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놀고 자고 먹기, 이대로 좋은가
얼마 전, 빨랫거리가 쌓여서 동네 빨래방을 찾았습니다. 여러 대의 대용량 세탁기와 건조기가 돌아가고, 생각보다 꽤 빠른 시간 안에 처리가 가능하더군요. 요즘은 집마다 대개 세탁기를 구비하고 있지만, 개인 빨래를 돌리러 빨래방에 오는 인근 거주자들도 꽤 많았습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탁기를 쳐다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빨래 노동은 충분히 사회화 가능성이 있구나.’ 민간업체가 돈을 받고 하는 것이긴 하지만, 전통적인 가사노동의 하나였던 빨래는 가정과 개인의 손에서 점차 멀어질 수 있는 거죠.
빨래만이 아닙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일상생활에 요긴한 것들을 사회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널려 있습니다. 가령, 식사를 생각해보죠. 여전히 집에서 밥을 해 먹는 분들도 많지만, 갈수록 밖에서 사 먹거나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경우가 늘어납니다. 특히 요새는 각종 앱을 사용해 직접 가본 적도 없는 가게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배달 대행 플랫폼이 식당과 소비자를 연결해줍니다. 개인이 집에서 ‘밥 차리는 일’에 속박될 필요가 없는 조건들이 갖춰지는 거죠.
물론, 이 조건들은 지금 자본주의라는 한계에 갇혀 있습니다. 시켜 먹거나 외식을 하려면 때때로 주머니 사정에 비춰 부담스러운 지출을 하게 될 수도 있고, 플랫폼 기업은 돈을 벌지만 배달 노동자들은 땡볕이든 눈비가 몰아치든 최소한의 노동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시간을 맞추기 위해 위험하게 거리로 내몰리죠. 다른 차원의 문제도 있습니다. 전체 취업자의 20% 이상이 자영업자인 이 나라에서, 몇 년 못가 문을 닫는 음식점이 부지기수죠. 음식·숙박업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는다’고 거론되는 대표적인 취약업종에서 빠질 날이 없습니다. 경쟁자는 많고, 자본 규모는 작은 데다 생산성도 낮다는 거죠.
그런데 음식업이든 숙박업이든,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하거나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종입니다. 음식점은 앞서 언급했으니 숙박업소에 대해 생각해보면,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 혹은 친구들끼리 하루 이틀 방 잡고 놀고 싶을 때, 막차가 끊겨서 집에 가기 어려울 때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이유로 우리에겐 크고 작은 숙박시설이 필요합니다. 요새는 여러 숙박업소 정보를 알려주는 앱도 있고, 나아가 ‘공유경제’라고 하면서 공간을 빌려주는 사업도 늘어나고 있죠. 말은 ‘공유’라지만, 실제로는 누군가의 소유물을 일시적으로 대여하고 돈을 받는 형태입니다. 이렇듯 정보와 공간은 넘치는데, ‘저렴한 가격’에다 ‘안심할 수 있는 곳’을 찾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죠.
오늘도 많은 사람이 식당과 모텔을 찾아다닐 겁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기술 발전을 활용해 수익을 벌어 들이는 (플랫폼) 기업들이 생기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망하거나,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도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늘어 납니다. 그래서 생각해봤습니다. 노동자와 소비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밥집과 놀집, 바로 사회주의가 제공해 드립니다.
#2. 사회주의에서 밥 먹기: 배달 가능
들어가기에 앞서, 한 가지 지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회주의에서는 자영업 종사자가 지금보다 많이 줄어들 거라는 점입니다. 이 나라에서 자영업 비중이 이렇게 높은 것은 그만큼 마땅한 일자리가 적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통계로만 보면 자영업 진입 이후 소득이 오히려 줄어드는 경우가 많고 3~5년 이상 버티지 못해 폐업하는 비율도 대단히 높지만, 일자리를 잃거나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별수 없이 자영업으로 몰리죠.
사회주의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을 대폭 줄이면서 한편으로는 일자리를 그만큼 늘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의 직장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 삶을 만들어나가게 될 겁니다. 지금은 8시간(대개는 그 이상) 동안 하나의 직장에 매여 있지만, 사회주의에서는 충분한 보수를 받으면서 한 직장에서 가령 4시간만 일하고 남는 시간에는 자신이 원하는 다른 직장에서 근무하거나 아니면 자기계발에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일자리가 없어 미래가 불안정한 자영업에 뛰어들어야 하는 위험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거죠(사회주의에서 일자리 문제에 대해서는《워커스》 46호에 실린 “자본주의가 약속한 직업선택의 자유, 얼마나 누려보셨나요?” 기사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이제 사회주의 음식점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사회주의에서 여러분은 어렵지 않게 ‘공영식당’을 찾아볼 수 있게 될 겁니다. 공영식당이라고 해서 똑같은 메뉴로 단순한 음식만 제공할 거라는 오해는 금물입니다. 간단한 요깃거리 부터 채식과 코스 요리까지, 식당을 찾는 사람들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다채로운 식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거대하고 획일적인 공간에 직사각형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다양한 분위기와 디자인을 연출하도록, 여러 종류의 공영식당을 둘 수도 있는 거죠. 가벼운 브런치, 실용적인 한 끼 식사, 무게 잡는 데이트용 레스토랑까지 얼마든 가능합니다.
