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다시 불길이 타올랐다. 스페인 정권이 카탈루냐의 자치권을 사법 폭력으로 억누르자 카탈루냐인들은 저항권을 발동했다. 최근 시위에는 카탈루냐인 다수가 참여하거나 지지하고 있다. 특히 10대와 20대 청년들의 활동이 격렬하다. 이들의 시위는 최근 홍콩 정부의 송환법에 맞서 타오른 홍콩 시위에 화답하듯 텔레그램에서의 시위 조직과 공항 점거, 총파업 등과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다. 최근 시위를 두고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고 표현한 카를레스 푸지데몬 전 카탈루냐 주지사의 말처럼, 카탈루냐인들의 시위는 총선을 앞둔 스페인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카탈루냐의 저항은 10월 14일 스페인 대법원이 2017년 카탈루냐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주도하고 독립을 선포한 9인에 대해 9-13년의 징역형을 선고하자 시작됐다. 징역형을 모두 합하면 100년에 가까울 만큼 정치 사안에 있어선 유례없는 중형이었다. 그러자 카탈루냐의 사회, 노동, 민족 등 다양한 부문이 항의하는 시위를 조직했다. 선고를 앞두고 텔레그램과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도 다양한 항의 행동이 논의됐다. 텔레그램 채널 ‘쓰나미 민주주의(Tsunami Democra`tic)’에는 며칠 사이 36만 명 이상이 가입했다. 곧이어 사람들은 바르셀로나 엘 프라트 공항을 비롯해 철도와 도로를 점거했고 총파업으로까지 나아갔다. 지난 달 18일 치러진 총파업 집회에는 53만 명이 참가했다. 동시에 5개의 거대 집회와 행진도 열렸다. 스페인 정부는 저항하는 이들을 향해 최루탄뿐 아니라 고무탄도 발사했다. 정부가 무력 진압에 나서자 저항하는 이들의 대응도 격렬해졌다. 이 시위가 시작된 지 일주일 만에 600명이 부상을 입을 만큼 상황은 심각했다. 총파업은 지난 2년간 4번 열렸지만 이번만큼 참여도가 높은 것은 처음이었다.
시위대는 수감된 정치인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구속력 있는 국민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 시위는 카탈루냐 독립운동에 대한 탄압으로 점화됐지만, 시위가 이렇게 격렬해진 이유는 독립 문제가 전부는 아니다. 애초 카탈루냐는 고유의 카탈루냐어를 사용하는 등 역사적으로 고유한 문화를 형성해왔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이러한 카탈루냐를 억압했고 특히 프랑코 독재 하에서 가장 큰 시련을 겪었다. 거기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스페인 정부의 정책 실패는 지금의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지금의 위기는 2010년, 스페인 대법원이 카탈루냐 의회가 자치 정부의 지위를 규정하는 1979년 법을 개정한 것을 좌초시키면서 시작됐다. 대법원은 스페인어보다 카탈루냐어의 중요성을 강조한 법령과 카탈루냐를 ‘지역’이 아니라 ‘네이션(nation)’이라고 서술한 내용을 문제로 봤다. 이를 계기로 카탈루냐 독립을 주장하는 정치 세력이 부상했지만, 이들이 현재처럼 영향력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스페인 경제 위기 후 중앙정부가 실시한 가혹한 긴축정책과 여당 인사의 부패 스캔들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독립을 지지하는 여론이 크게 늘었다.
실제로 스페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시위에는 정부에 불만을 지닌 다양한 이들이 참가하고 있다. 스페인 영자 언론 〈로컬〉에 따르면, 한 시위 참가자는 “나는 분리주의자가 아니라 스페인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견해를 표현했다는 이유로 정치인들에게 중형을 선고한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또 아이다(Aida)라고 자신을 밝힌 한 여성은 “내가 여기서 바리케이드를 쌓고 있을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폭력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경찰 폭력에 우리 자신을 방어하고 있을 뿐”이라고도 말했다. 시위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카탈루냐 변두리 지역 출신의 청년 다수도 참가하고 있다.
총선을 앞둔 현재, 최대 정치 이슈가 된 카탈루냐 문제는 집권 여당인 사회노동당을 막다른 길에 빠트렸다. 야당 모두 정부의 대처를 일제히 비난하고 있다. 여당 내에서도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고 있다. 여당을 포함해 대부분 정당은 카탈루냐 독립에 반대하지만 우익 국민당이나 자유주의 시민당은 현재 카탈루냐가 보유하고 있는 자치권까지 박탈해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반면 좌파선거연합 ‘우니도스 포데모스(UP, 우리는 단결해 해낼 수 있다)’는 카탈루냐인들의 자기결정권을 지지하며 주민투표로 독립 여부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각 정당은 카탈루냐 문제를 민족주의적 여론몰이로 활용하면서 세 대결을 하고 있다. 사회노동당의 선거 슬로건은 ‘지금 스페인’이며 시민당은 ‘전진하는 스페인’, 극우 복스(Vox)는 ‘스페인이여 영원하라’, 신생 좌파정당 마스 파이스(MP)는 ‘더 많은 국가’를 내세웠다. 민족주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은 정치세력은 우니도스 포데모스가 유일하다.
불투명한 의회 정치
사회노동당은 애초 지난 4월 총선 뒤 정치적 막다른 길에서 벗어나고자 새 총선을 공고했지만, 선거 결과는 어느 때보다도 불투명해 보인다. 지난 9월 말 산체스 총리는 우니도스 포데모스와의 연정협상에 실패하고 새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4년간 4번째로 치러지는 총선이지만 이번에도 분명한 승자가 나오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사회노동당의 득표율은 지난번보다 더 적을 것으로 예측된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가 17일 보도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회노동당의 득표율은 27.8%에 그칠 것으로 집계됐다. 이 수치는 지난 4월 총선보다 0.9%p 적다. 스페인에서 단독 정부를 구성하려면 176석이 필요한데, 우니도스 포데모스와 합쳐도 153석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우파 국민당의 득표율은 지난 선거에 비해 증가할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100석 아래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극우 복스는 10.5%로 자유주의 시민당을 앞질러 4위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우파 진영의 연정 가능성도 높지 않다. 극우나 자유주의 우파는 부패 스캔들 문제로 국민당과 연합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좌파 내에서도 분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포데모스 공동 창립자였던 이니고 에레혼은 9월 말 새 정당 마스 파이스(MP)를 창당한 뒤 이번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포데모스 대표와 포데모스를 비판해 온 인물이다. 이러한 에레혼에 대해 엔리께 산티아고 스페인 공산당(PCE) 대표는 마스 파이스 창당이 좌파의 단결을 무너트리려는 시도라고 비판하고 있다. 마스 파이스는 이번 선거에서 스페인 녹색당 에쿠오(Equo)와 연합한다는 방침이다. 에쿠오는 지난 총선에선 포데모스와 연합한 바 있다. 그러나 에쿠오가 낸 유일한 의원인 후안 호제 로페스는 대표단 4명과 함께 이 방침을 거부하고 탈당해 포데모스와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카탈루냐의 저항은 총파업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경찰 폭력과 스페인 정부의 비방 등 억압이 계속되고 있고, 경찰이 시위대에 폭력을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면서 갈등이 해결될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카탈루냐인들도 굽히지 않을 계획이다. 특히 스페인 사법부의 탄압에 대한 분노가 크고 지역에서의 연대 행렬도 적지 않다. 19일 파업 시위에 참가한 24세의 라우라 코네요스는 “우리가 경험한 연대는 아래로부터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라며 “이는 잔인한 폭력으로도 막을 수 없다”고 현지 언론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