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요? 글쎄요. 마을사람들이 별 말을 안 해요. 뭔가 기대하는 것 같지도 않고요. 정말 나아질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어요. 제가 보기에 사실 문제는 맞벌이를 해도 여전히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예요. 정말 이를 악물고 사는데도 말이죠. 푸드뱅크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 많아요. 10년 전엔 경제위기니까 시간이 좀 지나면 나아지겠지 했죠. 하지만 웬걸요.”
폴라 스펜서 씨가 15일 브렉시트 합의문에 관한 영국 의회 표결을 앞두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말했다. 스펜서 씨는 런던 남동부에 위치한 캔터베리 외곽의 소도시 타닝턴 마을센터에서 일한다. 그런 그는 마을 사람들이 생계에 바빠서 브렉시트에 대해선 별 말이 없다고 했다. 최근 브렉시트 이슈로 영국뿐 아니라 세계가 술렁인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 지역에는 소위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 저임금 노동자들이 많다. 여기서도 역시 브렉시트 찬성표가 쏟아졌다.
하지만 브렉시트 찬성 유권자들을 먼저 잊은 건 영국 정부였다. 이들까지 챙기기엔 테레사 메이 정부가 사실 너무 바빴다. 그의 아픈 손가락은 무엇보다 글로벌 최대 금융자본의 허브 시티오브런던(City of London)(1)이기 때문이다.
EU 탈퇴를 의미하는 브렉시트의 관건은 자유시장 정책인데,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합의에 먼저 동등성 원칙을 적용하기로 합의해 시티오브런던의 자리를 최대한 보장해두었다. 영국이 EU로부터 ‘금융 패스포트’(2) 적용을 보장받지 못했지만 이 원칙은 자본이동의 자유를 우선하는 미국, 일본 등과 EU가 맺고 있는 협약이어서 메이 정부가 기존 정책을 고수할 경우 현재 개방돼 있는 EU와 큰 마찰 없이 이를 관철할 수 있다. 특히 메이 정부가 자본이동의 자유를 협상의 주된 요구사항으로 삼고 있기도 하거니와 브렉시트 이후 새로운 자유무역을 추진할 계획이어서 브렉시트 협상안이 시티오브런던에 비관적이지는 않다. 메이는 지난해 중순 실패한 협상안에서도 자본이동을 전적으로 보장하는 계획을 냈었다. 국내 산업은행 미래전략연구소도 지난해 브렉시트가 현실화된 이후에도 런던이 ‘전 세계 금융 연결통로’의 중심지 기능을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을 내놨다.(3) 금융계에선 오히려 런던 금융자본에겐 독일이 주도하는 EU에서 벗어나 미국 앵글로색슨계와의 특별한 관계를 구축하는 게 더 이득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대로 노동자가 이동할 권리는 상당히 제한돼 ‘엑시트’된다. 과도기 중 유예기간이 있더라도 궁극적으로 EU 인구는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제3국의 지위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메이는 이러한 자신의 레드라인에 올인하고 노딜 브렉시트(4)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협박하며 보수당 강경파와 야당뿐 아니라 EU 지도부를 흔들고 있다.
한편, 영국 기업들은 하원이 메이의 플랜B를 가결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노딜 브렉시트가 되면 자본파업에 가까운 기업 철수를 경고하며 매일 새로운 압력을 내놓고 있다. 유럽 최대 항공기 제조업체인 에어버스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영국에서의 투자 및 생산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이슨, 소니, 포드 등 글로벌 기업들에서도 철수 계획이 새어나오고 있다.
좀비정부의 줄타기…메이 총리, “내 사망진단서는 내가 쓴다”
역사적으로 자유 시장 경제를 지지해온 영국 보수당은 시티오브런던의 금융기관과 가까웠다. 지난 2015년 총선에서도 보수당이 승리하자 런던 증시의 FTSE 100지수가 2.3%포인트나 급등하며 그들의 승리를 환영했다.
그러나 이 같은 보수당 정부가 쉽게 자리를 꿰차고 있는 건 아니다. 특히 2008년 세계대공항 이후 그들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힘겨운 줄타기를 해왔다.
