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총기로 인한 인명살상이 사회문제가 된 지는 오래됐다. 권총뿐 아니라 AK-47이나 AR-15와 같은 반자동소총 구입이 운전면허 따는 것보다 쉬운 나라니 총기 사고나 살상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총기로 인한 사망사건이 교통사고를 접한 반응처럼 무덤덤해진 지도 오래됐다. 그러나 90년대를 거치면서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안전벨트 착용 의무화가 전국적으로 도입된 데에 비해 총기소유 조건은 도리어 완화됐다. 그 결과 21세기 들어 ‘묻지마’ 식의 총기난사 사건과 그에 따른 피해자가 늘어났다.
숱한 대량 총기살상 사건들을 거치면서 이에 대한 정치권이나 사회의 반응도 의례화됐다. 마치 누군가의 죽음을 접했을 때 자동적으로 나오는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라는 표현과도 같이, 총기살상 사건이 있을 때면 으레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 친구들에게 ‘애도의 마음과 기도(thoughts and prayers)’를 보냅니다”라는 표현이 나오곤 했다. 여기저기서 총기문제와 관련해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이들은 곧바로 주류사회의 더 큰 목소리에 의해 묻혀 버리고 세상은 또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돌아가곤 했다.
‘우리 목숨을 위해 행진하라’
지난 2월 14일 플로리다주 인구 3만의 소도시 파클랜드의 한 고등학교에서 대량 총기살인 사건이 일어나 17명의 학생과 교사들이 죽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지역을 대표하는 상하원 의원들이나 주지사, 워싱턴의 정치권에서는 하나 같이 ‘애도의 마음과 기도’를 보냈다. 각본대로라면 미국 사회는 애도와 기도 속에 피해자들을 묻고 또 각자도생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이 학교 학생들은 이대로 이 사건을 묻고 갈 수는 없다는 결의를 보이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사건이 일어난 발렌타인데이 다음 날, 몇몇 학생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NeverAgain(다시는 없게 하자)의 기치를 올리고 총기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이틀 만에 #NeverAgain 트위터 계정은 수만 명이 팔로워했고 학생들은 2월 17일 사건이 일어났던 파클랜드 바로 옆 더 큰 도시인 포트 로덜데일에서 총기살인사건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는 CNN 등 미국 주류 언론을 통해 전국 적인 전파를 탔다. 옆에서 친구들이 총에 맞아 죽는 걸 직접 목격했던, 혹은 자신이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던 학생들의 직설적이고 감동적인 연설은 유튜브 등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각 방송사들은 앞 다투어 이 학생들을 인터뷰 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트위터를 통해 3월 24일 미국 전역에서 ‘우리 목숨을 위해 행진하라(March for our lives)’는 슬로건 아래 전국 동시다발 집회를 열 것을 제안했다. 플로리다의 조용한 소도시 고등학생들이 시작한 #NeverAgain 캠페인이 전국적인 사회운동으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고등학생들이 시작한 #NeverAgain 운동에 총기규제를 위해 활동하던 각종 시민단체들도 힘을 보태기 시작했고 조지와 아말 클루니 부부, 오프라 윈프리, 스티븐 스필버그 등 유명 연예인들도 각각 50만 불씩의 후원금을 보탰다. 미국 주류 언론들의 큰 관심도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뉴스쇼들은 이 학교 학생들과의 인터뷰를 지속적으로 내보냈고 영국 가디언지의 미국판은 3월 24일 집회를 전후해 일주일간 이 고등학교 신문 편집부 학생들에게 신문의 편집을 맡기기까지 했다. 한 달 간의 준비 끝에 치러진 3월 24일 집회는 800여 개가 넘는 미국과 해외 도시들에서 동시 다발로 열렸다. 워싱턴에서만 80만 명이 모여 60년대 시민권 운동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집회로 평가받았고, 그 이후로도 학생들을 주축으로 소셜 미디어를 무기 삼아 전국적으로 활발한 언론작업, 지역 정치인과의 공청회, 동맹휴업 등의 활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바야흐로 미국의 총기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거대한 사회운동의 물줄기가 형성됐던 것이다.
