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연 기자
“기회 되면 정치해 볼 생각 있어요?” 부모님과 격렬한 정치 논쟁을 벌였다는 청년들에게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하나같이 “없는데요”. 답변 뒤에 따라오는 이유도 비슷했다. 정치할 사람은 따로 있지 않느냐는 거였다. 심지어 “비주얼에 자신이 없다”는 풀 죽은 대답도 들었다. 정치에서 청년들의 목소리가 배제된다고 느끼면서도, 정치 참여는 자신의 몫으로 두고 있지 않았다.
이들이 그나마 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이미 다수의 청년은 정치와 관계 맺기를 포기한 지 오래다. 정치에서 청년 담론은 넘쳐나는데, 정작 당사자인 청년들은 정치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렇다면 이별을 고한 쪽은 어디일까. 청년일까, 아니면 기성 정치일까.
부르기도 민망한 ‘최연소’
언론이 찬양해 마지않는 ‘최연소’라는 타이틀. 정치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이제는 ‘최연소’라는 타이틀도 충분치 않은가 보다. 만 25세의 ‘최연소 얼짱’ 국회의원 후보까지 나타난 것을 보면 말이다. 이를 두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너무 어린 것 아니야? 하지만 잘못 짚었다. 그녀가 ‘어린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을지언정 국회의원을 하기에 어린 나이는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그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해는 1954년. 만 26세였다. 광복 후 70여 년간 깨지지 않은 레전드급 기록이다. 물론 김 전 대통령은 ‘얼짱 후보’는 아니었다. 다만 당시 동아일보가 김 전 대통령을 ‘동안의 미소년, 귀공자 타입’이라고 묘사해 놓기는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선 인터뷰에서 “이따금 젊은이의 대표라는 자부심도 가지지만, 자칫 잘못하다가는 앞으로 젊은이들 길을 가로막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밝혔다.
신기하게도 김 전 대통령의 염려는 현실이 됐다. 그 후 무려 62년간 26세 또는 그보다 어린 국회의원은 한 명도 배출되지 않았다. 어디 그뿐이랴. 1963년 6대 총선 이후 53년간 지역구 국회의원 중 20대는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20대 국회의원 당선자는 반백 년 전 전북 지역에서 당선된 전휴상(민주공화당, 29세 당선) 전 의원이다. 7대 총선부터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자’는 모두 30대였다. 7대와 13대 국회에서 20대 청년 의원이 각각 1명씩 배출됐지만, 모두 비례 대표였다. 19대 총선에서 최연소 지역구 의원 당선자는 문대성(새누리당, 부산 사하구갑) 의원이다. 문 의원의 당시 나이는 ‘최연소’라고 부르기엔 다소 민망한 서른여섯이었다.
백 세 시대라는데,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은 45세 이하를 청년으로 규정하기도 하는데, 20대만 청년이냐, 이런 주장도 일리 있다. 졸업과 취업, 결혼 연령이 모두 늦춰지는 마당에 ‘사회적 나이’도 외면할 수 없는 일. 그렇다면 씨가 마른 20대 의원을 대신해 30대 청년들은 활발한 정계 진출로 한국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13대 총선(1988년)에서 17명, 17대 총선(2004년)에서 23명이던 30대 국회의원 당선자 수는 18대와 19대에 들어 각각 7명과 9명으로 급감했다. 19대 총선 지역구 의원 당선자 중 30대는 고작 2명이었다. 나머지 7명은 비례 대표였다. 20~30대 국회의원 의석은 50대 이상 의원들로 채워졌다.
30대 청년 의원들의 ‘청년 법안’도 실종됐다
국회의원 중에 30대의 젊은 의원들도 있다. 300명 중 9명이면 어떠랴. 그들이 일당백을 하고 있다면 청년층에게도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닐 테다. 그래서 19대 국회에 입성한 30대 청년 의원 9명이 대표 발의한 법안을 청년 실업 청년 주거 청년 부채 청년 노동 등 네 가지로 분류해 분석해 봤다. 이들은 소수 정예 청년 대표 의원단으로서 청년 문제 해결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활동해 왔을까.
우선 35세에 국회에 입성한 이자스민(새누리당, 비례) 의원. 그녀가 대표 발의한 44개의 법안 중 청년 정책 관련 법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출발부터가 이민자를 대표하는 ‘다문화 의원’이었으니 청년 정책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그렇다면 39세에 당선된 김세연(새누리당, 부산 금정구) 의원은 어떨까. 김 의원의 대표 발의 법안 46개에도 청년 법안은 존재하지 않았다. 동갑내기 이언주(더민주당, 경기 광명시을) 의원도 112개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청년 법안은 전혀 없었다. 31세에 의원 배지를 단 김재연(통합진보당, 비례) 의원. 하지만 당 해산으로 청년 법안을 내 보지도 못한 채, 임기 2년 반 만에 의원 자격을 상실했다.
