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혜 (청소년 활동가로 살다가 스무 살을 맞았다. 청년초록네트워크, 청년좌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불복종 선언
선거철이다. 나는 선거 운동을 ‘돕고’ 있다. 스무 살이지만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 참정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정식 선거 운동원은 될 수 없지만, SNS에 사진을 찍어 올린다거나 1인 피케팅을 진행하는 등 소소한 일들을 하고 있다.
이번 총선은 내 인생의 첫 번째 선거다. 그간 선거란 나에게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존재였다. 나는 참정권을 박탈당한 채, 정치적 주체에서 배제된 청소년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청년 활동가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방에만 있었다. 학교에만 있었다.
선거는 정치의 모든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선거는 고작 투표권이라는 ‘장미꽃 한 송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선거를 통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절망의 종류’라거나 ‘절망의 모양’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엔 장미꽃 한 송이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참정권이 없다는 건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다. 선거권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관해 이야기할 권리, 정치적 표현을 할 권리를 모두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주체로서의 ‘나’ 자체가 선거법 위반이라니 얼마나 숨 막히는 일인가.
‘우리 아이들’이라는 이름 아래, 청소년을 배제하는 정치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들’의 정치 속에서 청소년의 삶은 조금도 나아질 수 없다.
선거 운동을 ‘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돕고 있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생각했다. 이 선거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여전히 정치적 주체에서 배제되어 있지만, 나는 방 밖으로 나왔다. 매번 존재를 부정당할지라도 방 밖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다.
20대 ‘개새끼’론의 이면
선거 운동을 도우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두 가지다. “몇 살이세요?” “(후보자의) 딸이세요?”
심지어는 다른 정당의 선거 운동원이 머리를 쓰다듬거나 귀엽다고 칭찬(같지도 않은 칭찬)을 하기도 한다. 우리 쪽의 젊은 선거 운동원들을 보며, 젊은 것들이 기특하다며 치켜세우는 주민들도 많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과 동등한 정치적 주체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언제나 지형은 평등하지 않다. 나이 어린 여성은 정치적 주체가 아니라 기특한 보조자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나이가 지긋한 여성 선거 운동원이나 건장한 남성 선거 운동원에게는 침묵하면서, 나이 어린 여성에게는 자신의 신념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20대 개새끼론’이라는 말이 있다. 증명된 바 없으나, 투표율이 낮다고 비난받는 20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언제나 젊음이, 청춘이, 청년이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기득권의 잘못은 청년이 게으른 탓, 열정이 없는 탓으로 치환된다. 청년 실업, 청년 담론, 청년 문제, 청년 정치….
청년은 이제 어디에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유행어가 됐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청년 담론과 청년 문제는 주체성을 잃은 채 타인에 의해 규정되었다. 젊은 것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꼰대들은 청년을 동등한 정치적 주체로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이곳에서 나의 정치를
나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운동의 주체로 성장했다. 304명의 희생자,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목격하며, 나는 청소년으로서 내가 머무르던 공간인 ‘교실’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목소리에 순응하지 않고, 현재를 유예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침묵 행진, 동조 단식 등을 주도하며 청소년 주체로 사람들을 모았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나는 추모의 언어를 찾지 못해 바둥거렸다. ‘우리 아이들을 지켜 달라’는 외침 앞에 나의 존재는 없었다. 참사의 당사자가 한 명의 존엄한 사람이 아닌,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학생으로서 추모되는 것이 불편했다. 청소년에게 가족주의나 입시 교육은 또 다른 폭력임에도, 우리 사회는 희생자를 규정된 틀 안에 가둬 두었다. 나는 기껏해야 미안하거나 기특한 ‘우리 아이들’이었지, 활동가는 아니었다. 추모할 언어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형태의 ‘가만히 있으라’는 강요를 들어야만 했다. 그것을 뚫고 나오며, 스스로의 정치를 펼치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언제나 타인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로 살아왔다. 이는 운동판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청소년 활동가로서, 경험이 부족하고 어린 활동가로서, 여성으로서 나는 끊임없이 규정되었다.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다가온다. 여전히 나의 정치적 목소리는 재단되고 규정되지만, 나는 방 밖으로 나올 것을 선언한다. 선거 운동을 ‘하고 있음’을, 내가 ‘정치적 주체’임을 선언한다. 규정된 틀 밖에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목소리를 낼 것을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