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아(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평범한 일상이던 어느 날 오후,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갑작스럽게 쏟아졌다. 마을에서는 그 어떤 경고방송도 없었다. 빠른 속도로 물은 허리에서 시작해 목, 머리까지 차올라 온 마을을 휩쓸고 갔다. 상상할 수 있겠는가? 댐이 무너져 당신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려버린 그 순간을.
“어떤 경고 없이 물이 덮쳤어요. 처음에는 엉덩이까지 물이 차더니 그다음에는 목까지, 그다음에는 머리까지 물이 차올랐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최선을 다해 헤엄쳤을 뿐이에요. 제 배 속에 아이가 있었거든요.” – 야이(Yae), 라오스 댐 사고 생존자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 현실에서 발생했다. 지난 7월 23일 라오스에서 발생한 세피안 세남노이 댐 사고 이야기다. 라오스 정부에 따르면, 이번 사고로 현재까지 39명이 사망하고, 97명이 실종, 6천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8월 14일 기준). 그러나 지난 13일부터 사고 지역에 또다시 폭우가 쏟아져 실종 수색 작업은 중단된 상태다. 계속되는 비로 언제 다시 수색 작업이 재개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더불어 댐 사고로 쏟아진 물이 국경을 맞댄 캄보디아까지 덮쳐 5천 명 이상의 주민들이 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례적이고 비극적인 사고가 대체 왜 일어난 것일까?
송두리째 빼앗긴 일상
“죽은 사람들이 물에 떠 있는걸 봤어요. 살면서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에요. 어떤 경고도 없었어요. 좌우할 것도 없이 갑자기 모든 방향에서 물이 쓰나미처럼 몰려왔어요. 저는 살기 위해 애썼어요. 하지만 언니랑 다른 가족들을 잃어버렸어요. 17세인 언니는 임신한 상태였어요. 언니를 찾으러 다시 갈 거예요. 아직 살아있을지도 몰라요. 얼마나 춥고 배고플까요?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어요. 남아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 마이(Mai, 13살), 라오스 댐 사고 생존자
“댐이 무너진다는 경고를 듣지 못했어요. 적어도 몇 시간 전에 미리 경고가 있었다면, 안전한 곳으로 피할 시간이 있었을텐데….” – 쨘샤이(Chansai), 라오스 댐 사고 생존자
SK건설과 함께 세피안-세남노이 댐 시공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서부발전이 지난 7월 25일 국회에 제출한 ‘라오스 세남노이 보조댐 붕괴 경과보고’에 따르면 지난 7월 20일 보조댐 중앙부에 침하가 발생했고, 7월 23일이 돼서야 지방 관리들에게 ‘폭우로 보조댐이 매우 위험한 상태여서, 하류 지역 주민들을 대피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라오스 댐 생존자들은 물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기 전, 그 어떤 경고도 없었다고 진술했다. 예고도 없이 단 몇 시간 만에 탈출해야 했던 주민들의 긴박함을 우리는 상상해보기 어렵다.
수력발전 사업에 집착해 온 라오스 정부
이렇다 할 수출품이 없는 라오스에서 전력 수출은 수출 품목의 1/3에 해당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현재 라오스는 총 46개의 수력발전소를 가동하고 있으며, 여기서 생산되는 전기는 600만 명의 라오스 국민이 충분히 쓰고도 남는 양이다. 그럼에도 라오스 정부는 태국 등 인접 국가에 전력을 수출하기 위해 54개 수력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해 2020년 말까지 100개를 가동, 지금보다 4배 많은 양의 전력을 생산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른바 ‘아시아의 배터리’ 전략이다.
한국 정부 역시 라오스 수력발전소 사업에 한국 기업이 진출할 수 있도록 라오스 정부에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왔다.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라오스 정부에 한국 기업이 수자원 협력을 할 수 있도록 당부했고, 2015년 12월 황교안 전 국무총리 역시 한국 기업이 세폰3 수력발전소 사업 계약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노골적으로 요청했다. 이로 인해 세피안-세남노이 댐은 SK건설과 한국서부발전이, 한국수력발전, 한국수자원공사와 포스코건설이 각각 세폰, 세폰3, 남닉에 수력발전소 건설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고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라오스에서는 3년 연속 댐과 관련한 사고가 발생했다. 2016년 12월 라오스 남동부 세콩주에서 상업운전 중인 쎄까만 3댐의 터널이 붕괴했고, 지난해 9월 북동부 씨앙쿠앙주에서 남아우 수력발전댐이 무너졌다. 2년 연속 댐 사고가 발생하자 당시 라오스 국회는 청문회를 열어 수력발전 프로젝트에 대한 안전기준 강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또다시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고를 포함해 지금까지 라오스에서 발생한 댐 사고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거대 자본과 정부가 개발이익을 챙겨가고, 개발로 인한 위험은 고스란히 지역 주민이 떠안았다. 댐에서 생산한 전력 90%는 라오스가 아닌 태국 등 인근 국가로 수출된다. ‘아시아의 배터리’가 되겠다며 무분별한 수력발전 사업을 추진해온 라오스 정부는 경제적 이익을, 시공사 기업들은 개발이익을 얻게 되는 사업이었다. 댐 건설 지역에 사는 지역주민들은 개발사업으로 인한 이익은커녕 생태계 파괴와 강제이주로 인한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그것도 모자라 가족을 잃고, 생활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라오스 댐 사고 생존자인 라비(Lavee)는 묻는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죠?”
