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성 소수자 故 육우당을 추모하며
재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성소수자를 차별하거나 혐오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함께 투쟁합시다.
2003년 4월 2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제7조에 청소년 유해 매체물 심의 기준으로 ‘동성애’를 표방한 것이 인권을 침해하므로 동성애를 유해 매체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청소년보호위원회에 권고한다. 그리고 5일 후인 4월 7일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은 “동성애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유황불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정상적인 성적 지향이라며 동성애를 권장할 수 있게 만드는 입장을 철회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짧은 내용을 쓰면서도 내 몸은 분노를 느낀다. 무려 13년이 흘렀는데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입장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슬프다. 이런 분노와 슬픔을 감당해야만 하는 세상 앞에서 성 소수자 당사자는 싸울 수밖에 없다.
2003년, 기독교의 반동성애 혐오가 판치던 시절, 그와 싸우던 이가 있었다. 청소년 성 소수자 故 육우당. 스무 살 생일을 몇 개월 앞두고 있던 그는 한기총 성명이 발표되고 큰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4월 25일에서 26일로 넘어가던 밤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그는 유서에 “몰지각한 편견으로 이 사회는 수많은 성적 소수자를 낭떠러지로 내몰고 있다”며 “내 한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 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적었다. 육우당은 이름이 아닌 그의 호다. 녹차와 파운데이션, 술, 담배, 묵주, 수면제를 친구로 여겨 스스로 필명을 육우당이라 했다. 살아 있다면 올해로 서른셋, 그는 내가 회원으로 있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회원이었다. 나는 그를 만나 본 적은 없지만 그가 떠나고 난 이후 그처럼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과 종종 마주했다. 사실 성 소수자들을 죽인 것은 세상의 혐오와 차별, 멸시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이 지겨울 때가 있지만,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함을 잘 안다.
하지만 가끔은 세상의 차별과 혐오, 그로 인한 아픔보다 그 사람들이 살았던 삶에 대해서도 쓰고 싶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해서 병역 거부를 결심했던 육우당.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밝고 쾌활한 성격을 지녔으며, 송년회에서 음식을 더 먹으라는 말에 “제 깜찍한 위장이 배가 불러서 더 못 먹겠는데요”라고 사랑스럽게 받아치던 육우당 이야기도 하고 싶다. 나는 종종 ‘어리고 연약한 청소년 성 소수자’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으로 그를 추모하는 언론이 불편했다. 육우당은 성 소수자라서 당연하게 불쌍한 사람이 아니었다. 흔히 노동 운동 안에서도 열사를 추모할 때 “평범하고 성실하고 착한 노동자”라는 식으로 열사를 기억할 때가 있는데 그게 떠난 사람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올바른 방식인지 의구심이 든다. 우리는 ‘잘’ 추모하고 있는 것일까?
“난 내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른손잡이가 있으면 왼손잡이가 있는 것이고, 이런 길이 있으면 저런 길도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가장 많이 다니는 길’을 걷는다면, 난 단지 ‘인적이 드문 길’을 걷고 있는 것뿐이다.”
– 2002년 10월 8일, 육우당의 일기 중
육우당이 일기에 적은 것처럼 세상이 만들어 놓은 어떤 규칙을 깨트리거나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은 비정상으로 분류된다. 이를테면 노동조합의 조합원, 장애인 차별을 박살 내고 싶은 장애인, 성 소수자 차별을 없애려는 성 소수자 당사자나 활동가들이 그렇다. 인적이 드문 길을 걷는 것이 비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에서 언제까지 그 행위가 비정상이 아님을 증명해야 할까? 이미 그 정상성이라는 것 자체가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이나 규범인데 그 틀이나 규범에 들어가야만 사람의 자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진 않은가? 무조건 사회적인 합의가 가능해야만 권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얻어선 안 되는 것일까?
인간의 권리를 얻으려 사회적 다수에 인정받고자 비굴해지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비굴한 방식으로 얻어서는 안 될 소수자의 권리를 대를 위한 소의 희생, 권리를 얻기 위한 당연한 절차로 생각하며 사람들 앞에서 버리는 이들도 있다. 2014년 서울 시민 인권 헌장 제정 당시 성 소수자의 존재를 헌장 안에서 삭제하려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그러했고, 서울시 주민 참여 예산 사업으로 제안된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 센터’ 예산을 불용 처리한 김영배 성북구청장이 그러했다. 이번 4.13 총선을 앞두고 ‘성 소수자의 존재를 지지하지 않는다.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밝혔던 박영선, 표창원 당선자가 그랬다. 그들은 반동성애적 입장을 가진 보수 기독교인들 앞에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 성 소수자들의 존엄성을 저버리고 말았다.
2003년 성명서를 발표해 육우당의 죽음에 영향을 주었던 한기총은 이번 총선에서 적극적으로 기독자유당과 함께했다. 기독자유당은 핵심 공약으로 차별금지법 반대, 동성애 반대, 이슬람 반대를 걸었다. 종교적인 신념을 이유로 누군가의 삶을 반대한다는 주장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 공약으로 이용될 때, 사람들은 남의 일인 듯 무관심하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 무관심 속에서 일어나는 혐오와 차별로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육우당과 함께 활동했던 곽이경 민주노총 대협부장은 “육우당이 떠나고 난 이후나 그 전에도 한국 성 소수자들은 자신들의 이름으로 장례를 치러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육우당이 여전히 자신의 이름으로 추모될 수 없듯이, 성 소수자가 죽었는데 그 죽음을 추모함에 있어도 성 소수자로서의 이름과 얼굴을 가질 수 없다. 성 소수자에게는 삶이 그러했듯 죽음마저 차별적이다.
육우당은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과 혐오를 당했고 스스로 삶을 마감했지만, 자신이 교류하고 싶고 교감하고 싶은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육우당은 유서에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러 달라고 했다. 그는 유서 마지막에 평소 다니던 성당의 민 모 신부님이 장례식장에 와서 슬픔을 함께 나누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육우당은 신부님을 굉장히 존경하고 좋아했다. 신부님은 육우당의 마지막 가는 길에 동행했다.
삶을 동행한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지 궁금하다. 인간으로 존엄한 삶을 살아가고 있나? 시간당 6030원에 팔려 가는 것이 당연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여성이라서, 저학력자라서, 비정규직이라서, 장애인이라서, 이주민이라서, 청소년이라서, 힘없는 사람이라서 무시당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그래서 문득 죽음을 떠올리진 않는지 궁금하다. 행여라도 그렇다면 우리는 이어져 있다. 나와 연결된 당신이 죽는다면 나는 당신의 죽음을 최선을 다해 추모할 것이다. 그 전에 당신과 내가 존엄을 잃고 모욕당하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존엄을 함께 지켜내자. 함께 살자.