당시 영국도 세계 대부분의 나라처럼 경기침체와 긴축으로 사회적 불만이 고조돼 정치적 위기가 보수당을 먹어치우려 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독립 이슈나 영국독립당 등 민족주의 우파의 부상을 비롯해 보수당을 위협하는 다양한 이슈가 쏟아져 나왔다. 무엇보다도 노동당 내 좌파 제레미 코빈이 대표로 선출되는 등 좌파세력이 무섭게 성장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이 같은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던진 영국 보수당의 승부수였다. 보수당은 2012년 지방선거에서 노동당에 참패했고, EU 탈퇴를 주장하며 성장한 영국독립당이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12.6%까지 획득하자 위기에 빠졌었다. 더구나 당내서도 반EU 진영의 반발이 거세지기만 했다. 그러자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보수당)가 2015년 총선을 앞두고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공약했던 것이다. 결국 보수당은 당시 총선에서 승리하며 영국독립당을 주저앉혔고 가까스로 노동당의 추격도 따돌렸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통과되면서(5) 보수당은 다시 위기에 빠졌다. 그러면서 캐머런 총리는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이후 집권한 테레사 메이 총리는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에 무게를 실어달라며 2017년 조기총선을 실시해 세력 확대에 나섰다. 하지만 이 또한 의도와는 다르게 총선 결과가 헝의회(hung parliament)(6) 로 귀결되고 노동당까지 바짝 추격해오면서 다시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보수당은 민주연합당을 연정에 사실상 참여시키고(7) 한편에선 긴축 중단 노선을 발표하며 유권자들의 불만을 따돌렸다. 그리곤 결국 브렉시트 합의안이 의회의 압도적인 반대로 무산되긴 했지만 제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의 불신임안을 물리치고 주도권을 다시 쥐었다. 좌파의 집권을 막기 위한 우파의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8)그리고 이제 다시 메이는 의회가 부결한 원안을 거의 그대로 들이밀고 있다.
브렉시트 스펙트럼
메이 총리는 애초 브렉시트에 반대했다. 하지만 2016년 7월 총리로 취임하고부터는 “브렉시트는 브렉시트를 의미한다”(9)며 노선을 바꿨다.(10) 아무리 시티오브런던의 정부라 할지라도 다수를 위한 것처럼 시늉해야 할 때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메이 정부가 1년 반 동안의 협상 후 내놓은 주요 내용은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을 탈퇴(백스톱(11) 포함)하고, 새로운 자유무역협상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의 결과처럼 EU를 탈퇴하기는 하지만 결국 도로 자유무역으로 귀결되는 셈이었다.
메이의 이 같은 협상에 대해 노동당은 분명한 반대를 표명했다. 금융자본 소수를 위한 메이와 정반대 노선인 셈이다. 노동당은 애초 브렉시트 협상이 일자리와 생활수준 향상, 국제주의와 연대, 평등을 위한 협상이 돼야 한다고 밝혀 왔다. 지난 총선에서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한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밝힌 맥락과 뜻을 같이 한다. 그래서 브렉시트를 계기로 EU가 반대하는 전략산업 재국유화 등 신자유주의적인 영국 경제를 재편하겠다는 포부도 밝혀 왔었다. 결국 메이의 협상안이 윤곽을 갖추자 노동당은 이를 ‘나쁜 협상’이라며 반대했다.(13)
그런데 이러한 협상안을 놓고 노동당은 엉뚱한 데서 내홍을 치르고 있다. 소위 ‘피플스 보트(People’s Vote)’(14)라는 2차 국민투표 여부를 놓고 당내 의견이 갈가리 찢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노동당 일부 의원들은 보수당 등 우파 정치인들과 함께 2차 국민투표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2차 투표는 한편으로는 토니 블레어 전 노동당 대표와 같은 노동당 우파, 다른 한편으로는 제레미 코빈을 지지하며 입당한 노동당 신규 당원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노동당 지도부는 조기 총선, 브렉시트 재협상 원칙을 고수하며 2차 투표에 반대했다. 하지만 브렉시트에 찬성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당내에 잠재해 있던 갈등 속에서 메이의 노딜 브렉시트 협박 공세에 밀려 협상안 지지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피플스 보트 둘러싼 노동당의 내홍
“썩은 체제를 구하는 게 좌파의 과제는 아닌데”
제레미 코빈에게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소위 ‘피플스 보트’였다. 그를 비롯한 노동당 지도부는 이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당 의원 70명 이상이 공식적으로 2차 투표를 지지하고 있다. 당원의 지지의사는 더욱 강하다. 최근 퀸메리런던대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동당 당원의 72%가 2차 민투표를 찬성했고, 반대는 18%뿐이었다. 2차 투표 지지층은 브렉시트 의제가 노동자계급에 적대적으로 구성돼 EU 외부에서 바닥으로의 질주를 촉진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경제적 악영향을 이유로 토니 블레어 전 노동당 대표와 같은 신자유주의자들도 이를 지지한다.