누구의 책임인가
국제환경단체들은 오랫동안 세피안-세남노이 댐 건설을 비롯해 라오스의 수력발전소 건설을 반대해왔다. 무분별한 댐 건설로 인한 환경파괴와 강제이주 등으로 주민들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으며, 환경사회영향평가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채 사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업은 한국수출입은행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이 최초로 지원한 민관협력사업(PPP)으로 공적개발원조(ODA) 955억 원이 지원됐다. 당시 기재부는 ‘원조’와 ‘수출’을 결합한 새로운 복합금융 모델이라며 사업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ODA가 무엇인가? 개도국의 빈곤 퇴치와 인도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기금이다. 이런 ODA 사업에서 지역 주민 수천 명이 생활터전을 잃고, 수백 명이 실종, 수십 명이 생명을 잃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고를 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는 매우 실망스럽다. 사업 시행 주체인 기재부와 한국수출입은행은 사고에 대해 그 어떤 대응도 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라오스 세남노이 보조댐 사고 관련 관계기관 대책회의에도 참여하고 있지 않다. 또한, 참여연대가 해당 사고에 대한 민원을 두 기관에 제기했을 때도, 국토부와 산업부에 민원을 이송시켰을 뿐이다.
한편, 시공사인 SK건설과 한국서부발전은 사고 원인을 각각 다르게 발표하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SK건설은 폭우로 인한 보조댐 ‘범람’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한국서부발전은 폭우로 인한 보조댐 ‘붕괴’로 설명하고 있다. 정확한 사고원인 규명이 필요한 이유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
2013년 유엔은 이미 “한국 정부의 예산이 투여되는 사업이 아닌 개별 기업의 투자 사업이라 하더라도 인권 침해가 발생하거나 발생 우려가 있다면 한국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으며,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 첫 번째인 ‘인권 보호를 위한 국가의 의무’를 강조했다. 이에 한국 정부와 해당 기업은 댐 사고 책임의 직·간접 당사자로서 책임있는 조치를 취해야 마땅하다.
현재 라오스 정부는 사고 원인 조사를 전담할 2개 위원회를 가동하기로 했다. 보조댐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사실확인(Factfinding) 위원회’와 감사기구 최고 책임자 감독 아래 댐 건설 및 관리 담당자를 대상으로 법 위반사항이나 붕괴를 유발했을 수 있는 변칙과 부정이 있었는지를 조사한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협력을 요청했다. 한국 정부는 책임 있게 조사에 임해 입지 선정, 설계나 시공에서 잘못된 것은 아닌지, 환경사회영향평가가 제대로 시행되었는지 등을 조사하고 그 원인을 밝혀야 한다. 또한, 진상조사가 단순히 사고의 원인을 밝히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제대로 된 복구와 재발방지, 추가적 피해예방을 마련하기 위해 피해지역 주민 대표들과 현지 NGO, 한국과 국제 시민단체들이 참여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라오스 현지 주민들은 이번 사고로 많은 것을 잃었다. 언제 다시 자신들이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언제고 다시 댐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현재 SK건설과 한국 정부는 복구보다는 긴급구호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 지역 복구와 재건은 긴급구호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피해지역 복구와 재건 지원을 위한 장기계획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지난 8월 8일 라오스 정부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현재 완료했거나 진행 중인 모든 수력발전소 사업에 대한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하고, 신규 수력발전소 사업은 전면 보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라오스 정부의 댐건설 계획 보류와 잠정 중단 계획은 선언적인 조치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해당 계획을 발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북부 빡레이 댐 컨설테이션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지금이라도 책임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진상 조사와 재건복구를 위한 장기계획 수립은 물론 민관협력사업(PPP) 활성화 정책이 가진 한계와 문제점을 점검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과 기업윤리를 준수하지 않은 채 수익에만 몰두하여 사업을 추진할 경우, 협력대상국의 빈곤을 해소하고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개발협력 사업 취지를 해칠 수 있으며, 지역 사회의 환경을 파괴하고 주민들의 삶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왔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기업이 개발협력 사업 참여 시 지켜야 할 행동 강령이나 제도를 마련하지 않았다. 이번 사고로 지역사회의 요구와 필요를 고려하지 않고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이뤄진 개발협력사업이 실제로 많은 이들의 생존권과 목숨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업 초기부터 지역주민과 현지 단체들이 제기했던 우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면 이러한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대규모 개발사업이 미치는 환경적, 사회적, 인권적 악영향을 예방하고 지역 주민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 장치인 세이프가드 이행을 전면 의무화해야 한다. EDCF 세이프가드에 따르면, 세이프가드는 유용한 지침이나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다. 필수적이지 않은 세이프가드는 유명무실하다. 이행 책임을 협력대상국에 둔다고 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이행 여부를 관리·감독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미 착수한 사업일지라도 세이프가드를 준수하고 있는지 전수 조사를 해야 마땅하다. 나아가 한국의 세이프가드가 실제 개발현장에서 주민들의 인권과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작동하는지, 개선돼야 할 부분은 없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사업타당성 보고서, 환경·사회영향평가 등 관련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함은 물론이다. 그것이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적인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책임 있는 조치다.
최악의 사고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며, 실종된 분들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기원한다. 그리고 이 사고로 많은 것을 잃은 라오스 주민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워커스 46호]
[각주]
이 글의 생존자 진술은 2018년 8월 6일자 ASIA Times, stories from survivors of Laos dam collapse>기사를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