 아니다. ‘작은 정부’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의 신화적 이념에 가깝다. 이제 현실에서 이런 ‘작은 정부’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지고 있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는 이 속담이야 말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세계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일 것이다. 국 노동당 대표 코빈이 주장하는 “민중을 위한 양적완화”라는 표어가 아마도 이 속담을 가장 현실성 있게 설명해주는 정치적 슬로건이지 않을까 싶다.
반면 비교적 양호한 국가부채 비율, 경상수지 흑자, 외환보유고 세계 7위의 우리나라에선 “재정은 어디서?”라는 말로 모든 복지정책 논의를 ‘을들의 싸움터’로 만들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곤 한다. 최근 교육 및 안전 분야 국가 인력확충 문제에서 제기되는 이런 균형재정론자들의 공격은, 재정정책의 전환기 속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세계적 조류와 비교해 한참이나 뒤떨어진 얘기다. 다시 한 번 이들에게 우리의 속담을 또박또박 들려주고 싶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