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관
《부채 전쟁》을 함께 지었고, 참세상연구소(준) 기획 위원으로 활동하며 <참세상> 주례토론회 등을 기획하고 있다.
상식이깨진금융시장
“돈을 빌려 주면서 이자도 준다?” 최근 이 황당한 사건이 통화 정책의 트렌드로 부상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줘야 한다니.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비정상적인 사건이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대개 은행들은 예금자들의 현금 요구(돈을 찾는 것)에 대비해 지급 준비금을 마련해 둔다. 그리고 이 중 일부는 중앙은행에 예치금으로 넣어 두어야 한다. 만약 지급 준비금을 초과하는 예금이 발생하면 대부분 은행은 이것을 신규 대출로 활용한다. 그래서 은행은 일반적으로 예금 이자와 대출 이자의 차이를 이용해 자기 이익을 챙긴다. 그런데 딱히 대출할 곳이 없으면 매우 적은 이자라도 받기 위해 그냥 중앙은행에 저금하기도 한다. 괜히 무리한 부실 대출로 대출금을 날리면 막심한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앙은행을 은행들의 은행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마이너스 금리는 바로 이 돈, 즉 시중 은행이 예치금을 포함해 중앙은행에 맡긴 돈에 붙는 이자를 마이너스로 한다는 것이다. 이제 이 금리가 마이너스가 됐으니, 시중 은행들은 중앙은행에 돈을 맡길 때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내야만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이너스 금리가 최근 갑자기 부상한 것은 아니다. 몇 년 전부터 덴마크, 스웨덴 등 유럽 일부 국가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처음 마이너스 금리가 도입되었을 땐 자본 통제를 위한 아주 예외적이고 일시적인 조치로만 인식되었다. 그러다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2014년 6월부터 유로존 전체로 확대되었다. 지난 1월 일본도 마이너스 금리를 전격 도입했다. 지난 2월엔 미국 중앙은행에서도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충격적인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전 세계 금융 시장에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왜 전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을까? 앞서 얘기한 시중 은행들의 초과 자금을 대출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중앙은행에 맡기면 마이너스 금리를 물릴 테니 실물 경제에 적극적으로 대출하라는 메시지다. 경기 부양책의 수단으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들고나온 것이다.
그러면 과연 은행들은 마이너스 금리가 무서워서 남는 돈을 대출해 주는 데 썼을까? 기대했던 것과 달리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출해 준 돈이 부실해져 회수하기 힘들면 더 큰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100억에 마이너스 금리 0.1%면 1000만 원을 손해 보는 것이지만, 100억이 부실 대출이 되면 100억 모두를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금리가 가져온 부채의 역설
그렇다 보니 엉뚱하게도 이상한 방향으로 돈이 돌기 시작했다. 마이너스 금리를 –0.75% 까지 낮춘 스웨덴과 덴마크(-0.65%) 에서는 소비자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주택 가격은 50%나 올랐다. 남는 돈들이 실물 생산에 투자되는 것이 아니라 투기적인 주택 매매에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스웨덴과 덴마크의가처분소득대비가계부채비율은매우높은데, 각각 172%, 310%로 한국의 164%보다도 높다.
심지어 갈 길을 못 찾는 이 많은 돈이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되는 채권 시장에 대거 몰리고 있다. 2015년 1월 초 유럽중앙은행은 양적 완화를 발표하면서 1조 1400억 유로 (약 1400조 원) 국채 매입을 발표했는데, 그러면서 “금리가 마이너스인 국채도 매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시 유로존에서 유통되는 국채 가운데 20~25%는 이미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져 있었는데, 유럽중앙은행의 이런 결정은 마이너스 금리를 굳히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그 후 독일에서는 만기 5년짜리 국채 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0.08%에 발행되었다. 3개월, 6개월짜리 단기 국채가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건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그런데 무려 5년짜리 국채가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된 것이다. 독일 이외에도 덴마크, 네덜란드, 오스트리아가 마이너스 금리로 국채를 발행했다. 심지어 노키아의 몰락 이후4년동안GDP감소를보이며심각한경제위기를겪는 핀란드마저도 5년 만기 국채 10억 유로(약 1조 2470억 원) 어치를 –0.017%에 발행했다. 발행 예정 금액의 1.5배가 넘는 투자 자금이 몰렸다. 재정 위기 국가라 불렸던 이탈리아도 2년 만기 국채를 –0.023%에 발행했다. 심지어 만기 10년짜리 장기 국채 금리까지도 -0.007%로 발행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것은 채권자가 10년 뒤에 원금을 받을 때, 이자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더 줘야 한다는 얘기다.