현재 노동당 지도부가 2차 투표에 찬성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우선 노동당이 잉글랜드 중북부 등 브렉시트 찬성 지역에서 우세하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지역 의원들이 노동당이 2차 투표를 공식화할 경우 당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힌 것도 그 때문이다. 한편, 코빈을 포함해 노동당 원내 다수가 전통적으로 EU에 비판적이라는 것도 지도부가 2차 투표에 반대하는 주요 이유다. 미 과 러시아 대외 계나 중동 문제 등에서 전통적으로 계승된 대외정책 때문이다. 그러나 코빈을 지지하며 노동당에 대거 입당한 젊은층은 주로 사회적 불평등에 반대하며, 자유롭게 이동 가능한 유럽에서의 보편적인 좌파운동을 지지한다. 그래서 노동당 풀뿌리 당원 모임 모멘텀(Momentum) 다수도 2차 투표를 지지하며 지도부를 압박했었다.
2차 투표 여부는 노동당을 지지하는 노동운동 내에서도 논란이다. 노동당과 제휴하는 영국 3대 노총 중 유나이트(Unite), 유니슨(Unison)은 반대하지만 조합원 다수는 2차 투표를 원한다. 2차 투표를 찬성하는 조합원 규모는 유나이트 경우 59%, 유니슨은 66%에 달했다. 한편, 영국일반노조(GMB)는 운송노동자를 대표하는 민중운수노조(TSSA)를 포함해 많은 소규모 노조들과 함께 2차 투표 실시를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실 백스톱 때문에 메이의 동맹 내에서도 잡음이 크다. 보수당 내 강경파는 백스톱이 있으면 EU 탈퇴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리고 민주연합당은 잉글랜드로부터 고립된다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메이 불신임안 표결에서처럼 코빈에 맞서 언제라도 바리케이드를 쌓을 우파들이다. 더욱이 백스톱이라는 쟁점은 브렉시트의 계급적 쟁점을 지역이나 민족으로 이동시켜 놓기에 꽤 적당한 소재이기도 했다.
노딜 브렉시트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협상 공세는 EU도 흔들고 있다. EU 지도부는 원래 메이 총리에게 완강한 입장을 취해왔다. 다른 EU 회원국에 미칠 파장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수년 간 여러 지역에서 EU 탈퇴나 개혁 움직임이 힘을 받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장 클로드 융커 EU집행위원장 등 EU 지도부는 영국 총리가 그의 협상안을 통과시키고 유럽 대기업의 이익을 보호할 것이라고 믿었다. EU와 영국 경제 모두에 대한 타격이 될 게 뻔하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EU 지도부는 메이가 노딜 브렉시트 배제를 고수하자 영국 브렉시트 연기 가능성에 회의적 의견을 내놓기는 했지만 다시 논란에 빠져 있다.