이 공영식당들을 운영하고 통제하는 주체는 그 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더불어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들과 인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곧 식당을 주로 이용하는 소비자들입니다. 이들이 지역 공영식당에 대한 일종의 운영위원회 같은 걸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메뉴와 비용은 시장과 이윤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소비자들의 욕구와 식당 노동자들의 충분한 보수를 직접 고려해 당사자들이 함께 결정하는 거죠.
누구나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으면서도 자원을 낭비하는 도덕적 해이를 막고, 그러면서도 식당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일한 만큼의 대가를 지급할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고안해낼 수 있을 겁니다. 예컨대 공동체 구성원들의 기본적인 식사권을 보장하기 위해 일정 부분은 지역 공동체나 국가가 보조하고, 소비자가 직접 지불하는 비용은 낮추면서도, 음식을 많이 남기면 페널티를 부과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또, 재료비나 조리 시간 등 요리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경우에는 이를 일정하게 가격에 반영하도록 할 수도 있죠.
예컨대, 공영식당에서 마라탕을 메뉴에 추가했으면 좋겠다는 소비자들의 의견이 다수 제기됐다고 해봅시다. 지역 공영식당 운영위원회에서는 제기된 수요와 메뉴 추가에 드는 비용(재료비, 노동자 보수 등)을 고려해 기존 공영식당에 메뉴를 추가할지, 혹은 마라탕 전문 공영식당을 새로 만들지 등을 결정하게 될 겁니다. 거꾸로, 공영식당에서 일하던 중화요리 담당 노동자들이 신메뉴로 마라탕을 내놓아보자고 먼저 의견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을 상대로 일정한 테스트 기간을 거친 뒤, 마찬가지로 운영위원회에서 그 결과(만족도, 소요 비용 등)를 놓고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죠.
한편, 야식뿐만 아니라 일반 식사도 배달로 주문하는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공영식당이 물리적인 공간을 많이 차지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가령, 미국에는 ‘가상 식당(virtual restaurant)’이라고 해서 별도의 식사 공간 없이 조리시설만 확보하고 배달 중심으로 음식을 공급 하는 가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여기에서 배달 플랫폼 업체들이 한편으로는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올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배달 노동자들 에게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제한다는 건데요. 사회주의에서는 발전된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소비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이로운 방식이 얼마든 가능합니다. 예컨대 공영화된 ‘공공 배달 플랫폼’을 도입한다면, 그간 플랫폼 업체가 중간에서 수취하던 이윤을 온전히 노동자들의 보수와 더 나은 서비스 개발에 투입할 수 있죠. 이 공공 배달 플랫폼 역시 소비자와 노동자가 함께 운영하고 통제하면서 서비스의 질과 노동의 대가를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게다가 지금은 배달음식 상당수가 비용 절감 목적으로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나 식기를 사용하는데요. 사회주의에서 공영식당과 공공 배달 플랫폼은 재사용 용기 활용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게 될 겁니다. 용기를 회수하고, 설거지하는 데 노동력이 드는 건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마찬가집니다. 다만, 자본주의에서 이 비용을 ‘이윤을 깎아 먹는’ 것으로 여겼다면, 이윤이 아니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에서는 ‘꼭 필요한 비용’으로 책정한다는 차이가 있는 거죠. 이 노동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식기 수거와 세척을 기계화하는 기술 개발에 공동체 차원에서 적극적인 투자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지금처럼 한 골목에만 수십 개씩 들어찬 음식점들을 모두 공영화할 수는 없을 겁니다. 상당 기간 공영식당과 민간식당이 함께 존재하겠죠. 하지만 사회주의 공동체는 지금처럼 이들 민간식당을 ‘알아서 성공하거나 파산하도록’ 방치하지는 않을 겁니다. 한편으로는 앞서 언급했듯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여러 양질의 일자리들을 제안하고, 혹은 지역공동체와 함께 운영하는 공영식당 시스템으로 편입하도록 권유하겠죠. 강제하지 않되, 공영식당이 소비자와 노동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우월함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점차 이 새로운 체제로 들어올 수 있도록 안내하게 될 것입니다.