#NeverAgain의 배경들
미국에서 총기살상이 문제가 된 지는 오래됐는데 이번에서야 이렇게 큰 호응을 얻은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우선 지난 20년 사이 급증한 학교에서의 대량 총기살상 사건들을 꼽을 수 있겠다. 1999년 콜라라도주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15명이 죽은 이래 미네소타 레드레익 고등학교, 버지니아 텍 대학교, 커네티컷의 샌디훅 초등학교, 오레건의 엄콰대학 등등 사망자 열 명이 넘는 대규모 학살사건들이 이어지고, 특히 작년 말 사망자 58명을 비롯해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라스베가스와 26명을 죽인 텍사스 작은 시골교회에서의 대규모 총기살상과 같이 충격적인 사건들이 지속된 것에 따른 피로증, 즉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을 들 수 있다. 대규모 총기사건이 있을 때마다 미지근한 반응만을 보였던 미국 총기협회와 보수 정치권에 대한 반감이 늘어난 것도 이런 여론 변화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NeverAgain이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 (#BlackLivesMatter)’ 운동과 #MeToo로 대변되는 여성운동의 활성화 등 트럼프를 반대하는 사회운동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전반적인 운동의 활성화는 청소년들의 정치화를 촉진했고, 그 결과 시작된 고등학생들의 총기규제 운동은 대다수의 상하원 의원과 지방정부를 결정하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반트럼프 친민주당 진영에게는 호재로 작용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총기규제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민주당 내의 분위기도 많이 바뀐 상황에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반트럼프 진영이 #NeverAgain에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NeverAgain 운동을 시작했던 학생들의 세대적 특성도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이다. 이들은 99년 컬럼바인 학살 이후 태어나 유치원에서부터 총기사건을 대비한 훈련을 받아왔던 세대이다. 예전 한국에서의 민방위 훈련처럼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이 훈련(lockdown training)은 누군가가 총기를 들고 학교에 난입 했을 때를 대비해 문을 걸어 잠그고 안전한 곳에 몸을 낮춰 피신했다가 안전하게 학교 밖으로 탈출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연습하도록 한다. 한 마디로 이 세대는 총기사고의 위험성, 즉 나도 총에 맞아 죽을 수 있다는 위험을 항시적으로 간직하며 자라왔던 세대인 것이다. 그만큼 이 문제에 대한 감수성이 큰 세대라는 걸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NeverAgain을 시작한 학생들이 파클랜드라는 부유한 마이애미와 포트 로덜데일의 백인 교외도시 출신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되겠다. 지금까지 무수한 대량 총기살상 사건들이 있었지만 모든 사건들이 평등하게 다뤄지진 않았다. 부유한 동네에서의 총기살상은 많이 알려지고 호응도 컸던 반면 가난한 동네에서의 총기살상은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받아왔다. 총기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계급성을 띤다는 것 이다. 이건 사람들이 쉽게 기억하는 총기살상 사건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컬럼바인, 샌디훅, 버지니아 텍, 그리고 파클랜드. 버지니아 텍 사건은 사람도 많이 죽었을 뿐만 아니라 학교 자체도 일류학교였는데, 나머지 세 학교도 하나 같이 부유한 동네에 위치하고 있다. #NeverAgain이 시작된 파클랜드의 경우 교육수준이 높고 가구별 연소득 중간값이 13만불(약 1억 4천만원)이 넘는 도시다. 이에 반해 2005년 대량 살상이 발생한 레드레이크는 미국 원주민 거주지 안에 있는 가구별 연간 소득이 2만불 내외인 소도시이다. 또 2015년에 열 명이 죽은 엄콰대학은 2년제 전문대학으로 가구별 연간소득 3만불 내외의 상대적으로 가난한 도시에 위치해 있다.