브렉시트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러면 과연 브렉시트는 애초 무엇을 의미했을까?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 1년 뒤 여론조사기관 영국사회태도(British Social Attitudes)는 브렉시트가 이주노동과 난민에 대한 광범위한 우려의 결과였다고 밝혔다. 영국 국립사회연구센터(NCSR)과 공동으로 수행된 이 조사는 약 3천명을 대상으로 했다.(15)
물론 여러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를 인종주의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는 희박하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2014년 이슬람국가(IS) 확산, 2015년 11월 파리 테러와 시리아 출신 등 난민의 증가가 가장 고조된 2016년 6월 진행됐다. 이주노동자 수 또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다. 2015년 영국 내 외국 출생자의 수는 846만 명으로 20년 사이 2배로 폭증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브렉시트를 택한 유권자층이 도시빈민과 지방, 저임금, 고연령, 저학력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녔다는 점이다. 이들은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바닥으로 질주해야 했던 당사자인 경우가 많다. 영국의 EU 가입을 기점으로 확산한 세계화 속에서 금융자본과 대기업의 이익을 방어하고 노동권과 사회안전망을 빼앗아온 EU, 그리고 영국 집권 보수당과 제3의 길을 외쳤던 노동당 우파의 최대 피해자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독립미디어플랫폼 <오픈데모크라시>에 따르면 1980년 영국 지니계수(16)는 0.26에서 현재는 0.38로 크게 악화됐다.(17)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메이의 플랜B가 하원에서 통과할 공산이 크다. 그는 브랙시트 국민투표가 던진 주사위에 우파동맹을 발판으로 새로운 자유무역을 위해 베팅했다. 그러나 노동당의 발판 위에는 브렉시트에 찬성한 저임금 노동계층의 유권자 다수 보다는 분열된 당내 세력만 있는 것 같다. 노동당이 노딜 브렉시트로 협박하며 새로운 우파의 세계를 건설하려는 메이에 당할 재간이 없는 게 다름이 아니다. 그러나 썩은 체제를 구하는 것이 좌파의 과제가 될 수 있을까? 메이는 아래로부터의 압력 없이 자신의 권력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거리에서의 정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노동당은 브렉시트를 찬성한 이들과 만나야 한다. 그게 다수를 위한 정치가 아닐까. [워커스 51호]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서…한 항만노동자의 속사정
애드리안 보일런은 기분이 좋지 않다. 그는 평생 이사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그리고 이제는 브렉시트 때문에 다시 속이 탄다. 스무 살에 그는 일자리를 찾아 아일랜드 더블린 남쪽에 위치한 고향 위클로를 떠나 영국 리버풀로 갔다. 거기 항구에서 일자리 하나를 얻었다. 그때가 1994년이었다. 그런데 1년 후 항만회사가 정리해고를 했다. 노동자들은 28 월 동안이나 파업 투쟁을 했지만 일자리를 되찾을 수는 없었다. 그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북쪽에 위치한 항구 리스로 다시 일자리를 찾아 갔다.
하지만 보일런은 계속 일을 해도 살기가 어려웠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임대료와 물가는 계속 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10년 전 아일랜드가 경제위기에 빠지자 임대료가 떨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래서 그는 더블린에 작은 방 하나를 빌려 다시 이사를 했다. 하지만 경제가 회복하자 부동산 값부터 다시 또 치솟았다. 그래서 그는 좀 더 싼 전셋집을 찾아 2년 전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국경 동쪽 칼링포드의 만에 위치한 아일랜드령 그리노어로 옮겨 왔다. 그런데 이제 브렉시트로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국경을 설치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시끄럽다. 보일런의 속이 타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보일런은 매일 아일랜드 그리노어에서 일자리가 있는 북아일랜드 그린캐슬로 차를 몰고 간다. 그는 “브렉시트로 국경이 생기면, 분명히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보일런의 일자리는 북아일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워렌포인트 항구에 있다. 이 소도시에선 브렉시트에 3분의 2가 반대했다. 이들은 1998년 성금요일의 벨파스트 협약으로 시작된 평화가 새 국경으로 사라지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 런던 하원이 브렉시트 협상안을 거부하면서 우려는 더욱 늘고 있다. 의원 다수가 아일랜드의 ‘백스톱’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워렌포인트에선 1979년 분리독립주의의 아일랜드공화 군(IRA)이 영국 군 차량을 공격해 영국군 18명이 죽고 30명이 크게 다친 사건이 있었다. 영국 하원이 합의를 하지 못하고 3월 29일 EU를 떠나면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 사이에는 국경이 생겨야 한다. 국경이라고 해봤자 감시카메라와 경비초소 정도라고 하지만 주민들은 뿌리 깊은 영국 식민 지배로 인한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의 충돌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다고 걱정한다. 최근에도 신IRA가 북아일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데리에서 폭탄 사건을 일으켰던 것처럼 말이다.
보일런은 “다시 군인들이 순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그의 동료들처럼 북아일랜드인 다수는 브렉시트를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투표 결과가 존중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보단 런던의 정치인들이 아일랜드든 북아일랜드든 더 신경 써야 한다는 게 보일런의 생각이다. “지금 브렉시트 때문에 갑자기 우리가 악당이 됐지만 (…) 일자리 때문에 더 이사하고 싶지만 않을 뿐입니다”라고 그는 현지를 취재한 유럽 일간 <타즈>에 말했다.
▲ “거짓말은 이젠 됐다”는 문구를 들고 한 여성이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보수당이 2차 투표를 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