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현필(국제민주연대)
‘노동착취 공장에 반대하는 미국대학생연합(United Students Against Sweatshops)’은 최근 나이키 반대 캠페인1)을 시작했다. 학생들이 자국의 유명 스포츠 브랜드에 대한 반대 캠페인을 시작한 이유는 나이키가 올해 들어 인도네시아 의류 생산을 전면 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30년 가까이 나이키의 의류 생산을 담당하던 인도네시아의 의류공장에서 일하던 3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은 이번 나이키의 철수로 인해 실업 위기에 처하게 됐다. 그리고 나이키를 위해 상당수의 의류〮잡화 생산 공장을 운영한 것은 한국기업이다.
한국공장 노동자들의 불안한 미래
한국 의류기업인 호전실업이 운영하는 ‘가호(Kaho)’ 2공장 노동자들은 10월 초, 회사로부터 양자택일을 강요받았다. 퇴직금을 받고 공장을 떠나거나 현재 공장에서 차로 1시간 반 이상 걸리는 다른 공장에서 계속 일할지를 선택해야만 했다. 노동자들은 2006년부터 나이키의 주문을 생산하면서 이곳에서 자신의 청춘을 보냈다. 그래서 이들은 어떤 것을 선택하든지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회사가 차라리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 했다. 필자를 포함한 기업인권네트워크2) 조사단이 나이키 철수에 따른 인도네시아 한국기업 조사를 위해 자카르타를 방문해서 만난 가호 노동자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선 정리해고에 따른 퇴직금이 더 높기 때문에 이미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공장을 떠나갔다. 그러나 500여 명은 회사가 원하는 대로 순순히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이 여성노동자들이 지금보다 1시간 반이 더 걸리는 통근시간을 각오한 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현실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해진 물량을 못 채웠다는 이유로 뙤약볕에 4시간씩 서 있어야 했던 굴욕과 폭력에 맞서 싸우며 건설한 노동조합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기도 했다.
가호의 경우, 아직 500명의 노동자가 남아서 싸우고 있다면, 나이키 가방을 생산하던 가나안 그룹의 ‘드림센토사(Dream Sentosa Indonesia)’는 2017년 12월에 공장을 폐쇄한 후 노동자들에게 사직을 강요했다. 만약 노동자들이 사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한국 공장주는 야반도주할 것이고, 그러면 노동자들은 한 푼도 건지지 못할 것이라는 협박과 함께였다. 이에 따라 6천 명의 여성노동자들이 공장을 떠났다. 그러나 36명이 이를 거부하자 회사는 이들이 사직프로그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소했다. 다행히도 법원은 올해 7월 노동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3)
나이키의 신발을 제외한 의류 및 잡화 물량 철수는 가호와 드림센토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한국기업의 노동자들도 불안과 실직의 공포 앞에 놓여 있다.
한국정부는 나이키에 항의할 수 없는가?
이번 나이키 물량 철수 사태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한국공장 대부분은 생산량을 맞춘다는 명목으로 각종 인권침해와 임금체불 및 야반도주를 자행해왔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방관만 하고 있다. 아니, 이런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싼값에 물건을 받으려는 나이키와 이를 위해 마름역할을 해온 한국기업의 강압적인 노무관리 속에서도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최저임금 인상을 이뤄냈다. 그러자 나이키는 물량철수라는 칼을 휘두르고 있다. 표면적으로 경영합리화를 위해 물량주문을 중단한다는 것이 나이키의 입장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은 나이키의 이런 행태가 인도네시아 노동조합과 노동권을 짓밟는 것이라고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그 분노는 나이키뿐만 아니라 한국기업에도 향하고 있다.
2011년 UN이 채택한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에 따라, 한국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해외 한국기업에 개입해 중재에 나설 수 있다. 더욱이 미국의 대학생들과 인도네시아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과거보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존중한다는 한국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최소한 진지하게 인식하고 접근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이 한국기업이 인도네시아 노동법을 어기며 피해를 입혀온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 주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거대 브랜드의 횡포에 말 못 하는 한국기업들을 위한다는 핑계로라도 정부는 항의하는 척이라도 제발 해주길 기대한다. 그 조차도 하지 않으면서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의 핵심 국가인 인도네시아와의 우호와 협력을 말하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케이팝과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진정한 이웃은 한국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실직 혹은 이에 준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손을 내미는 것이다.[워커스 48호]
[각주]
1) http://usas.org/nike
2) 해외진출 한국기업의 인권침해 및 기업과 인권 문제에 대응하고자 2008년에 결성된 네트워크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법센터 어필, 공익인권변호사 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국제민주연대, 민주노총, 좋은 기업센터, 환경운동연합이 참여하고 있다. 사무국은 현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맡고 있다.
3) 자세한 내용은 인도네시아 노동단체 LIPS가 작성한 칼럼 참조. http://www.khis.or.kr/spaceBBS/bbs.asp?act=read&bbs=p_file&no= 8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