나머지 5명의 청년 의원들은 적게는 1개에서, 많게는 12개까지 청년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큰 의미는 없다. 대다수가 국회의 잠자는 법안으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38세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김상민(새누리당, 비례) 의원이 대표 발의한 청년 법안은 3개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최저임금을 고지하지 않는 사용자의 벌금을 상향 조정하자는 법안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청년 관련 법안 3개는 모두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장하나(더민주당, 비례, 34세 당선) 의원은 1개의 청년 법안을 냈다. 학생이 선택적으로 대학 등록금을 분할 납부하도록 해, 학생과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자는 법안이다. 하지만 법안은 1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이다. 문대성 의원도 청년 법안 1개를 냈다. 지역 청년들에게 고용 서비스를 지원하자는 취지의 법안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3년 가까이 국회 담벼락을 넘지 못하고 있다.
19대 최연소 국회의원인 김광진(더민주당, 비례, 30세 당선) 의원의 경우 지난 5년간 164개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청년 법안 개수도 12개로 압도적이다. 법안 내용도 청년 실업, 노동, 주거, 부채 문제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에 청년 당사자를 포함하는 방안을 비롯해 대학 기숙사 확대를 통한 청년 주거 시설 확충, 수습 직원 최저임금 보장 등을 법안으로 발의했다. 공공 기관 취업 시 대출 실적 등의 자산 상황을 근거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법률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12개의 청년 법안 중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다. 대다수가 계류 중이거나 폐기됐다. 2년여 전에는 사용자가 과도기적 고용 관계 노동자(채용 내정, 시용)에게 해고 사유 서면 통지 의무를 위반할 경우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제출됐다. 하지만 환경노동위원회는 이마저도 ‘사용자에게 과도한 규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청년 의원들이 대표 발의한 청년 법안 18개 중 세상 밖으로 나온 법안은 고작 1개뿐이다. 이재영(새누리당, 비례, 36세 당선) 의원이 발의한 청년 창업자 우대 법안만 정부 법안과 묶여 지난해 2월 공포됐다.
청년 정치, 국회 밖으로 눈을 돌려 볼까?
총선을 앞두고 갖가지 청년 정치와 청년 정책, 그리고 청년 후보들이 쏟아진다. 그야말로 ‘청년 마케팅’ 홍수다. 낯선 풍경은 아니다. 선거철이 되면 언제나 정치권과 국회는 청년을 요란스럽게 소환한다. 하지만 그 속에 진짜 청년들의 목소리는 없다. 청년들의 목소리는 어디쯤에서 맴돌고 있는 걸까.
소수 기득권 정당의 전유물이 된 정치, 청년을 ‘마케팅’으로만 활용하려는 정치에 지쳐 버린 청년들. 사실 이들은 지금도 국회 바깥에서 열심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청년들이 국회의원이 된다고 청년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거대 정당의 청년 정치인 마케팅에 큰 기대는 없다. 19대 국회에서 또 한 번 경험한 바다.
노동당 비례 대표 후보로 출마한 스물여섯 살의 용혜인 씨는 “40세 미만 청년 국회의원이 전체 국회의원의 3% 정도다. 청년 의원이 뭔가를 할 수 있는 여지 자체가 제한돼 있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청년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한다고 해도 기성 정치인이 움직이지 않으면 법안은 휴지 조각이 된다. 청년 의원들이 제출한 법안들이 통과되면 청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20대라는 특정한 세대를 위해 복지 제도 몇 개 만드는 게 청년 정치는 아니죠. 결국에는 한국 사회가 50년간 쌓아 뒀던 불평등의 문제가 청년층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거잖아요”
청년들이 모여 만든 ‘흙수저당’의 손솔 대표 역시 핵심은 부의 불균형을 없애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9대 국회 청년 의원들의 활동은 기성 정치권의 들러리 역할에 그쳤어요. 불공정한 분배가 청년 문제를 만들어 내는 근본 원인인데, 특권층에 속한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있으니 해결이 안 되는 거죠.”
청년 실업 문제는 사회의 불균형한 분배에 따른 것인데도 국회는 매번 재벌들의 편에 선다. 청년들이 기성 정치와 멀어지는 이유다. 장인하 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원장은 “대기업은 정규직과 청년 고용을 더 줄이고 있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는 재벌에 고용의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규제 완화 등 이윤 추구의 길만 더 터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년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오히려 청년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어요. 정말 국회가 청년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