#3. 진정한 ‘공유경제’, 공영 모텔로!
밥집을 해결했다면, 이제 놀집을 고민할 차례죠. 서두에서 거론했지만, 요새는 이른바 ‘공유경제’라면서 개인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공간을 돈 받고 빌려주는 사업이 점점 늘어나더군요. 이건 ‘대여’일 뿐이지, ‘공유’가 아니죠. 한편, 이 수많은 ‘대여 가능한’ 방 가운데 옥석을 가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앱으로 확인했던 것과 실제 모습이 너무 다르거나, 가격이 부담스럽거나, 최악의 경우 불법촬영이나 성폭력, 혹은 안전사고와 맞닥뜨리지는 않을지 걱정스럽기도 하죠.
사회주의에서는 공영식당처럼 ‘공영 모텔’이나 ‘공영 게스트하우스’ 같은 공공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될 겁니다. 특정 개인이 소유하면서 숙박으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지역공동체가 진정한 의미에서 공유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죠. 운영과 통제의 원리는 공영식당과 유사하며, 숙박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이 함께 주체로 참여합니다. 공영 모텔·게스트하우스는 엄연히 공공시설로 분류될 겁니다. 즉, 몰카 같은 성범죄나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지역 사회와 공적 기관의 철저한 검증을 수시로 받게 되죠. 또한 공공 책임하에 충분한 안전·관리 인원을 배치해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도, 지금 존재하는 모든 모텔이나 숙박 업소를 공영화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당장 서울 시내 골목골목만 돌아다녀도 모텔이 넘치는데, 그걸 다 공영 모텔로 만드는 게 사회적으로 효율적인 자원 활용 방법은 아니죠. 그렇다면 공영 시설이 아닌 곳을 이용할 땐 여전히 찜찜해 하거나, 불안에 떨어야 할까요? 우리에겐 이미 존재하는 ‘숙박 플랫폼’이라는 기술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치 ‘공공 배달 플랫폼’을 만드는 것처럼, ‘공공 숙박 플랫폼’을 만들 수도 있는 거죠. 예컨대, 국가 전체 차원에서 소비자들을 대표하는 ‘소비자 평의회’가 이 플랫폼을 운영하는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민간자본이 플랫폼을 운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투명하고 공개적이며 공적 검증을 거치기 때문에 신뢰성을 높일 수 있죠. 각 숙박시설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이윤을 얻는 게 아니라, 숙박시설을 이용 할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안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이 공공 플랫폼에 등록되려면 공영 모텔처럼 엄격한 공적 검증을 거치도록 하는 거죠.
이 점검 업무는 혹시 모를 ‘같은 지역 식구 감싸기’를 피하기 위해, 다른 지역의 소비자 평의회에서 교차로 검증하도록 하고, 이 절차에서 합격하는 시설만 공공 플랫폼에 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사회주의에서 공영 모텔이나 게스트하우스는 무작정 만드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필요를 따져보고 판단하게 됩니다. 가령 어떤 지역은 인근 거주자들이나 비교적 가까운 지역 시민들이 편의상, 혹은 가볍게 하룻밤 놀고 갈 목적의 숙박시설을 주로 원할 수도 있고, 어떤 지역은 주로 멀리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주 소비층일 수 있죠. 그에 따라 해당 지역 공동체에서는 공영 숙박시설의 공급량과 그에 따른 비용을 추산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비용에는 거기 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충분한 보수를 반영해야겠죠. 지역 내부 수요가 많다면, 주로 해당 지역 구성원 자신들이 서비스 비용을 부담하겠지만, 타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주 이용객이라면, 국가 차원에서 해당 지역의 공영 숙박시설 운영비용을 보조할 수도 있을 겁니다.
누군가는 ‘하다 하다 식당, 모텔까지 공영이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필요로 하고, 그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이 이미 존재한다면, 사회 주의에서는 얼마든지 구성원 자신들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공동체가 책임지고 그 서비스를 제공할 겁니다. 사회적 필요와 그에 따르는 비용을 직접 고려하면서 소비자와 노동자 스스로 운영의 주체가 되기에, 낭비는 줄이고 만족도는 높이면서 노동에 충분한 대가를 보장하게 되죠.
놀고 자고 먹는 것은 인간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사회주의는 ‘어떻게 놀고 자고 먹으라고’ 획일적으로 지시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중요한 인간사 에서 지금까지 각자의 책임과 부담으로 넘겼던 것들을 덜어냄으로써, 각자가 더 자유롭게 인생을 즐기도록 할 따름입니다.[워커스 58호]
신좌파가 사회주의인지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