확장하는 #NeverAgain
이런 배경들을 종합해보면 총기사건에 대한 감수성이 큰 파클랜드 고등학생들의 캠페인이 반트럼프 운동이 확산되는 시점과 중첩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와 더불어 파클랜드의 부유함이 부여해준 학생들의 높은 사회참여 의식과 문화자본이 미국 주류사회의 코드와 맞아떨어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실제로 #NeverAgain을 주도했던 학생들 대부분은 같은 연극 동아리에 속해 있었는데, 대중집회나 언론 인터뷰에서도 십대의 당돌함에 더해 전문가 뺨치는 언변과 당당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총기사고 직후 2월 17일의 집회에서 엠마 곤잘레스는 정치인들의 위선을 꼬집으며 그들의 말들이 다 “개소리(bull shit)”라고 연거푸 열변을 토했고, 2월 22일 CNN이 주최했던 총기문제 토론회에 참여했던 케머런 캐스키는 플로리다 상원의원을 향해 ‘미국 총기협회의 후원금을 거절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그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NeverAgain을 이끌고 있는 학생들이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에 대해—그리고 동일한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의 현실에 대해—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의 운동을 학교 대량 총기살상의 문제로만 제한하려 하질 않는다. 80만이 모였던 3월 24일 워싱턴의 집회에서는 로스엔젤레스 근교 사우스센트럴과 총기사건이 많은 시카고 남부 등 가난한 흑인 밀집지역을 대표하는 이들에게 많은 발언권이 주어지기도 했다. 백인이 많이 사는 부유한 동네 학교에서의 총기살상에는 분노하면서 매일 3-40명의 사망자를 내는 총기사건들에는 무감한 미국인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이들 커뮤니티 청소년들과의 연대감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컬럼바인이나 파클랜드에서처럼 대규모 총기살상으로 죽는 미국인의 숫자는 연간 평균 13,000명을 넘어서는 전체 총기사망 사건의 1%도 되지 않는다. 전체의 2/3 정도는 총기 자살로 죽고 나머지 대부분은 총기살인의 피해자가 되는데, 대부분은 너무나 일상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관심을 받지도 못한다. 게다가 많은 총기사망사건이 가난한 유색인종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탓에 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해결보다는 인종주의에 기반한 차별과 배제정책만 강화돼 왔다. 그래서 3.24 워싱턴 집회에서 오빠를 총기사건으로 잃고 “읽는 걸 배우기 전부터 총알 피하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는 사우스센트럴 출신의 고3 학생 에드나 챠베스는 경찰과 시의 문제해결 방식이 오히려 지역 구성원들을 적으로 돌리고 학생들을 범죄자 취급한다며, 학교와 지역공동체에 대한 지원을 통한 문제해결을 요구하기도 했다.
#NeverAgain 운동은 이미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파클랜드가 있는 플로리다주는 총기구매 연령을 기존의 18세에서 21세로 올렸고 폭력성을 보이는 이들로부터 총기를 압수할 수 있는 법령을 마련하기도 했다. 미 법무부도 반자동소총을 자동소총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액서세리(bump stock)의 판매를 금지했고, 씨티은행과 델타항공등 수십 개의 대기업들은 미국 총기협회와의 모든 거래를 끊기도 했다. 이런 변화는 그만큼 이 운동이 미국인들의 공감을 사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총기금지가 아닌 총기규제를 목표로 삼는 #NeverAgain 운동은 오늘날 미국에서 총기문제 해결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소위 ‘개척시기’부터 스스로 무장해 스스로를 ‘지켜야’ 했던 미국 백인들의 역사에서 총이 가지는 상징성은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남한 정체성의 상징처럼 자리 잡은 국가보안법만큼이나 강고하다. 많은 이들이 문제제기를 하기도 하고 조금씩 손보기는 하지만, 그걸 폐지 한다는 것은 언제나 ‘너무 이르’거나 ‘우리 정체성의 포기’로 인식되곤 한다. 미국 십대들의 겁 없는 도전에서부터 시작된 #NeverAgain 운동에 더 큰 관심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