중앙은행과 은행 사이에 적용되던 마이너스 금리가 국채로 번지더니 이제는 회사채로까지 확산됐다. 유수의 글로벌 대기업들까지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적용한 회사채를 발행했다. 네슬레는 4년 만기 유로화 채권을 –0.008%에 발생했다. 그리고 최근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일본에서도 미쓰이스미토모파이낸스&리스는 -0.001%, 기간 6개월의 조건으로 기업 어음(CP)을 발행해 시장에서 50억 엔(약 518억 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런 부채의 역설은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아니다. 최근 대대적인 양적 완화 정책을 추진 중인 유럽과 일본에서 주로 벌어지는 일이다. 화폐 발권력을 동원한 이들 중앙은행은 마치 국채 시장의 “최초 구매자”의 역할을 한다.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중앙은행이 족족 사들이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국가 재정의 보조 역할을 담당한다. 논리적으로 볼 때 앞으로 계속 마이너스 국채 금리가 지속된다면, 이들 국가 부채는 점차 줄어들게 된다. 빚을 내면 이자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한편,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예금자에 대한 일종의 징벌적 수수료이기 때문에, 예금을 은행 밖으로 내모는 역설을 만든다. 사실 이런 황당한 현상은 웬만한 우리 일상에선 벌어지기 힘들다. 만약 시중 은행들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다면, 아마도 예금자들이 서로 앞다퉈 예금을 빼 갈 것이다. 예금 이자는커녕 수수료를 물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은행 시스템을 파국으로 몰고 갈 뱅크런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마이너스 금리는 시중 은행들에 소액을 저금하고 있는 보통의 일반 대중에겐 적용할 수 없다. 적용된다면, 일반 대중이 아니라 대기업과 같은 고액 예금 기관들일 것이다. 실제 지난 2월 3일, 미쓰비시도쿄 UFJ 은행은 대기업 예금 계좌에 수수료 도입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소액 예금자와 달리 고액 예금 기관으로선 고액을 현금화시켜 보관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그냥마이너스금리로수수료를부담하는게더비용이낮을수 있다.
마이너스 금리, 절반의 성공과 숨겨진 위험성
이처럼 고액 예금 기관들에 대한 마이너스 금리 압박은 이들로 하여금 돈을 쌓지 말고 투자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국가 부채가 많은 재정 위기 국가들에 마이너스 국채 금리로 재정 부담을 더는 효과를 줄 수도 있다. 이런 점들에 비춰 보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앞서 언급했듯, 마이너스 이자로 수수료를 그냥 무는 것이 불확실한 투자 실패보다 더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쌓여 있는 뭉칫돈이 생산적인 투자에 활용될 것이라고 쉽게 예단할 수 없다. 오히려 현실은 주택 시장을 과열시키는 역할을 하거나, 위험 자산이라 불리는 파생 금융 상품 매입에 쓰인다.
또한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 수준까지 내려가면 국채에 많은 투자를 하는 연기금과 보험 회사들은 신규 국채에 대한 투자 비중을 줄이고 금리가 더 높은 다른 금융 상품으로 갈아타야 한다. 왜냐하면 연기금과 보험 회사들은 가입자들에게 돌려줘야 할 약정 수익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들로 하여금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수익성이 더 높은 위험 자산에 투자하도록 압박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공공 자산의 성격이 매우 불안정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신흥국 금융 시장으로 이동한 선진국 자금은 신흥국의 환율 안정을 해치는 잠재적인 불안 요소가 된다. 왜냐하면 예기치 못한 금융 위기는 신흥국 금융시장으로 이동했던 선진국들의 자금을 다시 원래대로 급격히 역전시키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비정기적으로 반복되는 신흥국 금융 시장의 동요가 이를 방증한다.
원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표방했던 실물 경제 부양 효과는 아직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마이너스 금리는 소위 “정부 부채의 화폐화(monetization)”라 불리는 현상을 빚어내고 있다.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된 국채를 매입하면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정부의 빚을 갚는 것(정부 부채의 화폐화)’과 똑같은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금리에서는 부채를 지는 것이 오히려 돈을 버는 일이다. 이것은 양면적 효과로 나타난다. 충분한 돈을 쌓아둔글로벌대기업이빚을내서돈을버는황당한상황을 만든다.또한재정위기에처한국가가국가부채를줄이는 일도 가능하게 한다. 어쩌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숨겨진 목표는 재정 정책을 보조하기 위한 수단일지도 모른다. 마치 비전통적이고 예외적인 통화 정책에서 이제 상시적인 통화 정책이 된 양적 완화처럼 말이다.
그래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양적 완화가 걸어 왔던 행로처럼 비정상적인 통화 정책에서 정상적인 통화 정책으로 점차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많은 중앙은행이 유로존과 일본을 뒤따라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시행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캐나다, 노르웨이, 영국, 이스라엘, 체코 등이 거론된다. 이로써 통화 정책의 비정상과 정상의 구분이 무엇인지 더욱 모호해지고 있다. 가히 역설적으로 “비정상의 정상화”라 칭할 만하다. 그러나 이처럼 화폐적 해법의 극단으로 밀고 나가는 “정상화(?)”가 도달할 끝이 어디일지, 그리고 이것이 과연 장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는 세계 경제를 정상적인 상태로 복귀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우리는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다만 위기에 빠진 시장에 대해서 국가 기관의 직접적인 개입과 통치가 더욱 요구된다는 사실만은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
워커스 4호 (201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