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12월 26일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여성일자리 대책’을 발표했다.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서 7개가 총출동해 만든 이번 대책은 정부가 5년간 지속할 여성고용노동정책 로드맵으로서 ‘제6차 남녀고용 평등 및 일·가정 양립 기본계획(2018년~2022년)’이기도 하다.
△차별 없는 여성일자리 환경 구축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예방 △여성 재취업 촉진이라는 3대 정책과제에서 알 수 있듯, 이번 대책은 여성의 경력단절 원인이 되고 있는 임신과 육아로 인한 고충해소에 초점을 맞췄다. 임신한 상태에서 육아휴직이 가능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하루 2시간의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을 임신 기간 내내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배우자 출산휴가를 2022년까지 최대 10일(현행 3일)로 확대해, 육아휴직급여도 인상해 나간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6일 새 정부 첫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 간담회에서 “심각한 인구 위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 지금”이라며 “여성이 결혼, 출산, 육아를 하면서도 일과 삶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여성노동정책에 없는 것’
이 같은 문재인 정부의 여성노동정책을 노동계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 2월 27일 민주노총, 한국여성민우회 등 5개 단체는 ‘문재인 정부, 여성노동정책에 없는 것!’이란 이름의 여성노동대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선 문재인 정부의 여성노동정책이 출산과 육아로 인한 고충해소 정도에 그쳤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진짜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여성일자리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쇄도했다.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상임대표는 정부 대책에 성평등 철학이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임 대표는 “여성은 ‘경력단절 우려를 해소해야 하는 정책의 수립 대상’ 정도로만 한정될 뿐, 모집, 채용, 업무배치, 승진, 퇴직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의 성차별 시정이 핵심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며 “주로 30인 미만에서 일하며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여성노동자 대책도 부족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서 “문재인 정부에서도 최저임금이 오르면 여성의 저임금 문제가 해결되고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 자리 잡으면 여성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안이한 인식만이 떠돌 뿐, 성평등을 국정 철학으로 대외적으로 천명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대책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여성의 경력단절 요인으로 임신과 육아를 꼽았지만 정작 현장의 목소리는 그것에서 다소 비껴나 있다. ‘서울시 여성의 경력단절 경로 및 영향요인 분석’에 의하면, 여성이 꼽은 경력단절 요인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근로조건(27.5%)’이었다. 결혼, 임신, 출산 등 생애사건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13.7%에 그쳤다. 여성노동정책의 주요 개선 과제가 ‘일자리의 질’임에도,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핵심에서 벗어나 있다.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은 “출산과 육아는 여전히 여성 경력단절의 주요한 요인이지만, 최근 비혼을 선택하는 여성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도 M곡선이 완화되지 않는 이유는 여성일자리가 최초 진입 시기부터 안정적이지 않아서”라고 설명했다.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 구조는 통계를 통해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남성 대비 64.1%(2016년 기준) 수준의 임금을 받는 여성노동자의 현실은 1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2006년의 경우 여성 임금은 남성 임금 대비 61.5% 수준이었다. 또한 여성노동자 중 41%는 각종 차별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신분이다. 이에 반해 남성 중 비정규직 비율은 26.4%로 여성보다 한참 낮다.
임윤옥 상임대표는 “논란이 된 간호사 직종의 ‘태움’ 문화도 간호업무의 전문성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 인력 부족으로 인한 높은 노동 강도와 장시간 노동 등 구조적인 문제이지 ‘여자들이 더 무섭다’는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님은 너무나 당연하다”라며 “여성 집중 업종이면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고 저임금의 원인이 된다는 것 자체가 성차별이며 이는 보육교사, 요양보호사의 낮은 처우의 이유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시간 선택제 일자리’ 확대 정책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시간 선택제 일자리’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경력단절 여성들을 취업시장으로 유인하겠다며 무분별하게 늘려 놓은 일자리다. 문재인 정부 역시 시간 선택제 일자리를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미 현장에서는 시간 선택제 일자리로 인한 ‘직무, 임금, 훈련, 승진 등 노동조건에서의 차별’과 ‘조직 내 인간 관계에서 분리된 집단으로 존재하여 주변화되는’ 문제를 경험했다. 나지현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은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과정에서 단시간 노동자를 필요 없는 노동으로 폄하하며 일자리를 박탈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 필요에 따라 고용을 조정할 수 있는 극도로 유연한 노동이 바로 시간제 노동”이라며 “출산을 전제로 여성노동과 일자리를 설계하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비판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도 “시간제 일자리를 여성들이 스스로 선택하는가의 여부는 그들이 속한 사회의 제도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주관적 인식이 형성되고 그 결과 개인의 선택처럼 표현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제 일자리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여성들이 많다는 사실은 그 사회 속의 여성들 이 돌봄노동의 책임을 여전히 무겁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사회의 시간제 고용 선호 현상에 대해서도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